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는 데에는 분명한 발생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상'이라는 것입니다.

부처의 가장 근본적인 발견이 무상입니다.

이 무상이 바로 화의 원인입니다.

우리는 무상이라는 말을 정서적, 감상적으로 받아들여 이해합니다.

하지만 무상의 진정한 뜻은 '만물은 순간순간 변화하고 생멸한다.'입니다.

자신도 세상도 절대 한순간도 똑같지 않습니다.

무상이란 일체 만물의 진리입니다.

나와 타인과 환경과 세계, 그리고 우주, 이 모든 것이 무상입니다.

즉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끝없이 변하는 것'이 화를 잉태하는 원인입니다.

#화를_다스리면_인생이_변한다 #알루보물레_스마나사라

앞으로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할지 한치 앞도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은 준비도 할 수 없습니다.

웃는 얼굴로 있어도, 침울한 얼굴로 있어도, 환경에 의해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으며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절대로 자신의 희망대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환경이 자신의 계획이나 희망과 다른 경우는 환경에 저항하는 마음, 거부반응이 생깁니다.

그 거부반응이 바로 '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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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감각이 있는 것', 그리고 그 감각은 '고'입니다.

또한 그 '고'가 사라지는 순간은 없습니다.

단지 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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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고'입니다.

그 진리에 반해서 산다는 것은 '낙樂'이라는 반대의 기대가 클수록 고가 늘어납니다.

'그래도 고는 싫다.'라고 하는 것이 삶의 시스템인 것입니다.

'이 시스템은 무엇인가?'라고 현상의 본질을 관찰해 보면 순간순간, 만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폭초처럼, 물방울처럼, 흩날리고 튀어서 끊임 없이 새로운 현상이 생겨납니다.

'뭐야, 다 그런 거야!'라고 알게 됩니다.

'그럼,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 쳐도 가치가 없는 거잖아.'

포기하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생깁니다.

불교는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야말로 성스러운 길입니다.

'깨달음'을 얻음으로서 일체의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그것이 운명적인 화의 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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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디까지나 자신의 속에 있는 화를 계속 관찰하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를 관찰'하는 것은 '화와 싸우지 말라'라는 말입니다.

'화를 없애야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화를 없애려고 하는 마음도 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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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면 멈춘다.'라는 것은 가장 편한 방법입니다.

만약 1분 동안 멈춰 있어도 여전히 화가 치밀어 오르면 호흡을 세는 것도 좋습니다.

천천히 '1,2,3,4,5'를 세면서 크게 숨을 들이마십니다.

이어서'1,2,3,4,5' 헤아리면서 크게 내쉽니다.

헤아림으로써 마음을 멈추기 때문에 10회 정도 반복하면 감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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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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