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말해서,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 당신이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두뇌를 파는 것은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나쁩니다.
몸을 파는 사람은 순간적 쾌락을 팔고 나면 그 문제가 거기서 끝나도록 합니다.
그러나 두뇌를 파는 사람은 두뇌를 팔므로써, 그 무기력하고 사악하며 병든 자손이 세상에 퍼져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고 타락시키며 질병의 싹을 뿌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에게 두뇌의 간통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를 요청합니다, 부인.
그것은 다른 간통보다 훨씬 더 중대한 범죄니까요."
그녀는 "두뇌의 간통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 내가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쓰는 행위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당신은, 내가 쓰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돈 때문에 쓰고 말하도록 나를 매수하려는 출판업자, 편집자, 강연 담당자들의 제의를 모두 거절하라고 요청하는 겁니까?"라고 묻겠지요.
"그렇습니다, 부인.
더 나아가 당신이 그런 매매 제안을 받으면, 당신의 몸을 팔라는 제안에 대해 화를 내고 폭록하듯이 당신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똑같이 분개하고 폭로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간통하다'라는 동사는 사전에 따르면 '저급한 요소들을 섞음으로써 질을 떨어뜨리다.'라는 의미임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저급한 요소가 오로지 돈만은 아닙니다.
선전과 명성 역시 간부(姦夫)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 매력이 혼합된 문화, 또는 선전과 명성이 혼합된 문화는 질이 낮은 형태의 문화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런 것들을 배척하기를 요청합니다.
공적 연단에 나타나지 않고, 강연하지 않고, 당신의 얼굴이나 사생활의 세부적인 사실들이 출판되지 않도록 하며, 간단히 말해서 두뇌를 판매하는 직종의 뚜쟁이와 포주들이 무척이나 교활하게 제시하는 어떤 형태의 두뇌 매출에도 편승하지 않고, 두뇌의 장점을 선전하고 인증하는 시시한 장난감과 꼬리표들-메달, 훈장,학위-그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기를 요청합니다.
이런 것들은 문화가 매춘되고 지적 자유가 매매되어 예속되었음을 입증하므로, 우리는 당신이 이런 것들을 전적으로 거부하기를 요청합니다."
어디선가, 언제인가 당신은 어린이였다. 이 점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삶에서 간과되곤 한다. 그러나 당신이 한때 어린이였다는 사실은 현재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언제나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어린 시절을 무시하고 생략해 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은 많은 어른에게 고민과 불행을 가져다주는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잘못 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문제 유발성 태도'란 부모와 같은 소중한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태도와 지나친 요구에 부응하는 어린이 나름의 방식이다. 이와 같은 어린 시절의 반응이 어른이 되어서 외로움, 성적 장애, 우울증, 불안, 부부간의 불화, 성공을 향한 충동적인 집착 등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1. 내재과거아: 말 그대로 어른이 된 지금도 당신의 삶 안에 그대로 남아서 지속되고 있는 당신이 과거에 거쳐 온 어린이의 모습. 2. 자신에 대한 부모 역할: 당신은 이미 자신의 내재과거아에게 부모로서 행위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에 대한 내재과거아의 반응이 때로는 당신이 부딪히는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3. 상호 존중: 당신이 자신의 내재과거아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태도이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1.정서적인 의식 면에서 어른과 어린이의 본질적인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다. 곧, 어린이에게는 갖가지 방법을 빌어서 지시하고, 이끌어 가고, 안심시키고, 평가하고, 가치를 따지게 하는 등 내면의 의식을 심어 주는 부모가 있는 반면 어른은 스스로 자신에게 지시하고, 자신을 이끌어 가고, 안심시키거나 자책하는 등 자신에 대한 부모 노릇을 한다. 2. 그러한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 익힌 부모의 태도를 이어받아 자신이 어른으로서 생활하는 데에 고스란히 적용한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첫째 단계는 이렇듯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대해 파악하고 그 감정이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둘째 단계는 어린 시절이 우리에게서 떼어 낼 수 없는 부분이듯이 이런 감정 또한 우리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일이다. 셋째 단계는 이러한 어린 시절의 감정이 자신의 행동과 능력 발휘를 제어하거나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가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힘겨운 일이기에 인내가 필요하며 무수히 반복된다. 불평하거나 자책만 해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방금 말한 단계를 한 걸음씩 밟아 감으로써 자신에 대한 감정을 고쳐 나갈 수 있으며, 내재과거아를 통해서 현재아 미래에도 대처해 나갈 수 있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당신이 만약 내재과거아를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자신에게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흔히 겪는 불안이나 긴장, 짜증나는 초조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으로 당신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겪는 긴장과 불안은 대부분 어린 시절 당신의 감정이 모습을 드러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거나 부인하려는 노력에서 기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그러므로 당신의 내재과거아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곧 당신의 모든 감정을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존중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소망이 어른인 당신의 목표나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소망을 충족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당신이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능력은 내재과거아의 감정을 존중하는 데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부류의 어린아이였는지 알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렸을 때 당신을 사로잡았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가? 예를 들어 당신은 언제 떼를 썼고, 언제 애처롭게 울거나 자신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했으며, 언제 외로움을 느꼈고, 언제 어떻게 벌을 받았고, 언제 화를 냈으며, 부모에게 칭찬받으려고 어떻게 애썼는지 기억하는가? 그때 행복했는가? 당신은 남몰래 또는 대놓고 화를 내던 때를 돌이켜 볼 수 있는가? 공포심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인식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 대답은 부모가 당신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를 회상하는 문제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외로웠거나 행복했거나 화를 냈거나 저주받았다고 느꼈던 때를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은, 당신을 대하던 부모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오히려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갈 것이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자신의 고유한 내재과거아에게 사려 깊은 부모 노릇을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지녀 온 감정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부모로서의 태도와 가치관을 정립할 때, 비로소 부모를 평범한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부모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채로 자신의 내재과거아 때문에 어떻게 몸부림쳐야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응징과 같은 부모의 지나친 태도가 우리 문화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을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는 이와 같은 태도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 주는 한낱 중개자일 따름이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내재과거아의 감정에 조심스럽게 한계를 설정하는 일은 무엇보다 당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무엇이냐 하는 것보다는 그것들이 현재 또는 과거에 생겨난 것인지, 불안감인지 적개심인지, 자기 비하인지 충동적 원의인지, 우울증인지 분노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그 감정에 반응할 뿐이다. 감정을 인식하는 것은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무엇이 당신을 괴롭히는지'를 분명히 측정하는 데 필요한 첫 단계이다 감정은 누가적累加的인 경향을 지닌다. 즉 감정은 일회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전체적인 사건이나 상황, 또는 그 사건이나 상황의 전체적인 양식으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가운데 사건의 전체적인 연속이 수반되지 않았는지 알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이 책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격려의 말을 모아 두었다가 당신에게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내재과거아와 어른인 당신 사이의 투쟁을 억제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은 당신이 얻을 수 있는 내적인 만족감이며 충족감이다. 그 누구도 이것을 당신에게 베풀 수는 없다. 인생 자체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인생의 만족은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다. 우리 대부분이 겪는 불행과 불만족은 어른으로서 사는 삶의 성취를 가로막는 내재과거아와의 무익한 투쟁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재과거아를 이해하며,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새롭게 받아들이고 다루어 나가야 한다. #몸에_밴_어린_시절#W_휴_미실다인
이제 남성들은 똑같은 인류애를 발휘해 오래전부터 신음하며 처참한 환경에서 최하층 인간들과 뒤섞여 지내는 여성들의 관대한 보호자로 나서야 한다.
끊임없이 종속당해왔던 여성들의 불행이 나를 부추겨 여성만을 위한 특별한 자선의 집을 만들어줄 것을 국가에게 요구하도록 한다.
이 자선의 집은 오직 재산 없는 군인들, 성실한 개인들, 상인들, 예술가들의 부인들만을 위한 시설이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넉넉하지는 않아도 큰 어려움 없이 살다가 역경에 처해 모든 원조를 박탈당한 여성들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당신들의 가정, 딸과 아내와 동떨어져 본성을 무시하고 여성에게 빚진 모든 것을 외면할 수 있는가?
아니다.
당신들은 여성들에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 몰두하고 있는 큰일들 때문에 당장 이 시설에 관심을 쏟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나라가 해방되고 헌법의 토대가 탄탄히 세워지면 그간 여러분이 빚진 것들을 고통받는 인류와 본성에 내주어야 한다.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성별은 도처에서 섞인 채 자연이라는 불멸의 걸작을 위해 조화롭게 협력하고 있다.
이런 예외의 원칙을 꼴사납게 고수하는 건 오직 인간뿐이다.
계몽과 통찰의 시기에 더없이 지독한 무지 속에서 이상하고 맹목적이며 학식으로 잔뜩 겉멋 든 퇴보한 남성은 모든 지적 능력을 갖춘 특정한 성性을 전제군주처럼 통솔하려 든다.
혁명을 향유하고 평등의 권리들을 주장하면서 그 이상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전문前文
국민을 대표하는 어머니, 딸, 누이는 국민의회의 일원이 되기를 요구한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무지, 망각 또는 멸시만이 공공의 불행과 정부의 부패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원인들이기에, 여성의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성스러운 천부적 권리들을 이 엄숙한 선언을 통해 공표한다.
이 선언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항시 제시되어 끊임없이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시키기를, 여성과 남성의 권력 행사 행위가 매 순간 이 정치 체제의 지향점에 견주어 더욱 존중될 수 있기를, 단순 명료한 원칙들에 입각한 여성 시민의 주장들이 언제나 헌법과 미풍양속의 유지, 모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에 따라, 출산의 고통을 견디는 용기와 빼어난 도덕적 고결함을 지닌 우리 여성들의 후원을 베푸는 절대자와 함께 다음과 같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들을 인지하고 선언한다.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제1조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입각해서만 허용될 수 있다.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제10조
그 누구도 근본적인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후문後文
여성이여, 깨어나라.
온 세상에 이성의 경종이 울리고 있다.
그대의 권리를 인지하라.
강력한 자연의 제국은 더 이상 편견과 맹신, 미신과 거짓에 둘러싸여 있지 않다.
진실의 횃불이 어리석음과 침탈의 먹구름을 몰아냈다.
제힘을 기른 노예 상태의 남성은 그 사슬을 끊는 데 그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자유로워진 남성은 이제 자신의 동반자를 부당하게 대한다.
오, 여성들이여! 여성들이여, 언제쯤 감은 눈을 뜨려는가?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그들이 자신들의 원칙과 모순되는 일관성 없는 행동을 고집한다면 우월성에 대한 이 헛된 주장에 이성의 힘으로 용기 있게 맞서라.
철학의 깃발 아래 결집하라.
그대들의 모든 기력을 발산하라.
그리하면 곧 저 오만한 자들이, 비굴한 경배자들이 그대들의 발 아래 엎드려 절대자가 주신 보배를 그대들과 나눔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대들을 막아선 장벽이 어떤 것이건 그것을 넘어서는 힘은 그대들 안에 있다.
그대들은 그저 원하기만 하면 된다.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인간 무역이라니!
세상에나!
자연이 전율할 만하지 않은가?
그들이 동물이라면 우리도 동물이 아닌가?
백인은 어떤 점에서 그들과 다른가?
차이점이라고는 피부색뿐이다······.
왜 밋밋한 금발을 혼혈에서 생겨난 갈색 머리보다 선호할까?
이 경향은 흑인보다 혼혈을 선호하는 것만큼이나 놀랍다.
자연이 만든 동식물과 광물이 그렇듯 인간의 피부색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왜 낮이 밤과, 태양이 달과, 별이 창공과 색을 두고 다투지 않는가?
모든 것은 다양하며, 바로 그래서 자연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왜 자연의 작품을 파괴하려 드는가?
인간이 자연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걸작은 아니지 않은가?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나는 그 무엇과도 비길 데 없는 동물이다.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한쪽의 용기를 지니고 있지만 때때로 다른 쪽의 연약함도 있다.
이웃에의 사랑도 지니고 있지만 나만의 증오도 있다.
나는 자존심이 강하고 솔직하며 공정하고 예민하다.
내 이야기에서 평등의 모든 덕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외모는 자유의 모양새를 띠고 있고, 내 이름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
꾸며지지도 않고 완성되지도 않은 나의 초상을 보면 내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여, 귀를 기울이라.
나는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신에 대한 판결을 살펴보고 진실을 인정하라.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그대들은 단두대 위에서 흐르는 그들의 피를 보기 위해 서두를 것이다.
여기 희생자 한 명을 더해주겠다.
첫 번째 죄인을 찾는가?
그게 나다.
어서 쳐라.
나는 루이 카페에게 호의적인 지지를 보냈다.
진정한 공화주의자로서 쫓겨난 폭군에게 승자의 관용을 전파한 이가 바로 나다.
민중들의 요구에 답할 방안을 생각해낸 이가 바로 나다.
마침내 위대한 방법으로 모든 왕홀을 꺾고, 민중들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이러한 명목하에 우리 시대에 흘러넘치던 피의 강을 말린 자가 바로 나다.
프랑스인들이여, 이게 내 죄다.
사형 집행인들 사이에서 속죄를 해야 할 시간이로구나.
#여성과_여성_시민의_권리_선언 #올랭프_드_구주
나의 조국에는 나의 심장을, 남성들에게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나의 정직함을 남긴다.
나의 영혼은 여성들에게 남긴다.
그녀들에게 별것 아닌 것을 선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의 창조적인 재능은 극작가들에게 넘겨주려 한다.
그들에게 아주 유용할 것이다.
특히 나의 연극적인 논리는 유명한 셰니에에게 물려주는 바이다.
야망에 대한 나의 무관심과 철학은 박해받은 이들에게, 나의 지성은 광신도들에게, 나의 신심은 무신론자들에게, 나의 거칠 것 없는 유머는 나이 든 여성들에게 넘긴다.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유산은 나의 법정상속인인 아들이 나보다 오래 살게 될 경우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언제라도 우리의 편견을 던져버리는 것에 때가 늦은 경우란 없다. 어떤 생각과 행동의 방식도, 그것이 고대부터 내려온 것이라 할지라도 그럴 듯한 증거가 없이는 믿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것이라며 되풀이해서 소리치거나 고요 속에 전해지는 것도 내일은 거짓된 것으로 드러날지 모른다. 비옥한 들판에 비를 뿌려줄 구름이라고 믿었던 것이 연기처럼 단순한 견해로 치부될지 모를 일이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집을 짓는 것은 새가 자기 둥지를 짓는 것과 같은 적합성을 가져야 한다. 만약 인간이 자기 두 손으로 자신의 거처를 짓고, 정직하고 소박하게 자신과 가족들의 음식을 준비한다면, 새들이 그런 일들을 할 때 항상 노래하듯이 인간도 시적 재능이 피어나지 않겠는가? 아, 그러나 우리는 다른 새들이 지어 놓은 둥지에 자기 알을 낳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행동한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즉, 만약 사람이 자기가 키운 것을 먹으면서 소박하게 살고, 자기가 먹는 것 이상을 재배해서 어떤 불필요하고 사치스러우면 비싼 것들을 더 갖기 위해서 그것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단지 몇 로드의 땅만 경작하면 되고, 그 땅을 갈기 위해서 황소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직접 갈아엎는 것이 더 싸며, 오래된 땅에 비료를 주는 것보다는 때때로 새로운 땅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그리고 필요한 작업은 여름에 모두 힘들이지 않고 틈틈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그는 요즘 흔히 보이는 사람들처럼 황소나 말, 암소, 돼지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나는 현재의 경제 혹은 사회적 제도의 성공이나 실패에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이 점에 대해서 공평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콩코드의 어떤 농부들보다도 독립적이었다. 나는 집이나 농장에 얽매이지 않고, 매 순간 유별난 내 천성을 따르며 살았다. 게다가 나는 그들보다 더 잘 살고 있었고, 만약 내 집이 불타버렸거나 농작물이 실패했어도 나는 거의 전만큼이나 잘 살았을 것이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나는 신념이나 경험에 의해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이 고난이 아니라 여흥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가 검소하고 현명하게 살아간다면 말이다.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더 인위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이마에 땀 흘릴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나보다 더 땀을 잘 흘리는 체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그들은 현자에게 물었다. 지고의 신이 드높고 잎이 무성하게 창조한 많은 축복받은 나무들 중에서, 열매를 맺지 않은 삼나무를 제외하고는 어떤 나무도 자유의 나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이것에는 어떤 신비가 들어 있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각각의 나무는 자신에게 맞게 열매를 맺는 지정된 계절이 있다. 한동안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한동안은 말리 시들어버린다. 삼나무는 이 중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고 항상 푸르다. 이것이 자유로운 것들, 그리고 종교적으로 독립적인 것들의 본성이다. 일시적인 덧없는 것에 그대의 마음을 쏟지 말라. 칼리프들이 사라진 후에도 티그리스강은 바그다드를 통해 계속 흐를 것이다. 그대의 손에 많은 것이 있다면, 대추야자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어라. 그러나 만약 줘버릴 것이 없다면, 자유로운 것,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되어라."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신중하게 살기 위해서, 삶의 정수만을 마주하며 살고 싶어서, 그리고 그것이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내가 죽을 때 진정으로 살지 않았음을 깨닫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나는 진실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체념이라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깊게 살고 싶었고 삶의 골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싶었으며,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뿌리 뽑아 버리는 스파르타 인들처럼 강인하게 살고 싶었다.' 넓게 베어내고 가까이 잘라내 삶을 구석까지 몰고 가서 최소의 부분으로 줄이고 싶었다. 만일 삶이 미천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순수한 미천함을 모아 세상에 공표하면 되지 않겠는가. 만일 삶이 숭고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직접 경험으로 그것을 느끼고 나의 다음 여행에 진정함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정직한 사람은 셈을 하기 위해 열 손가락 이상을 쓸 일이 거의 없으며, 아주 특별한 경우에 발가락 열 개를 더하고 나머지는 하나로 묶어버리면 될 것이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수백, 수천 가지가 아닌 두세 개의 일만 남겨두자. 백만 가지 대신에 여섯까지만 세고 계산을 간결하게 하자.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간소하게, 간소하게. 먹는 것이 꼭 필요하다면 하루에 세 끼 대신 한 끼만 먹어라. 백 개의 음식 대신 다섯 가지만 먹어라. 다른 것들도 균형에 맞게 줄여라.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나는 외로움을 느끼거나, 고독감에 압도된 적이 없다. 언젠가 한번 숲으로 온 지 몇 주가 지났을 때, 인간에게는 이웃이 고요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었다. 혼자라는 것이 기분 좋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 기분의 이상함을 눈치 채고 회복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온화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팽배해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자연 속에, 쏟아지는 비속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광경에서 달콤하고 인정 많은 벗이 있음을 느끼고, 무한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호의가 인간 이웃이 주는 이익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며, 내 주위를 지탱하는 대기처럼 한 번에 나를 감싸 안았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이 유익함을 알았다. 설령 최고의 친구들이라 하더라도 함께 있는 것은 곧 지치고 정신을 흐트러뜨린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고독보다 친해지기 쉬운 친구는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대부분 혼자 밤에 있을 때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더 외로움을 느낀다. 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늘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친구 사이의 공간의 길이로 측정될 수 없다. 군중으로 북적대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진지하게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승만큼이나 고독하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친교는 보통 너무 가볍다. 우리는 매우 짧은 간격으로 만나며 서로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얻을 시간을 갖지 않는다. 하루 세 끼 밥을 먹을 때 만나고 우리 자신이라는 케케묵은 치즈의 맛을 보게 한다. 이 잦은 만남을 참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일련의 규칙을 만들었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나는 확신하건대 만약 모든 이들이 내가 그때 그랬던 것처럼 단순하게 살 수 있었다면, 도둑질과 약탈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이런 일들은 오직 일부가 풍부한 것 이상으로 소유한 반면 다른 일부는 충분히 갖지 못한 공동체에서만 발생한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노력에서 지혜와 순결이 생기며, 게으름에서는 무지와 육체적 욕망이 생겨난다. 학자에게 있어서 육체적 욕망은 정신의 게으른 습관이다. 깨끗하지 않은 사람은 보편적으로 게으른 자이며, 난로 곁에 앉아서 자신 위로 빛나는 태양에 굴복하며 피곤하지도 않으면서 쉬는 사람이다. 만일 그대가 불결함과 모든 죄를 피하고 싶다면 그 일이 비록 마구간 청소일지라도 성실히 일해라.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어떤 이는 기린을 쫓아 남아프리카로 가지만, 분명히 기린이 그가 쫓아야 할 사냥감은 아니다. 만약 기린을 쫓더라도 그가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도요새도 귀한 사냥감이지만, 나는 자기 자신을 사냥하는 것만큼 고귀한 게임은 없다고 본다. "당신의 눈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라. 그러면 당신은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천 개의 지역을 찾을 것이다. 그곳을 여행하고 자신 내면의 우주학 전문가가 되어라."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자기를 존경하지 않는 누군가가 애국심을 명목으로 작은 것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덤이 될 땅은 사랑하고 지금 육신에 활력을 불어 넣을 정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감을 느끼지 못 한다. 이들에게 애국심은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구더기와 같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삶을 단순하게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은 덜 복잡해지고 고독은 고독이 아닐 것이며 가난도 가난이 아니고 약함도 약함이 아닐 것이다. 당신이 만약 허공에 성을 짓는다고 해도 헛된 일이 아니다. 본래 성은 허공에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아래 주춧돌만 쌓으면 된다. #월든#헨리_데이비드_소로
그렇기에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만 논하고, 실제 인간이 사는 양상을 직시하지 않는 자는 현재 가진 것을 보전하는 것은 고사하고, 모든 것을 상실하여 파멸로 향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든지 선(善)을 행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는 나쁜 인간들 속에서는 파멸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몸을 보전하고자 하는 군주(지도자)는 나쁜 자가 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더욱이 그것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기술도 터득해야 한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군주는 야수의 성질도 아울러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데 그 야수를 들자면, 나는 야수 가운데서도 여우와 사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자만으로는 덫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없고, 여우만으로는 이리로부터 몸을 지킬 수 없으나, 여우이니까 덫을 피할 수 있고, 사자이니까 이리를 쫓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덫을 간파하려면 여우여야 하고, 이리를 쫓아버리려면 사자여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자인 것만으로 만족해하는 군주는 이 점을 잘 모르는 것이고, 여우인 것으로 만족해하는 지도자에 대해서도 물론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무섭게 여겨지는 편이 군주로서 안전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서운 자보다 사랑하는 자를 사정없이 해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은의(恩義)의 끈에 묶인 애정 따위는 이해가 상반되면 예사로 끊어버린다. 한편 공포로 연결되어 있을 때는 복수가 무서워서 쉽게 끊지 못하는 법이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군주로서 최대의 악덕은 미움을 사는 것과 경멸당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악덕만 피할 수 있다면, 군주는 임무를 상당히 완수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밖에 악평이 나더라도 하등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증오는 국민의 소유물에 손을 댔을 때 생기는 것이므로, 그것을 하지 않으면 피하기는 쉽다. 동서고금에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 물건과 명예만 빼앗기지 않으면 의외로 불만 없이 살아가는 법이다. 한편 경멸은 군주가 변덕스럽고 경박하며 여성적이고 소심하며 결단력이 없을 때 국민의 마음속에 싹튼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큰일을 할 때는 아무래도 한 인물에게 권력이 집중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사람들의 질투심이다. 이 질투심을 눌러두는 방책에는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직면하게 될 곤란한 사태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누구나 난국을 자각하면 거기서 탈출하고 싶어서, 개인의 생각을 잊고 탈출시켜줄 만한 사람을 자진하여 따르게 된다. 또 하나의 방책은 강압적으로든 다른 방법으로든 질투심을 가진 자들이 옹립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모세도 자기 생각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인간의 두뇌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외워두면 좋다. 첫째 두뇌는 자기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둘째 두뇌는 남이 이해한 것을 감별할 수 있는 것. 셋째 것은 자기 힘으로 이해도 못하고, 남이 이해한 것을 감별도 못하는 것. 첫째 두뇌가 가장 좋고, 둘째 것이 그 뒤에 오며, 제3의 것은 '뇌'를 무능의 '능'(能)자로 바꾸어놓아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단언해도 좋지만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별로 효과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상이건 현실이건 적이 존재하고, 이쪽이 적보다 약체인 경우에 중립이란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해롭다. 중립으로 있으면 승자가 적으로 볼 뿐 아니라 패자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하여 적대시하는 것이 고작이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옛 장군들은 인간의 의욕이라는 것이 필요에 쫓겨야 비로소 충분히 발휘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격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장병들이 부득불 싸우지 않을 수 없도록 온갖 방책을 강구했던 것이다. 동시에 적군에 대해서는 그들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획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돈으로 고용함으로써 성립되는 용병제도가 왜 소용이 없느냐 하는 문제인데, 그런 병사들을 장악할 수 있는 바탕이란 지불되는 급료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급료만으로 그들의 충성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부족하다. 그들이 고용주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일해주기를 기대하는 쪽이 순진하다. 따라서 심취할 수 있는 지휘관 밑에서 적과 용감하게 싸워줄 감투 정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자국 군대뿐이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깨닫고 그에 맞게 탈피할 능력을 가진 인물이 극히 드문 것도 사실이다. 그 까닭은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사람은 타고난 성격에 어긋나는 일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는 것. 둘째는, 그때까지의 방법으로 내내 잘해온 사람에게 지금부터는 그것과 다른 방법이 적합하다고 납득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하여 시대는 자꾸만 변하는데, 인간의 방식은 여전하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군주는 어떤 이유로 민중의 미움을 살까? 가장 큰 이유는 민중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군주가 빼앗아가는 데 있다. 인간은 자기가 가장 소중히 하는 것을 빼앗겼을 때의 원한을 절대로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상에 필요한 것일 때 더욱 그렇다. 필요를 느끼는 것은 매일이므로 날마다 빼앗긴 원한을 되씹게 되는 셈이다. 이유의 둘째는 군주의 거들먹거리는 거만한 태도에 있다. 그런 서툰 행위는 억압된 백성보다 자유로운 백성을 상대로 했을 때 특히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정신적인 피해만으로 민중의 미움을 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조국의 존망이 걸렸을 때는 그 목적에 유효하다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 이 한 가지는 위정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명심해야 할 일이다. 조국의 존망이 걸려 있을 경우, 그 수단이 옳다든가 그르다든가, 너그럽다든가 가혹하다든가, 칭찬받을 만하다든가 창피하다든가 하는 것 따위는 일절 고려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목적은 조국의 안전과 자유의 유지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종교나 국가를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 몇 번이고 본래 모습으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개혁이 요구되는 것인데, 자연스럽게 제도가 개혁되면 가장 이상적이다. 또한 어떤 계기로 개혁의 필요에 눈을 떠서 그것에 손을 대는 경우도 그것은 오래 간다. 다시 말해 분명한 것은 아무런 손도 쓰지 않고 방치해두는 나라는 단명으로 끝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개혁의 필요성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인데,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익한 까닭은 어떤 형태든 공동체인 이상 초창기에는 반드시 무언가 우수한 점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장점이 있었기에 오늘의 융성을 이룰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세월은 당초에 있었던 장점도 마멸시켜버리게 마련이다. 마멸되는 대로 방치해두면 마지막에는 죽음에 이른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는 권력의 존재는 그것이 아무리 성인(聖人)의 손에 맡겨져 있더라도 나라에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절대권력이란 어떤 사람이고 간에 단시간에 좀먹어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그 사람이 가난을 개의치 않거나 돌봐줘야 할 일가 친척이 없는 몸이라도 안심할 수 없다. 부를 포함한 온갖 이권 쪽에서 권력을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비열하고 악랄한 인간을 관직에 앉히고 싶지 않거든 최고로 비열하고 악랄한 인간과 고결하고 평편이 좋은 인물을 나란히 출마시키도록 조처해야 한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양자의 너무나 뚜렷한 차이 때문에 아무래도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이것으로도 앞에서 말한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민중은 뚜렷한 형태로 보여주면 정당한 판단을 내릴 능력이 있으나, 이론적으로 제시하면 그르치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다음 두 가지는 절대로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 인내와 관용으로 대한다고 사람의 적의도 용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둘째, 보수나 원조를 준다고 적대관계도 호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
어떤 인물이 현명하고 사려 깊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으로는 그가 설혹 말뿐이라도 남을 협박하거나 모욕하지 않는 행동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두 행위는 상대편을 해치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협박은 상대편의 경계심을 눈뜨게 할 뿐이고, 모욕은 지금까지보다도 더한 적의를 북돋울 뿐이다. 그 결과 상대편은 그때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강한 집념으로 당신을 파멸시킬 결의를 굳힐 것이다. 고대 로마인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키아벨리_어록#시오노_나나미#니콜로_마키아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