"제가 듣건대, 술과 고기로 먹일 수 있는 사람은 채찍으로 칠 수도 있고, 벼슬과 녹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형구刑俱로 처벌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남에게 견제받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짜던 삼태기를 던져버리고 떠났다. #숨어사는_즐거움 #교산_허균
고조高祖가 보러 갔다가,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홍경이 대답하였다.
산중에 무엇이 있냐고요 고개 위에 흰구름 많지요 단지 혼자만 즐길 수 있고 임금님께가져다 줄 순 없지요 #숨어사는_즐거움 #교산_허균
이보다 앞서 한나라의 매복이 꽃나무를 심었는데 못 가운데서 꽃이 피자 이렇게 탄식하였다. "삶은 나의 괴로움이 되고 몸은 나의 질곡이 되며, 형形은 나의 치욕이 되고 아내는 나의 누累가 되는구나." 그러고는 드디어 아내를 버리고 홍애산으로 들어가버렸다. #숨어사는_즐거움 #교산_허균
손방의 호는 사휴거사四休居士인데, 송나라 황정견이 그 호의 뜻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거친 음식을 먹어도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누더기옷을 입어도 몸만 따뜻하면 그만이고, 불평과 불만도 시기가 지나면 그만이고 탐욕과 질투도 나이가 많아지면 그만이다." #숨어사는_즐거움 #교산_허균
성재 양만리가 조정에 벼슬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 고향집으로 가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하여, 상자에 넣어 자물쇠를 채운 다음 잠자리 곁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집안사람들에게, "한 가지 물건이라도 사들이지 말라. 고향으로 돌아갈 때 부담스러운 짐이 될까 염려스럽다"라고 훈계하면서, 날마다 금방이라도 행장을 꾸릴 것같이 했다. 이 뜻이 매우 훌륭하다. 조정에 벼슬하면서만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에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 무릇 세상살이란 사람에게 있어 여관과 같은 것이다. #숨어사는_즐거움 #교산_허균
문을 닫고 불경을 읽는 일, 문을 열고 가객을 접대하는 일, 문을 나가 산수를 찾는 일, 이 세 가지는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숨어사는_즐거움 #교산_허균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고, 시내는 흐르고 돌은 서 있고, 꽃은 새를 맞아 웃고, 골짜기는 초부의 노래에 메아리치니, 온갖 자연 정경은 스스로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 소란하다. #숨어사는_즐거움 #교산_허균
오직 독서만이 유리하고 무해하며, 오직 산수만이 유리하고 무해하며, 오직 풍월과 화죽만이 유리하고 무해하며, 오직 단정히 앉아 고요히 말없이 있는 것이 유리하고 무해한데, 이러한 것들을 지극한 즐거움이라 한다. #숨어사는_즐거움 #교산_허균
진정으로 그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을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결국, 명상이란 마음을 멈추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 마음을 버리고 무심(無心)이라 불리는 순수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무심의 공간 속에서 그대는 궁극적 진리인 담마(dhamma)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서 무심으로 이동하는 것은 걸음, 곧 파다(pada)이다. 이것이 담마파다(Dhammapada)의 모든 비밀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그대 자신을 경험한다. 그대는 몸이 아니다. 그대는 마음이 아니다. 그대는 '주시하는 순수한 의식'이다. 이 주시하는 의식을 경험하면 엄청난 각성이 일어난다. 뱀이 또아리를 풀듯이, 잠자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듯이 돌연한 각성이 밀려온다.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경험한다. 생애 최초로 그대 존재의 진리를 느낀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이 세상에서 크게 수확된 것은 다음 세상에서 더욱더 커진다.
아무리 많은 경전을 읽어도,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 것은 행동에 달려 있다. 훌륭한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깨어 있음(wakefulness)'이 삶의 길이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죽은 것처럼 잠잔다. 그러나 깨어 있는 스승은 영원히 산다. 각성(awareness)은 영원하다. 그것은 죽음을 모른다. 오직 비각성(unawareness)만이 죽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무의식적 상태에 남아 있다면, 쿨쿨 잠자고 있다면 또 죽음을 맞을 것이다. 나고 죽는 이 불행의 악순환에서 탈피하고 싶다면 탄생과 죽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대는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대는 더 높은 의식(consciousness)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지혜로운 자는 전력을 다해 사념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그는 마음의 방황을 끝낸다. 그는 가슴의 동굴에 앉아 자유를 발견한다.
머리는 노예이지만 가슴은 자유이다. 머리는 불행이다. 그러나 가슴은 최고의 행복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이 육신은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마음의 성을 튼튼히 쌓아라.
붓다가 말하는 '마음'이란 의식(consciousness)을 의미한다. 붓다가 의미하는 마음은 그대가 가진 평범한 마음이아니라, 모든 사념이 사라진 텅 빈 마음이다. 그대 마음의 성을 쌓으라. 이 육체는 죽을 것이다. 육체에 의지하지 말라.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이 몸은 다만 물거품이고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것을 이해하라.
육체는 그림자조차도 아니다. 육체는 그림자의 그림자이다. 붓다는 육체의 비실체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육체는 메아리의 메아리이다. 실체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신은 실체이다. 그것을 진리라 불러도 된다. 붓다는 그것을 '담마(dhamma)'라고 부르길 원했다. 신은 궁극적 실체이다. 그 다음에 영혼은 그의 그림자이며, 육체는 그림자의 그림자이다. 육체에서 영혼, 영혼에서 신으로 - 영원한 법, 담마 - 나아가라. 영원한 법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정지하지 말라. 오늘 그대는 여기에 있지만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소중한 날을 헛된 것에 매달려 낭비하지 말라. 사람들은 계속 헛된 것을 긁어모으다가 어느 날 빈 손으로 떠난다. 그들이 평생 동안 모았던 모든 것이 뒤에 남는다. 그들은 단 한 가지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그렇듯이 지혜로운 자는 정착함과 동시에 방랑하리라.
매우 이상한 말이다. 정착하고 방랑한다니·······. 내면에 정착하라. 내면의 중심에 존재하라.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방랑자가 되라. 내면에 뿌리를 내려라.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한 곳이나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지 말라. 집착과 소유욕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진리는 그대 내면의 핵심부에 있는 본성이다. 진리는 그밖의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에싸 담모 사난따노······. 이것이 영원한 법이다. 진리는 그대의 내면에 있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붓다는 말한다. 확실히 무엇인가 순간적인 달콤함이 있으며, 그 달콤함으로 인해 인간이 고통받는다고. 그 달콤함은 필연적으로 쓰라린 고통으로 변모한다. 그대의 삶을 돌이켜보라.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궁극적 법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죽지 않는 것, 순수한 의식이 그것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그러나 법의 길을 따라가는 지혜로운 이는 죽음의 끝을 넘어가는구나.
지성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기울여야 할 노력은, 어떻게 하면 죽음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것을 아느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에라도 죽음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바로 다음 순간, 또는 내일 올지도 모른다. 죽음은 언제라도 그대를 덮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성적인 사람이 가장 우선적으로 기울이는 노력은 죽음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것을 아는 게 될 것이다. 자신이 파괴되지 않도록 불사의 어떤 것 안에 중심을 두는 것, 그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지성적인 사람의 첫 번째 노력이 될 것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주인된 자, 여정의 끝에서 자유를 찾아내리. 욕망과 슬픔,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우리.
붓다의 단어는 신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고 지복도 아니다. 자유가 그의 단어이다. 자유에는 신, 진리, 지복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그는 자존심과 감각을 길들인다. 신들도 그를 찬양하리라.
자존심과 감각을 길들여라. 자존심이 그대를 지배한다면 그 자존심은 에고이다. 그러나 그대가 주인이라면 그때에 자존심은 '자기 존중'이다. 통합성을 획득한 모든 사람은 '자기 존중'을 갖는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자기 존중'은 이런 의미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나는 어느 누구도 모욕하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나를 모욕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의 노예도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어느 누구도 나의 노예로 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길들여진 자존심이다. 그때엔 자존심은 아름다운 노예가 된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한 인간이 죽으면-실제론 죽어가는 동안에-그는 즉시 악몽에 빠지거나 아주 아름다운 장소에 들어간다. 이젠 심리학자들도 점차 이런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그 악몽이 지옥이고 아름다운 장소가 천국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사람들이 서로를 괴롭히는 일, 특히 인생의 한창 때에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해야 할 바로 그 시기에 싸움과 논쟁으로 얼마 되지 않는 행복한 날들을 허비해 버리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네.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지.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눈길 한 번 주기를 이토록 간절히 바라다니, 남자란 얼마나 어린 애 같은지!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사람들과 있을 때 그녀의 이름이라도 언급되면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이 구는지 자네도 봐야 하네. 누군가 내게 그녀가 마음에 드느냐고 지나가듯이 물을 때는 특히 더한다네. 마음에 드느냐고! 나는 그런 말은 딱 질색일세. 샤를로테에게 온 마음과 감각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고 단순히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는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하지만 그녀다 따뜻하게 애정을 담아 자신의 약혼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명예와 지위를 박탈당하고 칼마저 빼앗겨 버린 군인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비헬름,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이 우리 마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빛이 없다면 환등기가 무슨 소용인가? 안에 불을 밝혀야 환한 영상이 흰 벽에 미치는 거지. 사랑이 우리에게 쏜살같이 그림자만 보여 준다 하더라도, 우리가 마치 아이처럼 그걸 보면서 화려한 환영에 넋을 잃는다면 그것 역시 행복이겠지.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오늘 그녀를 만나야지!" 아침에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화창하고 아름다운 태양을 내다보며 기쁘게 외친다네. "오늘 그녀를 만나야지!" 그러고는 더 이상의 소원은 떠오르지 않는다네. 모든 것이 이 하나의 생각에 다 들어 있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아침에 괴로운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샤를로테를 향해 부질없이 팔을 뻗는다네. 밤이면 행복한 꿈에 농락되어 들판에서 그녀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입을 맞추고 있다는 착각에 잠자리에서 그녀를 찾아 허우적거리지만 헛될 뿐이지. 잠이 덜 깬 상태에서그녀가 가까이 있다는 행복감에 그녀를 찾아 더듬다 눈을 뜨면 가슴이 메어 눈물이 흐르고, 나는 위로할 길 없이 어두운 미래를 생각하며 울 따름이라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아! 이 공허함, 내 가슴 가득히 느끼는 이 무서운 공허함! 한 번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내 가슴에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나는 때때로 이 끔찍한 공허가 메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나에게는 죽을 용기가 남아 있다네!
아마도 그럴걸세.
하지만 나는 비참한 목숨을 며칠이라도 연장하려고 가엾은 가난뱅이가 마치 장작을 긁어모아 집집마다 다니며 그것으로 빵을 구걸하듯이 여기 아직도 앉아 있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이것은 당신 손안에 있었고 당신이 직접 먼지를 닦아 주었군요.
나는 이 권총에 천 번이나 입을 맞추었습니다.
-당신이 만졌던 물건이니까요.
그래요, 하늘도 내 계획을 지지하고, 샤를로테, 당신은 이 치명적인 도구를 내게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