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누구나 그 사람만이 특히 필요한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그것을 빼앗겼을 때, 그것에 관심이 없는 자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탈취당한 본인의 노여움은 처절하다.

마키아벨리도 그에게 특히 필요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느냐 않느냐가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느냐 않느냐에 이어지고, 『군주론』을 비롯한 그의 저작에 나타난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아버지의 장서 중에서 한 권을 꺼내와 책장을 넘기는 것이 어린 아이가 독서를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마키아벨리는 나중에 마음대로 고전을 인용하게 되지만, 더러 그 인용이 반드시 원본대로가 아닐 수 있다.

이것은 인용의 필요에 의해서 공부한 사람이면 범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 머릿속에 있던 것이 필요에 자극되어 자연히 넘쳐났을 경우에 범하기 쉬운 과오다.

고전은 그에게 있어 자연환경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독서가였던 아버지의 장서에 종교서가 한 권도 없었다는 것도, 후일 그의 사상 형성에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그런데 내분은 공동체에 반드시 마이너스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건전하게만 발휘된다면 인재의 선발과 육성에 도움이 된다.

또 그 공동체 안에 내분을 견디어낼 만한 활력이 충만해 있는 시대라면 상관이 없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인간이란 불운한 사람을 동정하고 계속 행운을 누리는 사람을 좋아하는 법이다.

그것은 반드시 '어차피 기댈 바에야 큰 나무에 기대라'는 따위의 안이한 기분에서가 아니다.

개개인이 '신께서 내려주시는 온갖 시련'과 싸우는 나날을 보내는 그들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지내는 듯이 보이는 '신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보면 구원을 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같은 재능을 가진 장군이 두 사람 있으면 운이 좋은 쪽을 발탁했다지만, 사람이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아무리 뛰어나도 역량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운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수도 인간 심리의 극히 자연스러운 발로로 해서 운이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을 역시 가지고 있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예술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반되는 두 성향을 가지면서도 여전히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이들 용병대장들에게는 부하 병사들이 하나의 훌륭한 장비다.

장비니까 되도록 손상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화려한 전투를 전개하고도, 사망자는 말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하나뿐이라는 유쾌한 전쟁이 되어버렸다.

부르크하르트가 "예술 작품으로서의 전쟁"이라고 명명한 바로 그것이다.

이 예술적이라는 전쟁을 오랜 세월 당사자들 모두가 좋아했다.

시민들은 일에 전념할 수 있었고, 국가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전쟁을 어쨌거나 했다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시민에 낄 수 없는 농민이나 그밖의 서민들도 서로 짜고 하는 전쟁이라 병사들이 온건해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패자가 당하는 약탈로 위협받을 걱정은 없었다.

소국의 영주나 주인을 갖지 않은 낭인들도 전쟁 청부업을 하면 먹고 살 수 있었다.

게다가 밀라노 공작 스포르차처럼 운과 재능에 따라서는 대국의 주인이 되는 길도 열려 있었던 것이다.

유명하다고는 해도 일개 용병대장에 지나지 않은 몸으로 밀라노 공작이 된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용병대장들 중에서는 제일 출세한 인물이었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여자에게는 먼저 아들이 제일이다.

아무리 부부 사이의 금실이 좋더라도, 아들이 제일 앞에 오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 소중하기 짝이 없는 아들이 당신을 쏙 뺐어요와 같은 말은, 남편을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것도 웬만큼 반하지 않았으면 입 밖에 내지 않는 말이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중도주의자는 흔히 콘센서스(합의)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행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가 지도자에게 요구한 3대 요소도,

비르투(역량 · 재능 · 기량)

포르투나(운 · 행운)

네체시타(시대의 요구에 합치하는 것)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창작은 정령이 영감을 주기에 시작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속행하는 의지력은 산 인간의 지원과 격려로 지탱되는 일이 많은 법이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본시 그 방면에 소질이 있었기에 그 결정체인 작품이 생기는 것이며, 환경은 그 소질을 자각시키는 구실밖에 하지 않는다.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범재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데, 신은 범재보다 높은 재능을 준 수재에게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은 모양이다.

'신이 사랑하시는 자'의 위대함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기에게는 그것이 주어지지 않은 것을 깨달은 자는 어떤 기분이 되는 것일까?

#나의_친구_마키아벨리 #시오노_나나미 #니콜로_마키아벨리

Posted by 㗢동죽竹
,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식량이라고는 물고기밖에 없다.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평등하게 그것을 나누어 갖는다.

그리고 거의 같은 구조의 집들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 세상 악(惡)으로부터 너희들을 떨어져 있게 한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국가는 육지형 국가와 해양형 국가로 대별된다고 누구나 말한다.

나는 이 유형의 차이는 자급자족 개념의 유무로 결정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급자족의 개념이 있는 곳에서는 부득이한 필요를 느끼지 않는 한 교환의 사상은 생기지  않으며 그것이 정착하지도 않는다.

이 유형의 국가가 침략형 국가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들 국가들에게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다는 것이 그저 단순히 자급자족의 폭을 넓히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자급자족의 개념이 없는 국가는 그런 상태를 지속하는 한 침략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필요한 것을 교환으로 손에 넣는 것이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에, 영토를 확장해봤자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대의명분이 유효한 것은 행동을 할 때 정신적 기둥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행동의 진짜 목적을 교묘하게 숨기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일이 있으면 즉각 개입하려고 하는 주변 강국들의 항의하는 입을 미로 봉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원수 오르세올라 2세는 젊은 나이인데도 자기 편이란 그것이 강국이면 강국일수록 먼 데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편이 되면 설사 약한 나라라도 이것저것 견제하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강대한 나라라면 더욱 성가신 존재가 된다.

가까운 데 있는 자기 편은 종종 먼 데 있는 적보다도 처치가 곤란하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처음에 말씀이 있었나니'가 아니라, 베네치아공화국에서는 '처음에 장사가 있었나니'였다.

그들은 중세의 '이코노믹 애니멀'이었다.

그러나 이 '이코노믹 애니멀'은 그렇게 되는 것에 조금도 열등감을 품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장사를 효율적으로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외교·군사의 어느 면에서도 매우 섬세한 기술을 구사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런 '아르테'(기술)는 작품을 남기는 '아르테'(예술)에 비해 재능으로서도 조금도 뒤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베네치아공화국은 '처음에 장사가 있었나니'로 1천 년 동안 살아 남은 것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현실주의자가 미움을 받는 것은 그들이 입 밖에 내서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 자신이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이상주의가 실제로는 우스꽝스러운 존재이며, 이상주의자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가장 부적당하다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말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라고 자인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방법상의 잘못을 깨달을 만큼 현명하지는 않지만, 그들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나 그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이 예상했던 효과를 조금도 낳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처럼 하지 않는 현실주의자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자가 미움을 받는 것은 숙명이라고나 할 수밖에 없다.

이상주의자는 종종 자기 편인 현실주의자보다도 적인 이상주의자를 사랑하게 마련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처음에 세운 계획을 착실히 실행하는 것뿐이라면 특별한 재능이 필요없다.

그러나 예정하지 않고 있던 사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는 데는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필요로 한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국력이 상승세에 있을 때는 개인주의를 방임해도 해를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은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일단 장애에 부딪쳤을 경우 국력과 개인의 능력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같은 나라 사람끼리의 대립은 국내에만 그치지 않았다.

뛰어난 상재를 지닌 덕택으로 제노바의 해외식민지나 상업기지 내의 거주구는 대단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들이 또한 본국 정부와 자주 대립했다.

특히 그들이 반감을 품고 있는 가문이 정권을 손에 넣고 있을 경우에는 완전한 반국가적 행동을 거리낌없이 했다.

이런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는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 중 어느 쪽이 우선하느냐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 된다.

아무리 해도 정국안정의 전망이 서지 않았던 제노바인은 같은 나라 사람이긴 하지만 미운 적과 타협하기보다는 차라리 외국인에게 넘겨주어버리자고 생각하고 프랑스 왕이나 밀라노 공작에게 정권을 양보해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전쟁은 비참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전쟁에도 한 가지만은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각자의 욕망을 단순화한다는 효능이다.

그때까지는 각자가 지니고 있던 불만이 이 전쟁을 끝까지 싸워냄으로써 해소된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모든 국가는 반드시 한 번은 전성시대를 맞는다.

그렇지만 전성시대를 몇 번이나 갖는 국가는 보기 드물다.

왜냐하면 한 번의 전성은 자동적으로 일어나지만, 그것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오늘날에도 여자들에게 남자와 동등한 기회를 주고 있는 소수의 민주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여자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예는 인류의 긴 역사상에서 두 가지 경우 외에는 볼 수가 없다.

클레오파트라나 엘리자베스 1세처럼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섰을 경우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권력의 정점에 선 남자에게 아내로서든 애인으로서든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경우뿐이다.

두번째 경우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규방정치(閨房政治)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전기라는 것은 주인공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 인물의 성격에 매력이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 인물을 둘러싼 정세에 흥미를 갖고 있든가 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법이다.

쓰는 쪽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주인공은 이 두 가지를 겸비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양식이란, 피동적인 처지에 놓인 측이 입에 올리는 말이다.

행동의 주도권을 쥔 측은 언제나 비양식적으로 행동하는 법이다.

· 당시 한 베네치아인의 편지에서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하지만 마키아벨리도 썼듯이, 현실주의자였던 베네치아인들이 오류를 범하는 것은 자기들이 리얼리스트인 까닭에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상대편을 이해 못하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을 테지 하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역사에서는 필요없는 전쟁과 필요한 전쟁을 쉽게 판별할 수는 없다.

너무 깊이 들어가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융성기에는 시대가 편을 들어주니까 간단하다.

그런 시기에는 주도권이 이쪽에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강기가 되면 일은 어려워진다.

시대가 편을 들어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피동의 처지에 놓이면 벌써 주도권을 잃어버린다.

이 시기의 위정자들에게는 융성기의 위정자들보다도 한층 더 현명한 방향조정의 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을 뒤켠으로만 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비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뒤켠으로 돌 수밖에 없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에 관해서만 그러하다.

그러한 재능은 인간의 능력 중에서도 가장 고급의 능력인 것도 사실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러나 소식을 전해듣고 충격을 받은 이 사람들을 후세의 우리들이 비웃을 수는 없다.

정치란 한치 앞이 칠흑의 어둠이라고 한다지만, 역사도 한치 앞이 어둠이다.

후세에 와서 돌이켜보면 이미 일이 다 결판이 난 사시들, 즉 역사적 사실이나 역사적 현상들은 모두가 다 명쾌해진다.

그러한 시점에서 바라보고 글을 쓰는 한 당시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전달할 수는 없다.

후세 사람들이 보면 명백한 일, 자명한 일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의 동맹관계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서로 존중하는 정신에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3자에 대한 공포를 매개로 맺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지금으로서는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으니까 우선 맺어둔다는 그런 정도의 것밖에 안된다.

베네치아가 이탈리아의 여러 나라들고 맺은 동맹은 베네치아 이외의 나라들의 처지에서 보면 전자에 속하는 것이고, 터키와 맺은 동맹은 터키의 처지에서 보면 후자에 속한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해양국가에 비해 육지형의 국가는 손바닥만한 땅에도 집착하는 법이다.

그리고 자기네 영토를 조금이라도 확장할 때마다 이상할 정도롤 만족감을 느낀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이란 잃을 것이 있고 자치 욕구에 대한 배출구가 주어지기만 하면 어느 누구도 부질없이 급진화하지는 않는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어째서 이들 나라가 하나같이 모두 군주제를 채택하는 것으로 대국이 될 수 있었던가를 밝혀보려면, 20세기으 우리로서는 먼저 군주제는 모름지기 악이라고 보는 프랑스 혁명 이래의 색안경을 벗어던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군주제에는 많은 폐해가 따르지만 이점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또 어떤 특정의 시대에는 가장 효율적인 정체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무엇보다도 혼자서 결단을 내리니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단을 실행에 옮기는 단계에서도 명령계통이 제대로 조직되어 있기만 하면 말단까지 전달되는 것이 간단하다.

게다가 공화국에서는 좀처럼 얻기 어려운 권위까지도 갖출 수가 있다.

또 군주 이외는 권한이나 책임을 분담하는 분업체제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전능적인 정치적 전문가를 많이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당시의 신흥국가에서는 무시 못할 이점이었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공화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치상의 절차는 참으로 느릿느릿한 것이 보통이다.

입법이건 행정이거 무엇이든지 혼자서 결정할 수 없고 웬만한 일은 모두 몇 사람과 공동으로 하게끔 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 사이의 의사 통일을 이루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완만한 진행방법은 촌각의 유예나 지체도 있어서는 안되는 경우에는 매우 위험한 것이 된다.

그래서 공화국은 이런 경우를 위해 (고대 로마 시대의 경우처럼) 임시적인 독재 집정관과 같은 제도를 반드시 만들어놓지 않으면 안된다.

베네치아공화국은 근래의 공화국으로서는 강력한 공화국이다.

거기서는 비상시에 공화국 국회나 원로원의 일반 토의에 부치지 않고 권한이 위임된 소수 의원들 사이에서 토의하는 것만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을 써왔다.

이러한 제도의 필요성에 눈을 뜨지 않은 공화국의 경우, 종래와 같은 정체를 지키려고 한다면 국가는 멸망하고 말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멸망을 피하려고 한다면 정체 그 자체를 때려부수지 않으면 안되는 벽에 반드시 부딪치게 마련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저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득이 된다고 그들이 생각하게 될 그런 일을 계속 해나가는 것밖엔 달리 방책이 없는 것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17세기 초의 외교관으로 역사가이기도 했던 파올로 파루타는 그 의 저서의 하나인 『정치생활의 성숙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평화의 감미로운 과실을 맛보는 것이 모든 정치적·군사적 활동의 궁극의 목표이다.

군주국이든 공화국이든 국가의 목표를 군사에만 집중하여 전쟁을 되풀이하고 국경을 밖으로 넓히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은 결코 그 목표 달성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다.

그 길은 많은 다른 나라 국민들을 지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의에 기초하여 자기 나라를 통치하는 일이며 국민에 대하여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반영웅의 나라가 영웅을 만들어 칭송에 열을 올린다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왜냐하면 영웅대망론이란 보답을 기대하지 못하는 희생을 지불할 각오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 도취에 잠기는 데 기여할 뿐이기 때문이다.

#바다의_도시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Posted by 㗢동죽竹
,

지구 위 모든 사람에게는 자긍심이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늘 있었다.
글자들은 다를지라도 그 의미는 모두 같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좋은 평가 또는 의견'이라고 기본 정의를 내리면서, 1600년대부터 '자긍심'이 사용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북미 사전들은 그 뜻을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자아 존경'으로 축약한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동의어로는 '자아 의존', '자아 귀결', '평정', '자신감', '확신', '자만' 또는 '자기 충족'도 있다.
반의어로는 '자아 의심'과 '자아 결여'에서부터 '자기 증오'와 '수치'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정적 단어들이 있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자긍심

오래된 가르침일수록 자아지혜와 자기 존경을 힘과 저항, 그리고 메타 민주주의(모든 살아 있는 것들, 그리고 우주와의 하나 됨)의 원천으로 표현한다.
가부장제도·인종주의·계급제도나 다른 위계질서들은 자긍심을 제한하고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부의 지혜를 약화시켜서 외부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이끈다.
자긍심을 깨닫는 일은 그 잘못된 모든 것들을 안으로부터 바꾸는 하나의 참된 혁명이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안으로부터_바꿈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패턴들을 돌아보게 되어서야,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변화가 더 좋은지 어떤지에 관계없이, 처음에는 좀 춥고 외롭다.
우주의 끝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도 하다.
아무래도 익숙한 집 같은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된 패턴들은 아무리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마법같이 우리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게 우리가 살아온 집이기 때문이다.
패턴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직시하게 되면 패턴의 반복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를 치유할수록 우리는 현재에 응답하게 된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우리는 각자 우리 안에 과거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과거와 아무런 벽도 만들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그 아이의 창조력과 자발성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이 중요한 것들을 뒤에 남겨 놓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그 벽을 허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그 아이가 필요한데도 갖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고, 지금이라도 그걸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는 언제나 그럴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었다는 점이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우리가 누구이든 천부적 권리인 자긍심을 재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비슷한 단계를 밟는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경험이다.
예를 들면, 한 식민지인이 처음으로 지배국 군인을 쏘아보는 순간이라든가, 한 여인이 남성의 눈초리에 의해서 평가받기를 거부하는 순간 따위가 그것이다.
두 번째는 수치스러운 비밀처럼 보이는 것을 당당히 말함으로써, 그것이 수치스럽지도 않고 비밀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유년기에 당한 성폭행의 악몽에서 살아남은 여자로부터, 끝없는 권력욕 뒤에 숨겨진 한 남자의 유악함까지도 말이다.
세 번째로 내내 정상적인 것처럼 취급되어 이름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들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도 있다.
동성애 혐오증이나 매 맞는 여성, 유럽 중심주의 등의 신조어를 생각해 보라.
네 번째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결속하는 것이다.
갖가지 능력이 있는 사람득ㄹ의 모임으로부터 토착주민들의 화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다섯 번째 단계로, 스스로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자치를 할 수도 있다.
그런 일 역시 자신의 집과 소득이 있는 여성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국가들에게까지 폭넓다.
여섯 번째로, 힘이 분배된 구조 안에서 결속하게 된다.
민주적 가정, 레인보우 연합을 떠올리거나 국제 연합의 원칙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고 나면 마침내, 독립과 상호의존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참된 자아의 동심원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자긍심_재발견_여행

요컨대,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여성들은 그 누구건, 어느 곳에서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 분출되는 열등감이 생활과 몸 속 깊숙이 흐르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자긍심을 발견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종이나 나이, 외모와 능력 그리고 그 밖의 어떤 것에도 구애됨 없이, 자신이 가치 있는 낱개의 인간이라는 확신이 우리 몸 안에 뿌리를 내릴 때, 바로 그때 자긍심이 내 것이 된다.
확실하게 거머잡고 내 안에 단단하게 뿌리를 심게 된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과학 철학자 알렌 와츠A. Watts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마법 같은 질문으로 우리 자신과 타인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神"섬세한 보석 같은 눈과 황홀한 악기 같은 귀, 그리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오묘한 신경 조직의 뇌, 이 모두를 갖춘 존재가 어떻게 자신을 신神보다 못하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우리 자매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능히 사랑을 받을 만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있고 또 그럴만한 존재라는 확신.
그 확신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자긍심을 갖게 하는 출발이었다.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게 '총체적·기질적·핵심적'자긍심이다.
내게는 '핵심적'이란 말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우선순위에서 가장 먼저니까.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어린 시절을 좀 더 지나면 우리는 심리학자들이 '상황적'이라고 표현하는 제2의 자긍심 개발에 나서게 된다.
바깥으로 점차 커나가는 자긍심이다.
무언가를 잘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하며, 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예전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도전적인 일들을 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짜릿한 기쁨들을 맛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새로운 능력에 만족하고 타인들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상호 공감을 느끼며, 세상에 대한 자라나는 호기심이 우리의 감각 하나하나를 통해 충족된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앨리스 밀러는 말한다.
자력구제가 가능하려면 그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우리가 가진 진정한 감정을 확인해주고 긍정해 주는 사람, 그럼으로써 우리의 진정한 자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고, 그걸 실제로 남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어린 시절에 최소한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희망적인 '한 사람'이론이 진실임을 믿는다.
믿게 되었다.
나아가 덧붙이고 싶다.
비록 그런 한 사람이 없더라도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바로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아이에게로 돌아가서 그 아이가 무엇을 경험했는지를 기억해 내고 그것을 경험하며,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우리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한_사람_이론ㅜ 

불의에 대한 자각은 정의와 자긍심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불의에_대한_자각

한 가지 사실만은 명백하다.
인간의 마음은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방법과 그것을 키우는 방법 양쪽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상상은 창조의 첫단계가 된다.
진정한 자아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한 자아의 탄생을 허락하는 일이기도 하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진정한_자아의_존재

당신이 무엇을 창작하든 그건 인류의 손만큼이나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지문만큼이나 독특한 것들이다.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할수록 하나의 이미지가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더 자주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된다.
바로 그것이 눈에 드러나는 당신의 진정한 자아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창조적_이미지 #진정한_자아 

예수의 산상수훈의 교훈은 '남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당신도 남에게 하라'다.
자신들의 자긍심이 억압받아 온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말이 '당신이 남에게 해주는 것처럼 당신 자신에게 하라'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뒤집어야만 혁명이 이뤄진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당신이_남에게_해주는_것처럼_당신_자신에게_하라

미의 기준은 역사나 하늘로부터 내려온 객관적 미학의 산물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 그걸 만들고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준은 변덕이 심하고 사라지기도 쉽다.
우리들은 그걸 안 만들 수도 있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미_기준의_가변성  

그러니, 남녀 불문하고 미의 기준이라는 것도 사회가 우리에게 원하는 행동과 원하지 않는 행동에 관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다.
그러면 우리는 힘을 모아 우리의 행동 양식을 바꾸어 미의 기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실 미의 개념은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정기적을 바뀌며 변화한다.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에는 항상 그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미의 기준을 받아들이기 전에 '나는 정말로 그 기준이 상징하는 행동을 좋아하는가?'라고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미_기준에_영향력_행사

그러나 낮은 자긍심을 갖고서는 남녀 모두 그들에게 부여된 성 역할을 과장하여 인정받으려 하고 거기에서 피난처를 찾으며, 성장하면서 오히려 더 불완전하게 된다.
남성의 경우는 융통성 부족, 독단성, 경쟁심, 공격성, 여성적인 것과의 거리, 동성애 혐오증, 심지어는 잔인성과 폭력 등이 저조한 자긍심을 보여주는 고전적 표본이 된다.
그 반면 복종, 의존성, 남성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심리, 갈등에 대한 두려움, 자기 비난, 그리고 분노를 표현할 수 없는 무능 등은 여성의 낮은 자긍심을 보여주는 전형적 모습이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낮은_자긍심의_예

불완전한 자아로서 출발한 로맨스는 사랑으로 변화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연인들 간에 낮은 자긍심과 필요성의 결여는 깊고 지속적인 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적이다.
린다 샌포드와 메리 엘렌 도노반은 낮은 자긍심이 친밀함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라고 보고 있다.
자긍심이 낮으면 여자는 누군가가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그럼으로써 그녀를 거부하는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남자도 똑같은 공포를 경험한다.
거기에 여성에 대한 의존과 자신의 내부에 있는 '여성적'느낌이 발견되면 그동안 쌓아올린 그들의 남성다움이 소멸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얹히게 된다.
때로 낮은 자긍심은 질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질투는 자신이 부적합하고 불완전하다는 확실한 느낌에서 나온다.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에게 결여된 품성을 투영해온 누군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이 더욱 강해지며, 그에 따라 우리의 시기심도 높아 간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자긍심은 로맨스를 시들게 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단지 현재의 형태에서만 그렇다.
결국 로맨스는 중요하기는 해도 부가적인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고, 환상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소유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다면, 로맨스는 아주 깊이 친밀하며, 감각적으로 공감하는 배움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눈을 통해서 보고 느끼며, 또 다른 문화를 흡수하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더 넓게 세상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올 수 있게 된다.
로맨스가 끝났을 때도 부족하거나 화가 나거나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지도 않는다.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우리는 그처럼 자신의 모습을 여럿 갖고 있다.
우리들 안에서 부드러움과 포용을 바라는 아이는 그렇게 오래된 아이가 아니다.
바로 작년의 우리 모습이기도 하고, 어제 되고 싶었던 우리이자, 어떤 직장에서의 모습 또는 어느 겨울의 모습이거나, 지금 사랑에 빠져 있는 그런 우리의 모습이다. 
 
자꾸만 떠오르는 자신의 실체들을 아우르는 것,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목소리다.
우리 내부에는 진정한 목소리가 늘 있게 마련이다. 
 
믿으라. 그 목소리를!
#셀프_혁명 #글로리아_스타이넘

Posted by 㗢동죽竹
,

나친 금욕은 흔히 광신의 온상이 된다.

금욕생활로 몸은 수척해지지만, 상상력은 오히려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정의라고 믿고, 자신이 믿는 것은 모두 신의 계시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신의 선택을 받은 자신이 그 계시를 지상에 구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들의 가슴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십자군을 일으킨 중세 유럽인의 열광에 불을 붙인 것도 당시 기독교회의 타락을 가장 준엄하게 고발했으며 계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프랑스 클뤼니 수도원 출신의 두 수도사였다.

#신의_대리인 #시오노_나나미 

량한 사람들이 지은 죄를 낱낱이 파헤쳐 그들을 지옥의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기독교회가 가장 장기로 삼는 방식이다.

지옥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면서 한편으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계속 눈 앞에 러른거리게 하니까, 더욱 효과적이다.

중세에 기독교회가 그렇게 엄격한 계율로 사람들을 잡도리한 것은 기독교도의 풍속과 관습이 퇴폐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성직자들의 변명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이 죄라면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를 짊어지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이런 죄를 고발한 사람도 역시 수도원에서 나왔다.

모든 죄와 그것을 속죄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 계율이 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면 그래도 조금은 논리적이었겠지만,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주무른 계율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로 변해 있었다.

#신의_대리인 #시오노_나나미

"인간의 마음은 약한 거야.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하면, 저도 모르게 그만 우쭐해지거나 변명을 늘어놓게 되지.

우쭐해지면 현실을 보지 못하게 돼.

그리고 변명을 늘어놓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겠지.

자기 행위를 변명하기 시작한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네."

#신의_대리인 #시오노_나나미 

세 판단에 뛰어난 현실주의자가 곧잘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상대도 역시 정세 판단에 뛰어날 테니까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의_대리인 #시오노_나나미

통찰력과 결단력은 윗사람에게는 첫째가는 조건이다.

율리우스 2세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적이나 무능력자를 과감하게 조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 편이나 아까운 재능을 가진 사람을 자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필요성을 알면서도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신의_대리인 #시오노_나나미

독으로 독을 없애는 방식은 효과적인 방식이기는 하다.

그러나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독을 없애기 위해 사용한 독이 어느새 몸 전체를 침범하게 된다.

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되도록 빨리 항체를 만드는 방법밖에 없었다.

#신의_대리인 #시오노_나나미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 갖는 위험과 과오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은 좁은 의미에서의 이기심은 갖고 있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숭고한 소명을 위해 한몸을 바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망설임이나 의심을 품지 않고, 따라서 독선적이고 광신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현실을 보지 못한다.

따라서 방식은 대담하지만, 하는 일에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당연히 결과는 실패로 끝난다.

반면에 이기적인 야망에서 출발한 경우에는 그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항상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한창 행동하고 있을 때에도 늘 의심을 품게 되고, 독선적이거나 광신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다.

방식은 역시 대담무쌍하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유효성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일관적 정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경우,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운이다.

#신의_대리인 #시오노_나나미

그러나 공모자가 많을수록 계획이 누설될 위험도 많을 터였다.

#신의_대리인 #시오노_나나미

 

Posted by 㗢동죽竹
,

질을 확보한다는 것은 적을 견제하는 것이 된다.

보통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적이 공격해왔을 때 인질을 죽이겠다며 적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수법이다.

그러나 알렉산데르 6세는 인질 젬 왕자를 그렇게 써먹지 않았다.

그는, 만약 터키가 이 이상 기독교국을 침략할 움직임을 보인다면, 젬 왕자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쳐들어가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터키 궁정 안에는 속으로 전 술탄의 아들 젬을 따르는 가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체사레_보르자_혹은_우아한_냉혹 #시오노_나나미 

을 갖지 못했을 때 힘에 대항하는 수단은 기(技) 또는 술(術), 즉  '아르테'로서의 정치밖에 없다.

아르테로서의 정치는 이런 경우에, 즉 힘이 없는 자가 다른 의미의 힘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체사레_보르자_혹은_우아한_냉혹 #시오노_나나미 

이기주의에 철저한 사나이들끼리는 언제나 타협이 가능한 법이다.

#체사레_보르자_혹은_우아한_냉혹 #시오노_나나미 

언가를 이루려하는 자는 결코 금전을 경멸하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체사레_보르자_혹은_우아한_냉혹 #시오노_나나미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엄격함이 민중으로 하여금 다소나마 증오를 느끼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안 그는, 민중의 그런 기분을 불식하고 민심을 완전히 장악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잔혹하리만큼 엄격했던 것은, 자기 탓이 아니라 행정장관의 가혹한 성격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공작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어느 날 아침 체세나의 광장에 두 동강난 데 로르카의 시체를, 한 장의 널빤지와 피에 젖은 칼과 함께 널어놓았다.

이 처참한 구경거리에 민중은 만족해하는 동시에 전율을 느꼈다.

체사레식 정치 기술의 정수(精粹).

이것이 이 사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다.

#체사레_보르자_혹은_우아한_냉혹 #시오노_나나미

Posted by 㗢동죽竹
,

내면의 통찰력을 가져라 
 
창조자는 창조물에
분명한 형상을 부여했지만
그가 모습을 드러낼 때 그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씨앗은 식물 안에 있고
잎은 나무 안에 있듯이
허공은 하늘 안에 있고
무한의 형체는
텅 빔 속에 있다. 
 
유한을 넘어서 무한함이 오고
무한함에서 유한함이 나온다. 
 
창조물은 창조자 안에 있고
창조자는 창조물 안에 있다. 
 
그들은 언제나 구분되지만
언제나 하나다. 
 
님은 나무며 씨며
발아되지 않는 싹이다.
님은 꽃이며 열매며 잎이다.
님은 태양이며 빛이며 광선이다.
님은 창조자이며 창조물이며 
또한 환영이다. 
 
님은 수많은 형상이며
무한한 공간이다.
님은 호흡이며 언어이며
의미이다. 
 
님은 유한하고 무한하며
유한과 무한을 넘어선
순수한 존재이다.
님은 창조자와 창조물 안에
내재하는 영혼이다. 
 
가장 고귀한 영혼은
그 영혼 안에서만 보이며
최고의 경지는
가장 고귀한 영혼 안에서만
보이나니. 
 
그 경지 안에서
다시 반영이 보인다. 
 
카비르는 축복 받은 존재다.
이러한 영혼의 최고의
통찰력을 지녔으니!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행운을 결코 지나치지 말라 
 
어리석음으로 잠긴 문은
사랑의 열쇠로 열린다.
문이 열리면 그대는
가장 사랑하는 이의 도움으로
다시 깨어난다. 
 
카비르는 말한다.
'오! 형제여, 이런 행운을
결코 지나치지 말라.'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창조자만이 창조의 선율을 연주할 수 있다 
 
오 벗이여!
이 몸은 님의 현악기이니
나는 현을 팽팽히 당기며
창조자의 손길을 기다린다.
만약 당김이 느슨해지면
다시 이 몸은
먼지에서 먼지로
돌아가게 되리라.
카비르는 말한다.
'창조자만이 창조의 선율을 연주할 수 있다.'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물 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 한다 
 
물 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목마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그대는 집안에 있는
진실을 보지 않고
어찌하여
이 숲에서 저 숲으로
방황하는가! 
 
여기에 진리가 있다!
베나레스나 마투라로 가보라.
만약 그대의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세계는 그대에게
실체가 아니다.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진정한 진리의 길은 참으로 험난한 길이다 
 
나의 형제여,
어떻게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내 옷에서
리본을 떼어낸다 해도
옷은 그대로 남아 있고
옷을 벗어버린다 해도
몸이 나를 감싸고 있다. 
 
정열을 포기한다 해도
탐욕은 아직 남아 있으며
탐욕이 사라진다 해도
오만과 자만은 남아 있다. 
 
마음이 환영으로부터
벗어나도
환영이란 말은
마음속에 남아 있다. 
 
카비르는 말한다.
'사랑하는 구도자여!
진정한 진리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영혼의 감로 
 
잔을 비우라! 그리고 마시라!
님의 이름으로
성스러운 감로를 마시라! 
 
카비르는 말한다.
'내 말을 들어보라,
수행자여!
발바닥으로부터
머리의 왕관에 이르기까지
마음은 독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님의 부재 
 
사랑하는 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내 가슴은 절망으로
가득하고
온종일 평안치 못하며
잠을 청할 수도 없다. 
 
그 누구에게
이 슬픔을 하소연하리.
밤은 어둡고
시간은 정처 없이 흘러간다.
님은 안 계시고
나의 불안은 시작되었다. 
 
카비르는 말한다.
'들어라, 벗이여!
사랑하는 이와의
우연한 만남 외에는
어디에도 평안은 없도다.'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가슴 속 가장 끝부분 
 
진흙 속에 빠진 보석을
찾기 위해
어떤 이는 동쪽으로
어떤 이는 서쪽으로
또 어떤 이는 물 속을
또 어떤 이는 깊숙한 바위 사이를
헤맨다. 
 
그러나 하인 카비르는
보석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나니
그것은 가슴의
가장 깊은 곳에 
고이고이 싸여져 있도다!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내 눈은
님이 오시는 길을 보다가
검은 점이 되었다.
 
내 혀는 님을 찬미하다
부풀어 올랐고
내 빈 그릇은
님과 분리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오직 옅은 희열의 열망으로 
밤낮을 인내하며
님을 기다리나니
내 두 눈에는 공허함뿐이라.
모든 색은 바래고
비통함에 젖는다. 
 
나는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괴로움의 노래를 부르나니
그것을 알아줄 이는
내 님뿐이리.

#모든_것은_내_안에_있다 #카비르



Posted by 㗢동죽竹
,

동생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재산이나 권력에서는 만토바가 도저히 밀라노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이사벨라 자신뿐이었다.

높은 교양으로 조금은 이름나 있던 그녀 자신의 이름을 더욱 높이는 것이었다.

훗날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가지 널리 알려진 '교양있는 만토바 후작부인'은 이 무렵부터 본바탕이 만들어져갔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이사벨라_데스테

이탈리아 르네상스식 조화란 정신과 육체, 선과 악이 명쾌하면서도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는 프로테스탄트적인 견해, 즉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의 '갈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 사이에 '갈등'이라는 혼탁하고 달콤한 관계는 없었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이사벨라_데스테

탈리아에서는 정신과 육체가 인간 속에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요체는 비좁은 정신주의의 껍데기 속에 틀어박히지 않는 대담한 영혼과 냉철한 합리적 정신에 있다.

여기에 입각한 정신과 육체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조화.

이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이사벨라_데스테

이사벨의 좌우명-"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에 나타나 있듯이, 비토리아 콜론나의 '종교적이고 청결한 정신적 결합' 따위는 이사벨라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사벨라에게는 눈앞에 있는 현실이 곧 인생이었다.

설령 그 현실이 청결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해도, 그게 바로 인생이었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이사벨라_데스테

"자를 아는 것은 곧 역사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어떤 시대를 잘 알고 싶으면 그 시대의 여자들을 잘 조사해보라"고 말한 사람은 괴테였다.

그녀에 관해서 쓴 사람들도 루크레치아의 성격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필연적으로 주변 상황이나 주위 사람들을 써넣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즉 남자에 대해 쓸 때는 주위 여자에 대해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여자에 대해 쓰면, 결과적으로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루크레치아_보르자

용병은 돈으로 고용된 군인이고, 따라서 용병대장들은 승산이 있는 싸움일 때는 용기를 내지만 대세가 기울면 부하 병사들밖에는 생각지 않는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중은 언제나 무책임한 법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렇다 해도, 피를 흘리지 않는 이사벨라의 정치에서는 "사자와 여우가 결합한"(마키아벨리) 성숙함을 볼 수 있지만, 카테리나에게는 이것이 없다.

그녀는 여우라기보다는 사자였다.

이 점에서도, 그리고 생애의 비극적인 종말에서도 카테리나는 그녀의 가장 큰 적이된 체사레 보르자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체사레도 그러했듯이, 이런 유형의 인간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법이다.

사람들은 그들한테서 영원한 '청춘'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청춘은 아름답다. 

특히 그 청춘이 감상적으로 낭비되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디딘 냉정한 정신과 함께 대담하게 발휘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군주에 대한 암살은 결코 정치체제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실례가 되었을 뿐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튿날 음모자들은 카테리나의 아이들 가운데 맏아들과 둘째아들을 성채 앞으로 끌고 갔다.

아이를 이용하여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한 것이다.

칼로 위협당한 아이들은 울면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카테리나가 성벽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맨발에 머리도 묶지 않고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오로시는 성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여기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야말로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모든 역사가가 후세에 전한 그 유명한 말이다.

카테리나는 유유히 치맛자락을 홱 걷어올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멍청한 놈들아, 이것만 있으면 아이쯤은 앞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말이다."

여기에는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스포르차

지 높은 정신을 가진 사람은 굴욕을 당하게 되면, 그 자존심 때문에 남보다 훨씬 깊은 고뇌에 빠지는 법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스포르차

카테리나에게 상냥한 것은 신의 은총 따위가 아니라 돈과 권력과 사랑이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잃고, 그것들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 가능성마저 모두 사라져버렸을 때, 그녀는 비로소 신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행운을 타고난 아름다운 여자들이 대개 젊은 시절에는 그 육체를 악마에게 내주고, 그 젊음과 미모와 행운도 모두 시들어버린 만년에 이르러서야 남은 뼈를 신에게 바치듯.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스포르차

네치아공화국은 자국의 양녀인 카네리나 왕비의 통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키프로스왕국의 내정에 간섭했지만, 그 냉혹함과 현실주의적 치밀함은 르네상스 시대의 최강국인 베네치아의 정치와 외교의 본질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무력의 절묘한 균형.

정치와 무력을 효율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방식.

무언가 변고가 일어날 기미를 눈치채자마자 대함대를 보내, 그 위력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는 베네치아.

그리고 그 위력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베네치아의 정치와 외교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정치를 보여주는 예로 손색이 없다.

역사상 지칠 줄 모르고 되풀이되는 예술(아르테), 강대국이 무력을 이용하여 약소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예술의 실례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는 법적인 정당성도, 인간성에 대한 배려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신속하고 과감한 군사행동과 정치의 노련한 조화가 있을 뿐이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이 '지혜'라고 불러온 것, 모든 시대를 통하여 역사의 현실을 움직여온 것은 바로 그것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코르나로

자들 중에는 어떤 고통이나 비애를 겪어도 그것이 조금도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애써 그것을 극복하고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과 비애를 가슴 속에 담아두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고통이나 비애는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녀들한테서 떠나간다.

마치 운명의 여신이 그녀들한테는 평소의 전의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

이런 여자는 가장 행복한 여자다.

그리고 남자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여자이기도 하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코르나로

위선은 그 위선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저지르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고약한 악취로 사람들을 해친다.

그러나 자신의 위선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위선은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아름다움마저 지닌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코르나로

Posted by 㗢동죽竹
,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초인이란 도덕적인 성인군자가 아니다. 체사레 보르자 같은 사람이야말로 초인이다."

한 마디로 니체는 그를 '초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를 그의 저서 '군주론'의 모델로 삼았다.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그가 본 체사레 보르자의 모습이 후대 사람들보다 더 정확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관점의 차이로 보면 다르지 않을까.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체사레 보르자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시대에는 '네포티즘' 쉽게 '족벌주의'가 판치는 시대였다.

제 가족 끌어주고 밀어주는 네포티즘의 관점에서 보면 체사레 보르자는 신군주가 될 수도 있고, 초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관점의 차이, 현대 개방주의 관점으로 보면 그냥 '지 애비 빽 믿고 설친 X'일 뿐이다.

그의 우아한 냉혹 너머로 '보이지 않는 교황'이 줄곧 아른거린다.

그래서 그의 부친인 알렉산데르 6세의 교황 즉위로 그는 상승했고, 교황의 죽음으로 그는 추락했다.

요즘 아빠 찬스나 엄마 찬스란 말을 많이 쓴다.

아빠 찬스의 역사적 예를 알고 싶은가?

그럼 이 책,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을 읽으면 된다.

Posted by 㗢동죽竹
,

르네상스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처음부터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군요. 

그렇다면 나도 역사적·종교적·정치적·경제적 요인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본질적인 대답으로 응수하겠습니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 바로 그것이 나중에 후세인들이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정신운동의 본질이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은 분출만 한 것이 아니라, 미술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작품'으로 결정체를 이루었습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프리드리히 2세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8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럽에는 종교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세 가지로 나누는 사고방식이 살아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는 '아테오'(ateo)와 '크레덴테'(credente)와 '라이코'(laico)라고 부르는데, 

'아테오'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를 가리킵니다.

'크레덴테'는 신앙을 가진 자인데, 특히 '프라티칸테'(praticante)라는 형용사를 붙이면 계율을 충실히 지키고 일요일에는 반드시 교회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라이코'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종교가 관여하는 분야와 관여해서는 안되는 분야를 명확히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계몽군주는 개혁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사람을 말하니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지도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하려면, 모든 사람이 그 필요성을 깨닫고 납득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목표를 실현하려면 강권을 행사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고, 따라서 전제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은 계몽군주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지만 육신은 부모한테 물려받아도 정신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하지만 피부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개인의 지식이 되기는 할망정 모든 사람의 공유재산이 되지는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그 결과를 언어로 공표해야만 비로소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도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되지요.

또한 과학적으로 냉철하게 탐구하는 정신은 편견을 뒤엎는 데에는 가장 좋은 무기이기도 합니다.

탐구벌레라 해도 좋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끌어댈 필요도 없이, 만족할 줄 모르는 탐구심이야말로 르네상스 정신의 기본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렇기는 하지만 정신운동은-르네상스든 뭐든-세상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격동기에 태어나는 법입니다.

정치의 성숙은 이것과는 반대로 세상을 차분하게 안정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제의 본질은 이윤 추구에 있으니까, 자발적이고 경쟁적이 아니면 융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스스로 파멸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요.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정치는 도가 지나친 행위를 시정하여 경제 번영을 오래 지속시키는 지혜라고 바꿔 말해도 좋습니다.

그러려면 정치의 성숙을 통한 정국 안정이 필수조건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종교는 믿는 것이고, 철학은 의심하는 것입니다.

종교와 철학은 유일한 원리를 탐구하는 과정도 전혀 다릅니다.

철학에서는 원리를 세웠다가 파괴하는 작업을 되풀이합니다.

일단 세운 원리를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고수해서는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사치가 칭찬을 받은 예는 없으니까 좋은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겠지요.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서민들은 자기가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사치를 좋아합니다.

동경한다고 해도 좋습니다.

왕족이나 영화배우나 가수들이 인기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들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을 터인 서민들이 그들을 좋아하고 지지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화려한 차림의 교황이나 추기경들 옆에는 검정색이나 갈색이나 흰색의 초라하고 수수한 옷을 걸친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바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기독교회 조직의 강점이지요.

기독교회가 화려함과 청빈을 양쪽 다 만족시키는 것은 그 양쪽을 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유럽인들은 마르코 폴로를 비롯하여 육지를 탐험한 선조들의 영향으로 중국이나 일본을 풍요로운 나라로 믿었습니다.

대항해도 거기에 도달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으니까, 이권을 바란 탐험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이든 창조의 기쁨이든,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무언가가 인간을 행동으로 내모는 법이지요.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나 티치아노의 작품 앞에 섰을 대는 이런 르네상스의 천재들을 해설한 연구서 따위는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안내원의 설명도 흘려들으면 됩니다.

그보다는 당신 자신이 '젊은 천재'가 된 셈치고 '거침없이' 그들과 마주하는 겁니다.

자기도 천재라고 생각지 않으면, 천재한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Posted by 㗢동죽竹
,

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자란 결혼상대를 고를 때는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 있고 신뢰할 수도 없는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도 미워할 수 없는 남자에게 끌리는 법이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모험에 나서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법이다.

이런 유의 남자는 여자에게 나이와 종교의 차이를 넘어 그저 '남자'로만 보이는 존재다.

성도 예루살렘의 해방이라는 슬로건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것쯤은 여자에게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이기주의자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타인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는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방이든 서방이든 당시 사람들의 바람은 몸의 안전을 보장하고 세금을 적게 걷는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만 보장해준다면 지배자가 누가 되든 상관없었다.

십자군을 단순한 침략자 집단으로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의 지배자가 가톨릭교도라 해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위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대도시를 공략하기는 무척 어렵다.

집 안에서 버티는 상대를 계속 집 밖에서 공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병력과 군량이 충분하다 해도 무더위와 혹한, 비와 눈과 바람을 고스란히 감수하면서 공격해야 한다.

더군다나 배후에서 적의 원군이 나타나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역병도 발생하기 쉽다.

적과의 전투에서 죽는 자보다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위생상태가 나빠 죽는 자가 더 많은 것이 공격하는 측의 고민 중 하나였다.

더구나 공격하는 내내 병사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역사상 명장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성전(攻城戰)을 싫어했다.

그들은 어떤 책략을 이용해서든 성벽 안에 웅크린 적을 성벽 밖으로 끌어내어 대규모 전투를 벌여 승부를 가르기를 원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성과는 신통치 ㅇ낳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역사에서 종종 '정치적 정복'이라는 말이 나온다.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거나 위협하면 상대는 이를 강자로 인정하고 연공을 바침으로써 복종의 뜻을 표하는 방식이다.

지배란 곧 징세권을 뜻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인데, 이 경우 세금만 내면 공략을 피할 수 있고 약탈도 당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의 지배자나 통치 조직은 예전 그대로 남는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러나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 평범함을 돌파하는 길이 있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냉철하게 따져보고, 자기 혼자 모든 일을 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때 그 길이 열린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리 인간세계에 눈을 돌리면 인재가 마치 분수처럼 한 시대에 한꺼번에 배출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분수처럼 많은 물을 기세 좋게 뿜어올리고는 소리 없이 떨어지며 인재 고갈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런 현상이 끼치는 영향이 국내에만 한정된다면 문제해결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전 시대에 축적해놓은 것을 갉아먹으며 차분히 앉아 다음 분수가 뿜어져오르기를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인재 배출과 인재 고갈의 순환이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시기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쪽은 인재 고갈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인재 배출의 시대를 맞이하는 일이 상당한 비율로 일어나는 것이 인간세계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제후나 병사들이 그 사람이라면 따르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훌륭한 '힘'이다.

지도자에게는 카리스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이러한 경우에는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 최선책인데, 이것도 힘이 센 측이 중립을 선언했을 때는 효력이 있을지라도 힘이 약한 측이 중립을 선언하는 경우는 효력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해를 입는다는 단점이 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의 야심이란 곧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하는 의욕이다.

한편 허영심은 타인에게 좋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 세상을 버린 은둔자일 테니 여기서는 제외하고, 인간성이 풍부한 인간으로 이야기를 좁히기로 한다.

문제는 한 인간의 내부에서 야심과 허영심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인간이 좋은 기회를 얻었을 때 야심으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허영심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네가 유복한 출신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네가 지력을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또한 네가 미모를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원인이 되어 네가 오만하고 건방져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오만과, 오만의 표현인 건방짐은 너 한 사람만이 아니라 네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해치고 더럽히며 비속화하기 때문이다."


낙서조차 '학식' 있는 사람의 것으로 여겨지던 중세 유럽사회에서 당시의 국제어이기도 한 라틴어로 이와 같이 기록한 남자들이 '병원 기사단'의 기사들이었다.

"죽여라! 죽여라!" 라고 외치는 '템플 기사단'과는 확실히 달랐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지들 간의 치열한 싸움도 쇠퇴기에 벌어지면 활력의 감퇴로 이어지지만, 융성기에 이루어질 경우에는 오히려 쌍방의 활력을 증진시키고 국력을 번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세계에는 교활한 인간이 많다.

그런 자질이 그 인물이 이끄는 공동체를 위해 쓰이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이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교활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에 인간은 '의로움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감동하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리고 대중의 가슴을 뜨겁게만들지 못하는 한 역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러나 그리스도교도든 이슬람교도든 그들이 제창한 '성전' 사상 자체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것을 지탱하는 열기는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어난 무장은 미리 생각한 전술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적당한 파도가 다가오면 주저하지 않고 올라탈 줄 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상회담에서 통역을 이용할 때, 두 정상은 귀로는 통역의 말을 들으면서도 눈은 항상 상대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통역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아야 협상 상대의 됨됨이를 관찰할 수 있다.

인간이란 이야기할 때의 시선이나 손짓에서도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는 법인데, 통역의 목소리에 정신이 팔리면 가장 중요한 이런 관찰을 소홀히 하게 된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주의에는 자유로운 능력 발휘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장기적인 것보다 단기적인 관점이 득세하기 쉽고, 그러다보니 눈앞의 이권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그것을 놓고 대결의식이 폭발하기 쉽다는 점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여러 차례 반복하지만, 중세는 '역량'보다 '혈통'이 중요시되는 시대였다.

그랬기에 혈통보다 역량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 시대는 아직 중세의 한복판이었다.

게다가 '역량'은 실적을 보여주어야만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만, '혈통'은 말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처드의 시신은 영국에 없다.

죽은 후 곧장 머리는 푸아티에 지방의 수도원에, 심장은 노르망디 지방 루앙의 교회에, 그 외의 부분은 앙주 지방의 수도원에 나누어 매장했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영지를 지닌 왕의 시신을 해체하는 목적은, 우선 죽은 후에도 영지의 소유권이 그에게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동시에 해당 영지의 백성들에게 자기 지역에 왕의 묘가 있다는 만족감을 안겨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사력이 없는 조직의 수장이라는 문제뿐 아니라, 이 '태양'은 종종 수재들에게서 엿보이는 단점도 갖고 있었다.

좌절을 경험한 적 없는 사람이 흔히 그렇듯이, 자신이 하는 일에 의심을 품지 않는 탓에 자신과 다른 발상을 하는 사람의 진의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단점은 어떤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때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거나 사후승낙의 상황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쟁은 인류 최대의 악업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도무지 이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그 승패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저지른 후 얼마나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졌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

또한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때그때 단기간의 평화를 쌓아가는 식으로 달성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내 정치는 성심성의껏 하면 대부분의 경우 좋은 결과가 나온다.

기득권 계급의 반대를 무시하고 어떤 일을 강행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득하기 마련이고,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사람들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외 정치의 대상인 다른 나라나 사람과는 당연히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 경우 성심성의껏 했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종종 그 반대의 결과를 낳고 만다.

따라서 외정 담당자에게는 내정을 담당하는 자 이상의 현명함이 요구된다.

교활하거나 악랄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신의다.

다시 말해 약속한 것을 지키는 자세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깨는 상대와는 협정을 맺어봐야 소용없지만, 달리 방책이 없으면 그것에라도 매달리게 마련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옳은 것만 말하는 신이 바란 일이니 옳은 전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가 후퇴한 뒤에도 '옳은 전쟁'만은 남았다.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남기고 싶다고 인간이 생각했기에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에 맹위를 떨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 남아, 전쟁을 이끌어내는 측이나 이끌려나간 측 모두,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고드푸르아 #귀스타브_도레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살라딘 #귀스타브_도레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사자심왕_리처드 #귀스타브_도레

Posted by 㗢동죽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