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그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을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결국, 명상이란 마음을 멈추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 마음을 버리고 무심(無心)이라 불리는 순수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무심의 공간 속에서 그대는 궁극적 진리인 담마(dhamma)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서 무심으로 이동하는 것은 걸음, 곧 파다(pada)이다. 이것이 담마파다(Dhammapada)의 모든 비밀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그대 자신을 경험한다. 그대는 몸이 아니다. 그대는 마음이 아니다. 그대는 '주시하는 순수한 의식'이다. 이 주시하는 의식을 경험하면 엄청난 각성이 일어난다. 뱀이 또아리를 풀듯이, 잠자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듯이 돌연한 각성이 밀려온다.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경험한다. 생애 최초로 그대 존재의 진리를 느낀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이 세상에서 크게 수확된 것은 다음 세상에서 더욱더 커진다.
아무리 많은 경전을 읽어도,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 것은 행동에 달려 있다. 훌륭한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깨어 있음(wakefulness)'이 삶의 길이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죽은 것처럼 잠잔다. 그러나 깨어 있는 스승은 영원히 산다. 각성(awareness)은 영원하다. 그것은 죽음을 모른다. 오직 비각성(unawareness)만이 죽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무의식적 상태에 남아 있다면, 쿨쿨 잠자고 있다면 또 죽음을 맞을 것이다. 나고 죽는 이 불행의 악순환에서 탈피하고 싶다면 탄생과 죽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대는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대는 더 높은 의식(consciousness)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지혜로운 자는 전력을 다해 사념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그는 마음의 방황을 끝낸다. 그는 가슴의 동굴에 앉아 자유를 발견한다.
머리는 노예이지만 가슴은 자유이다. 머리는 불행이다. 그러나 가슴은 최고의 행복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이 육신은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마음의 성을 튼튼히 쌓아라.
붓다가 말하는 '마음'이란 의식(consciousness)을 의미한다. 붓다가 의미하는 마음은 그대가 가진 평범한 마음이아니라, 모든 사념이 사라진 텅 빈 마음이다. 그대 마음의 성을 쌓으라. 이 육체는 죽을 것이다. 육체에 의지하지 말라.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이 몸은 다만 물거품이고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것을 이해하라.
육체는 그림자조차도 아니다. 육체는 그림자의 그림자이다. 붓다는 육체의 비실체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육체는 메아리의 메아리이다. 실체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신은 실체이다. 그것을 진리라 불러도 된다. 붓다는 그것을 '담마(dhamma)'라고 부르길 원했다. 신은 궁극적 실체이다. 그 다음에 영혼은 그의 그림자이며, 육체는 그림자의 그림자이다. 육체에서 영혼, 영혼에서 신으로 - 영원한 법, 담마 - 나아가라. 영원한 법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정지하지 말라. 오늘 그대는 여기에 있지만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소중한 날을 헛된 것에 매달려 낭비하지 말라. 사람들은 계속 헛된 것을 긁어모으다가 어느 날 빈 손으로 떠난다. 그들이 평생 동안 모았던 모든 것이 뒤에 남는다. 그들은 단 한 가지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그렇듯이 지혜로운 자는 정착함과 동시에 방랑하리라.
매우 이상한 말이다. 정착하고 방랑한다니·······. 내면에 정착하라. 내면의 중심에 존재하라.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방랑자가 되라. 내면에 뿌리를 내려라.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한 곳이나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지 말라. 집착과 소유욕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진리는 그대 내면의 핵심부에 있는 본성이다. 진리는 그밖의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에싸 담모 사난따노······. 이것이 영원한 법이다. 진리는 그대의 내면에 있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붓다는 말한다. 확실히 무엇인가 순간적인 달콤함이 있으며, 그 달콤함으로 인해 인간이 고통받는다고. 그 달콤함은 필연적으로 쓰라린 고통으로 변모한다. 그대의 삶을 돌이켜보라.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궁극적 법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죽지 않는 것, 순수한 의식이 그것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그러나 법의 길을 따라가는 지혜로운 이는 죽음의 끝을 넘어가는구나.
지성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기울여야 할 노력은, 어떻게 하면 죽음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것을 아느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에라도 죽음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바로 다음 순간, 또는 내일 올지도 모른다. 죽음은 언제라도 그대를 덮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성적인 사람이 가장 우선적으로 기울이는 노력은 죽음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것을 아는 게 될 것이다. 자신이 파괴되지 않도록 불사의 어떤 것 안에 중심을 두는 것, 그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지성적인 사람의 첫 번째 노력이 될 것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주인된 자, 여정의 끝에서 자유를 찾아내리. 욕망과 슬픔,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우리.
붓다의 단어는 신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고 지복도 아니다. 자유가 그의 단어이다. 자유에는 신, 진리, 지복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그는 자존심과 감각을 길들인다. 신들도 그를 찬양하리라.
자존심과 감각을 길들여라. 자존심이 그대를 지배한다면 그 자존심은 에고이다. 그러나 그대가 주인이라면 그때에 자존심은 '자기 존중'이다. 통합성을 획득한 모든 사람은 '자기 존중'을 갖는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자기 존중'은 이런 의미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나는 어느 누구도 모욕하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나를 모욕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의 노예도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어느 누구도 나의 노예로 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길들여진 자존심이다. 그때엔 자존심은 아름다운 노예가 된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한 인간이 죽으면-실제론 죽어가는 동안에-그는 즉시 악몽에 빠지거나 아주 아름다운 장소에 들어간다. 이젠 심리학자들도 점차 이런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그 악몽이 지옥이고 아름다운 장소가 천국이다. #법구경 #오쇼_라즈니쉬_강의
사람들이 서로를 괴롭히는 일, 특히 인생의 한창 때에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해야 할 바로 그 시기에 싸움과 논쟁으로 얼마 되지 않는 행복한 날들을 허비해 버리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네.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지.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눈길 한 번 주기를 이토록 간절히 바라다니, 남자란 얼마나 어린 애 같은지!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사람들과 있을 때 그녀의 이름이라도 언급되면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이 구는지 자네도 봐야 하네. 누군가 내게 그녀가 마음에 드느냐고 지나가듯이 물을 때는 특히 더한다네. 마음에 드느냐고! 나는 그런 말은 딱 질색일세. 샤를로테에게 온 마음과 감각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고 단순히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는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하지만 그녀다 따뜻하게 애정을 담아 자신의 약혼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명예와 지위를 박탈당하고 칼마저 빼앗겨 버린 군인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비헬름,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이 우리 마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빛이 없다면 환등기가 무슨 소용인가? 안에 불을 밝혀야 환한 영상이 흰 벽에 미치는 거지. 사랑이 우리에게 쏜살같이 그림자만 보여 준다 하더라도, 우리가 마치 아이처럼 그걸 보면서 화려한 환영에 넋을 잃는다면 그것 역시 행복이겠지.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오늘 그녀를 만나야지!" 아침에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화창하고 아름다운 태양을 내다보며 기쁘게 외친다네. "오늘 그녀를 만나야지!" 그러고는 더 이상의 소원은 떠오르지 않는다네. 모든 것이 이 하나의 생각에 다 들어 있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아침에 괴로운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샤를로테를 향해 부질없이 팔을 뻗는다네. 밤이면 행복한 꿈에 농락되어 들판에서 그녀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입을 맞추고 있다는 착각에 잠자리에서 그녀를 찾아 허우적거리지만 헛될 뿐이지. 잠이 덜 깬 상태에서그녀가 가까이 있다는 행복감에 그녀를 찾아 더듬다 눈을 뜨면 가슴이 메어 눈물이 흐르고, 나는 위로할 길 없이 어두운 미래를 생각하며 울 따름이라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아! 이 공허함, 내 가슴 가득히 느끼는 이 무서운 공허함! 한 번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내 가슴에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나는 때때로 이 끔찍한 공허가 메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나에게는 죽을 용기가 남아 있다네!
아마도 그럴걸세.
하지만 나는 비참한 목숨을 며칠이라도 연장하려고 가엾은 가난뱅이가 마치 장작을 긁어모아 집집마다 다니며 그것으로 빵을 구걸하듯이 여기 아직도 앉아 있네
#젊은_베르테르의_슬픔 #요한_볼프강_폰_괴테
"이것은 당신 손안에 있었고 당신이 직접 먼지를 닦아 주었군요.
나는 이 권총에 천 번이나 입을 맞추었습니다.
-당신이 만졌던 물건이니까요.
그래요, 하늘도 내 계획을 지지하고, 샤를로테, 당신은 이 치명적인 도구를 내게 주었습니다.
전형적으로 책 팔아먹기 위해 독자들을 낚으려는 의도로 괴벨스가 글쓴이인 척 했다. 그래서 몇 줄 읽어보면 괴벨스가 쓴 게 아님을 알아차린다. 첨부된 예시 글을 보라. 1945년 5월 1일 베를린 함락 시 사망한 저자-괴벨스-가 60년 대의 케네디 대통령과 문화대혁명 시기를 의미하는 모택동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철저하게 누가 썼는지 저자는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옮긴 이-번역한 사람-만 나옴.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직접’ 프로파간다를 기술한 방법으로 괴벨스가 ‘직접’ 행한 선전 방법이 알고싶었다면 이 책은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히틀러와 괴벨스 까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명을 밝히지 않고 괴벨스가 쓴 것처럼 하면 안 된는 이유다. #괴벨스_프로파간다!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이룬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
집단화와 제휴라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 교류 구조야말로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집단 사고를 조직하고 대중의 생각을 단순화해온 방식이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의 보편화로 보통 사람도 자신의 환경을 다스리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읽고 쓰는 능력을 터득하게 되면 지배하는 데 적합한 사고를 가져야 마땅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르면 그랬다. 하지만 읽고 쓰는 능력의 보편화는 대중에게 사고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을 거수기로 만들어버렸다. 다시 말해 대중은 광고 문구, 사설, 출간된 과학 자료, 지리멸렬한 타블로이드 신문 기사와 단조로운 역사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을 뿐 독창적인 사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거수기가 되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똑같이 거수기가 된 상태에서 똑같은 자극에 노출되면 모두가 똑같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의 대중이 이 대규모 유행 속에서 생각의 대부분을 형성한다고 말한다면 과장일지도 모르겠다. 특정 시점에서 선전을 정의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현대의 선전은 기업이나 사상 또는 집단과 대중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건을 새로 만들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끼워 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
트로터와 르봉은 집단 심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고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사고 대신 충동, 습관, 감정이 자리 한다. 결정을 내릴 때 집단 심리는 대개 믿음이 가는 지도자의 선례에 따르려는 충동을 보인다. -------- 하지만 지도자의 선례를 따르기가 여의치 않아 집단 스스로 생각해야 할 때면 집단 전체의 생각이나 경험을 상징하는 상투어나 적절한 표현 또는 이미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
인간은 대개 스스로 감추고 있는 동기에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는 이러한 일반 원리는개인 심리뿐만 아니라 대중 심리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유능한 선전가가 되려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당사자들이 제시하는 동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러한 행동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동기를 파악해야 한다. 사회 구조, 집단과 개인의 관계, 소속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자는 기관차의 실린더와 피스톤에 대해서 모두 알더라도 증기가 압력을 받으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른다면 엔진을 작동할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사회라는 엔진을 가동하는 증기다. 선전가는 인간의 욕망을 이해해야만 현대 사회라는 거대하면서 짜임새가 느슨한 기계를 비로소 조종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
PR 고문의 권고 내용은 개별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지만 그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나는 이 두 가지에 '지속적 설파'와 '우월성 발현'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싶다. 이 둘은 서로 번갈아가며 이루어지기도 하고 동시에 진행되기도 한다. 지속적 설파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대중의 마음에 다가가 대중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좋은 인상을 심으려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 우월성을 발현할 때는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아 기업 전체를 상징하는 항목이나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사무용 건물을 건축 중인 부동산 회사가 건물을 기존의 가장 높은 마천루보다 10피트 더 높이 올릴 경우 이러한 조치는 우월성 발현에 해당한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가 직면하는 커다른 문제는 어떻게 하면 지도자가 지도력을 올바로 발휘하게 하느냐이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신조는 선출된 사람들을 유권자의 눈치나 보는 하인으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일부 비평가들이 늘 불평하는 정치 무기력 현상은 다는 아니더라도 바로 이런 신조에서 기인한다. 진지한 사회학자라면 민심이 신성하다거나 특별히 현명하고 고결한 사상을 대변한다고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민심은 국민의 생각을 표현하며, 국민의 생각은 국민이 신뢰하는 지도자와 여론 조작에 능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다시 말해 대대로 내려오는 편견, 상징, 상투어, 지도자의 언행이 여론을 주도한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
선전이 성공을 거두려면 먼저 목표를 설정한 뒤 대중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
인간의 습관을 바꾸려고 할 때 가장 큰 적은 타성이다. 문명은 타성의 지배를 받는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_버네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