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이도 희고 번쩍번쩍한 은화 무더기!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것이었건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아들놈이 가져간 셈 치자고 해도 여전히 언짢고 서운하다.
자기를 버러지라 생각해 봐도 역시 언짢고 서운하다.
이번에는 그도 실패의 쓴맛을 좀 보았다.
그러나 그는 패배를 곧 승리로 바꾸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힘껏 자기 뺨을 쳤다.
좀 얼얼하게 아팠다.
제 뺨을 때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때린 사람도 자기이고 맞은 사람도 자기라 느꼈는데, 좀 지나자 자기가 다른 사람을 때린 것 같아서-아직 좀 얼얼했지만- 흡족한 마음으로 승리에 취해 자리에 누웠다.
#아Q정전 #루쉰
아Q의 기억으로 이것은 아마 난생 두 번째 겪는 수모일 것이다.
다행히 딱딱 소리가 난 뒤에는 한 사건이 완결된 것 같아서 기분이 오히려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망각'이라는 보배가 효력을 나타내어 천천히 걸어서 술집 앞에 이르자 벌써 기분이 유쾌해졌다.
#아Q정전 #루쉰
"반란이라? 멋있구나.
흰 투구와 흰 갑옷의 혁명당 사람들이 몰려온다.
손에는 청룡도, 쇠 채찍, 폭탄, 총, 삼첨양인도, 갈고리 창을 들고서 토지묘 앞을 지나며 '아Q! 함께 가세, 함께 가!' 하는 바람에 함께 따라 나선다.
그때가 되면 웨이주앙의 사내놈들과 계집년들 꼴 좋겠다.
무릎을 꿇고 '아Q, 목숨만 살려 주오!' 하겠지.
흥, 누가 들어준대!
제일 먼저 죽일 놈은 샤오디와 자오 영감이다.
그 다음엔 수재, 또 그다음엔 가짜 양놈.
어느 놈을 살려 둔다?
#아Q정전 #루쉰
"그래 나는 반역을 못하게 하고 너만 하겠다는 거지?
흥, 이 개 같은 가짜 양놈아,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반역은 목이 잘리는 죄야.
난 기어코 고발해서 네놈이 성안에 잡혀 들어가 목이 잘리는 꼴을 보고 말 테다.
온 집안을 몰살하고 가산을 몽땅 몰수하게 할 테다.
썩둑! 썩둑!"
#아Q정전 #루쉰
그 순간 그의 생각은 또 회오리바람처럼 소용돌이쳤다.
사 년 전 그는 산기슭에서 굶주린 승냥이 한 마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승냥이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내 쫓아오며 그를 잡아먹으려 했다.
그는 죽을지경이었는데, 다행히 손에 나무 하는 도끼가 있어 용기를 내고 간신히 웨이주앙까지 버티고 왔다.
그러나 승냥이의 눈은 영원히 잊어지지 않는다.
그 흉악하고도 겁 많은 눈은 마치 두 개의 도깨비불처럼 번뜩번뜩했는데, 멀리서부터 그의 가죽과 살을 꿰뚫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더 무서운 눈을 보았다.
그것은 둔한 것 같기도 하고 날카로운 것 같기도 한데. 벌써 아Q의 말을 씹어 삼켰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죽과 살 이외의 것도 씹어 삼키려고 내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악착스레 뒤쫓아 오는 것이었다.
이 눈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어느새 그의 영혼을 물어뜯는 것이었다.
#아Q정전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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