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시적이어라.
삶에게 아름다운 연애편지를 써라.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삶에게 아름다운 연애편지를 쓰고 사람을 담뿍 담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
단 아주 간접적으로 하는 것.
삶이 그대 쪽으로 점점 더 기울어질 때 더욱더 용기를 가져라.
그러나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여라.
아니면 실패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공격적이라면 실패할 것이다.
사랑,행복,명상,진리 또한 그대가 어떤 이름을 갖다 붙이든, 이런 아름다운 것들은 무엇이나 오직 미묘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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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현자는 미묘한 지혜와
깊은 이해력을 갖고 있어

깊은 이해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다른 사람의 손으로 느낄 때, 다른 사람의 존재의 중심에 설 때, 그리고 그를 통해서 바라볼 때 그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말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지식적인 사람은 항상 눈이 멀어있고 논쟁을 하려고 한다.
그는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은 항상 그르다고 한다.
그는 항상 논쟁한다.
그의 논쟁은 지긋지긋한 것이 된다.
그는 항상 교만하고 방어적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대가 무엇을 말하든지 그는 부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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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는 모습은 마치 겨울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그는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깨어있는 것이다.

망설이는 모습은 마치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고
아니다.
그는 망설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결론이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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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지혜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는 마치 탁한 물처럼 자유롭게 뒤섞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는 자유롭게 섞인다.
그에게는 깨끗함과 불결함, 선함과 악함 등, 모든 분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오로지 태양 같은 의식만이 존재한다.
그것이 그가 그렇게 자유롭게 섞이는 이유이다.
창녀의 집에 머물거나 수녀의 집에 머물거나 예수에게는 똑같다.
그는 잠을 자러 가는 것뿐이다.
그에게는 똑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창녀도 같은 것의 한 형상이며 수녀도 같은 것의 한 형상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깨끗하지 않고 아무도 불결하지 않다.
모든 이중성이 사라져버렸다.
초월되었다.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 안에서 산다.
그가 자유롭게 섞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에게는 아무런 장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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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죽음은 사념이 완전히 없어진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절대적인 죽음은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고, 이제는 삶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 사라짐에는 두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두 번째 단계는 삶에 대해서 어떤 욕망도 갖지 않는다.
그때 그대는 초월하게 된다.
노자는 이것을 영원한 법칙이라고 말한다.
이 영원한 법칙을 아는 것이 곧 깨닫는 것이며, 이것을 모르는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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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를 품는다.
성인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고 어떠한 논리적인 구분도 하지 않고 하나를 품는다.
그는 하나, 즉 전체를 선택한다.
모든 대립되는 것을 포함하는 전체를 선택한다.
그는 삶을 죽음과 함께 선택한다.
증오에 반대하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전체를 선택하고 온 세상의 모범이 된다.
그가 세상의 모범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귀결이다.
스스로 생겨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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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부드러움은
지극히 단단한 것을 통과하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외적인 세상에서는 물이며 내면의 세계에서는 사랑이다.
물과 사랑은 여러 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물은 빈 장소를 찾는다.
사랑 또한 비어있는 장소를 찾는다.
만일 그대가 이기주의자라면, 사랑은 그대에게 올 수 없다.
왜냐하면 이기주의자는 에고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너무도 자기 자신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사랑이 그대에게 오지 못 한다.
사랑은 그대가 아무런 방해물도 없이 텅 비어있기를 바란다.
물 또한 비어있는 장소를 찾는다.
그러므로 물은 히말라야에서부터 흘러내려 계속 흘러가 큰 바다에 도달한다.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텅 빈 공간이다.
그렇게 물은 바다에 도달한다.
강은 히말라야의 꼭대기를 향해서 흐를 수 없다.
그와 정반대이다.
강은 히밀라야의 최정상에 있는 빙상에서부터 나와 점점 낮은 곳으로 움직여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가장 텅 빈 장소, 즉 바다에 이른다.
바다는 곧 강물의 집이다.
사랑 또한 빈 곳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들은 사랑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
그들은 많은 것을 갈망한다.
사랑을 갈망하고 사랑을 얻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
그러나 언제나 실패한다.
완전히 실패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떻게 '얻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비어있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직접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되며, 직접적으로 추구할 수도 없다.
오직 간접적으로만 그대를 찾아오게 할 수 있다.
그대는 단지 비어있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보라.
수많은 강줄기가 그대를 향해서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대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별과 돌, 모래와 바다, 나무와 새들까지도, 그대가 움직이는 곳마다 갑자기 사랑이 그대를 향해 흐를 것이다.
사랑은 물과 같기 때문이다.
사랑은 쉴 수 있는 빈 장소를 찾는다.
나무 옆을 지나가 보라.
만일 그대가 비어있다면, 갑자기 나무의 사랑이 그대를 향해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자연스런 일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사랑은 물과 같다.
물을 부어 보라.
물은 자신이 쉴 수 있는 가장 빈 곳을 찾는다.
사랑은 내면의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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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완성은 불완전한 것 같다.

물론 그대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그대가 완벽한 사람을 만나보면 그는 마치 불완전해 보일 것이다.
왜 그럴까?
매우 미묘하지만 잘 이해해야 한다.
진정으로 완벽한 사람은 절대로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완벽주의자는 절대로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완벽한 인간은 전체적이지만 완벽주의자는 부분적이다.
완벽주의자는 어떤 삶의 스타일을 선택하고 계속해서 그것을 가꾸고 다듬는다.
그는 매우 완벽해질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머문다.
왜냐하면 함께 어우러져야 할 많은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완벽할 수 없다.
오직 전체적인 삶만이 완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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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인간은 절대로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성장하고 또 성장한다.
그의 완성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의 완성은 과정이다.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어 나갈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성장한다.
거기에 끝이 없다.
진정한 삶에는 끝이라는 것이 없다.
처음이나 끝이란 말은 거짓된 말이다.
그 어느 것도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삶에서는 모든 것이 계속해서 성장한다.
그러나 그대의 완벽은 죽은 것이다.
결국 끝에 도달한다.
끝에 도달한 사람은 마치 석상과 같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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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나가지 않아도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며

내면을 깊이 들어가면 그대가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이란 그대가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
만일 그대가 자신을 알게 된다면 인간 전체를 안 것이다.
그대가 자신의 분노를 알게 된다면 모든 분노를 안 것이고, 자신의 폭력을 알게 된다면 모든 전쟁을 안 것이다.
전쟁터에 갈 필요가 없다.
그대 자신의 폭력을 알면 모든 폭력을 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알면 모든 사랑, 이 세상 사랑의 모든 역사를 안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것도, 알려지지 않은 것도 다 안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 씨앗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대양으로부터 물 한 방울을 취하는 것과 같다.
물 한 방울을 분석하면 바다 전체를 안 것이다.
그 작은 물방울 속에 바다 전체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방울은 바다의 축소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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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추구하는 자는 날마다 더 잃으려 한다.

도를 추구하는 자는 정반대다.
지식이 아닌 진리를 추구하는 자, 되어감이 아닌 '있음being'을 추구하는 자는 그것과 정반대이다. 이들은 날마다 잃어버린다.
자신을 비우고 잊어버린다.
그가 배우는 것은 단 한 가지, 잊어버리는 법이다.
그가 관심을 갖는 단 한 가지는 어떻게 완전히 짐을 덜어내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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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리는 사랑보다도 더 깊다.
세 가지 차원을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 차원은 머리의 차원이다.
가장 피상적인 차원이다.
언어와 개념과 이론의 세계이다.
그대는 머리를 매우 쉽게 조종할 수 있다.
그대는 거기에서 주인이다.
그 다음 머리보다 더 깊은 두 번째 차원이 있다.
그것은 가슴의 차원이다.
거기서 그대는 주인이 아니다.
그대는 노예이다.
그것은 조종될 수가 없다.
사랑이 주인이고 그대는 노예가 된다.
사랑이 그대를 완전히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은 사랑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슴은 머리로부터 그리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
마음은 약간의 일별이 가능하다.
뒤를 볼 수도 있고 안을 볼 수도 있다.
약간의 일별이 가능하다.
시가 가능하고, 미술이 가능하고 음악이 가능하다.
이것들은 모두 머리가 가슴을 언뜻 본 것들이다.
그 다음으로 세 번째 차원이 있다.
존재의 차원이며 마지막 단계이다.
실체 그 자체이며 근본 그 자체이다.
그것이 그대의 존재이다.
머리는 생각하고, 가슴은 느끼며, 존재는 단지 존재할 뿐이다.
신, 진리, 황홀경, 열반, 깨달음, 이들이 존재에 속한다.
머리는 이런 것들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두 번째 차원인 가슴과 사랑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가슴보다 더 깊은 차원이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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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엉킴을 풀며

어떻게 그 엉킴을 풀 것인가?
그것을 풀려고 하면 절대로 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푸는 유일한 방법은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주의해서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곤란에 처했을 때 그대는 항상 충고를 한다.
그런데 똑같은 어려움이 그대에게 일어났을 때, 그대는 그렇게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왜 그대의 지성은 다른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렇게 잘 움직이는가?
거기에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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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말한다.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생각한다.
즉 위대한 사람은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위대한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문제가 커지도록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문제가 작을 때, 손 안에 있을 때 처리한다.
그러면 뭔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문제를 순간순간 다룰 때, 그대는 항상 짐으로부터 벗어나 신선할 수 있다.
그대의 존재 위에는 먼지가 앉지 않는다.
그대는 신선하고 젊고 처녀 같은 상태로 다음 순간으로 미끄러져간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고 미끄러져 나오듯이 다음 순간으로 넘어간다.
낡은 허물은 뒤에 놔두고 생생하고 더 젊은 피부가 나온다.
그때 삶은 신비가 된다.
그것은 결코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삶은 살아야 한다.
전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때 그대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 축복이 내려온다.
항상 이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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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無爲를 행하고

완전히 내려놓아라.
이완해라.
진리를 추구하려는 긴장을 풀어라.
진리를 추구하려고 여기에 올 때, 그대는 세속적인 마음을 갖고 온다.
세상에서는 야망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애를 쓰면서 서로 싸우면서 경쟁하고 있다.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세상은 끊임없는 전쟁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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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심은 서늘하고 무관심은 차갑다.
사랑과 증오에 대비해서 자비심의 느낌을 말한다면, 자비심은 서늘하다.
그러나 무관심에 대비해서 자비심의 느낌을 말한다면, 자비심은 따뜻하다.
자비심은 무관심의 차가움에 비해서는 따뜻하며 사랑과 증오의 뜨거움에 비해서는 서늘한 거서이다.
덕은 곧 자비심이다.
사랑도 증오도 아니다.
덕은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의미한다.
덕은 무관심도 아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비심이 마치 무관심처럼 보일 것이다.
그 차이점은 매우 미묘하다.
서늘함은 마치 차가운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서늘함은 살아있고 신선하다.
차가움은 단지 죽어있는 것이다.
덕은 곧 자비심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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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려운 것은 쉬울 때가 있다.
조금만이라도 주의한다면 그것을 알 것이다.
씨앗을 부수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나 큰 나무를 파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모든 것은 씨앗의 형태를 갖는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그것은 마치 씨앗과 같다.
만일 그것을 그 순간 버리고 싶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분노가 그대 내면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허용한다면, 그리고 그대 존재 속에서 넓게 퍼져 결국에는 그대를 압도하게 내버려 둔다면, 그때는 그 분노를 파괴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꼭 그대 자신을 파괴하는 것 같을 것이다.
분노는 이미 그대의 일부가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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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인은 모든 것을 어렵게 여김으로써
결코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다.

이것을 이해하도록 하라.
노자는 말한다.
"처음부터 다룬다면 모든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이 간단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이 쉽다고 생각하지 마라.
만일 그것이 쉽다고 생각하면 뒤로 미루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쉬운 일인데, 왜 지금 신경을 써야 하나? 내일 할 수 도 있다."
일은 쉽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그것을 어렵게 여기고, 그 즉시 문제를 처리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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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나오며
구층 다락도 한 덩어리 흙 쌓기에서 시작하고
천 리 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목표에 신경 쓰지 마라.
첫 걸음은 또한 마지막 걸음이기도 하다.
시작이 곧 끝이다.
이 순간이 전체다.
천마일이나 되는 여행길도 한 걸음으로 시작한다.
목표에 신경 쓰지 마라.
첫 걸음을 딛는 일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면 두 번째 걸음은 첫 걸음에서부터 나오고 세 번째가 그 뒤를 따른다.
전혀 그런 일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일은 내일이 걱정하도록 하라.
내일을 생각하지 마라.
즐겨라!
이 발걸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면서 즐겨라.
그럼으로써 수단이 곧 목표가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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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인은 욕심내지 않는 것을 욕심내고
얻기 어려운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세상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고
뭇사람들이 지나쳐버리는 것을 복귀시킨다.
이리하여 만물이 있는 그대로를 도와서
감히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

욕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욕망은 아무런 욕망 없음을 욕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욕망은 슬픔만을 낳기 때문이다.
욕망은 그대가 내일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은 여기에 있고 욕망은 항상 다른 곳에 있다.
삶은 이 순간에 있지만 욕망은 항상 미래의 다른 곳에 있다.
욕망은 곧 뒤로 미루는 것이다.
꿈이며 희망일 뿐 결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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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내어맡김을 지지한다.
그는 말한다.
"삶에 내어맡겨라.
삶이 그대를 이끌게 하라.
그대가 삶을 이끌려고 하지 마라.
삶을 조종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마라.
삶이 그대를 조종하고 지배하게 하라.
삶이 그대를 소유하게 하라.
그대는 단지 내어맡기기만 하라!
그대는 단지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만 말하라.
모든 힘을 삶에게 주고 삶과 함께 있어라."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에고는 이렇게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다 내어맡겨 버리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고가 존재하지 않을 때, 사실 그때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그대는 유한한 존재가 아닌 무한이 된다.
난생 처음으로 그대는 형상화된 육체가 아니다.
그대는 형상이 없는, 광대한, 계속 팽창하는 존재가 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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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말한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무한한 삶이 그대 안에서 흐를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삶의 흐름에 장애가 된다.
그리고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空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 안에서 구름이 떠다닐 수 있고 별들이 오갈 수 있다.
아무 것도 그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잃어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내어맡겼기 때문이다.
존재의 경지에서 인간은 언제까지나 생생하다.
육체는 물론 늙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 존재의 가장 내적인 중심은 생생한 채로, 신선한 채로 남는다.
그것은 결코 늙지 않는다.
결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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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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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대가 노자를 이해하려고 할 때, 노자는 지그재그로 움직인다.
어떤 배가 동쪽을 향해서 움직이고 어떤 배는 서쪽을 향해서 움직인다.
왜냐하면 그는 동쪽이 서쪽이며 서쪽이 동쪽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둘이 하나라고 말한다.
노자는 정반대가 통합되고 일치된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삶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단지 삶의 대변인일 뿐이다.
만일 삶이 불합리하다면 노자도 불합리하다.
만일 삶이 불합리한 논리를 갖고 있다면 노자도 삶에 대해서 불합리한 논리를 갖는다.
노자는 단지 삶을 반사할 뿐 거기에 아무 것도 덧붙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든 단지 받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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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정신세계를 보는 것은 간단하다.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너무도 비범하기 때문에 그것을 못 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노자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그대와 같이 너무도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노자를 이해하려면 정신적으로 더 성장해야 할 것이다.
만일 붓다가 그대 곁을 지나간다면, 그대는 즉시 그를 알아 볼 것이다.
어떤 초인이 그대 곁을 지나쳤다.
붓다는 초인의 매력을 간직하고 다닌다.
그러므로 그를 놓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노자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그대의 이웃일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나도 평범하기 때문에, 너무도 비범하게 평범하기 때문에, 그대는 그를 알아보지 못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노자의 아름다움이다.
비범해지는 것은 쉽다.
단지 노력과 수련만 있으면 된다.
그것은 깊은 내적인 수련이다.
그대는 훌륭히 수련을 쌓을 수 있으며 완전히 비세속적으로 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해진다는 것은 정말로 가장 비범한 일이다.
어떤 노력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노력이 없는 상태가 필요하다.
어떤 훈련도, 어떤 방법도, 어떤 수단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한다.
오로지 이해만이 도움이 된다.
명상까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명상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노자가 되기 위해서는 명상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이해만이 도움이 된다.
단지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용기를 갖고 삶을 사는 것뿐이다.
삶이 좋든 싫든, 성스럽든 악하든, 천당이든 지옥이든, 그 무엇이든 삶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숨으려 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마주치는 것이다.
노자가 되거나, 노자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실, 그대가 노자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대는 이미 노자이다.
붓다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면 꼭 붓다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노자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대 스스로 노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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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비도덕적일 때, 오직 그때만이 도덕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그대가 제대로 된 인격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오직 그때만이 인격에 대해서 생각한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산다.
진정으로 도덕적인 사람은 도덕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리석게 굴지 마라.
그리고 무엇을 계발하려고도 하지 마라.
그저 자연스럽게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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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되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
말해질 수 있는 진리는 그 순간 바로 거짓이 된다."
그는 아무 것도 말하거나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그와 함께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그와 함께 있었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사트상(내적인 세계로 완전히 진입된 상태)'이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와 함께 살았고, 그와 함께 움직였으며, 그의 존재를 들이마실 뿐이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서 그에게 그들 자신을 열어 보이려고 했다.
그들은 그의 곁에 있으면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의 곁에 있으면서 더욱더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 속에서 노자는 제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문을 두드렸다.
90년 동안 그는 어느 것에 대해서 말하거나 쓰기를 거부했다.
이것이 그의 기본적인 자세였다.
진리는 가르쳐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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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살에 노자는 그의 제자들을 떠났다.
그는 작별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언덕으로, 히말라야로 옮겨간다.
나는 그곳에서 죽을 준비를 할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은 좋다.
살아있을 동안에 세상에 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올 때는 완전히 혼자 있을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속세에 물들지 않은 완전한 순수성과 고독 속에서 본래의 근원으로 갈 수 있다."
제자들은 매우 슬펐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몇 백리나 스승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노자는 그들에게 돌아가도록 설득했다.
그리고는 홀로 국경선을 넘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경비병이 그를 붙잡았다.
그 경비병 또한 노자의 제자였다.
그가 말했다.
"만일 스승님께서 책을 쓰지 않는다면 국경선을 넘는 것을 허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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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리는 말해질 수 없는가?
무엇이 어려운가?
진리가 말해질 수 없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이자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진리는 항상 침묵 속에서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대 내면에서 말이 그칠 때, 진리는 실현된다.
침묵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 어떻게 소리를 통해서 말해 질 수 있겠는가?
진리는 경험이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다.
만일 진리가 생각이었다면, 그것은 표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
생각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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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리는 표현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바로 침묵과 무심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무심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한다.
마음은 떨어져 나가야 한다.
진리에 도달하지 전의 필요조건으로써 떨어져 나가야 하는 마음을 어떻게 진리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마음은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은 깨달을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이 진리를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하나의 규칙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마음이 어떤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어떤 것에 도달하지 못하면, 마음은 그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언어는 무익하다.
진리는 말로써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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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해서 무엇인가 말해질 수는 있으나, 신은 말해질 수 없다.
사랑에 대해서 무엇인가 말해질 수 있으나 사랑은 말해질 수 없다.
그 '무엇'이 상대적으로 남는다.
그 무엇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그의 지적인 이해력, 교육 정도, 그리고 이해하려는 욕망에 따라 상대적으로 남는다.
그것은 또한 스승과 연관되어있어 스승에 의존한다.
스승의 표현방식, 전달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상대적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경험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진리가 표현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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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표현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경험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제쳐두고라도, 어떤 경험일지라도 경험은 전달될 수 없다.
그대가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대는 그 뜻을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단어는 사전에 있다.
그 뜻을 이해하진 못할지라도 사전을 통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는 그대 안에 있다.
의미는 경험을 통해서 온다.
만일 그대가 어떤 사람을 사랑해본 적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이다.
문자적인 의미는 사전에 있고, 언어에 있으며, 문법에 있다.
그러나 경험적인 의미, 실존적인 의미는 그대 안에 있다.
그대가 경험해보았다면, 즉시 그 '사랑'이라는 말은 더 이상 비어있지 않다.
그 말은 어떤 것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어떤 것을 말할지라도, 그대가 그대의 체험을 끌어오지 않는 한, 그말은 공허한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경험이 그말에 들어올 때, 그것은 의미 있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말은 공허하게 남을 뿐이다.
말,말,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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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이고 진정한 의미는 실존적인 경험을 통해서 온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진리는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대는 진리를 훔칠 수도, 빌릴 수도, 살 수도, 도둑질할 수도, 구걸할 수도 없다.
아무런 방법도 없다.
그대가 진리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대는 그것을 가질 수 없다.
그러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의 길, 나는 이것을 강조한다!
오직 하나의 길은 그 경험에 도달한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다.
단지 그 경험에 도달한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써 어떤 신비스런 것이 그대에게 전달될 것이다.
언어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의 뛰어오름이다.
그것은 불이 타오르는 등잔에서 타고 있지 않은 등잔으로 불꽃이 튀는 것과 같다.
타고 있지 않은 등잔을 타고 있는 등잔 가까이 가져가 보라.
불꽃은 튀게 된다.
그와 똑같은 일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일어난다.
거기에 경전을 넘어선 전달이 있다.
메시지가 아니라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언어가 아니라 삶이 전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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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自意識이 병이다.
사실 자의식이 없게 되는 것이 곧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이분법 속에서, 둘 사이에서, 딜레마 사이에서 어떻게 자의식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는 항상 선택한다.
그대는 아름다움을 선택한다.
그러면 추함은 그대의 그림자가 된다.
그대는 종교적이기를 선택한다.
그러면 종교적이지 않는 것이 그대의 그림자가 된다.
그대는 성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러면 죄는 그대의 그림자가 된다.
선택하라.
그러면 그대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 바로 그것이 삶을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택하지 마라.
선택 없음이 되라.
삶이 흘러가도록 놔둬라.
때로는 그것이 신처럼 보이고, 때로는 그것이 악마처럼 보인다.
그 둘은 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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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상호의존相互依存의 현상이다.
왜냐하면 삶이 상호의존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의존적이어서도 독립적이어서도 안 된다.
양자는 모두 극단이다.
바로 그 중간, 삶이 균형을 이루는 곳에 상호의존이 있다.
모든 것은 다른 것과 함께 존재한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꽃을 다치게 하면 곧 벌을 다치게 한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어느 것도 섬처럼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대가 섬처럼 존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비현실적인 현상일 것이다.
거의 신화나 꿈이 될 것이다.
노자는 상호의존을 믿는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취하라, 선택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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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쉬워 보이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마음은 항상 선택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선택을 통해서 살아간다.
만일 그대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떨어져 나간다.
이것이 노자의 길이다.
어떻게 마음을 버릴 것인가?
방법은, "선택하지 마라!"
그가 어떤 명상도 권하지 않은 이유도 어떤 명상도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선택 없이 삶이 오는 대로 살아라.
떠다녀라.
어느 곳에 도달하려고 애쓰지 마라.
어떤 목표를 향해서 움직이지 마라.
순간을 전체적으로 즐기고 미래나 과거에 구애받지 마라.
그러면 심포니가 그대 영혼에서 일어난다.
가장 낮은 것과 가장 높은 것이 그대 안에서 만난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대는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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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자는 행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며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이다.
현자는 행함이 없이 일을 처리한다.
세 가지가 가능하다.
첫 번째, 행위 속에 있으면서 비행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때 그대는 세속적인 인간이 될 것이다.
두 번째, 행위를 버리고 히말라야로 가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때 그대는 비세속적인 인간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시장 안에 살면서 시장이 그대 안에 사는 것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행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며, 겉으로는 움직이면서도 내면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있지만 내 안에는 침묵이 있다.
나는 말하는 동시에 말하지 않고 있다.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마라.
행동하면서 행동하지 마라.
만일 비행위와 행위가 만날 수 있다면, 그때 조화가 일어난다.
그때 그대는 아름다운 현상이 된다.
추함에 반대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도 포함하는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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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며

현자는 히말라야로 도망치지 않는다.
그는 세상에 남는다.
그는 일을 처리하지만 행위 없이 처리한다.
그는 내면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행위는 바깥에 있을 뿐이다.
중심에서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이다.
폭풍의 중심을 찾는 것이다.
폭풍은 바깥에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서는 아무 것도 움직이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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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정말로 어떤 바람도 없고, 어떤 명예나 명성, 성공, 야망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귀결로써 성공과 승리가 생겨난다.
그대의 빈 마음 안으로 전 존재가 쏟아진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귀결이다.
결과가 아니다.
결과는 그것을 바랄 때 성립되는 것이며, 귀결은 그것에 대해서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때, 아무런 욕망 없고, 그것에 대한 생각도 없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귀결은 존재의 내면 법칙의 한 부분으로써 생겨난다.
그 법칙이 곧 도道라고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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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곧 브라마Brahma,(창조의 신)라고 하는 이유이다.
그것이 그대 바깥의 어느 곳에서도 신을 발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신은 전체의 텅 빈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신의 형체만을 찾아다니고 있다.
어떤 사람은 크리슈나를 찾아다니고,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찾아다니고, 또 어떤 사람은 마하비라를 찾아다닌다.
모든 사람이 다 형체만을 찾아다니고 있다.
아무도, 그 누구도 텅 빈 상태를 찾지 않는다.
그러지 않다면 그대는 어디를 가고 있는가?
공간은 그대 주위 어느 곳에서나 그대를 둘러싸고 있다.
그것이 신이다.
공간이 바로 신인 것이다.
그대가 그 안에서 태어났고 그 안에서 살고 있으며 또 언젠가는 분해될 그 공간이 바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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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바다에서 죽어 없어진다.
그 물고기는 다름 아닌 바닷물일 뿐이다.
그대의 경우도 똑같다.
텅 빈 상태는 그대 주위에 어느 곳에도 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텅 빈 상태가 그대 안에도 있다.
텅 빈 상태가 어떻게 두 종류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텅 빈 상태는 언제나 똑같다.
죄인에게나 성자에게나 텅 빈 공간은 똑같은 것이다.
죄인은 바깥에 죄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성자는 바깥에 성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을 뿐이다.
그대는 벽에 너무도 집착하고 있어 벽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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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나를 칼로 자른다면 나의 육체를 자르는 것이지 나를 자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것은 내면의 비어있는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어떤 것을 한다면 나는 벽으로써 그 행위를 하는 것이다.
내면의 비어있는 상태는 행위자가 아니다.
이 비유를 기억하라!
이것이 노자의 핵심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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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텅 빈 그릇이라
그것을 내어 쓰되 다함이 없으며
가히 그 깊이를 측량할 길이 없다.

만약 도道나 신神이 비어있지 않다면 그들의 쓰임은 무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 소모될 것이다.
만일 신이 소모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신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어느 날 그는 죽을 것이고 다 소모될 것이다.
그대의 마음 속에 있는 신의 개념은 하늘 어딘가에 앉아서 만물에 관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신은 결코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사실 그는 '그'도 아니며 '그녀'도 아니다.
도를 설명할 때 쓰는 말들은 다 부적당하다.
도는 무한히 거대한 공간이며 비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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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공空의 상태가 곧 그대의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텅 빈 상태가 아닌 비실재가 될 때 그대는 고통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명상의 뜻이다.
명상이란 곧 텅 빈 상태가 되는 것, 안이 비어있는 것이다.
어떤 생각도 떠다니지 않으며, 내용물도 없고, 오로지 공간만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갑자기 모든 고통은 사라진다.
고통은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죽음 역시 사라진다.
죽음 또한 생각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가 사라진다.
모든 과거의 짐은 생각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욕망이 사라진다.
생각이 없이는 욕망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치지도 않는다.
그대가 어떻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미칠 수 있단 말인가?
그대는 미친 사람이 아무런 생각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사실 사람은 너무도 생각이 많아서, 그 생각을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친다.
생각이 너무도 복잡한 것이다.
미친 사람은 위대한 사색가이고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그는 너무 많이 생각한다.
너무 여러 측면에서 한꺼번에 생각한다.
그의 마차에는 사방으로 말들이 매여 있다.
그의 생각들이 사방으로 퍼져가는 데도 그것을 멈추지 못한다.
그는 너무도 분열되어있고 너무도 갈라져 있다.
오직 텅 빈 상태만이 나누어지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그대가 텅 빈 공간을 나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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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힘껏 당긴다면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알맞은 순간에 멈추었다면 하고,

활이 부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활을 힘껏 당길 때,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 활은 오래도록 쓸 수 없을 것이다.
절대로 활을 최대로 당기지 마라.
왜냐하면 최대라는 것은 항상 죽음이기 때문이다.
삶은 완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완벽과 함께 진화는 멈추기 때문이다.
완벽은 곧 죽음이다.
그리고 결함은 곧 삶이다.
삶은 결함이 있는 것을 사랑한다.
완벽해보라.
그대는 쓸모없어질 것이다.
삶은 그대를 쓰레기더미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불완전하게 남으라.
그러면 생기가 넘칠 것이고 삶은 그대를 어디에서나 지지할 것이다.
노자나 나의 목표가 완벽이 아니라 전체성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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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일이 다 끝났을 때
물러나라.
그것이 하늘의 도이니라.

어떤 일에 그대가 균형을 이루었을 때, 그대가 행복을 얻었을 때, 더 이상 요구하지 마라.
기분이 좋을 때, 더 이상 요구하지 마라.
축복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 더 이상 요구하지 마라.
물러서라.
그리고 즐겨라.
그 안에서 놀아라.
그것과 함께 춤을 춰라.
더 이상 요구하지 마라.
그런데 마음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마음은 말한다.
"지금 이 상태는 좋다.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 이상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더 얻어야 한다."
그러면 지금 가능한 것, 이미 현실화된 것까지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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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채근했다.
"나에게 말해보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지.
그저 무슨 일인지만 말해보게."
그가 말했다.
"저는 99의 악순환에 걸려든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그대가 99를 갖게 되면 거기에 악순환이 생긴다.
그대는 그것이 100이 되기를 원하다.
이것이 바로 수평선이다.
그리고 100이 된다고 해서 거기서 그친다고 생각하지 마라.
마음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마음은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를 모른다.
마음은 중단을 모른다.
그래서 늘 실패한다.
마음은 어디에도 서지 않고 계속 달린다.
A에서 B로, B에서 C로, 그리고 Z에 이르러 지옥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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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일이 다 끝났을 때
물러나라
그것이 하늘의 도이니라.

그것이 도이다.
극단으로 가지 마라.
항상 한계 안에서 일을 하라.
한계 속에서 머물러라.
그것이 산야신의 규율이다.
항상 중간에 머물러라.
항상 한계 안에 있어라.
항상 만족한 채로 머물러라.
더,더,더를 갈망하지 마라.
수평선을 버리고 수직선으로 들어가라.
물러서라.
그러면 충족될 것이다.
그대는 삶이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충족(fulfillment,성취,실현, 달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체적 균형과 전체적인 고요함의 깊은 순간이다.
이것을 우리는 깨달음, 자유, 해탈 또는 열반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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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대는 이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무無이다.
그대는 무에서 나왔다.
그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無이다.
무에서 무로!
그리고 무와 무 사이에서 유가 생긴다.
존재의 강은 무의 두 강둑 사이를 흐른다.
존재는 아름답다.
그러나 비존재 또한 아름답다.
삶은 좋다.
그러나 죽음 또한 좋다.
삶은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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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퀴의 배꼽, 바퀴의 축은 비어있다.
그러나 바퀴 전체가 그것에 의존한다."
노자는 그것을 왜 바퀴의 배꼽이라고 불렀을까?
그것은 인간에게 있는 배꼽과 똑같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배꼽 가까이에 단전丹田/hara이라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단전은 몸 안에 있는 블랙홀이다.
일본에서는 노자의 말을 따라서 몸 안 어느 곳에 죽음의 집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죽음은 밖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죽음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우연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죽음은 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그대 안에서 자라고 있다.
삶의 길 어디에선가 죽음을 갑자기 만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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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공emptiness,空에 대해서 너무도 두려워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혼자 있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혼자 있으면 제가 비어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친구를 찾고 연인을 찾는다.
이때의 모든 노력은 불운하게 되어있다.
자신의 비어있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두려워한다.
깊은 곳에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척할 때 그는 단지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비어있음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다.
내면 어딘가에 공과 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려 하는 것이다.
그는 빈 공간을 다른 사람의 현존으로 채우려고 한다.
그리고 그 다른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연애의 거의 99%는 거짓이다.
조만간에 그대는 그대의 연인이 기만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인들은 자기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가 자기를 우롱했다고는 생각하지만 자신도 상대와 똑같이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비애와 어리석음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이해한다면,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그들은 모두에게 동정심을 느낄 것이다.
그대가 홀로 조용히 있지 못하는 것은 그대의 외로움을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이 그 외로움을 채워주길 바란다는 걸 의미한다.
그대는 위장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그대와 똑같이 한다.
그도 역시 홀로 있지 못한다.
홀로 있지 못하는 두 사람이 서로 같이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이것은 비극적인 현상, 지옥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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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빈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것을 억압하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 마라.
그것을 느끼고 즐겨라.
그러면 차츰차츰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일단 그대가 외로움loneliness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면 그것은 홀로 있음aloneness이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빈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무가 아니다.
그때 그것은 순수가 된다.
너무도 순수하여 형상도 없게 된다.
#두드리지_마라_문은_열려있다 #오쇼_라즈니쉬 #노자 #도덕경 


홀로 있음과 외로움 사이의 차이를 항상 기억하라!
외로움은 상처와 같다.
외로움은 그대가 다른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대가 다른 사람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갈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이 그대의 환상 속에, 마음 속에, 그리고 꿈속에 있다.
다른 사람은 실재가 아니라 상상이다.
다른 사람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대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대가 홀로 있음을 느끼기 시작할 때 다른 사람은 그대의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간다.
다른 사람은 더 이상 그대의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
더 이상 그대의 순수함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 행복하다.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 황홀해진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즐기는 것이다.
이제 처음으로 그대의 존재 그리고 비존재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대는 전체가 된 것이다.
#두드리지_마라_문은_열려있다 #오쇼_라즈니쉬 #노자 #도덕경 


지혜는 조심스럽다.
지혜는 망설인다.
지혜는 확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혜는 결코 이론으로 한정될 수 없다.
모든 이론은 삶보다도 작고 좁다.
그리고 삶은 이론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기엔 삶은 너무도 거대하고 무한하다.
현명한 사람은 오직 한 가지만을 안다.
그가 모른다는 것이다.
지식적인 사람은 수천 가지를 알며 자기가 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지식적인 사람의 바보스러움이 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해보지도 않은 사실들을 계속해서 축적한다.
자신의 존재가 건드려 보지도 않은 이론과 언어, 철학을 계속해서 기억 속에 축적한다.
그는 거대한 지식의 창고가 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것이다.
#두드리지_마라_문은_열려있다 #오쇼_라즈니쉬 #노자 #도덕경 


옛날의 현자는 미묘한 지혜와
깊은 이해력을 갖고 있어

미묘한 지혜란 무엇인가?
그들은 직접 그리고 즉시 진리를 안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알았다.
그것은 빌려온 지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혜는 그것이 직접적일 때만이 지혜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무지의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는 자신의 무지를 지식으로 계속 감추고 있다.
그러면 왜 지혜를 미묘하다고 부르는가?
왜 그냥 지혜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것을 미묘하다고 부르는 이유 속에 핵심이 잇다.
지혜는 직접적이지만 미묘하다.
그것은 삶을 즉각적으로 직면한다는 점에서 직접적이지만 삶 속에서는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미묘한 것이다.
#두드리지_마라_문은_열려있다 #오쇼_라즈니쉬 #노자 #도덕경 


그대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움직여야 한다.
잘 이해하라.
우선, 지혜는 다른 데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직접적이다.
그것은 그대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알음알이로 빌려와서 마음 속에 쌓아놓는 것이 아니다.
그대 스스로가 그것을 대면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보다 더 직접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은 미묘하다.
왜냐하면 지혜는 그 스스로의 직접적인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간접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행복해지고 싶다고 해서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화살과 같이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실패할 것이다.
#두드리지_마라_문은_열려있다 #오쇼_라즈니쉬 #노자 #도덕경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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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노자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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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꿍꿍이속 생각을 속속들이 아시는 그분이
나를 향하여, "우리를 첫 번째 성좌와  묶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곧게 하시오."라고
아름다운 모습만큼 즐거운 빛을 띤 채 말했다.
해가 빛살을 뿌려 주는 금강석인 양
눈부시고 진하며 단단하고 깔끔한
구름이 우리들을 감싸 주는 듯 보였다.
이 영원한 진주가 우리를 제 안에 받아들이는
모양이 마치 물이 빛줄기를 받아
언제까지 한 덩어리로 남아 있는 것과 같았다.
한 차원이 다른 차원 속으로 들어가듯
한 몸체가 다른 몸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지상에선 모르는데, 내 몸체 그대로였음에도
인간적인 본성과 하느님이 어떻게 어울어졌는지
그 본질을 보고자 하는 욕망은
더 우리를 불타게 해야 마땅할 것이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세라피니, 천사들 중에 하느님께 가장 가까운 이와
모세, 사무엘 그리고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저 요한과 또 말하자면 마리아마저도
방금 그대에게 나타났던 이 영혼들과
다른 하늘에 그들의 자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거기 있는 햇수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오.
하지만 모두가 으뜸가는 둘레를 아름답게 하며
영원한 숨결을 더 혹은 덜 느낌에 따라
그들이 갖는 행복도 각각 다르다오.
그들이 여기 나타난 것은 이 천구가
그들에게 할당된 탓이 아니고 천계의
오르막길에서 가장 낮은 곳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요.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찌르는 화살과도 같이 우리들은 바로
그렇게 둘째 왕국 안으로 달려갔다.
나는 여기서 나의 연인을 보았는데 그 기뻐하는
모습은 마치 그녀가 그 하늘의 빛 속에
드시자, 유성마저 더욱 밝게 빛나는 정도였다.
또 별도 변하여 웃음을 띠고 있었다면,
내 본성대로나마 갖가지 모양으로 변할 수
있는 이 몸이 어떠했겠는가!
잔잔하고 맑은 연못 안으로
무엇이 먹이인 양 들어가면
물고기들이 그리로 몰리는 것처럼
수천 개의 별들이 우릴 향해 오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으며, 또 누구나 "보라, 우리네
사랑을 키워 주실 분을" 이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내가 이 노래의 시작으로 삼은 그 여인으로부터
사람들은 태양이 때로는 뒤꼭지로 때로는
눈썹으로 애무하는 그 별의 이름을 따왔다.
내 그 별에 올라온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더더욱 아리따워져 보이시는 내 여인이
내 그 안에 들어와 있음을 충분히 믿게 하였다.
그리고 불꽃 속의 불티가 따로 보이는 것처럼
또한 목소리 속의 목소리 하나가 멎고
다른 것은 왔다 갔다 해도 분간되듯,
그 빛 속에 다른 등불들이
빠르고 느린 속력으로 빙글빙글 움직였는데
모양으로 봐 그들의 영원한 직관을 좇는 듯했다.
저 거룩한 빛들이 드높은 세라피니들 속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있던 동그라미를 내버리고
우리를 향해서 오는 것을 본 사람에겐
싸늘한 구름으로부터 보이거나 말거나
바람이 그처럼 빨리 내려오지 않기에
느릿느릿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맨 앞에 나타났던 자들 속에서
'호산나'가 울렸는데, 그것은 그 이후에도
저절로 들려왔으면 하는 마음을 자아냈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보기에 찬란함보다 듣기에 더욱 달콤한
한결 싱싱하고 압도적인 광채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면류관을 이루는 것을 보았으니
대기에 습기가 짙을 때 실을
잡아당겨서 허리띠를 삼을 때 라토나의 딸이
이렇게 띠를 두른 것을 우리가 보는 것 같다.
내가 지나쳐 온 하늘의 궁정에는 그 왕국에서
가져올 수 없는 귀하고도 아름다운
보석들이 매우 많이 발견되었으며
저 광채들의 노랫소리도 그러한 것이었는데
날개가 안 돋아 저 위로 날 수 없는 자
벙어리에게서나 저 위의 소식을 기대하라.
이 불붙는 해들이 노랫가락에 맞추어
움직이지 않는 양극에 가까이 도는 별들처럼
우리들의 주위를 두루 세 번 돌고 난 다음
마치 원을 그리며 춤추던 여인들이 새로운 노래가 다시
시작될 때까지 그 원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묵묵히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듯 멈춰 있었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오, 인간들의 무분별한 헛수고여.
그대로 하여금 날개를 파닥거려 떨어뜨리게 하는
저 삼단논법들이 얼마나 결함투성이인가!
법률들을 뒤따르는 자, 격언을 좇아가는자,
또 더러는 사제직을 따라가는 자,
그리고 더러는 폭력이나 궤변으로 다스리는 자,
도둑질하는 자, 또 더러는 나라 일에
더러는 육체적 쾌락 속에 휩쓸렸던 자가
피로에 지치고 또 누구는 안일에 몰두하는
무렵, 나는 이러한 모든 것에서 풀려나
이토록 영광스런 영접을 받으며
베아트리체와 함께 하늘 위에 있었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마자, 성스러운
맷돌이 이내 곧 회전하기 시작했는데,
한 바퀴를 빙그르 채 돌기도 전에
또 하나의 면류관이 둥그렇게 그걸 감싸서
춤은 춤에, 가락은 또 가락에 포개졌으니,
본래의 광선이 반사광보다 더 세차듯이
노래야말로 저 감미로운 목구멍에서
우리네 뮤즈나 세이렌들을 무색케 하였다.
유노가 제 시녀에게 분부를 내릴 때,
두 개의 무지개가 같은 빛깔로 나란히
얇은 구름을 통하여 둥그렇게 나타나고
마치 햇볕에 사그라지는 증기인 듯
사랑 때문에 죽어 간 뜨내기 여인의 목소리처럼
그 안의 것으로부터 밖의 것이 생겨나며
그것들은 또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
때문에 다시는 물이 넘쳐흐르지 않을
세상의 예감으로 이곳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니
바로 그렇게 저 영원무궁한 장미들의
두 줄기 화환이 우리 주위를 빙빙 돌며
외륜이 내륜에 잘 어울리고 있었다.
즐거운 무도와 사랑스럽고도 축복받은
빛과 빛들이 그토록 노래하며 그토록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거대한 대잔치가
흡사 움직이는 이의 뜻에 따라 동시에
떳다 감았다 하는 눈들과 같이
한 순간에 한 맘으로 잠잠해졌는데
새로운 빛들 중 어느 하나의 가슴에서
소리가 나왔는데 별을 향하고 있는 바늘이
나를 제자리로 향하게 하는 것 같았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천국의 축제가 길어지면 길어지는 만큼
우리들의 사랑도 빙그르 주위에
빛을 발하고 그처럼 찬란한 옷이 될 것입니다.
그의 밝음은 열기를 뒤따르고
열기는 직관을 뒤따르니 이는 또한 각자의
공덕을 초월하는 성총만큼이나 큰 것이라오."
영광스럽고 거룩한 육체를 다시 입게
될 때면 우리의 몸은 완전하게 회복되는
그만큼 더욱더 복스럽게 될 것이니, 이로써
지고의 선이 우리에게 주시는
무상의 빛은 더욱더 커질 것이며
그 빛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뵙도록 규정한다오.
그러기에 직관도 더욱더 커져야 하며
그로부터 좇아오는 빛도 커져야 한다오.
그러나 불꽃을 일게 하는 숯덩이가
일단 작열해서 불꽃보다 더 이글거리면서도
제 모습을 그냥 그대로 지키고 있듯이
벌써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빛이
언제나 흙이 뒤덮고 있는 육체보다
겉모양에 있어서 더 못할 것이라오.
또 우리를 지치게 할 만한 빛도 아니리니
육체의 모든 기관이 우리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강하게 되기 때문이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뿔에서 뿔로 그리고 꼭대기와 밑 부분 사이로
빛들이 눈부시게 반짝거리면서
한데 어울려 움직이고 있는데,
마치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재능과 재주로 가끔가다 그늘을
마련하고 있을 때 길거나 짧은 물체의
미분자들이 그 모양을 새롭게 바꿔 가며
곧기도 하고 굽어지기도 하며 빠르기도 하고
더디기도 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여러 줄이 알맞게 조율된
양금과 하프가 알 수 없는 가락으로
감미롭기 그지없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저기 나에게 모습을 드러냈던 빛들로부터 십자가를
통해서 한 가닥 멜로디가 울려 퍼졌기에 노랫말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나는 그것에 사로잡혔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자신이나 남의
수치로 인해 시꺼멓게 된 양심은
분명 너의 말을 듣기 싫어할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온갖 거짓일랑 털어 버리고
네 눈에 비치는 모든 걸 드러내 보여라.
옴병이 옮은 곳은 실컷 긁게 놔둘 일이다.
너의 말이 첫 맛엔 듣기 싫을지 모르나
그것이 차츰 새겨지게 될 때면, 후에
생명을 주는 영양이 될 것이니라.
너의 이 외침은 드높은 꼭대기일수록
더욱더 후려치는 바람과 같이 되리니,
이것은 하찮은 명예에 대한 증명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이 하늘들에서나 산에서, 그리고
저 고통스러운 골짜기에서, 오로지
명성이 자자한 영혼들만이 네게 보여졌구나.
왜냐하면 듣는 이의 마음이란 감추어져
깨칠 수 없는 뿌리를 가진 예증으로나
나타나지 않는 다른 논증으로도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니라."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모든 사악이 그의 나라에선 죽어 뒹구는
저 고귀하신 영도자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수정이 세계를 돌고 있는 가운데,
빛이 속으로 비치는 황금의 빛깔로 된
층계가 나의 눈이 따를 수 없을 만큼
드높게 위로 솟아 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또한 층계를 따라 수많은 빛들이
내려오는 걸 보았으니, 하늘에 보이는
온갖 빛들이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듯 생각되었다.
그리고 자연적인 습관으로 날이 샐 어름에
까마귀들이 얼었던 날개를 녹이려고
한데 어울려 움츠리다가
어떤 놈들은 달아나서 돌아오지 않고
어떤 놈들은 떠나갔던 자리로 돌아오며
어떤 놈들은 빙글빙글 돌면서 남아 있듯이
떼 지어 왔던 저 불빛 속에서도
어느 정도 내려오다 부딪치게 되자
그와 비슷한 모양을 내게 보였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내가 끝마디 말에 이르기도 전에,
빛은 재빠른 맷돌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그 한복판을 중심 삼고 있더니만,
이어 그 안에 있던 사랑이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빛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속으로
스며들면서 내 위에 모아지고 있는데,
그의 힘이 나의 시각과 어울려 나를
내 위로 훤칠히 올려놨기에, 지고의 본질을
보는 것인데 그로부터 빛이 나온다오.
이로부터 기쁨이 오고, 나 그로써 불빛을 내니
나의 직관이 밝은 만큼 불꽃도
그에 버금갈 만큼 밝았던 까닭이지요.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맑게 갠 보름달 밤에 하늘의
방방곡곡을 두루 색칠해 주는 영원한
요정들 사이에서 트라비아가 미소 짓듯이
수천 개의 등불 위로 태양 하나가
삼라만상을 모조리 비춰 주고 있었는데, 마치
우리의 태양이 하늘의 눈들을 비추는 듯하였다.
그리고 번쩍이는 실체가 살아 있는
그 빛을 통하여 나의 얼굴에 투영됐는데,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의 두 눈빛을 물들였을 무렵,
하늘 가운데로 왕관처럼 둥그런
모양을 한 조그마한 횃불이 내려와
그녀를 감싸면서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지상의 그 어떠한 선율이라도 아름답게
울리면 울릴수록 마음이 거기에 더 끌리는데
하늘이 더욱 맑은 청옥이 되는
저 아름다운 벽옥에게 면류관을 씌워 주는
칠현금 소리에 견준다면
구름을 뚫고 나오는 천둥소리와 같을 것이다.
"나는 사랑의 천사, 우리네 소원의
모태였던 뱃속에서 영감을 주는
커다란 희열을 주위에 감돌게 합니다.
하늘의 여인이시여, 당신이 아드님을 따라
지고의 둘레로 드시어 그것을 가뜩이나
더 찬란하게 하시는 동안 저는 돌겠습니다."
빙빙 선회하던 선율이 이렇게 저 스스로
봉해지니, 다른 모든 빛들이
마리아의 이름을 노래하였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마음을 무한한 애정으로 펼쳐
이슬을 조금 내려 주십시오. 당신들은 언제나
샘에서 마시는데 그의 생각도 거기서 옵니다.
베아트리체가 이렇게 말하자, 저 즐거운
영혼들이 고정된 축대 위에 둘레를 이루며
혜성의 형태로 거센 불꽃을 이루었다.
시계의 부속품 속을 도는 바퀴들이
정신을 가다듬은 자에겐 먼저 것이 정지한 듯
보이고 나중 것은 나는 것같이 보이듯
저 불꽃들도 그와 같이 빠르거나 느린
각각 다른 보조로 춤을 추면서, 나로 하여금
제 기쁨의 풍요로움을 판단하게 하였다.
가장 아름답다고 내가 생각한 것에서
불꽃 하나가 나오는 것을 내 보았는데,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그보다 밝은 빛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베아트리체 주위를 세 차례나
맴돌며 얼마나 숭고한 노래를 불렀던지
나의 환상이 되풀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로 하여금 여러 해 동안 야위게 할 정도로
하늘과 땅을 손잡게 하였던
거룩한 시가 싸움을 거는 이리들을
내 원수로 여기며, 어린 양으로 잠자던
저 아름다운 양의 우리 밖에서 나에게 빗장을
걸던 포학함을 이겨낼 수 있는 일이 생기거든,
나는 벌써 다른 목소리와 다른 머리털을
지닌 시인으로 돌아갈 것이며, 내 영세의
우물에서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게 하는
믿음 속으로 나 여기 들어왔고, 이어
베드로도 그 때문에 위에 돌았던 것이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마주치는 빛살을 너무 강하게 받으면
막에서 막으로 가는 빛살에
눈의 힘이 거슬려 잠이 퍼뜩 깨고,
깨었다 해도 재빠르게 깬 영문을 모르는 체
감각 기능이 돌아오기까지는
보이는 것들이 묘연한 것처럼
베아트리체도 그처럼 천 마일 너머까지
환히 비치는 눈의 빛살을 가지고 모든
티끌을 나의 눈으로부터 거두어 가셨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의 마음을 천국의 환희로 올려 주신 그녀,
측은한 인간들의 현재의 생활에 접근해
그 진리를 열어 보였다. 그리고
그 누가 직접 보거나 생각하기도 전에
자기 뒤에 켜져 있는 초 심지의 불꽃을
거울 속에 비춰 보고,
유리가 진실을 밝히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몸을 돌려, 마치 가락이 악보에
어울리듯, 이것과 서로 맞는지를 보는 것처럼,
나의 기억도 이와 같아 사랑이 나를
묶어 두기 위해 줄을 만드는 아름다운 눈을
들여다보면서 회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몸을 돌려 그 회전을
잘 바라볼 수 있을 적마다, 그 둘레 안에
보이는 것과 나의 눈이 부딪쳐
아주 예리한 빛을 발하고 있던 한 점을
나는 보았는데, 강렬한 빛 때문에
불붙을까봐 눈을 감아야만 했다.
또 여기서 아주 작게 보이는 어떤 별이라도,
별이 별과 함께 나란히 놓여질 때처럼
이 빛과 함께 자리하게 되면 달처럼 보이리라.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녀가 다시 시작했다. "가장 큰 물체에서
우리는 순후한 빛이신 하늘에 나왔으니,
그것은 사랑이 가득한 지성적인 빛이요,
기쁨이 가득 찬 진실하고 선한 사랑이며
일체의 감미로움을 초월하는 기쁨이라오.
그대 여기서 천국의 두 가지 군대를
보게 될 것이니 그 하나는 최후의 심판 때
그대가 보게 될 바로 그 모습을 하고 있다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 피조물은
그 분을 보는 데에서만 평화를 누린다오.
그것은 둥그런 형체로 펼쳐져 있기에
그의 테두리가 태양에게는
훨씬 더 느슨한 띠가 될 정도였다.
그의 모습은 온통 원동천의 꼭대기에
반사된 빛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거기에서 생명과 힘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언덕이 푸르름과 꽃들로 무성할 때
마치 꾸며진 제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서인 양
제 기슭의 물속에 비춰 보는 것같이,
하늘에 돌아온 선택된 자들이
그 빛 주위에서 내려다보며 천 개도 넘는
층층대에 제 모습들을 비추는 게 보였다.
그리고 맨 아래 층계가 그토록 큰 빛을
제 안에 모으고 있으니, 이 장미꽃의 넓이가
맨 가장자리 꽃잎들에선 얼마나 클 것인가!
나의 시력은 그 넓이와 그 높이에
얼떨떨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움의
양과 질을 송두리째 취하고 있었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베아트리체가 나를 끌어당기고는 말했다.
"하얀 옷 입은 저 무리가 얼마나 큰지 보시오!
우리의 도성이 얼마나 광활한지 보시오.
보시오. 우리네 자리가 이토록 가득 차 있으니,
극소수의 사람들만 거기 영접될 수 있다오.
일찍이 저 위에 놓여졌던 면류관 때문에
그대 눈여겨 바라보는 저 거대한 옥좌엔
그대가 이 혼례 잔치에서 식사하지 이전에,
저 아래서 황제가 될 지체 높은 하인리히의
영혼이 앉을 것인데, 그는 이탈리아가 미처
숙성되기 전에 그를 바로잡으러 올 것이오.
그대들을 무디게 하는 눈먼 탐욕이
유모를 쫓아내고 굶어서 죽어 가는
어린애와 같이 그대들을 만들었다오.
그리고 그러한 시기엔 드러내든 숨어서든
그와 함께 똑같은 길을 가지 않을 자가
저 성스런 광장의 총독이 될 것이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를 저 거룩한 임무에
잠시만 참고 놓아두실 것이니, 마술사 시몬이
제 과실 때문에 지금 있는 곳에 떨어져
알라냐의 그놈을 더 밑에 처박히게 할 것이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분의 영광과 그리고
자기들을 만드셨던 그 지선(至善)을
보고 노래하면서 날고 있는 다른 한 무리는
처음에는 꽃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에는
꿀을 빚게 되는 일자리로 돌아오는
벌 떼와 똑같이
수많은 꽃잎으로 꾸며진 저 장려한 꽃 속에
내려왔다가 그 꽃으로부터 그들의 사랑이
언제나 깃들이는 곳으로 다시 올라갔다.
얼굴들은 한결같이 싱싱한 불꽃으로 되어 있고
날개들은 황금이며 다른 부분은 너무 희기에
눈이라 한들 그 하얀색에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들은 꽃 속으로 내려올 때 옆구리로
바람을 일으키며 얻었던 평화와 뜨거움을
이 층계에서 저 층계로 갖다 내밀었다.
그러나 저 위에 계신 점과 꽃 사이에
끼어서 날고 있는 많고도 많은 무리가
시야와 찬란한 빛을 가로막진 못하였는데,
이는 하느님의 빛이 온 우주를
그 공덕에 비례해서 스며들기에 아무것도
그 빛에 방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오, 여인이시여, 그대 안에 내 희망이 힘을 얻고
그대 나의 구원을 위해 저 지옥 속에
발자취를 남기시는 괴로움을 겪으셨습니다.
내 보아 왔던 그 많고도 많은 것들을
그대의 힘이며 그대의 선에서 온
은혜와 덕으로 나 이제 받아들입니다.
그 모든 길과 그 모든 방법으로써
나를 속박에서 자유로 이끄신 그대,
모든 것을 이루시는 힘을 지니셨습니다.
그대의 너그러움을 내 안에 간직해
그대가 건강히 치유해 준 나의 영혼이 그대의
뜻을 따라 육체에서 풀려나게 하소서.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이 광활한 왕국 안에서는 슬픔이나
목마름이나 혹은 굶주림이 없는 것처럼
우연한 점이라곤 자리 잡을 수 없는데,
네 눈에 보이는 건 무엇이든지 손가락에
가락지가 딱 들어맞는 것처럼
영원한 법칙을 통해 미리 정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삶으로 서둘러서 온
이 무리가 제 자신들 속에 다소나마
뛰어난 점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어떤 소원도 더는 기대되지 않을 정도로
그토록 크신 사랑과 그토록 크신 기쁨 속에
이 왕국을 아늑하게 해 주시는 임금님이
당신의 즐거우신 모습으로 온갖 영혼들을
성총에 맞는 당신의 뜻에 따라 가지가지로
창조하셨으니, 여기 그 결과만 보면 족하다.
그것은 성서 안에 나오는 쌍둥이들에 관한
부분에 뚜렷하고도 명확하게 나타나 있은데,
그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서로 다투었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의 눈이 점점 밝아지면서 몸소 참되신
저 지존하신 빛의 빛줄기 속으로
자꾸만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때부터 계속 나의 직관은 그러한 직관에
꼼짝 못하는 언어가 나타내 주는 것을 초월했으며
기억도 또한 그 초월함에 압도당했다.
마치 꿈을 꾸면서 무언가를 보는 사람에게
꿈이 지나면 그로부터 받은 느낌만 남을 뿐
다른 것은 마음 속에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나 지금 그러한데, 비록 나의 환영이
거의 송두리째 끝나긴 했어도 이에서 생겼던
달콤함은 나의 가슴 속에 아직도 방울진다.
햇빛에 사르르 녹아 버리는 눈과도 같았고
바람결에 날리는 가벼운 나뭇잎들에 적힌
시발라의 점괘 선언이 흐트러지는 듯 하였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오로지 당신 안에 좌정하시며, 홀로
당신을 아시며 당신에 의해서 인지되시고
사랑하고 웃을 줄 아는, 오, 영원한 빛이여!
나의 눈들이 잠시 동안 빙 둘러 관조했던
저 원이 당신 안에 잉태되어 마치
반사될 빛처럼 보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 자신 속에 제 스스로의 빛깔로
우리들의 모습을 찍어 내는 듯 보였기에
나의 눈은 그 안에 송두리째 들어 있었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러나 마음의 소망을 제 안에 끌어들였던
한 가닥 빛이 내 마음을 후려치지 않는 한
나 자신의 날개는 그에 미칠 수 없었다.
지존하신 환상 앞에 나는 힘을 잃었다.
그러나 이미 나의 열망과 의지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바퀴와 같이
해와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돌리고 있었다.
#신곡 #천국편 #단테_알리기에리

Posted by 㗢동죽竹
,


김산(장지락)의 기묘한 무기

도서관은 가끔 보물찾기 같다.
여기저기 이것저것 구경하다보면 생각하지 못 한 걸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님웨일즈의 아리랑 속 주인공 김산의 소설을 찾았다.
황포탄 의거를 내용으로 삼았는데,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이 역사적 주역이지만 이종암만 ‘리군’이라 한 점이 특이하다.
아리랑이나 김산 평전에서 소설을 쓴다는 구절을 못 봤는데, 정말 보물 찾은 느낌이다.
#김산 #장지락 #기묘한무기 #의열단 #황포탄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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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


나는 바로 이 두 번째 왕국, 인간의 


영혼이 깨끗이 씻겨 하늘에 오르기에 마땅한 


이곳에 대해 노래를 읊을 것이다. 
오, 시신들이여, 나 그대들의 것이니 


이제 여기서 나의 죽은 시에 생명을 주시고 


또 칼리오페는 잠시나마 여기 일어나 주소서. 


그리하여 저 불쌍한 피에리데스가 호된 타격을 


못 이겨 용서받기를 포기했다는 


그 가락으로 나의 노래를 뒤따라 주소서.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무릎을 꿇어라. 꿇어! 


하느님의 천사시다. 손을 모으려무나. 


지금부터 너는 참된 사자들을 볼 것이다. 


보라, 그는 인간의 재주를 혐오해서 


이토록 멀고 먼 두 언덕 사이에서 날개 외에 


노나 돛대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구나. 


보라, 그가 날개를 하늘 높이 세우며 


짐승의 터럭처럼 변하지 않을 


영원한 깃털로 바람을 끌어당기고 있음을!” 


그런 다음 그 성스런 새가 우리를 향해


가까이 올수록 더욱 빛나 보였기에 


가까이서는 눈이 견딜 수 없어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기쁨이나 혹은 슬픔으로 인해서 우리의 


어떤 감각 기관의 힘이 붙들려 있을 때면 


영혼이란 그것에만 집중되기에 


다른 어떤 기능에는 기울어질 수 없어 보인다. 


이는 곧 우리 안의 한 영혼이 다른 영혼 위에 


덧씌워진다고 믿는 그릇된 생각과는 상치된다. 


그러므로 영혼을 힘주어 끌어당기는 


어떤 것을 보거나 듣게 될 때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그걸 깨닫지 못한다. 


보고 듣는 감각 능력과 또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능력이란 다른 것이기 때문에 후자는 


매듭지어진 것 같고 전자는 풀어진 것 같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러자 그가, “오, 형제여, 올라가면 무슨 소용인가? 


문 위에 앉아 있는 하느님의 천사가 


나를 정죄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텐데. 


내가 마지막까지 나의 선한 한숨을 미루었기에 


살아서 했던 그만큼 문 밖에서 


맴돌아야 할 것을 하늘이 내게 마련하였으니 


성총 안에 사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기도들이 


먼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천국에서 


들어주지 않는 다른 기도가 무슨 소용 있겠소?”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대로 간직하고 흥겹게 걸어가고 있는 


영혼이여, 잠시 걸음을 조용히 하라. 


일찍이 우리 가운데 누군가를 본 일이 있어 


그의 소식을 저 세상에 전할 만한 자기 있는지 


살펴라. 아, 어찌 가느냐? 아, 왜 좀 머물지 않느냐? 


우리 모두는 이미 폭력에 의해 죽었고 


또 최후의 시간까지 죄인들이었는데, 


그때 하늘의 빛이 그걸 깨우치게 해 


스스로 뉘우치고 용서해 주며 당신을 


보고 싶은 소망으로 우리를 애태우게 하신 


하느님과 화해한 몸들로 세상을 나왔다. 


그래서 나는, “그대들의 얼굴을 주시하지만 


누구 하나 알아볼 수 없구나. 오, 잘도 태어난 


영혼들이여. 내 그들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면 


말해다오. 내 해 줄 것이로다. 이 길잡이의 


발자국을 뒤따라 세상에서 세상으로 이렇듯 


찾아 나서도록 한 저 평화의 이름으로 말이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하느님의 천사가 날 거두어 갔고 이어 지옥의 악마가 


외쳤다오. ‘오, 천상에서 온 자여, 왜 훔치는가? 


한 방울의 눈물 때문에 그를 내게서 앗아 


그가 지닌 영원한 부분을 그대가 가져가는가! 


그러나 나는 다른 부분을 장악할 것이다!’ 


저 축축한 증기가 공중에 모여 있다가 


추위가 이를 뒤섞어 놓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이내 물로 되돌아가는 것을 그댄 잘 아오. 


오로지 악만을 요구하는 저놈의 뜻은 


계략을 모아서 타고난 힘을 구사해 


시꺼먼 연기와 바람을 일으키고야 말았다오. 


그리하여 날이 저물자 그는 프라토마뇨에서 


저 웅장한 산줄기에 이르는 계곡을 안개로 


뒤덮어 저 위 하늘을 어둡게 했으니, 


비에 푹 젖은 대기는 물로 변했다오. 


비가 내렸고 땅이 감당 못하는 


나머지 비는 실개천으로 내려갔는데, 


커다란 물줄기로 변해 가더니만


마침내 크나큰 강에 다급하게 


모아졌으니 아무것도 이를 막지 못했다오. 


노기 가득 찬 아르키아노는 싸늘한 내 몸을 


강 어귀에서 보고는 아르노 강에 밀어 넣으니 


고통이 나를 사로잡을 때 내 스스로 


가슴에 그린 십자가를 풀어 헤쳤다오. 


아르노 강은 나를 강둑과 물 밑으로 굴리더니 


나중엔 제 찌꺼기로 나를 덮치고 휘감았다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는 말을 꺼냈다. “오오, 나의 빛이시여. 


그대의 시 어느 대목에서 분명히 기도가 


하늘의 율법을 꺾는다는 걸 부정한 듯합니다. 


하지만 이 무리들은 계속해서 그짓을 원하는군요. 


그럼 저들의 희망은 쓸데없는 망상이 아닐까요?

아니면 그대의 말씀을 제가 잘못 이해했을까요?"

그랬더니 그분이 내게, “내가 쓴 글은 분명하다. 


또 저들의 희망도 헛된 것이 아니다.


편견 없는 마음으로 잘 보기만 한다면 말이다. 


여기에 들어 있는 자가 해야 할 것을 


사랑의 불이 한 순간에 채워준다 해도 


심판의 권위는 낮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고통보다는 어두움 때문에 슬픈 고장이 


저 아래에 있는데, 그곳에선 통곡 소리가 


고통이 아닌 한숨 소리로 들린다오. 


나는 거기에 죄 없이 순결한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데, 그들은 인간이 죄로부터 


벗어나기 이전에 죽음의 이빨로 씹혔다오. 


또 나는 세 가지 성덕을 입지는 않았으나 


악덕이 없이 다른 덕들을 알고 그리고 


그 덕들을 모두 따를 줄 알았던 자들과 같이 있다오. 


그대가 알고 또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연옥이 곧장 시작하는 곳에 더 빨리 


다다를 수 있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막힌 데가 없는 자그마한 골짜기에 


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아마 그놈이 


하와에게 씁쓸한 음식을 주었으리라. 


매끈매끈한 몸을 가누는 짐승, 


흉측한 줄이 꽃과 풀 사이로 머리와 등을 


이리저리 꿈틀꿈틀 날름거리며 오고 있었다. 


하늘의 매들이 처음에 어떻게 움직였는지


내 보지 못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잘 보니 둘이 다 움직이고 있었다. 


푸른 날개에 대기가 갈라지자 


뱀은 달아났고 천사들은 등을 돌리고 


있던 자리로 함께 높이 날아갔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내 길잡이는 기꺼운 마음으로 나를 그 


세 계단 위로 끌어올리며 말하길, 


“자물쇠를 열어 달라고 겸손하게 여쭈어라.” 


나는 거룩한 발 앞에 경건히 엎디어서 


자비로 내게 열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앞서 나는 가슴을 세 번 두드렸다. 


그는 일곱 개의 P자를 칼 끄트머리로 


내 이마에 새기고 “안에 들어가거든 


이 상처를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재나 혹은 파내어져 말라빠진 흙이 


그의 옷과 같은 색채를 띠고 있으련만 


그는 그 옷 밑에서 두 개의 열쇠를 꺼냈는데, 


하나는 금, 또 하나는 은으로 되어 있었다. 


그가 먼저 노란 것으로, 다음에는 하얀 것으로 


문에 갖다 대기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어느 때건 이 열쇠 중 하나가 구멍 안에서 


곧바로 돌지 아니하면 이 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라고 그가 우리에게 일렀다.


"전자가 더욱 귀중하지만, 후자는 열기 전에 


더욱 비상한 솜씨와 재주가 필요한데, 


이는 매듭을 이것이 풀어 주기 때문이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오, 마음의 시야는 병들었어도 


물러서는 발걸음 안에 믿음을 지니고 있는 


오만하고 가엾고 지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는 거침없이 심판으로 날아갈 


천사 같은 나비의 모양을 하기 위해


태어난 벌레들임을 그대들은 모르겠는가? 


형체를 다 갖추지 못한 벌레와 같이 


완전하지 못한 벌레 같은 그대들임에도 


어찌하여 너희의 마음을 그다지 세우느냐?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어진 스승이 “이 권역은 질투의 


죄과를 매질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회초리는 한결같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재갈이란 소리와 어긋나야 하는 법, 


너 용서의 길목에 다다르기 이전에 


이를 들을 것으로 나 생각한다. 


그럼 하늘 저 위로 눈을 고정시켜라.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분이 내게 이르시길, “저건 억센 재갈, 


인간을 제 울타리 안에 가두었어야 했다.


옛 원수의 낚싯바늘이 제 곁으로 그대들을 


끌어당기게 그대들이 미끼를 물었구나. 


그러기에 재갈도 부르는 소리도 별로 소용없구나. 


하늘이 너희를 부르고 너희 주위를 맴돌며 


영원한 제 아름다움을 너희에게 보여 주는데 


너희의 눈은 땅만을 바라보고 있구나. 


그래서 만물을 가늠하시는 분이 널 때리는구나.”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내가 말하길, “내 처음에 입을 다물고 있었더라면 


만족하고 더 이상 굶주려 하지 않을 텐데, 


이제 마음속에 더 많은 의심만 모이는군요.


하나의 복을 여러 소유자에게 나누는 것이 


소수 몇 사람에 의해 소유되는 것보다 


더 부유하게 한다 함은 어이 된 일인지요?” 


그가 나에게, “너는 속세의 것에만 마음을 


쏟기 때문에 진정한 광명에서 


어두움만을 따내고 있는 것이로다. 


저 위에 있는 무한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덕이란 것은 마치 햇볕이 번쩍이는 


물체로 오는 것처럼 사랑을 향해 달려드는데, 


그 사랑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그만큼 더 자신을 주고 


그리함으로써 폭넓게 펼쳐지는 것이니 


그 사랑 위에서 무궁한 힘이 자라난다. 


하늘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해야 할 대상이며 서로에 대한 사랑도 커지기에, 


사랑은 거울처럼 서로서로 주고 받는 것이지.


내 말이 너의 굶주림을 덜지 못한다 해도 


너는 베아트리체를 만나리니, 그분께서 


이에 대한 또 다른 소망을 모두 풀어 주리라. 


다만 너는 괴로움 때문에 닫힌 


다섯 개의 상처가 앞서의 두 개처럼 


속히 없어지게 온 힘을 다해라.”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살아 있는 그대는 마치 모든 것이 


필요에 의해서 생긴 양, 온갖 원인을 


저 위 하늘로 돌리려 하는군요. 


만일 그렇다면 그대에겐 자유의지가 


파멸될 터이며, 정의도 없으며 선에 대한 기쁨도 


악에 대한 슬픔도 없을 것입니다. 


하늘이 그대들의 행동을 주관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오. 내 말한 바 옳다면 


빛이란 그대들에게 선과 악을 구별토록 함이요, 


자유의지란 처음에 하늘과 벌인 


싸움에서 혹독하게 시련을 겪었지만 


잘 거두기만 하면 나중에 모든 것을 이긴다오.


자유로운 그대들도 그대들 안에 마음을 창조하신 


보다 큰 힘에나 보다 더 높으신 본성에 예속되어 있으나 


하늘도 그 마음을 제어하시진 않는다오. 


그러므로 세상이 어지럽다면, 


그 연유은 그대들 안에 있고 또 찾을 수 있으니 


내 그에 대한 것을 이제 밝혀 주리오. 


혼은 그것이 생기기도 전에 어여삐 


여기시는 그분의 손으로부터 웃고 울며 


재롱 피우는 어린아이와 같이 나왔다오.


행복한 창조자에 의해 태어났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는 바 없는 단순한 영혼은 


그를 즐겁게 해 주는 것에게 기꺼이 돌아간다오. 


처음엔 하찮은 기쁨에 맛을 느끼는데, 


길잡이나 재갈이 행여 그 욕망을 비틀지 않으면 


그만 그에 속아 넘어가 그 뒤를 좇는다오. 


그러므로 재갈을 걸어 놓기 위해 법이 필요하며, 


적어도 참된 도시의 탑을 분별할 줄 아는 


왕을 받드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오. 


법률은 있다지만, 그 누가 그것을 지키게 하는가? 


아무도 없소. 앞에서 인도해 가는 목자는 


되씹을 줄은 알고 있지만, 갈라진 발굽은 못 가졌소. 


그러므로 백성은 그들의 길잡이가 


탐을 내는 그 재화에만 쏠리며 


그걸 먹고 사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묻질 않았다오.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원인은 


그대 안의 썩어빠진 본성이 아니라 나쁜 


통치임을 그대는 잘 알 수 있을 것이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아들아, 창조주는 그렇지만 피조물도
자연적인 사랑이나 혹은 영혼의 사랑을
가져 본 일이 있는데, 이는 너도 알고 있다.
자연의 사랑은 언제나 그릇됨이 없지만,
다른 사랑은 나쁜 목적으로 인해서 혹은
그 힘이 지나치거나 적어도 그릇될 수 있다.
사랑이 제일의 행복으로 향하게 되고
세속적인 것들 안에서 자신을 가눈다면
그것은 죄스런 쾌락의 원인일 리가 없다.
그러나 사랑이 악으로 기울거나 혹은
너무 지나치게 혹은 너무 모자라게 선을 좇는다면,
피조물은 창조주를 거스르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너의 안에 온갖 덕을 심어 주기도
하고 벌받게 될 모든 행복을 심어 주기
마련임을 너는 여기서 이해할 수 있겠지.
그러므로 사랑이란 제 주체가 되는
행복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은 제 자신을 미워할 수 없으며,
또 무엇이든 으뜸인 자로부터 갈라져 나와
저 스스로 존재한다고 여길 수 없으므로
그를 미워함으로 모든 감정이 사라진다.
나의 분별이 옳은 것이라면 사람이 좋아하는
악이란 이웃에 대한 악일 뿐이니, 이 사랑은
너희의 진흙바탕 세 가지로 생겨난다.
제 이웃이 무력하게 됨으로써 제가
높아지길 갈망하며 바로 이 때문에 자신의 위대함보다
이웃이 낮은 데로 떨어지길 바라는 자 있고,
남이 높아지게 됨으로써 자기의 권세와
은총과 명예와 이름을 잃을까 두려운 나머지
그와 반대되는 일을 좋아할 만큼 비참해진 자들도 있으며,
그리고 불의 때문에 원한을 품게 되어
원수 갚는 데에 정신을 쏟고 있는 자도 있으니
그런 자들은 남에게 의례히 해을 입힌다.
이 세 가지 사랑으로 해서 여기 이 아래서
울고 있는데, 이제 부패한 방법으로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다른 사람에 대해 알기 바란다.
누구든지 그 안에서 영혼이 쉴 수 있는
행복을 어지럽게나마 포착하길 갈망하는 것이니
바로 그것에 이르고자 누구든지 겨루는 것이다.
사랑이 너희를 이끌어 행복을 추구하고 쟁취함에 있어
태만함을 보인다면, 이 둘레는 그 때문에 올바른
참회가 있고 난 뒤 너희를 괴롭힌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듯한 다른 선이 있지만,
그건 행복이 아니며 온갖 좋은 열매의
뿌리라 할 선한 본질도 아니다.
이런 것에 지나치게 자신을 잃은 사랑이
우리 위의 세 개의 권역에서 울고 있지만
그들이 셋으로 나뉘게 된 이유는
너 스스로 찾아 낼 수 있도록 내 입을 다물겠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가 말하길, "지성의 예리한 빛살을 나를 향해
곧바로 하라. 그럼 스스로 길을 인도해 가는
장님들의 과오가 너에게 밝혀질 것이니,
일찍부터 사랑하기 위해 생겨난 영혼은
기쁨에서 잠이 깨어 행동할 그 순간부터
좋아하는 모든 사물에게 움직여 간다.
너희의 인식은 실재로부터 의도하는 것을
끌어내 이를 너희의 악에 펼쳐 놓음으로써
정신을 그것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으로 정신이 쏠리면,
그 쏠림이 곧 사랑이고 그것이야말로
너희를 다시 기쁨으로 데려가는 본능이다.
그 다음에 마치 불이 제 물질 안에서
오래 지속되는 곳에 오르려는
속성 때문에 높은 곳으로 치솟듯이,
사로잡힌 영혼도 그렇게 마음의 움직임인
욕망 속에 들어가 사랑했던 것을
만끽할 때까지는 내내 쉬지 못한다.
사랑이 진정 어떠한 것이든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앞에 진리가
어떻게 숨어 있는지를 이제 깨칠 수 있으리라.
"물체"는 언제나 좋다고 보일 테지만
그리고 밀랍이 한사코 좋은 것이라 해도
좋다는 표시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질료와 떨어져 있으나 또 그와 결합된
실체적인 형상은 제 안에
특수한 능력을 간직하는 것으로
이는 그 작용 없이는 지각되지 못하고
푸른 잎사귀에서 식물의 생명을 알 수 있듯이
오로지 결과로써만 나타나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제일 원리에 대한 지성과
원초적인 욕구의 감정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꿀을 만드는 본능을 꿀벌이 갖고 있듯이
그것들이 너희 안에 있으니 이 본래의
의욕은 칭찬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 다른 것들이 모여들기에
너희에게 타고난 능력이 있어 그것이
충고도 하고 허락의 문턱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좋고 그른 사랑들을 받아들이고 경계함에
따라 너히 안에서 공과의 원인을 포착하게
만드는 근본 원리가 바로 이것이란다.
이치를 깨치며 밑바닥까지 갔던 자들이
이 타고난 자유의지를 깨달았던 것이기에
저들은 도덕을 세상에 남겼다.
따라서 너희 안에서 불타오르는 모든 사랑이
필요에 의해서 일어난다 함을 가정할 때
그걸 붙잡아 둘 능력도 너희 안에 있는 것이다.
이 고귀한 능력을 베아트리체는 자유의지라
알고 있으니 그분이 이들 들어 그대에게
말하거든 주의를 기울여 마음에 간직하여라.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무엇이 그대를 야위게 했는지 말하오.
내가 의아해하고 있는 동안 내게 묻지 마오.
딴 생각이 꽉 찬 자는 틀리게 말할 수 있으니.
그러자 그가 내게, "뒤에 남기고 온 물과
나무 안에 무궁한 성의(聖意)의 힘이
내리니, 나는 그 때문에 야위고야 말았다오.
이들 모두는 분수에 넘도록 먹었기에
울부짖으며 노래 부르고 있는데, 그들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써 여기서 정죄한다오.
잎사귀 위로 퍼져 나가는 물기와
열매에서 나오는 향기가, 마시고 또
먹고 싶은 욕구를 불태우고 있다오.
이 자리를 빙빙 돌며 우리의 죄를
새롭게 하는 것이 한 번뿐이 아니기에,
기쁨이라 일러야 할 텐데 고통이라 한다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우리를 구하셨을 때
그로 하여금 '엘리!'라 기꺼이 말씀케 한
그 의지가 우리를 나무에 인도했기 때문이라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목말라 하는 혈관에게 빨리지 않은
완전한 피는 식탁에서 따로 옮겨진
음식처럼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서
사람의 모든 사지에 빚어내는 힘을 심장
안에서 얻고 있으니, 이는 혈관을 흐르며
그것들을 만들어 주는 것과 똑같다오.
더욱 맑아진 피는 밝히기보다 덮어 두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곳에 내려와 거기서 다시
자연의 그릇 안의 다른 피 위에 방울진다오.
거기서 두 피는 서로서로 한데 모여드는데
하나는 받도록, 또 하나는 그것을 내미는
자리가 온전하게 주도록 마련된 곳이고,
또 저것에 이르면 처음엔 엉기게 하는
작용을 시작하고 나중엔 제 자신의 것으로
이루어 놓은 것을 살게끔 한다오.
능동적인 힘이란 식물의 그것과 같은
영혼이겠고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는
길에 떠 있고 후자는 피안에 있다는 점이라오.
또 그것이 작용을 하면 바다버섯처럼
이내 움직이고 또 느낌을 가지며,
그로부터 움트는 온갖 기관을 이룬다오.
아들이여, 낳아 준 자의 가슴 속에 있는
힘은 자연이 모든 지체를 마련해 주는 곳으로
이제야 번지고 또 이제야 퍼지는 것이라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내가 풀어 주는 진리 앞에 가슴을
열어 젖히고 잘 들을지니, 뇌의 조직이 태아에게
완성되자마자 곧바로 제1원동자가
자연의 그러한 묘술에 기쁨을 갖고
돌이키니 힘을 가득 지닌 새 영혼을
불어넣어 주시면 이 영혼은
거기 능동적인 것을 제 실체 안으로
끌어들여 하나의 얼을 이루어서 살고
느끼고 스스로 제 안에 도는 것임을 아시오.
나의 이야기에 덜 놀라기 위해서
그대 태양의 열을 보시오. 포도 줄기에서
내리는 즙과 합하여 그건 술을 빚는다오.
라케시스에게 더 이상 실꾸리가 없어질 때,
영혼은 육신에서 풀려나 인간적인 또
신적인 기능을 제 안에 지니게 된다오.
비록 다른 것들은 모두 잠잠하여도
기억, 지성, 그리고 의지만은 그 전보다
활동력에 있어서 더욱 날카롭게 되지요.
영혼은 머물지 않고 이상하게도
강둑들의 어느 한편에 떨어지는데
그것은 여기서야 처음으로 제 길을 안다오.
또 그것이 그 자리에 둘러싸이자마자
살아 있는 지체 속에서와 같이 그만큼
형성의 힘이 사방으로 뻗쳐 나가지요.
그리고 공기가 가득히 비를 머금을 때
제 안에 반사되는 다른 것의 빛 때문에,
여러 빛깔로 치장하는 것과 같이
공기도 그처럼 여기선 제 형체대로
놓여 있게 되었으니, 이는 머무는 영혼이
제 힘을 통해 그 속에 찍어 놓는 것이라오.
이리하여 불이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불꽃과 마찬가지로
새로 된 형체는 영혼을 따라다니지요.
그러면서 이것이 제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에
망령이라 불리는데, 또 이로써 그것은
모든 감각, 심지어는 시각까지 가졌다오.
따라서 우리들은 말하기도 하며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한숨짓기도 하는데
그대는 이것들을 산을 지나오며 느낄 수 있었을 것이오.
소망들이나 또 다른 감정이 우리들을
건드리는 것에 따라 망령이 모습을 바꾸는데,
바로 이 때문에 그대가 놀라는 것이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우리들의 죄는 자웅동체였으나
짐승과 마찬가지로 욕정만 쫓아다니며
사람의 법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거길 떠날 때 짐승 같은 모양의
나무쪽에서 짐승이 되어 버린 그의
이름을 치욕 속에서 읽고 있소.
그댄 이제 우리의 행실과 또 죄를
알지요. 그러나 행여 우리 이름이 무언지
알고자 해도 지금은 말할 때도 아니고 말할 수도 없소.
그러나 나에 대한 그대의 청은 들어주겠소.
나는 구이도 귀니첼리, 죽기에 앞서 뉘우쳤기에
벌써부터 죄를 씻고 있다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하느님의 천사가 우리 앞에 기꺼이 나타났다.
그는 불꽃의 바깥 변방 위에 서서
우리의 목소리보다 한결 더 맑은 소리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노래했다.
그는 이어, "오, 거룩한 혼들이여, 불을 꿰뚫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니 그리 들어가라.
또 저 노랫소리에 귓바퀴를 세우라"고
우리가 그이 가까이에 갔을 때 말했다.
내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덤에
처박힌 사람, 바로 그와 같이 되었다.
나는 팔짱 낀 채 몸을 뒤로 한껏 젖히고
불을 바라보니 전에 보았던 타오르는
인간의 몸뚱아리들이 역력히 떠올랐다.
상냥하신 길잡이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베르길리우스가 내게 말했다. "나의 아들아,
여기 고통은 있지만 죽음은 있을 수 없다.
기억하고 기억하라! 심지어 게리온을 타고도
내 너를 무사히 이끌어왔거늘, 이제 하느님께
한층 더 가까이 왔는데 내 할 일이 뭐 있겠느냐?
너 확실히 믿어라. 이 불꽃의 뱃속에서
넉넉히 천 년을 있더라도
네 머리카락 하나 벗겨지게 못할 것임을.
그러나 널 속인다고 생각하거든
그 불에 다가가서 네 자신의 손으로
너의 옷자락을 시험해 보아라.
온갖 무서움일랑 떨쳐 내고 떨쳐 내라.
이곳으로 오려무나, 그리고 맘 놓고 들어가라!"
그러나 나는 우두커니 서서 양심을 거역했다.
내가 꼼짝 않고 굳어진 채 다소
괴로운 빛을 띠고 있음을 보고, 그가 말하길,
"자, 보라, 베아트리체와 너 사이에 있은 이 담을."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내가 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거기 불길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어서 들끓는 유리 속에라도
내 몸을 던져 식히고 싶었다.
나의 자애로우신 아버지는 내게 위안을 주려
베아트리체만 들먹이고 걸어가면서 말씀하시길,
"내 이미 그분의 눈을 보는 듯하구나."
저쪽 편에서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우리를 이끌었으니, 우리는 사뭇 그 목소리의
여인에게 집중하며 올라가는 길로 나왔다.
"내 성부의 축복받은 자들아 오라"하는
소리가 저쪽의 밝은 빛살 속에서 울려 나왔기에
나는 그만 압도당해 쳐다볼 수 없었다.
그 목소리는 계속 되었다. "해님이 가고 저녁이 오는구나!
머물지 마오. 서녘이 어둠에
잠기기 전에 그대들은 걸음을 재촉하시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계단이란 계단은 모조리 우리 밑으로
뻗어 있었고 우리들이 맨 위 층계에
이르렀을 때, 베르길리우스가 날 응시하며
말했다. "아들아, 너는 순간과 영원의
불을 보았다. 이제 나로서는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곳에 네가 온 것이란다.
지성과 재주로써 널 여기까지 이끌어 왔다.
가파르고 비좁은 길을 벗어났으니
이제부터는 네 기쁨을 안내자로 삼거라.
네 이마를 다시 비춰 주는 해님을 보라.
또 여기 땅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풀잎들과 꽃들 그리고 작은 숲들을 보라.
너에게 내가 가도록 눈물로 하소연하던
저 아름다운 눈이 기쁨에 젖어 오는 동안
넌 앉아 있거나 그들 사이로 갈 수 있다.
내 말이나 눈치를 더 이상은 기다리지 마라.
너의 의지는 자유롭고 바르며 건전하니
그 뜻대로 하지 않으면 잘못을 범하게 된다.
네 머리 위에 왕관과 면류관을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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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나 뭍으로부터 솟아올라
열을 좇아서 갈 데까지 가는 수증기 때문에
이 아래에서 일어나는 어지러움이
사람과 아무런 싸움도 하지 못하도록
이 산이 이토록 하늘로 드높이 솟아
갇혀진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오.
주위의 공기는 그 동그라미 어딘가가 으스러지지
않는 한 첫째 회전과 더불어
온통 한꺼번에 빙그르 도는 까닭에
이러한 움직임은 아스라이 높은 창공 속에
끝이 잠긴 꼭대기와 우거진 숲이 맞부딪쳐
소리가 나게 하는 것이라오.
이리하여 일단 흔들린 식물은 제 힘으로
미풍을 온통 수태시키고 난 다음
그 바람을 빙빙 돌려 사방으로 흩어 버린다오.
저쪽 땅은 제 자신과 또 제 하늘에
알맞은 곳에 따라 여러 가지 힘으로
가지가지 나무를 낳고 있다오.
이를 그대 듣고 나면 설사 어떤 식물이건
눈에 띄는 씨앗이 없이 싹튼다 해도
이곳에선 이상하게 생각할 게 없는 듯하다오.
또 그대는 알아야 하오. 그대가 지금 있는
이 거룩한 들녘엔 온갖 씨앗의 수확이 가득하고,
거기에선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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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보는 물은 불었다 줄었다 하는
강물처럼 추위 때문에 서리게 되는 수증기로
채워지는 어느 혈맥에서 나오지 않고
영원히 솟아나는 분명한 샘에서 흐르니
이는 하느님의 의지에 따라 두 가닥
물줄기로 흘러 쏟아지는 만큼 다시 채워진다오.
이쪽에서는 사람의 죄에 대한 기억을
앗아 버리는 힘을 지니고 흐르며
저쪽에서는 온갖 선행의 기억을 새롭게 한다오.
이쪽이 레테라 불리듯, 저쪽은 또
에우노에라 불리는데, 이쪽과 저쪽을 다
맛보기 전에는 효험이 일지 않는다오.
그 맛은 다른 어떤 향내보다도 뛰어나다오.
내 더 이상 그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의 갈증이 제법 풀릴 것이겠지만
연민의 정으로 한 마디 더하리니
비록 그대와의 약속을 넘어선다 할지라도
내 말이 그대에게 하찮으리라 생각지 않는다오.
어쩌면 파르나소스에서 황금 시대와 그 행복한
처지를 옛날 옛적 읊조리던 사람들도
이곳을 꿈속에 그렸을 것이오.
인류의 뿌리는 여기서 죄를 알지 못했다오.
여기에는 언제나 봄철 과일도 그득그득했으니
이것이 곧 유명한 넥타르란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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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천사들의 손으로부터 올랐다가
다시 안쪽과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꽃들의 구름 속으로
하얀 너울 위에 올리브 띠를 두르고
여인이 나타났는데, 그녀는 푸른 망토 밑에
싱싱한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나의 정신은 벌써 오래 전부터 그녀의
면전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놀라움 때문에 지쳐 멈춘 적은 없었다.
눈만으로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로부터 나오는 은밀한 힘으로 인해
옛사랑의 강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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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여, 베르길리우스께서 가셨다고
울지 마오. 아직은 울지 말아요.
다른 칼 때문에 그대 마땅히 울어야 할 테니."
마치 여러 배 위에서 일하고 있는 자들을
보고 또 그들에게 격려해 일 잘하게 하려고
뱃머리나 고물로 제독이 오르는 것처럼
나는 마차의 왼쪽 끝 위에서
필요성 때문에 내 여기에 기록하는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천사들의 꽃놀이 밑으로 너울을 쓴 채
아까 나타나셨던 그 여인을 보았는데,
강둑 이쪽에 있는 나를 향해 시선을 쏟았다.
미네르바의 잎사귀를 두른 머리에
드리워진 너울로 인해 그녀의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왕녀같이 의젓한 몸짓을 하며
말하다가 뜨거운 부분은 뒤로 미루는
사람처럼 계속하는 것이었다.
"나를 보시오. 나 정말, 나 정말 베아트리체라오.
그대 어떻게 산에 올라왔나요?
이곳의 인간은 행복함을 그대 몰랐나요?"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눈물의 씨앗일랑 떨어뜨리고 들어 주오.
그러면 땅에 파묻힌 나의 육신이 어찌하여
엉뚱한 곳으로 그대를 가게 했는지 알게 되리오.
나 그 옛날 그 안에 갇혀 있었고 지금은
땅에 흩어져 버린 아름다웠던 그 육체만큼
자연도 예술도 그대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였고,
또 정녕 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최고의
기쁨을 그대에게 주지 못했다면, 어떤
생물이 그 뒤 그대를 제 욕망으로 끌어당겼나요?
헛되고 그릇된 것들의 첫째 화살에 그대는
벌떡 일어나,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해
나의 뒤를 잘 따랐어야 했다오.
하찮은 계집애나 그다지 오랜 소용이 없는
다른 헛된 것 때문에 두 번째 화살을
기다리며 그대 다시 날개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했다오.
갓 낳은 새 새끼는 사냥꾼의 둘 혹은 셋째 화살을
기다리지만 이제 막 깃이 난 새의 눈앞에서 그물을 치거나
활을 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가장 성스러운 물결로부터 내가 돌아왔는데
새로 돋아난 잎사귀로 새로워진 초목들처럼
나는 다시금 살아나서 별들에게라도
솟아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순수해졌다.
#신곡 #연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Posted by 㗢동죽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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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거쳐서 고통스런 마을로 가고 


나를 거쳐서 영원한 고통 속으로 가며


나를 거쳐서 저주받은 무리 속으로 간다. 


정의는 지존이신 나의 창조주를 움직이시어


성스런 힘, 최고의 지혜와 


태초의 사랑으로 하여금 나를 이루셨도다.


나보다 먼저 창조된 것이란 영원한 것 이외엔 


없으니, 나는 영원토록 남아 있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한 번도 살아 본 일이 없는 이 비열한 자들은 


벌거벗은 채 거기 있던 왕파리와 


벌 떼에 의해서 심하게 찔리고 있었다. 


그 벌레들은 저들의 얼굴에 피를 흘리게 했는데, 


그 피는 눈물에 뒤섞이어 귀찮기만 한 


그놈의 벌레들의 다리에 엉켜 있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제1원 속으로 나를 들어서게 하였다. 


이곳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영겁의 하늘을 부들부들 떨게 하는 


통곡이 아닌 한숨뿐이었다. 


이는 어린아이들, 여인들, 사내들의 


엄청나게 많은 무리들이 지니고 있는 


신체적 고통이 아닌 괴로움에서 연유했다. 


선량하신 스승은 내게, “너에게 보이는 


이자들이 누구냐고 왜 묻지를 않느냐? 


더 나아가기 전에 네가 알았으면 한다. 


그들은 죄를 짓지 않았고 가치는 지니고 있어도, 


네가 믿는 신앙의 한 부분인 


영세를 받지 못했으니, 충분할 수가 없구나. 


저들은 그리스도교 이전에 있었으니 


하느님을 경건히 공경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인 사람이다. 


다른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결함 때문에 


우리는 저주를 받고, 오직 그 벌 때문에 


희망이 없는 열망 속에서 살고 있단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이렇듯 제1원을 벗어난 제2원으로 내려오니 


그곳은 훨씬 더 좁은 지역이나 


눈물을 짜낼 만한 고통이 훨씬 더 하였다. 


거기 무섭게 서 있는 미노스, 이를 갈며 


들어오는 입구에서 죄과를 조사하여 


판단을 내리고 제 꼬리가 감기는 대로 보내더라. 


말하자면 죄스럽게 태어난 영혼이 


그 앞에 와 온통 고백을 하면 


죄를 판단하는 그 재판관은 


지옥의 어느 자리가 그에 맞는가 보아 


그가 내려 보내고 싶은 지역에 따라


그 원의 숫자만큼 꼬리를 휘감더라. 


그 앞엔 언제나 많은 영혼이 서서 


저마다 각각 심판을 받으며 


말하고 듣다가 아래로 향하더라.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는 알았노라. 그러한 고통은 


이성을 욕망에 사로잡히게 한 간음 죄인들이 


그렇게 벌받도록 되어 있는 것을. 


추운 계절에 마치 찌르레기들이 


폭넓게 가득가득 무리 지어 날아가듯이 


저 바람이 사악한 영혼들을 이리저리 


아래서 위로 그렇게 몰아쳐 가니 


휴식은 고사하고 벌을 덜어 주어 


그들을 위안할 희망이 하나도 없구나.


마치 슬픈 노래를 부르며 기다린 선을 


하늘에 그리며 날아가는 학들처럼 


울음을 내지르며 저 폭풍에 


실려 혼들이 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처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굵은 우박, 더러운 물, 또 눈이 


어두운 하늘에 휘몰아쳐 오니, 


이를 받는 땅은 고약한 냄새를 피운다. 


잔인하고 유별난 짐승인 케르베로스가


세 개의 목구멍으로 개처럼, 


예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짖어대는구나. 


그자는 불그레한 눈, 무수한 검정 수염, 


널따란 배와 손톱을 기른 손을 가졌는데 


영혼들을 할퀴고 뜯어 갈기갈기 찢는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러자 그는 내게, “넘쳐 버린 자루처럼 


시기로 가득 차 있는 그대의 도시가 


나를 고요한 삶으로 이끌었지. 


목구멍의 해로운 죄 때문에, 


그대 보다시피 비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그대의 동향인들은 치아코라 불렀지. 


슬픈 영혼이 나 하나뿐이 아니라오! 


이 모든 혼들이 비슷한 죄로 인해서 이렇게 


벌받고 있으니까.”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는 말하길, “스승이여, 이곳의 고통이란


저 위대한 선고가 있고 나면 더 커질 건가요, 


작아질 건가요, 아니면 줄곧 이대로일까요.” 


그러자 그이는 내게, “이제 너의 이론으로 돌아가라. 


일이 완전하면 그만큼 행복을 더 느낄 것이요, 


또 그만큼 고통도 그러하리라. 


저주받은 무리들이 진정한 완전 속으로 


절대로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완전을 기대할 수 없으니.”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 Pape Satan pape Satan aleppe!” 


쉰 목소리로 플루톤이 말을 시작하니 


모든 일을 아시는 고귀한 성현께서 


나를 위안코자 말씀하셨다. “겁에 질려서 


너를 해하지 말지어다. 저놈이 힘이 있다 한들 


이 바위로 우리가 내려가는 것을 막지 못 할 것이다.” 


그러고는 노기에 찬 그놈의 얼굴에 대고 


말했다. “저주받은 늑대 놈아, 아가릴 닥쳐! 


그 분노에 찬 채 불타 죽어라! 


우리가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은 까닭없는 일이 아니라 


저 높은 곳 미가엘이 오만스런 폭력에게 


복수한 곳에서 바라는 바로다.” 


돛대 기둥이 부러져, 마치 돛폭이 


부풀어 오르고 휘말려 떨어지듯이 


잔인한 그 맹수가 땅에 떨어지더라.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는 여기서 다른 곳보다 많은 떼를 보았으니 


그들은 이쪽저쪽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가슴의 힘으로 무거운 짐을 밀치고 있더라. 


그들은 저희끼리 엎치락뒤치락하더니 


하나같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외쳤다.


“왜 인색하게 돈을 쥐고만 있느냐?” 또 “왜 낭비하느냐?” 


이렇게 그들은 모욕적인 말을 되풀이하며 


양쪽으로부터 맞은 편을 향해 


캄캄한 원을 빙빙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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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스승이 말씀하시길, “얘야, 자, 보아라. 


분노가 집어삼킨 자들의 영혼을! 


그리고 너 확실히 믿기 바라는 것은 


어디를 보아도 네 눈이 네게 말해 주듯이 


물 밑에 한숨짓는 사람들이 있어 


물 위에 부글부글 물거품이 일고 있다는 것. 


진흙 속에 얽매인 채 저들은 말하길, 


‘햇빛 즐거이 비치는 달콤한 하늘에서 


마음 속에 괴로운 연기를 가졌기에 슬펐는데, 


이제 우리 시커먼 수렁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구나.’


이들은 분명한 말로 말할 수 없으니 


이 노래도 그들의 목구멍 속에서 그르렁거렸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어지신 스승께서, “여보게, 이제 가까워지는구나. 


무거운 죄를 지은 시민들, 그 망령 떼거리들을 


거느리고 있는 ‘디스'란 이름의 도시가.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곳에 갑자기 피로 물든 지옥의 세 푸리아이가 


곧바로 쭈뼛 솟아 있었으니, 그들은 


여인의 몸체와 몸짓을 하고 있으면서 


푸른 물뱀의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새끼 뱀과 뿔난 배암은 머리털을 갖고서 


무서운 관자놀이를 칭칭 휘감고 있었다. 


영원히 통곡하는 왕녀의 노예들을 


잘 알고 있던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길 


“저 표독스러운 에리니에스를 바라보라. 


왼쪽의 이것이 메가이라이며, 


오른쪽에 울고 있는 저게 알렉토이고


티시포네가 가운데 있다.” 그러고 나서 잠잠하셨다. 


저마다 손톱으로 가슴팍을 저미고 


손바닥으로 제 몸을 후려치면서 무던히도


크게 외치는지라 나는 무서워 시인께 달라붙었다.


“메두사는 오라. 우리 그놈을 돌로 변화시키리니.” 


저들은 모두가 아래를 굽어보며 말하였다.


“테세우스의 습격에 복수 못한 게 분하도다.” 


“뒤로 돌아서 눈을 감고 있어라. 


고르곤이 나타날 제 너 그를 본다면 


저 위로 돌아가기 영영 틀릴 테니까."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하늘의 증오를 사는 모든 악덕은 


불의가 그 목적인데, 그러한 목적이란 


폭력이나 기만으로써 다른 사람을 해친다. 


기만이란 사람만이 갖는 악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욱 불쾌하게 하고 그렇기에 


사기꾼들은 낮은 곳에 있으며 더욱 고통에 휩싸인다. 


그 첫 번째 원은 온통 폭력배들의 것인데 


폭력은 삼위일체신에 대해 행하는 셈이기에 


그것은 세 개의 둘레로 나뉘어 구성되었노라. 


하느님과 자신 또 이웃에게 폭력을 쓰는 것을 


네가 듣고 똑똑히 이해하도록 


내 그들과 그들의 소유물을 들어 말하겠다. 


폭력으로 죽음과 쓰라린 상처를 


이웃에게 입히고 또 이웃의 재산을 


파괴하고 불사르며 해를 끼쳐 약탈을 행한다. 


그로 인해 살인자와 중상모략 또 


불한당과 날도둑들이 이 첫째 둘레에서 


각기 여러 무리로 나뉘어 벌 받고 있느니라. 


인간이란 제 손으로 제 몸을 해칠 수 있고


자기의 재물에도 화를 입힐 수 있으니 


둘째 둘레에서 쓸모없이 뉘우치고 있는 자들은 


너희의 세계에서 제 몸을 스스로 멸하거나 


노름을 하여 살림살이를 없앴던 자들이며 


즐기며 지내야 할 거기서 슬피 울고 있다. 


마음 속으로 부정하고 겉으로 욕지거리하면서 


하느님의 본성과 덕성을 업신여기고 


하느님께 폭력을 부릴 수도 있는 저들이니라. 


그리하여 가장 작은 둘레는 소돔과 카오르사 


또 하느님을 마음 속을 깔보며 말하는 


사람을 화인(火印)을 찍어 표시하느니라. 


인간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기만은 


자기를 믿는 사람에게나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사용할 수 있느니라. 


후자의 경우는 자연이 마련하는 


사랑의 매듭조차 죽이는 듯한데, 


바로 그렇게 둘째 원에는 


위선, 사탕발림 말, 또 홀리게 하는 짓, 


허위, 도둑질과 성물을 팔아 없애는 짓, 


주, 사기 등의 추잡함이 웅크리고 있다. 


다른 폭력은 자연이 만드신 사랑과 


아울러 이에 덧붙여 저절로 생겨난 


특별한 믿음마저 망각하고 있으니,


제일 작은 원, 디스가 그 위에 얹혀진 


우주의 한가운데 지점인 그곳에서 


모든 반역자들이 끝없이 고통당하고 있느니라.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네 눈을 계곡으로 돌려 보아라 


피의 강물이 가까이 오리니, 그 속에서 


폭력으로 남을 해친 자가 삶아질 것이니. 


오, 눈먼 탐욕이여, 바보 같은 분노여. 


짧은 인생 동안 우릴 휘둘러 놓고 


그 뒤 영겁 속에서 그리도 고통스럽게 덮치는구나.


나는 활처럼 둥근 큰 구렁을 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벌판을 온통 감싸고 있는 듯하여 


나를 안내하는 분이 말씀하신 대로 였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리곤 나를 건드리시며 말씀하시길, “저게 네소스로다. 


아름다운 데이아네이라 때문에 죽음을 당했고 


바로 자신이 제 원수를 갚았던 자로다. 


그리고 한가운데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가 


엄청난 케이론인데 아킬레우스를 교육하던 놈이고 


또 다른 놈은 저리도 분노 가득한 폴로스다. 


저들은 수천 명씩 그 구렁 주위를 맴돌며 


허용하는 한도를 벗어나 더 많이 


핏물에서 벗어나는 망령들에게 화살을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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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타우로스가 말하길,“이쪽에서 점차 


얕아지는 끓는 피가 네가 보는 것처럼 


저쪽에선 점점 더 깊어져 


폭군의 악이 고통 받기 좋은 곳으로 


떠내려갈 때까지 


가라앉아 있기를 네가 바라고 있구나. 


저쪽에서 신의 정의는 땅에서 


채찍을 휘두르던 아틸라와


피로스와 섹스투스를 괴롭히고 있으며 


길에서 싸움을 무던히도 많이 하던 


코르네토의 리니에르와 리니에르 파초를 


끓여 놓아 영원토록 눈물 흘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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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커다란 나무줄기의 실가지 하나를 꺾었더니 


그 줄기가 소리쳤다. “왜 날 꺾는가?"라고. 


곧이어 검붉은 피가 철철 흐르게 되자 


그것은 다시 말을 시작하여, "왜 나를 해치느냐?


네놈은 자비심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나? 


우리들은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숲이 되었다. 


우리가 뱀의 영혼이라 하더라도


네놈의 손은 그보다 자비로워야 했으련만.” 


마치 한쪽 끝이 불타는 푸른 나뭇가지가


다른 한쪽 끝은 진물을 뿜으며, 때마침 부는 


바람 때문에 피직피직 소리 내는 것과 같이 


부러진 나무로부터 말소리와 피가 한데 어울려 


터져 나와 나는 그 실가지를 


떨어뜨리고는 질겁한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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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나무가 세찬 바람을 일으켰는데 


조금 있다가 바람은 이런 소리로 변했다. 


“그대들에게 아주 짤막하게 대답하리라.


사납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스스로가 떨어져 나왔을 때 


미노스가 그를 일곱째 구렁으로 보냈다오. 


이자는 숲으로 떨어지는데 어느 부분을 택하지 않고 


운명이 그를 몰아붙이는 곳에서 


호밀의 씨앗처럼 싹을 틔웠지요. 


그리고 실가지로 피어올라 야생초가 되었는데 


하르피이아가 그 잎새를 뜯어먹으면서 


고통을 주니 그 아픔에 틈새를 냈다오. 


남들처럼 우리 영혼도 육신을 찾아갈 것이지만 


다시는 아무도 육신을 입을 수 없으니 


이는 버렸던 것을 다시 갖는 게 옳지 못한 때문이오. 


우리는 그것을 여기에 끌어 왔으니, 


그 육신은 너 나 없이 슬픈 숲이 되어 


원수 같은 제 혼의 가지에 걸려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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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머리는 순금으로 되어 있고


팔과 가슴은 진짜 은으로 되어 있으며 


가랑이까지는 놋쇠로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아래쪽으로는 온통 무쇠고 


단지 오른발은 진흙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발보다 이 발로 버티고 서 있었다. 


순금 이외는 어느 부분이고 모두 부서졌는데 


그 갈라진 틈새로 눈물이 방울져 


한데 모여 저 바위를 꿰뚫고 있더라. 


그 물줄기는 바위를 돌고 돌아 이 계곡에 와 


아케론, 스틱스 또 플레제톤 강을 


이루고서 이 좁은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 


마지막으로 더 내려갈 수 없는 곳에서 


코치토스를 이루는데 그것은 마치 늪과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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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독 있는 꼬리를 지닌 짐승을, 


그놈은 산을 넘고 성벽과 무기를 부순다. 


보라, 온 세상에 고얀 냄새를 풍기는 저놈을!” 


나의 길잡이께서 이처럼 내게 말한 후 


그놈에게 눈짓해 대리석 강둑 끄트머리에 


위치한 언덕배기로 그놈을 오라 했다. 


그러자 저 더러운 기만의 모습이 와서 


머리와 가슴패기를 언덕 위에 걸쳤으나 


꼬리는 끌어당기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틀림없는 사람의 얼굴이었는데 


겉은 의젓한 사람의 살갗이지만 


잔등이는 온통 뱀의 그것을 지녔다. 


앞발 두 개는 겨드랑이까지 털이 돋친 채 


등과 가슴과 양쪽 옆구리엔 


매듭과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는데, 


타타르 사람과 터키 사람들이 짜는 베도 


그만한 색채가 없고 그만큼 올이 곱지 못하며 


아라크네도 그런 베를 짜내지 못했으리라. 


마치 때때로 나룻배들이 강가를 따라서 


일부는 물속에 더러는 뭍에 있는 것처럼 


또 마치 저쪽의 먹성 좋은 독일인 가운데 


물개가 싸우려고 앉아 있는 것처럼 


그 나쁜 짐승도 모래가 쌓인


바위 강둑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지옥에 말레볼제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구렁을 빙그르 둘러싼 것처럼 


무쇠 빛의 바위로 온통 둘려 있다. 


사악한 벌판 바로 한가운데 


아주 넓고 깊은 웅덩이 하나가 요동친다. 


나 그 모양새에 대해선 제자리에서 말하리.


웅덩이와 높고 험한 벼랑 사이에 


남겨진 저 테두리는 둥그런데 


바닥엔 열 개의 고랑을 지니고 있다.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하고많은 


못(池)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내가 서 있는 곳 또한 


그러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구나. 


또한 그러한 요새에는 성문 입구에서부터 


바깥 언덕까지 작은 다리들이 놓여 있듯 


바위 밑바닥에서 돌다리들이 뻗어 나가 


언덕과 못을 건너 웅덩이에 이르러서야 


끊어져서 한 곳에 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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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색한 가슴팍을 마음에 새겨 보시라. 


이렇게 말하는 동안 마귀 하나가 회초리로 


그를 후려치며 말했다. “꺼져라! 이놈의 뚜장이야! 


돈줄 당길 계집은 여기 없으니!” 


나는 나의 보호자에게 다가섰는데, 


몇 걸음 지난 후 우리가 이른 곳에 


언덕으로부터 돌다리 하나가 쑥 나와 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우리는 거기 다른 굴속에서 


괴로워하며 코를 훌쩍거리는 무리들이 


제 손바닥으로 제 몸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밑에서 피어오르는 독기가 벼랑을 감싸고 


곰팡이는 더덕더덕 싹터 올라서 


눈과 코를 한사코 괴롭게 만들었다. 


바닥이 어찌나 깊은지 다리가 솟아 있는 


아치문의 꼭대기에 오르지 않고선 


그것을 바라볼 수 없었다. 


여기에 우리가 와서 저 아래 깊은 곳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니, 그들은 인간의 변소에서 


가져온 똥물 속에 휘감겨 있었다. 


그곳에서 저 아래로 눈을 뜨고 찾아보는 동안 


속인인지 성직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 하나가 머리에 똥을 뒤집어쓴 것을 보았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턱에서부터 앞가슴까지 뒤틀린 듯이 보였는데, 


이는 저들의 얼굴이 등 쪽을 향하고 있어 


앞을 바라볼 수 없게 돼 


뒤쪽으로 걸어가고 있음이다. 


어쩌면 누군가 중풍 때문에 


그토록 온전히 뒤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내 보기엔 그렇지 않았고 그럴 성싶지도 않구나. 


독자여, 하느님께서 그대로 하여금 이걸 읽음으로써 


열매를 거두게 하소서.그대는 이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라. 우리와 같은 형상을 지닌 자가 


그토록 뒤틀려 있으면서 괴로운 눈물이 


등골을 타고 엉덩이를 적시고 있음을 가까이 보고서


내 어떻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한 죄인의 허리가,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그 마귀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는데 


그의 발은 힘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네 다리에서 그가 말하길, “오, 말레브란케여! 


성 치타를 다스리던 자가 여기 있으니, 


놈을 처박아라. 난 저런 놈을 


가득히 모아 둔 그 고을로 돌아가리니, 


본투로 이외엔 그 고을에선 모두가 도둑놈들인데


‘아니오'가 돈으로 하여 '예'로 바뀐단다.” 


그놈을 밑으로 던지고는 굳건한 돌다리로 


향했는데, 이는 풀어 놓은 개라도 


도둑을 쫓는 데 이보다는 민첩하지 못하리라. 


그놈이 물에 풍덩 잠겼다 다시 올라섰으나 


다리에 숨어 있던 마귀들이 외쳤다.


“여기엔 거룩한 얼굴도 없고 


또 여기는 세르키오에서처럼 헤엄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들의 작살에 찍히지 않으려면 


역청 위로 떠오르지 마라.”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그러나 바르바리치아가 가까이 접근하니 


그놈들은 부글부글 끓는 역청 밑으로 숨었다.


나는 다른 놈이 뛰어드는 동안 혼자 


남은 개구리와 같이 기다리고 서 있는 


죄인을 하나 보았는데, 아직도 내 마음이 부들거린다. 


제일 가까이 있던, 그라피아카네가 


역청에 찌든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어 


끌어내니, 마치 물개와 같았다. 


나는 벌써 그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는데, 이는 


곧 저들이 말라코다에게 선택될 때 눈여겨보았으며 나중에 


마귀들이 서로 부르는 소리를 귀담아 들었기 때문이다.


“오, 루비칸테야, 손톱을 저놈의 등허리에 찔러 


저놈의 껍데기를 벗기렴!"하고 


저주받은 자들이 한데 어울려 소리치고 있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우리는 저 아래서 물들인 사람들이 


아주 느린 걸음으로 맴도는 걸 보았는데 


그들은 울고 있었으며 얼굴은 피로에 지쳐 있었다. 


그들은 클루뉴이에서 수도사들이 하는 식으로 


말아 입은 망토에 눈앞까지 내려오는 


나지막한 카푸치오를 걸치고 있었다. 


겉은 눈부시도록 찬란한 금빛 망토였으나 


속은 한결같이 납인지라 무게가 대단해 


페데리코가 입히던 것은 차라리 지푸라기처럼 가벼웠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 그 안에서 무시무시한 뱀 떼를 


보았는데, 그 꼴이 하도 치가 떨려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피가 뒤집힌다. 


리비아 사막이 그 모래를 더 자랑하지 못할 것이다. 


무자치, 흙 파는 뱀, 그리고 


쌍머리 뱀에 점박이 독사가 거기 난다 해도, 


이디오피아와 홍해 언저리에 있는 


그 모든 나쁜 놈들을 모조리 합쳐 놓아도 


역질과 흉악한 것을 이보다 더 보여 주지 못할 것이다. 


이 잔인하고 고약한 떼거리 속으로 


벌거벗은 족속들이 겁에 질린 채 숨을 


구멍이나 요술 보석을 바라지 않고 달려갔다. 


그들의 손은 뒤로 젖혀진 채 뱀들로 묶였고 


허리에 뱀들의 꼬리와 머리가 삐져나왔는데, 


그놈의 뱀들은 이마가 서로서로 얽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온 언덕 쪽에 있던 자에게 


뱀 한 마리가 튀어 왔는데 그놈은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분을 물어뜯었다.


O자와 I자를 아무리 빨리 쓴다 해도 


저놈이 타서 마침내 고스란히 


재가 되어 떨어지는 것만큼 빠르진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재가 땅에 부스러졌다가 


또다시 스스로 모여 


짧은 순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는데, 


이는 마치 현자들로부터 듣는 바와 같으니 


불사조란 죽었다가 다시 오백 년이 


되면 태어나지만 


평생 곡식이나 풀은 먹지 않고 


오로지 향과 아모모의 방물만 먹고 살다가 


죽을 때는 향초와 몰약만 걸친다. 


악마의 힘으로 땅바닥에 끌렸거나 


사람을 사로잡는 다른 장애물 때문에 


넘어진 사람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고 


다시 일어났을 때, 그가 겪은 커다란 


고통 때문에 주위를 빙그르 둘러보며 


탄식의 숨을 몰아쉬는 것과 같이 


넘어졌다가 일어난 그 죄인도 그러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놈은 더 이상 말 못하고 뺑소니쳤는데 분통이 


터진 켄타우로스가 “어디냐? 어디에 


무시무시한 죄인이 있느냐?"고 외치며 오는 것을 보았다. 


마렘마에도 사람의 형체가 시작하는 엉덩이 위에 


그놈이 싣고 있던 독사보다도 더 많은 


독사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 


그놈의 양 어깨위와 목 뒤에 


날개를 펼친 용 한 마리가 도사리고 앉아 


어느 놈이고 닥치는 대로 불을 뿜었다.


나의 스승이 말하길, "이놈이 카쿠스란다. 


아벤티누스 산의 바위 밑에서 그놈은 


여러 차례 피의 호수를 만들었는데 


그가 곧 제 형제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은 것은 


그자가 자기 이웃에 있던 수많은 가축 떼를 


사기 쳐서 도둑질했기 때문이란다.


헤라클레스의 몽둥이를 맞고서 


그놈의 나쁜 버릇이 고쳐지기는 했다 해도, 백 번쯤 


후려쳤으련만 그놈이 느낀 것은 열도 안 되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내가 저들을 향해 눈썹을 치켜뜨고 있을 무렵 


발 여섯 달린 뱀 한 마리가 한 놈 앞으로 


덤벼들어 통째로 그놈을 휘감았다. 


가운데 발로는 그놈의 배를 휘감고 


앞발로는 두 팔을 붙잡더니, 이어서 


두 뺨을 이리저리 깨물었다. 


뒷발로는 허벅다리를 짓누르고 


꼬리를 사타구니 사이에 집어넣어 


허리를 휘감아 뒤로 내뻗쳤다. 


그 무시무시한 짐승이 자신의 몸뚱아리로 


다른 놈의 사지를 휘감은 것은, 정녕코 


나무를 얽어매는 담쟁이보다도 더 강한 듯했다. 


이어서 저들은 마치 뜨거운 초와 같이 


서로 엉키더니 자신들의 색깔을 뒤섞으니 


두 놈이 모두 이전의 모습은 없어졌는데 


이는 꼭 불꽃이 붙은 종이가 처음에는 


누르스름한 빛을 띠다가 미처 시꺼멓게 


되기도 전에 하얀 바탕이 스러지는 것과 같았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는 턱주가리에서 방귀 뀌는 곳까지 찢긴 


자를 하나 보았는데, 허리나 밑바닥이 


헐린 통일지라도 그처럼 들창이 나진 못할 것이다. 


두 다리 사이에 창자가 매달려 있고 


내장이 나타났고, 삼킨 것을 똥으로 


만들어 내는 처량한 주머니도 나타났다. 


내가 그를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는 나를 쳐다보며 두 손으로 가슴팍을 열고서 


말했다. “내 찢어 여노니, 이제 보아라. 


마호메트가 어떻게 찢어졌는지 보려무나!


내 앞에 울며 걸어가고 있는 자, 그는 알리, 


얼굴은 턱부터 이마의 털까지 찢어졌다.


또 네가 여기서 보는 모든 놈들은 


살았을 적에 물의와 분열을 씨 뿌린 자들이기에 


이렇게 찢어진 것이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는 분명코 보았다. 또 아직도 보는 것 같다. 


머리가 없는 영혼 하나가 슬픈 무리 중에 섞여 


다른 놈들처럼 가고 있는 그 모습을. 


그놈은 끊어진 대가리의 머리채를 쥐고 


초롱불인 양 손으로 받쳐 들었는데 그것은 


우리를 쳐다보며 “아아, 내 팔자!"라고 말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바로 그 무렵 나의 시야는 저 아래 


바닥까지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하느님의 사도, 속지 않는 정의가 


여기에 적혀 있는 위조자들을 벌주고 있었다. 


아이기나의 모든 백성이 병에 걸리고 


대기는 독기가 가득가득 찼기에 


작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든 짐승들이 


한결같이 쓰러지고 또 시인들이 강력하게 


주장한 바와 같이 옛날의 백성들이 


개미 떼의 씨로부터 다시 소생했다고 하건만 


저 어두운 계곡을 통해 망령들이 


무리 무리 떼 지어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슬픔이 더 크지는 못할 것이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나는 맞붙어 앉아 있는 두 놈을 보았는데 


그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더럽게 딱지 낀 채 


서로 맞붙어 끓는 냄비와 냄비 같았다. 


미칠 듯 못 견디게 간지러워 


어느 놈이고 다른 방도가 없이 손톱으로 제 몸을 


미친 듯이 할퀴고 있었다. 


내 일찍이 제 주인이 기다리기에, 마지못해 


깨어 있어야 하는 말꾼 소년에게서도 


이처럼 호되게 빗질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또 마치 잉어나 그보다 큰 물고기의 


비늘을 벗기는 식칼과 같이 


손톱은 상처의 딱지를 긁어 떼어 놓았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시골 농부 아낙네가 가끔 이삭 줍는 꿈을 꿀 때 


물 위로 코를 내민 개구리가


개골개골 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얼음 속에서 철저하게 울고 있는 영혼들은 


수줍음이 드러나는 그 자리까지 납빛이 되어 


황새의 입놀림처럼 이를 쩍쩍 벌렸다. 


모두가 얼굴을 푹 수그리고 있었는데 


입에서는 추위가 눈에서는 슬픈 마음이 


저들의 표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처절한 왕국의 황제가 가슴부터 제 몸의 


상반신을 얼음 밖으로 내놓고 있었는데, 


거인들을 그의 팔뚝에 비교하는 것보다 


오히려 나를 거인과 견주어 보는 것이 더 마땅할 것이다. 


그의 몸 한 부분이 그렇게 컸으니 


온몸은 얼마나 클 것인가 그대 생각해 보라. 


그는 지금의 추한 몰골만큼이나 예전엔 아름다웠는데, 


그를 창조한 분에게 눈썹을 치켜떴기에 


그분으로부터 온갖 고통이 연유되었으리라. 


아! 내 그의 머리에서 세 개의 몰골을 보았을 때 


나는 얼마나 커다란 놀라움에 사로잡혔던가! 


앞쪽에 있는 몰골, 그건 진빨강색이고 


다른 두 개는 어깨의 한가운데 위에서 


이것과 맞붙어 머리단이 있는 정수리 


자리에서 서로서로 어울려 있었는데, 


오른쪽은 하얀색과 노란색 사이의 빛깔로 보였고 


왼쪽은 나일 강이 흐르는 고장에서 


온 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았다. 


어느 놈의 몰골 아래든 두 개의 커다란 날개가 


거창한 새에게 어울릴 정도로 뻗어 나왔는데, 


나는 바다의 돛도 그만한 걸 본 일이 없었다. 


날개들은 깃이 없어, 그 모양이 


박쥐의 날개였는데, 한 번 퍼덕이면 


그로부터 세 가닥 바람이 일었다. 


그리하여 코치토스 구석구석이 온통 얼어붙었다. 


그는 여섯 개의 눈으로 눈물 흘리고 세 개의 턱 위에 


눈물과 피맺힌 침이 고드름이 되어 걸려 있었다. 


모든 아가리에선 이빨로 한 죄인을 


가닥가닥 발기는 게 마치 삼(麻)을 찢는 듯하여, 


세 놈은 이로 해서 괴로워 못 견디는 것이었다. 


앞의 놈에겐 물어뜯기는 것이야 할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때때로 


등 껍데기가 홀랑 벗겨진 채 남아 있었다.

#신곡 #지옥편 #단테_알리기에리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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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제가 버클리에서 ‘인지과학 입문'이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프레임 연구를 강의할 때, 처음으로 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인데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저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코끼리'와 같은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크고, 펄럭이는 귀와 긴 코가 있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고······등이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가 한창 사임 압력을 받던 당시의 일입니다. 


이때 그는 TV에 나와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닉슨은 전국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 일화는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프레임의 기본 원칙을 가르쳐 줍니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진보주의에도 몇 가지 유형이 존재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로서가 아니라 사고의 방식을 따지는 인지과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진보주의는 여섯 가지 서로 다른 기본 유형으로 나뉩니다. 


이들은 모두 진보주의적 가치관을 공유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1.사회경제적 진보주의(socioeconomic progressives)는 모든 것이 화폐와 계급의 문제이며, 모든 문제를 궁극적으로 경제적·사회계급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진보주의는 억압받는 집단이 빼앗긴 몫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3.환경주의(environmentalists progressives)는 지구의 지속 가능성과 신성함, 원주민 보호라는 견지에서 사고한다.


4.시민 자유 진보주의(civil liberties progressives)는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항하여 자유를 사수하고자 한다.


5.영적 진보주의(spritual progressives)는 종교나 영성의 형태를 취한다. 


그들에게 영적 경험은 타인의 세계와 맺는 관계이고, 영적 실천은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연관된다. 


영적 진보주의는 가톨릭에서부터 프로테스탄트,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여신 숭배, 이교적 마술 숭배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 있다.


6.반권의주의(antiauthoritarians)는 기업을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 정당치 못한 권위를 추방하고 여기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주장한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자기 이익과 일치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쪽으로 투표할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그러나 룬츠가 말하는 것은 언어 이상의 것입니다. 


그는 언어를 올바로 사용하는 것은 ‘개념(idea)'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그것은 쟁점을 올바른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것, 일관된 보수주의 도덕의 시각-우리가 '엄격한 아버지’ 모델이라고 부르는-을 반영하는 프레임을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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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결여된 것은 실제로는 개념이 결여된 것입니다.


개념은 프레임이라는 형태로 떠오릅니다. 


프레임이 있으면, 언어는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올바른 프레임이 결여되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 여러분도 목격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TV에 출연한 보수주의자가 ‘세금 구제’ 같이 두 단어로 된 말을 한마디 합니다. 


그러면 진보주의자는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자 한 단락짜리 길이로 논설을 풉니다. 


보수주의자는 세금을 내는 것이 고통이라는 이미 확립된 프레임에 호소하는 데 '세금 구제'라는 짧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상대편에게는 확립된 프레임이 없습니다. 


물론 그래도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미 확립된 프레임(고정된 개념)이 없기 때문에 훨씬 많은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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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수주의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고 진보주의자들은 배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미디어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느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물론 이것도 결코 사소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그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다는 것은 쟁점들을 그들의 시각에서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실패를 인정합시다.


2.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경구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항한다면, 그들의 프레임만 더욱 굳게 다져 주고 패배할 것입니다. 


3.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프레임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4.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도덕적 관점에 입각하여 말해야 합니다. 


진보적 정책은 진보적 가치에서 유래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에 속한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전문가인 척하는 관료주의적 언어를 버리십시오. 


5. 보수주의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십시오. 


그들의 ‘엄격한 아버지’ 도덕과 그 결과를 확실히 파악하십시오.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를 파악하십시오.


왜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개별 쟁점을 넘어 전략적으로 사고하십시오.


개별적인 정책의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더 큰 도덕적 목표를 염두에 두십시오.


7. 정책안의 결과에 대해 숙고하십시오. 


우리도 진보적인 '미끄러운 비탈’ 형 주도를 만들어 봅시다. 


8. 유권자들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투표하며, 이는 꼭 그들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9. 단결합시다! 협력합시다! 


진보주의적 사고의 여섯 가지 유형,

즉 (1)사회경제적, (2)정체성 정치, (3)환경주의, (4)시민 자유, (5)영적, (6)반권위주의적 진보주의를 상기해 봅시다. 


이 중 내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유형이 무엇인지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이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인지 하십시오. 


그리고 각자 지니고 있는 특정한 유형의 사고방식에서 시야를 넓혀, 공통된 진보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웁시다. 


10. 수동적이 되지 말고 능동적이 되십시오.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십시오. 


항상, 모든 쟁점에 대하여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신념을 말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고 우리의 프레임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프레임만이 우리가 믿는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11.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우리의 모델을 작동하려면 진보주의적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해야 합니다. 


오른편으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오른편으로 이동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이는 우선 진보주의 지지자들을 소외시키고, 부동층 사이에 보수주의 모델을 작동시킴으로써 도리어 보수주의자들에게 보탬이 됩니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도덕의 정치』에서 나는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투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누구 또는 무엇을 존경하는지를 근거로 투표한다. 


물론 일부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을 중시하고 그에 따라서 투표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법칙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이다. 


개인들은 여러 가지 요소-자신의 민족,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 문화적 전형(典型), 문화 영웅 등-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한다. 


선거에 관한 한 가장 강력한 동일시의 대상은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와 그에 부합하는 문화적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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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사람에 빗대는 은유는, 정교한 은유 체계로 널리 퍼져 있으며 강력하다. 


즉 국제적 공동체에 대한 은유의 일부이다. 


이 국제적 공동체에는 ‘우방 국가, '적대 국가’, '깡패 국가’ 등이 속해 있다. 
또 이 은유는 '국가 이익'이라는 개념을 수반한다. 


마치 개인의 이익이 건전하거나 강력할 수 있듯이 국가 이익도 경제적으로 건전하거나 군사적으로 강력해질 수 있다. 


이것이 '국익'이 의미하는 바이다. 


국가-사람들이 모인 국제 공동체에는 또한 '어른 국가'와 '어린 국가'가 있다.


여기서 성숙함을 측정하는 기준은 산업화의 정도이다. 


산업화 과정에 있는 제3세계의 '개발도상’ 국가들은 어린이로서, 발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그들이 지도를 잘 따라오지 못할 경우에는-이를테면 국제통화기금이-벌을 주어 규율을 가르쳐야 한다.


'저개발국'들은 '뒤떨어진’ 국가들이다. 


이라크는 비록 과거에 문명의 요람이었지만, 이 은유를 통해 보면 일종의 반항아로서, 규율을 지키기를 거부하는 무장 십대 깡패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따끔한 교훈을 주어야 한다. 


국제 관계 이론에서는 국가를 사람으로 보는 은유에 '합리적인 행위자’ 모델이 더해진다. 


이 생각에 따르면 자기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국가는 합리적인 행위자-즉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개인-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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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사람으로 보는 은유가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경우는 전쟁을 은유적으로 ‘정의로운 전쟁'으로 정당화하려 할 때이다. 


이런 시도는 거의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정의로운 전쟁'의 기본 개념은 국가를 사람으로 보는 은유에다, '자기 방어’ 이야기와 '구출’ 이야기라는 옛날이야기의 두 가지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이 각각의 이야기에는 '영웅’, '범죄’, '희생자’, '악당'이 등장한다.


'자기 방어’ 이야기에서는 영웅과 희생자가 동일하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악당은 타고날 때부터 악당이며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영웅은 악당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악당과 싸워 그를 쳐부순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희생자는 선량하며 비난받지 않는다. 


또 두 경우 모두 악당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며, 영웅은 악당을 쳐부숨으로써 도덕을 바로 세운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국가-사람으로 대치하면, 자기 방어와 구출 이야기는 '영웅 국가'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형태를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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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이 발견한 근본적인 사실 중 하나는 사람들이 프레임과 은유-내가 앞에서 기술한 개념적 구조-의 견지에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프레임은 우리 두뇌의 시냅스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경 회로의 형태로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만약 사실이 프레임에 부합하지 않으면,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무시된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이 믿는 흔한 속설이다. 


만약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실들 모두를 대중의 눈 앞에 보여준다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모두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헛된 희망이다.


인간의 두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프레임이다. 


한번 자리잡은 프레임은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이것은 ‘거짓말(lie)'일까, 아니면 단순한 사실의 '과장(exaggeration)'일까, 아니면 '현혹적 진술(misleading statements)’, 또는 '실수(mistakes)’, 또는 '지나친 수사(rhetorical excesses)’ 일까?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연구한다. 


그중 가장 놀라운 발견은, 사실 여부는 사람들이 어떤 진술의 거짓말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덜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이런 것들이다.


'말하는 이가 그 진술을 스스로 믿는가? 


그가 의도적으로 속이고자 했는가? 


그가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어떤 이득을 얻고자 했는가?


이것은 중대한 문제인가 사소한 문제인가? 


혹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의 문제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비록 그 진술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해도, 말하는 이가 그것을 진심으로 믿었고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이득을 취하거나 타인을 해치고자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인정한다. 


좋은 의도를 위한 거짓말이라면 그것은 하얀(선의의) 거짓말이다.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정직한 실수이다.


단순히 강조하려는 수사라면 그것은 과장이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이것이 행정부의 방어 논리이다.


‘좋은 의도'는 이라크를 해방하는 것이고, '잘못된 정보'는 CIA에서 나온 것이고, '강조'는 좋은 의도를 위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대통령과 그 보좌관들이 정보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해도, 그들은 '거짓말'이라는 화살을 비껴 갈 수 있다. 


틀린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개의치 않는다.


따라서 거짓말 자체는 쟁점이 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다. 


진짜 쟁점은 '신뢰에 대한 배신'이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우리를 진보주의자로 만드는 생각들 
진보주의자를 결집하는 것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전망에서 나온 ‘가치(value)’


·둘째, 진보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원칙(principal)’


·셋째, 가치와 원칙에 맞는 '정책 방향(policy directions)’


·넷째, 위의 모든 것이 담긴 '열 단어로 요약 가능한 철학(brief ten-word philosophy)’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보수주의적인 가족의 가치는 ‘엄격한 아버지'의 가족-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이며, 이기적이고, 규율과 체벌에 근거한-을 의미한다. 


진보주의자는 가족과 공동체 모두의 가치인 '상호 책임’-권위 있고, 평등하며, 쌍방적이고, 돌봄과 (개인적·사회적)책임과 힘에 근거한-에 따라 살아간다.

#코끼리는_생각하지_마 #조지_레이코프


Posted by 㗢동죽竹
,


춘추시대 오나라 오자서의 마지막 모습이 그려져있다.

유년시절에는 이런 오자서의 패기와 제나라 안영의 재치를 참 많이 흠모했다.
그러나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님 허무주의가 찌들어서인지 오자서의 패기보단 집착에 안타까움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인물 중에 안영과 오자서를 여전히 좋아한다.
#오자서 #열국지 #이재주 #춘추전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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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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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관은


첫째 북(鼓)이니, 북은 (병사의 진을) 정돈하게 하고, (병사를 지휘하여) 출동하게 하고, 진격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징(鉦)이니, 징은 (병사를 지휘하여) 머물게 하고, 후퇴하게 하고, 휴전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기旗니, 기는 (병사를 지휘하여) 군대를 일으키고, 군대를 제어하고, 군대를 억제하는 것이다. 


이를 일러 삼관이라 하니, 세 가지 명령이 있으면 군대의 법이 다스려진다. 


 

오교는 


첫째 군사의 눈을 형형색색의 깃발로 가르치고, 


둘째 군사의 귀를 명령의 가짓수로 가르치고, 


셋째 군사의 발을 진퇴하는 절도로 가르치고, 


넷째 군사의 손을 길고 짧은 예리한 무기로 가르치고, 


다섯째 군사의 마음을 신상필벌信賞必罰로 가르치는 것이다. 


오교를 각각 익히면 군사가 의지하여 용맹스러워진다. 


 

구장은 


첫째 해기(日章)를 들면 낮에 행군하고, 


둘째 달기(月章)를 들면 밤에 행군하고, 


셋째 용기(龍章)를 들면 물을 건너고, 


넷째 범기(虎章)를 들면 숲을 행군하고, 


다섯째 까마귀기(烏章)를 들면 비탈길을 행군하고,


여섯째 뱀기(蛇章)을 들면 연못을 건너고, 


일곱째 꿩기(鵲章)를 들면 구릉을 행군하고, 


여덟째 이리기(狼章)를 들면 산을 행군하고, 


아홉째 활집그림기를 들면 양식을 싣고 멍에를 씌어 귀환한다.

#관자


굳게 수비함으로써(無守也) 승리를 지킬 수 있다. 


자주 전투하면 군사가 피로하고, 자주 승리하면 군주가 교만해진다. 


교만한 군주가 피곤한 백성을 부리면, 나라에 어찌 원망이 없을 수 없겠는가?


그러므로 지극한 선은 싸우지 않는 것이고, 차선책은 한 번 싸워서 대국을 만드는 것이다. 


대국을 격파하고 강적을 이기는 것이, 한 번 싸워서 대국을 만드는 극치다. 


적을 권변權變으로 어지럽히지 않고, 적을 괴이함으로 이간질하지 않고, (적에게) 속임수로 승리하지 않는 것이, 한 번 싸워서 대국을 만드는 실제 내용이다. 


가까우면 (군대의) 실력을 쓰고 멀면 호령을 시행하여, 힘은 헤아릴 수 없고, 강함은 예상할 수 없고, 기세는 한정할 수 없고, 덕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한 번 싸워서 대국을 만드는 역량의 원천이다. 


병력 모으기를 제철에 비가 내리듯이 알맞게 하며, 병력을 소개(寡)하는 것이 회오리바람이 일듯이 빠르게 하는 것이, 한 번 싸워서 대국을 만드는 최종 조건이다.

#관자


관중이 대답했다.


“사방의 경내를 사랑한 다음에 외국의 착하지 않은 무리를 미워할 수 있고, 경대부의 집안을 편안히 한 다음에 적국(救敵)을 위협할 수 있고, 작은 나라에 은혜를 내린 다음에 무도한 큰 나라를 벌할 수 있고, 어질고 훌륭한 신하를 등용한 다음에 법을 어기는 비천한 백성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왕은 반드시 먼저 세우고, 그 다음에 폐했으며, 반드시 먼저 이롭게 하고 그 다음에 해롭게 했습니다.”

#관자


환공이 또 물었다.


“옛날에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어떤 잘못 때문입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땅과 보물을 얻을 것만 계산하고 제후를 잃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재부와 저축(委)만 계산하고 백성의 마음을 잃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친하게 여기는 것만 생각하고 버림받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으로도 나라가 쇠약해지고, 세 가지 모두 그러하면 멸망합니다. 


옛날에 나라를 무너뜨리고 사직을 무너지게 한 것은 (임금이)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잠시 환락을 즐기다가 죄악에 빠지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관자


권력은 신성神聖이 의지하는 바다. 


홀로 밝은 식견을 갖는 것(獨明)은 천하의 이기利器다. 


홀로 결단할 수 있는 것(獨斷)은 견고한 요새(營壘)와 같다.


이 두 가지는 성인이 법칙으로 삼는 바다.


성인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기미(畏微)를 두려워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밝게 드러난 것을 두려워하니, 성인이 증오하는 것은 안(內)에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증오하는 것은 밖에 있다.


성인은 장차 행동하려 할 때 반드시 미리 알고,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닥쳐도 피하지 않는다. 


성인은 때를 살펴서(輔) 때를 어기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잘 도모하나 때를 알아서 행동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때를 잘 살피는 사람은 짧은 시간이라도 공功이 많다. 


일을 도모함에 주관이 없으면 막히고, 일에 준비가 없으면 폐廢하니, 이 때문에 성왕은 충분히 준비하는 데 힘쓰고, 신중히 때를 지킨다.

#관자


많은 백성을 얻었으나 민심을 얻지 못하면 홀로 길을 가는 것과 같고, 병장기를 완비하여 날카롭게 하지 않으면 병장기를 잡지 않고 전쟁하는 것과 같으며, 갑옷이 견고하거나 정밀하지 않으면 홑옷을 입고 싸우는 것과 같다. 


쇠뇌(弩)가 화살을 멀리 날리지 못하면 짧은 병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과 같고, 쏘아도 명중하지 못하면 화살이 없는 것과 같으며, 명중해도 깊이 박히지 않으면 화살촉이 없는 것과 같다. 


훈련받지 않은 병사를 거느리면 스스로를 죽이는 것(殘者)과 같고, 짧은 병장기를 가지고 멀리 날아가는 화살을 상대하게 하면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군대를 동원하는 데는 큰 조리가 있다. 


반드시 먼저 그 병장기를 점검하고, 그 병졸들을 점검하고, 그 장군들을 점검하고, 그 군주를 점검해야 한다.

#관자


군주도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신하도 큰 죄를 저지를 수 있다.


나라는 군주가 맡아 주관하고, 백성은 군주가 다스리는 바다. 


나라를 맡아서 백성을 다스리면서 백성이 싫어하는 사람을 파견하여 공무를 시키는 것이 군주의 첫 번째 잘못이다. 


백성은 봄·여름·가을 세 계절에 농사일을 할 의무가 있는데, 이들의 노동력을 빼앗으면 농사에 힘쓸 수 없어 백성 노릇을 못한다. 


이렇게 백성이 백성 노릇을 못하면 나라를 지키는 싸움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이것이 군주의 두 번째 잘못이다. 


신하는 군주에게 높은 벼슬과 많은 봉록을 받으며 중대한 직무를 주관한다. 


그러나 그 직분을 저버리고, 책임을 몰라라 하고, 군주의 안색을 살피며 순종하여 그의 사욕을 채우는 데 복종하고, 모든 일을 잘 이끌지 못하고 정상을 벗어나게 만드는 짓, 이것이 바로 신하의 큰죄다. 


군주가 잘못이 있어도 바꾸지 않는 것을 ‘거꾸러짐(倒)'이라 하고, 신하가 죄를 지어도 징벌하지 않는 것을 '어지러움(亂)'이라 한다. 


이렇게 군주가 나라를 거꾸러지게 하는 군주가 되고, 신하가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가 되면, 국가의 쇠망은 앉아서 기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도가 있는 군주는 반드시 그 근본을 붙잡고, 재상은 그 요점을 붙잡고, 대부는 법을 붙잡아서 신하들을 다스리면 신하들은 지혜와 힘을 다하여 그 군주를 위해서 일할 것이다.


이 네 가지를 잘 지키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어기면 천하가 혼잡스러워진다. 


그러므로 명확한 규정을 정하여 굳게 지키지 않을 수 없다.

#관자


이들은 먼저 군주가 일을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실질적인 대권을 빼앗고, 나쁜 사람에게 징벌을 내리는 대권의 위엄을 빼앗는다.


밖으로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군주를 협박한다.


명령의 하달을 막고 반포하지 못하게 하여 군주를 유폐시키기에 이른다. 


이 네 가지 현상이 한꺼번에 일어나는데도 군주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도 그렇게 된다.

#관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은 네 가지가 있고, 망하게 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궁중에 본처를 의심하는 첩이 있으면 이는 궁중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서손이 적손을 의심하면 이것은 가정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조정에 재상을 의심하는 신하가 있으면 이것은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재능이 없는 사람을 관직에 임용하면 이는 여러 관리들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주가 이 네 가지를 식별하지 못하면 그 체제를 잃을 수밖에 없다.


여러 관리들이 패거리를 만들어 각각 사심을 품으면, 군주는 자기 종족의 옹호를 잃는다. 


나라의 측근 신하들이 보이지 않게 조직을 만들어 남몰래 일을 도모하며 시기를 기다리면, 군주는 바깥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 


안으로 종족의 지지를 잃고, 밖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이다.

#관자


관자가 말했다.


자신이 선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 


단청丹靑은 산속에 묻혀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들고, 아름다운 구슬은 깊은 물속에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든다.

 내가 과오를 저지를 수 있지만, 백성이 잘못된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백성의 관찰은 철저해서 선하지 않은 짓을 하고서 도망갈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선한 일을 하면 나를 명예롭게 하고,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나를 깎아내린다. 


백성에게 칭찬 듣거나 비난 듣는 것을 집에 가서 물어볼 필요가 없다.

#관자


관자가 말했다.


자신에게 죄를 돌리는 사람은 백성에게 죄를 얻지 않고, 자신에게 죄를 돌리지 않는 사람은 백성이 죄를 준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은 강하고, 자신의 절도를 다스리는 사람은 지혜로우며, 다른 사람에게 불선不善을 탓하지 않는 사람은 어질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잘못이 있으면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백성에게 돌린다.


자신에게 잘못을 돌리면 나를 두려워하고, 백성에게 좋은 일을 돌리면 백성이 기뻐한다.


기쁨을 백성에게 돌리고, 두려워함을 나에게 끌어옴, 이것은 현명한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관자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神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지혜여, 지혜여, 바다 밖으로 던져서 억지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바깥에서 속된)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다. 


무릇 바른 사람은 (바깥에서 속된) 지혜를 구하지 않으므로 허무虛無에 처할 수 있다.

#관자


뜻이 전일하고, 마음이 한결같고, 눈과 귀가 정확하면 멀리 떨어진 증험을 안다.


전일할 수 있는가? 
한결같을 수 있는가? 


복서卜筮를 쓰지 않고서도 길흉을 알 수 있는가?


(그칠 곳에서)그칠 수 있는가? 


(하지 말아야 할 때)그만 둘 수 있는가? 


남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깊이 생각하라.

깊이 생각해도 터드가지 못하면 귀신이 가르쳐준다"고 한다.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기의 작용이 극에 달한 결과다.

#관자


(도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천하에 가득하여도 그 충만함을 보지 못한다.


(도는)안색에 모이고, 살갗에 감지된다. 


그 오고감을 구하여도 아무도 그 때를 알지 못한다.


땅에 끝없이 펼쳐 있고, 하늘에 혼돈하니, 혼돈하고 혼돈하여 아무도 그 문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도는) 입이면 소리가 나오고, 귀면 듣고, 눈이면 보고, 손이면 가리키고, 발이면 밟으니, 사물이 의지하는 바가 있다.

#관자


무릇 물은 부드럽고 맑아서 사람의 더러움을 씻어 주기를 좋아하니, 어질다. 


보기에는 검지만 희고 깨끗하니, 순수하다. 
헤어려 되질하지 않아도 가득 차면 그치니, 바르다. 


어느 곳에나 흐르지 않는 곳이 없고 평평하면 멈추니, 의롭다. 


사람은 모두 높은 곳으로 달려가지만 물은 홀로 낮은 곳에 거하니, 겸손하다. 


겸손함이란 도道가 머무는 집이요, 군주 노릇하는 사람이 쓰는 도구이니, 물은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다.

#관자


백성이 목숨을 바쳐 싸우면서도 군주에게 공덕을 드렸다고 여기지 않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크게는 선조의 무덤이 있는 곳이고, 농토와 주택이 있어 살만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을 사람과 종족 사이에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주의 교화와 풍속이 백성을 매우 사랑하여 다른 곳에 가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산림과 수리 시설이 살기에 넉넉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형이 험하여 지키기는 쉽고 적이 공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형벌이 엄하여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을 주는 것이 분명하여 충분히 권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을 깊이 원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에 큰 공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백성이 목숨을 바쳐 싸우면서도 군주에게 어떠한 공덕도 드렸다고 여기지 않는 이유다.

#관자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여섯 가지있다.

 
(백성을) 살리고, 죽이고, 부유하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귀하게 하고, 천하게 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권력(柄)이란 군주가 쥐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군주가 처해야 할 곳이 네 군데 있다. 


첫째는 문文이요, 둘째는 무武요, 셋째는 (준법의) 위엄이요, 넷째는 덕德이다. 


이 네 가지 지위란 군주가 처해야 할 곳이다. 


그 쥐고 있어야 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을 때 권력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 처해야 할 곳을 남에게 넘겨주었을 때 지위를 잃었다고 한다.


권력과 지위를 잃고서 명령이 행사되길 바랄 수 없다. 


법이 공평하지 않고, 명령이 온전하지 않음, 이는 또한 권력을 빼앗기고 지위를 잃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법을 왜곡하고 명령을 훼손함, 이것을 성군이 스스로 경계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귀한 신하라도 위엄을 가질 수 없고, 부유한 사람이라도 뇌물로 접근할 수 없고, 천한 사람이라도 섬기겠다고 나설 수 없고,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 아첨에 가깝게 시중들 필요가 없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유혹하여 어지럽힐 수 없었다.

#관자


무릇 나라가 망하는 데는 네 가지 경우가 있다. 


정령이 처음 제정되었으나 반포되지 않는 것을'엄몰淹沒'이라 하고,


(정령을) 반포한 뒤 완전히 시행되지 않고 중도에서 그치는 것을 ‘옹폐壅蔽'라 하고, 


백성의 실정이 처음 개시되었으나 위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을 '폐색閉塞'이라 하고, 


백성의 실정이 위로 전달되다가 중도에서 막히는 것을 '침능侵凌'이라 한다.


그러므로 대저 엄몰·옹폐·폐색·침능이 발생하는 까닭은 법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자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지만,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


어떻게 그러함을 아는가? 


백성이 부유하면 고향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가정을 중시한다. 


고향을 편안하게 여기고 가정을 중시하면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한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하면 다스리기 쉽다. 


백성이 가난하면 고향을 위태롭게 여기고 가정을 경시한다. 


고향을 위태롭게 여기고 가정을 경시하면 감히 윗사람을 능멸하고 금령을 어긴다.


윗사람을 능멸하고 금령을 어기면 다스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다스려지는 나라는 항상 부유하지만 어지러운 나라는 반드시 가난하다. 


그러므로 나라를 잘 경영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한 뒤에야 다스린다.
#관자


무릇 도道란 형체를 채우는 것인데도 사람은 이를 지키지 못한다.


그것은 가면 돌아오지 않고, 오면 머물지 않는다.


매우 은미하여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고, 홀연히 사람의 마음에 있으나 어두워서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묵묵히 가라앉아 나와 더불어 함께한다. 


그 형체를 보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차례로 만물을 이루기에 도道라고 한다. 


무릇 도는 고정된 거처 없이 선한 마음에 은밀히 머문다. 


마음이 고요하고 기氣가 다스려지면 도가 이에 머문다.


저 도는 멀리 있지 않으므로 사람이 얻어서 산다.


저 도는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사람이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홀연히 찾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득하고 아득하여 찾아도 끝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저 도의 특성은 소리와 언어를 싫어하여, 마음을 닦고 소리를 고요히 해야 도를 얻을 수 있다. 


도란 입으로 말할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다.

 (도란) 마음을 닦고 행위(形)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도를 잃으면 죽고, 얻으면 산다. 


일을 할 때 도를 잃으면 실패하고, 얻으면 성공한다. 


무릇 도는 뿌리도 없고 줄기도 없으며, 잎사귀도 없고 꽃도 없다. 


그렇지만 만물을 낳고, 만물을 성장하게 하므로 도道라고 한다.

#관자


지나치게 베푸는 군주(惠主)는 상을 풍성히 하고 후하게 하사하여 나라의 재부를 고갈시킨다. 


간악한 사람을 사면하고 과실이 있는 사람을 방면하여 법도에 해를 입힌다. 


나라의 재부를 고갈시키면 군주의 권력이 쇠퇴한다. 


법도가 느슨해지면 간사함이 다시 튀어 나온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너무 지나치면 도리어 패망한다"고 하는 것이다.


법도를 어기는 군주(侵主)는 사악한 일을 행하기 좋아하고 법도를 위배하여 스스로를 손상시키며, 어려운 일을 함부로 결단하여 총명을 가린다. 


사람을 등용하면서 의심이 많아 사찰하고 몰래 살피기를 좋아한다. 


일을 처리하는 데 일정한 기준이 없고 법령을 되풀이한다(申). 


이를 깨닫지 못하면 나라는 장차 권세를 잃는다.


황망한 군주(芒主)는 눈으로는 오색五色을 마음껏 탐닉하고, 귀로는 항상 오성五聲을 그리워한다. 


전후좌우 대신들의 건의를 고려하지 않고 간관의 의견을 듣지 않으니, 신하들이 이에 방자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군주의 권력이 크게 기운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해악이 장차 몸에 미친다. 


사람을 잘 쓰지 못하고 홀로 번잡한 군주(勞主)는 자신의 직분을 판단하지 못하여 상하가 서로 간섭하고 군주와 신하가 뒤섞여 법을 어지럽힌다. 


형벌을 지나치게 내려 백성이 두려워하고, 백성의 심경은 더욱 각박해진다. 


그것을 없애지 못하면 장차 혼란에 빠진다. 


그대로 두면 장차 위태로워진다.


뒤를 잇는 후사가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군주(振主)는 즐거워하고 분노하는 데 일정한 법도가 없고, 형벌만 엄하고 사면하지는 않는다. 


신하들이 두려워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면, 사람은 거짓으로 돌아간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법령이 나날이 쇠퇴하고, 나라는 견고한 기초를 상실한다. 


혼매한 군주(芒主)는 진실하고 뛰어난 참모(通人情)에게 도리어 의심을 품고 신하를 믿는 법이 없다. 


스스로 모든 정사를 처리하니 정사는 더욱 많아지고, 너무 많으니 다스리기 어려워서 더욱 혼매해지며, 혼매해지면 일에 완급을 구분해서 처리하지 못한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판단력이 흐려져서 여력을 스스로 잃고 함부로 엄벌을 남용한다. 


그러므로 군주가 미리 헤아리고 심정이 안정되면, 관리는 엄숙하고 경건하게 되고 백성은 소박하고 화합하게 된다. 


관공서에는 사악한 관리가 없게 되고, 조정에는 간신이 없게 되고, 민간에는 침탈과 다툼이 없게 되며, 세상에는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없게 된다.

#관자


꾸미기를 잘하는 신하는, 친함과 귀함으로 허명을 구하는 신하를 승복시키고, 벼슬과 녹을 담담하게 생각하여 고상함을 드러낸다. 


허명을 좋아하면 실제로 입은 은혜가 없고, 고상함을 추구하면 통제하지 못한다. 


『고기故記』에 “(대신이) 실제로 입은 은혜가 없으면 (군주가) 세력이 없으니, 고삐가 없으면 말을 어떻게 통제하는가?"라고 했다.


법도를 어기는 신하(侵臣)는, 일할 때 몰래 살피고 법령을 훼손하며, 사사로이 패거리 짓기를 좋아하고 사사로이 청탁을 행한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도가 성행하면 법도가 손상을 입으니, 형법이 많더라도 간사한 행동을 금하지 못하고, 군주가 벌을 엄하게 하면 민심을 잃는다. 


아첨하는 신하(諂臣)는, 종과 북 같은 악기를 많이 만들고, 많은 미녀들을 화장시켜 군주를 미혹한다.


그러므로 군주가 미혹되면 주변 대신들의 건의를 즐겨 듣고, 언론을 담당하는 관리는 헛되이 녹봉만 누린다.


이 때문에 아첨하는 신하는 귀한 대우를 받고 법을 지키는 신하는 천하게 여겨지니, 이를 어둠 속에 고립된 군주라고 한다. 


우매한 신하(愚臣)는, 죄명을 무겁게 하고 법을 두텁게 하는 것으로 준칙을 삼고, 부세를 무겁게 하고, 많이 거두어들이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 결과) 자신은 남의 미움을 사고 군주는 비방을 받는다. 


『고기』에 "어리석은 충성은 참소하는 적과 같다"하니, 이것을 말한다.


간사한 신하(姦臣)는, 백성의 실정을 몹시 고통스럽게 말하여 군주를 놀라게 하고, 반대의 무리에게 죄를 주는 옥사를 일으켜서 (같은 패거리에게는) 죄를 면해준다.


(같은 패거리에게) 죄를 면해주면 무고한 사람이 죄를 받게 되고, 무고한 사람이 죄를 받게 되니 같은 패끼리는 편안히 산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교묘히 떠벌여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군주가 충신을 잃게 한다. 


어지럽히는 신하(亂臣)는, (거짓으로)자신의 공록을 사양하고, 공개적으로 아랫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도록 청한다. 


집에서는 조정의 우두머리를 비난하고, 조정에 나가서는 실력자들을 칭송한다.


아니라고 해 이름을 팔고, (모든 것을) 옳다고 해 군주를 손상시키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를 보이지 않게 (군주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한다.

#관자


무릇 천하를 소유한 사람이 인심을 공업功業을 세우면 황제가 되고, 정사政事로 공업을 세우면 왕이 되며, 정벌로 공업을 세우면 패자가 된다. 


그래서 공업을 꾀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적국의 군주가 총애하는 신하를 찾아 그 권력을 분산시켜서 한 사람이 두 마음을 갖게 하면, 그들의 친근함(內)이 반드시 멀어진다. 


대대로 충성하는 신하가 등용되지 못하면, 그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둘째, 적국의 군주가 미워하는 신하를 찾아 그들에게 뇌물을 후하게 주면, 그 나라의 정황이 아주 심각해진다.


(그러하면) 몸은 조정에 있어도 마음은 외국과 내통하고 있으니, 그 나라의 상황은 뻔한 결과를 불러온다. 


셋째, (적국의 군주가) 음탕함을 즐기게 하여 그 마음을 허탄하게 만든다.

 
(그에게) 음악을 연주하는 미인을 보내서 조정의 정사를 돌보지 않게 하고, 아첨하는 신하와 좋은 말을 보내서 나라 밖의 정보에 어둡게 한다.


나라 안밖의 정보가 막히면 나라는 패망한다. 


넷째, 적국의 군주와 반드시 매우 친밀하게 교제하여 마치 친형제처럼 어울리게 만든다.


(그 뒤) 보이지 않게 유세가를 잠입시켜 계책을 도모하게 하고, 용감한 무사들을 들여보내서 기세를 높이게 한다.


(그런 뒤) 다른 나라에 사람을 들여보내서 맹약을 배반하게 하고, 사신을 끊게 하고, 그 본뜻과 다르게 상황을 어그러뜨리면 곧 반드시 싸우게 된다. 


두 나라가 서로 적대하면 반드시 폐단이 잇따른다. 


다섯째, 적국의 군주가 계책을 깊이 살피게 하고, (그 나라의) 충신들을 공경으로 예우하고, 그들이 부리는 사람을 서로 이간시키고, 그들이 안에서 서로 믿지 못하게 하여 나라를 떠나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라를 떠나려는 생각이 있으면 지휘를 할 수 없으니, 반드시 내부에서 서로를 죽이게 된다. 


충신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정권을 빼앗을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공업을 이루는 방법이다.

#관자


안정된 나라에는 ‘삼기三器'가 있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육공六攻'이 있다. 


현명한 군주는 육공을 이기고 삼기를 세우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된다. 


어리석은 군주는 육공을 이기지 못하고 삼기를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되지 않는다. 


삼기란 무엇인가? 


①명령(號令), ②형벌, ③녹봉과 상(祿賞)이다. 


육공이란 무엇인가? 


①친족(親), ②貴戚귀척, ③재물(貨), ④여색(色) ,⑤아첨하는 신하, ⑥진귀한 물건을 좋아하는 것(玩好)이다.

#관자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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