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영지를 지니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임무가 사계절(四時)를 살펴서 농사가 잘되게 하는 데 있고, 그 직분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倉庫)가 가득 차도록 하는 데 있다.


나라에 재물이 많으면 멀리 있는 사람(遠者)도 오고, 토지가 모두 개간되면 백성이 머물러 산다.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영광과 치욕을 안다. 


윗사람이 법도를 준수하면 육친(六親)끼리 도타와지고, 예의염치(四維)를 널리 베풀면 군주의 명령을 잘 지킨다.

#관자


윗사람이 재물을 쓰는 데 절도가 없으면 백성은 (과중한 부담을 이기지 못해) 난동을 일으킨다. 


사치하고 교묘한 것을 금하지 않으면 백성은 문란해진다. 


이 두 가지 어지러움의 근원을 막지 못 하면 형벌이 번잡해진다. 


귀신을 높이지 않으면 어리석은 백성은 깨닫지 못하고, 산천의 신을 받들지 않으면 군주의 위엄과 명령이 두루 알려지지 않는다. 


종묘를 공경하지 않으면 백성은 (공경하지 않는) 윗사람을 본받고, 조상을 경모하지 않으면 효도와 우애가 갖추어지지 않는다.


예의염치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는 곧 멸망한다.

#관자


무엇을 네 가지 강령이라고 부르는가? 


첫째는 예禮,

둘째는 의義,

셋째는 염廉,

넷째는 치恥다. 


‘예'란 절도를 넘지 않음이고,

'의'란 스스로 나아가기(自進)를 구하지 않음이고,

'염'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음이고,

'치'란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절도를 지키면 윗사람의 자리가 평안하고,

스스로 나아가기를 구하지 않으면 백성은 교활함과 속임이 없고,

잘못을 은폐하지 않으면 행실이 저절로 온전해지고,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으면 사악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관자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 데 있고,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 있다.


①백성은 근심과 노고를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줘야 한다.


②백성은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야 한다. 


③백성은 위험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줘야 한다.


④백성은 후사가 끊기는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이 잘 살도록 해줘야 한다. 


백성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면, 백성은 군주를 위하여 근심과 노고도 감수한다. 


부유하고 귀하게 해주면, 백성은 군주를 위하여 가난과 천함도 감수한다.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주면, 백성은 군주를 위하여 위험에 빠지는 것도 감수한다.


잘 살도록 해주면, 백성은 군주를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는 것도 감수한다.

#관자


십일경十一經 : 나라를 다스리는 열한 가지 원칙 


①나라를 기울지 않는 땅에 두고,


②고갈되지 않는 창고에 (곡식을) 쌓으며,


③무진장한 창고에 갈무리하고, 


④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명령하고,


⑤백성에게 쟁론爭論의 여지가 없는 관직을 맡기고,

 ⑥거역하면 반드시 죽는 길을 밝혀두고,


⑦반드시 이익을 얻는 문을 열어두고,


⑧불가능한 사업은 하지 않고,


⑨얻을 수 없는 것은 요구하지 않고, 


⑩오래 지속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⑪실행할 수 없는 정책은 행하지 않는다.


기울지 않는 땅에 나라를 둔다는 것은, 유덕한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이다.

#관자


가정의 법도로 고을을 다스릴 수 없고, 고을의 법도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나라의 법도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가정의 법도로 가정을 다스리고, 고을의 법도로 고을을 다스리고, 나라의 법도로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의 법도로 천하를 다스린다. 


고을을 다스리면서 같은 성씨(同生)가 아니라고 차별하지 말라. 


그러하면 다른 혈족 출신 사람은 말을 따르지 않는다.


나라를 다스리면서 동향 출신이 아니라고 차별하지 말라. 


그러하면 동향 출신이 아닌 사람은 따르지 않는다. 


천하를 다스리면서 같은 나라 출신이 아니라고 차별하지 말라. 


출신 국가를 차별하면 다른 나라 출신 사람은 따르지 않는다. 


하늘과 땅처럼 공평무사하게 할지니, 어찌 사사로움과 편애함이 있을 것인가? 


해와 달이 만물을 두루 비추듯이 할지니, 이야말로 군주다운 절도다.

#관자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천하에 재물이 모자람을 걱정하지 말고, 재물을 (공평하게) 분배할 인물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힘써 할 일(時務)'을 아는 사람은 관리로 세울 수 있고, 사심이 없는 사람은 장관(政)을 맡길 수 있다.


때에 따라 힘써 할 일을 깊이 알고 인물 등용에 밝으며 관리를 적재적소에 잘 기용할 수 있는 사람은 군주로 받들 수 있다. 


둔하면 일처리가 뒤처지고, 재물을 쓰는 데 인색하면 친근한 사람을 잃고, 소인을 신임하면 선비를 잃는다.

#관자


오늘의 일을 잘 모르면 옛날을 비추어보고,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겠거든 과거를 살펴보아라. 


만사가 발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관자


옳은 것을 보면 기뻐하되 분명한 표창이 있어야 하고, 옳지 않은 것을 보면 미워하되 실질적인 제재(刑)가 있어야 한다. 


상벌이 보이는 곳에서 실행되면 보이지 않은 곳이라 해도 어찌(其) 감히 함부로 행동하겠는가. 


옳은 것을 보고서도 기뻐만 하고 분명한 표창이 없거나, 옳지 않은 것을 보고서도 미워만 하고 눈에 보이는 제재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감화되기를 바랄 수 없다.


사랑과 이익을 후하게 베풀면 백성을 가까이 할 수 있고, 지식과 예절을 밝히면 백성을 교화할 수 있다. 


군주가 몸소 실천으로 선도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범법을 예방(閑)하며, 지방에는 수장(師)을 두어 설명하고 이끌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법령으로 거듭 다짐하고 포상으로 권장하며 형벌로 징계(振)해야 한다.

#관자


개발되지 않은 영토는 나의 영토가 아니며, 다스려지지 않는 백성은 나의 백성이 아니다. 


무릇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쌓은 공로에 따라 녹을 주는 일을 신중하게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쌓은 공로가 많은 사람은 많은 녹을 주어야 하고, 쌓은 공로가 적은 사람은 적은 녹을 주어야 하며, 쌓은 공로가 없는 사람은 녹을 주지 말아야 한다. 


만일 쌓은 공로가 있는데도 녹을 주지 않으면 민심이 군주를 떠나고, 많은 공로를 쌓았는데도 녹을 적게 주면 백성이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 


쌓은 공로가 적은데도 많은 녹을 주면 백성은 속이는 일이 많고, 쌓은 공로가 없는데도 그저 녹만 받아먹으면 백성은 나태해져 요행만 바란다. 


그래서 군주를 이반하고 노력을 다하지 않고 속임을 일삼고 요행만을 바라는 이들과는 일을 일으켜도 성공 할 수 없고, 적을 마주해도 목숨을 바치지(用)않는다. 


그러므로 “능력에 따라 관직을 주고 등급에 따라 녹을 주는 것이 백성을 다스리는 관건이다” 한 것이다.

#관자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십 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서 한 번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한 번 심어서 열 배(十獲)를 얻는 것은 나무이며, 한 번 키워서 백 배를 얻는 것은 사람이다. 


내가 참으로 인재를 키우면 귀신같이 마음대로 그를 쓸 수 있을 것이니(如神用之), 나라 다스리기를 귀신 같이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군주의 자격(門)이 있다.

#관자


삼본三本 : 나라를 다스리는 세 가지 근본 


군주가 살필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대신의) 덕이 그 지위에 맞는지 아닌지, 


둘째 공적이 그 녹봉에 맞는지 아닌지, 


셋째 능력이 그 관직에 맞는지 아닌지 살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근본은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근원이다.

#관자


사고四固 : 네 가지 힘써야 할 일 


군주가 신중히 할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지위만 높고 인仁을 시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권력을 주면 안 된다. 


둘째, 현명한 이를 보고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에게 높은 지위를 주면 안 된다.


셋째, 형벌을 행함에서 (군주의) 종친·귀척(親貴)을 피하는 사람에게 병권兵權을 주장하게 하면 안 된다. 


넷째, 농사를 좋아하지 않고 땅의 이로움을 개발하는 데 힘쓰지 않으며 부렴賦斂을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 도읍都邑을 맡기면 안 된다. 


이 네 가지 견고한 것(四固)은 위태로움을 안정시키는 근본이다.

#관자


구패九敗 : 아홉 가지 실패 


군비軍備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면 지형이 험한 곳(險阻)을 지키지 않는다. 


모두 고르게 사랑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면 병사가 싸우지 않는다. 


생명을 보전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면 염치廉恥가 확립되지 않는다. 


사사로운 논의로 자신을 높이는 주장이 우세하면 윗사람의 명령이 시행되지 않는다. 


결탁한 무리가 끼리끼리 해먹자는 주장(群徒比周之說)이 우세하면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다. 


황금·구슬과 재물의 주장이 우세하면 작위와 제복이 미천한 사람에게 미친다. 


구경거리와 오락과 완구물玩具物의 주장이 우세하면 간악한 신하가 윗자리에 앉는다. 


청탁하고 알현하여 벼슬에 추천하는 (任擧) 주장이 우세하면 (등용의) 표준(繩墨)이 바르지 않게 된다. 


아첨과 허물을 은폐하는 주장이 우세하면 교묘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등용된다.

#관자


인위적으로 하지 않아도(無爲) 잘 다스리는 사람은 제왕(帝)의 업을 이룰 수 있고,

억지로 다스리지 않는 사람은 왕도(王)를 이룰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하여 다스리되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패업(覇)을 이룰 수 있다.


스스로를 존귀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은 군주의 도리이고,

벼슬이 높아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 것은 신하의 도리다.

#관자


황금은 재정을 계산하는 척도다. 


황금의 이러한 기능을 잘 이해하면 (나라 재정의) 사치와 검소를 이해하고, 사치와 검소를 알면 모든 쓰임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검소함에 치우치면 생산에 손상을 주고, 사치에 치우지면 물자를 낭비한다. 


검소함에 치우지면 황금의 가치가 낮아지고, 황금의 가치가 낮아지면 생산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산 활동에 손상이 간다. 


사치함에 치우치면 황금의가치가 높아지고, 황금의 가치가 높아지면 물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물자를 낭비한다.

#관자


그러므로 기본 법령이 엄정히 지켜지지 않으면 온갖 잘못들이 들끓는다. 


관리들의 임무를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교활한 관리들이 들끓는다. 


세수 출입의 공문서를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약삭빠른 사람이 들끓는다. 


형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으면 도적이 들끓는다. 


나라의 네 가지 벼리가 무너지면 통치자는 힘을 잃고 위험에 처한다.


이렇게 통치자가 힘이 빠지면 바른 말을 하는 선비가 나오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선비가 없으면 나라에는 거짓이 그치지 않는다.

#관자


군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재정 확보에 힘써야 하니, 그에 상대할 적이 없어야 한다. 


우수한 장인을 뽑는 데 힘써야 하니, 그에 상대할 적이 없어야 한다. 


우수한 무기를 제작하는 데 힘써야 하니, 그에 상대할 적이 없어야 한다. 


용감한 병사를 모집하는 데 힘써야 하니, 그에 상대할 적이 없어야 한다. 


정치 교육에 힘써야 하니, 그에 상대할 적이 없어야 한다. 


군사 훈련에 힘써야 하니, 그에 상대할 적이 없어야 한다. 


천하의 정보를 두루 아는 데 힘써야 하니, 그에 상대할 적이 없어야 한다. 


자기 포착과 책략을 밝히는 데 힘써야 하니, 그에 상대할 적이 없어야 한다. 


이 때문에 군대를 국경으로 출병하지 않아도, 이 여덟 가지 항목만 갖추고 있으면 상대할 적이 없다.

#관자


(군주는) 반드시 글에 재능이 있고, 무武에 위엄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맡은 직책을 익히는 것은 승리의 조건이고, 때(時)를 따르는 것은 승리의 총칙이고, 방책이 변화무쌍함은 승리의 징조다. 


의義를 실천하는 것은 승리의 도리고, 명분과 실적은 승리하기 위해 급히 해야 할 바고, 공격의 시기를 선택하는 것은 승리하기 위해 할 일이다. 


공격할 곳을 밝게 살피는(察) 것은 승리를 이룰 수 있는 것이고, 병장기를 온전히 갖추는 것은 승리의 근원이 되고, 행동을 은폐하는 것(無象)은 승리의 근본이 된다.

#관자


덕德은 여섯 가지 흥성함(六興)이 있고, 의義는 일곱 가지 실체(七體)가 있고, 예禮는 여덟 가지 상법常法(八經)이 있고, 법法은 다섯 가지 임무(五務)가 있고, 권權은 세 가지 법도(三度)가 있다. 


이른바 육흥六興이란 무엇인가?


①밭을 개간하고, 주택을 건설하고, 재배栽培를 강구하고, 사민士民을 권장하고, 농사를 면려하고, 담장·지붕을 수리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민생을 부유하게 한다고 한다.


②잠재된 자원(伏利)을 개발하고, 적체된 물건을 수송하고, 길을 닦고, 관문 시장을 편라하게 하고, 보내며 초청함(將宿)을 신중히 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재물을 수송한다고 한다.


③고인 물을 터 이끌고, 못물을 이용하고, 맴도는 얕은 물을 트고, 진흙이 막힌 곳을 트고, 막힌 것을 소통시키고, 나루와 다리를 신중히 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이익을 남긴다고 한다.


④농지세를 줄이고, 부세를 가볍게 하고, 형벌을 느슨히 하고, 죄과를 사면하고, 작은 과실을 용서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정치를 관대히 한다고 한다.


⑤어른과 노인을 봉양하고, 어린이와 고아를 사랑하고, 홀아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고, 병든 이를 문병하고, 재앙과 초상을 당한 이를 위로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위급함을 구제한다고 한다. 


⑥심한 추위에 떠는 이를 입히고, 주리고 목마른 이를 먹이고, 빈한한 이를 구제하고, 피로한 이를 진휼하고, 거덜 난 이를 도와주는 것이니, 이를 일러 곤궁함을 진휼한다고 한다.

#관자


백성이 덕을 알되 아직 의義를 알지 못하면 행실을 밝혀 의로 이끈다. 


의에는 칠체七體가 있으니, 칠체란 무엇인가?

 
①효도·공경·자애·은혜로 부모를 봉양하고,


②공손·경건·성실·신의로 군주를 섬기고, 


③중립·정직·친애·화순和順으로 예절을 행하고,


④엄숙·장엄·억제·겸손으로 형륙을 피하고,


⑤세밀한 절약으로 용도를 아껴 기근을 대비하고,


⑥돈후·충성·순박·전일로 화란禍亂을 대비하고,


⑦협조·화목으로 도적을 대비하는 것이니, 무릇 이 일곱 가지는 의의 실체다

#관자


백성이 의를 알되 아직 예를 알지 못하면, 팔경八經을 정비하여 예로 이끈다. 


이른바 팔경이란 무엇인가?


①위아래 사이에 예의가 있고,


②귀함과 천함 사이에 분수가 있고,


③어른과 아이 사이에 차등이 있고,


④가난함과 부유함 사이에 법도가 있다. 


무릇 이 여덟 가지는 예禮의 상법常法이다. 


따라서 위아래 사이에 예의가 없으면 어지럽고,


귀함과 천함 사이에 분수가 없으면 다투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 차등이 없으면 배반하고, 


가난함과 부유함 사이에 법도가 없으면 절제를 그르친다.

#관자


백성이 예를 알되 아직 임무를 알지 못하면 법령을 반포하여 능력대로 임용한다. 


능력대로 임용함에는 다섯 가지 임무가 있다. 


다섯 가지 임무란 무엇인가? 


①군주는 신하를 가려서 벼슬을 맡기고,


②대부는 벼슬을 맡아서 일을 다스리고, 


③관청의 우두머리는 일을 맡아서 직책을 지키고,


④선비는 자신을 수련하며 재주를 연마하고, 


⑤서민은 농사짓고 재배하는 것이다. 


군주가 신하를 가려서 벼슬을 맡기면 일이 번잡하지 않고, 


대부가 벼슬을 맡아서 일을 다스리면 조치함이 때에 맞고, 


관청의 우두머리가 일을 맡아서 직책을 지키면 동작이 조화롭고, 


선비가 자신을 수련하고 재주를 연마하면 현명한 인재가 되고, 


서민이 농사짓고 재배에 힘쓰면 재용이 풍족하다.

#관자


백성이 임무를 알되 아직 권도權度를 알지 못하면 삼도三度를 살펴 행동하게 해야 한다. 


이른바 삼도란 무엇인가? 


①위로는 하늘의 상서로움을 법도로 삼고, 


②아래로는 땅의 마땅함을 법도로 삼고, 


③중간으로는 사람의 순응함을 법도로 삼는다. 


이것이 바로 삼도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하늘의 때가 상서롭지 않으면 홍수와 가뭄이 있고, 땅의 도가 마땅하지 않으면 기근이 있고, 사람의 도가 순응하지 않으면 환란이 있다"는 것이다.

#관자


현명한 군주의 임무는 농업을 강화하고, 쓸모없는 사치품 제작을 없애는 데 있다. 


그런한 뒤에야 백성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 


현명한 이를 선발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면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 


부세를 줄이고, 백성에게 가혹하게 하지 않으며, 성실과 사랑으로 대하면 백성을 친하게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패왕覇王의 일이다. 


일에는 근본이 있는데, 인의仁義가 그 핵심이다.

#관자


귀는 듣는 것인데, 들을 때는 반드시 사실대로 들어야 한다. 


들음이 자세한 것을 ‘귀밝음(聽)'이라고 한다. 


눈은 보는 것인데, 볼 때는 반드시 사실대로 보아야 한다. 


보는 것이 자세한 것을 '밝음(明)'이라고 한다. 


마음은 생각하는 것인데, 생각은 반드시 언어의 법칙에 맞아야 하며, 언어가 올바름을 얻는 것을 '지혜(知)'라고 한다. 


총명함과 지혜로 오롯이 하고(博), 오롯이 하여 어둡지 않으면 잘 다스릴 수 있다. 


잘 다스르면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다. 


백성을 이롭게 하면 백성은 생산에 힘 쓰고, 백성이 생산에 힘쓰면 나라에 길하다. 


듣는 것을 사실대로 자세히 듣지 않으면 귀가 밝지 않은 것이다. 


자세히 듣지 않아 귀가 밝지 않으면 착오가 생긴다. 


보는 것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밝지 않은 것이다. 


자세히 살피지 않아 밝지 않으면 과오를 범한다. 


생각함에 마땅함을 얻지 못하면 지혜롭지 않은 것이다.


마땅함을 얻지 못해 지혜롭지 않으면 어두워진다. 


착오와 과오를 범해 어두워지면 근심하고 근심하면 번거로워지고, 일이 번거로워지면 잘못된 다스림의 원인이 된다.

#관자


성인이 마음을 쓸 때는 두텁고 넓어서 광대하고 원만하며, 숨겨진 듯 그 문을 찾기 어렵고, 뒤섞이고 엉킨 실 같고, 굽이굽이 이어진 흔적에 조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알려주고,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익을 주고, 용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고, 고귀함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고귀함을 준다. 


고귀함을 얻고자 할 때 내가 고귀하게 해주니 사람들은 나를 예禮가 있는 사람이라 말하며, 용기를 원할 때 용기를 주니 사람들은 나를 공경심이 많다고 말하며, 이익을 얻고자 할 때 내가 이익을 주니 사람들은 나를 어질다고 말하며, 알고자 할 때 내가 알려주니 사람들은 나를 총명(愍)하다고 말한다. 


경계하고 경계하여 은밀한 곳에서도 경계해야 한다. 


행동은 심사숙고해야 하나 사람들이 모두 알게 할 필요는 없고, 뜻하지 않게 닥쳐올 일은 반드시 대비를 해야 한다.


남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어짊(仁)이라 하고, 남을 속이지 못하는 것은 지혜(智)라 한다.


이미 지혜롭고 또 어질면 이를 일러 완전한 사람(成人)이라 한다.

#관자


(지위가) 낮은 사람은 본래 존귀한 사람을 섬기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본래 현명한 사람을 섬긴다. 


존귀한 사람이 존귀할 수 있는 까닭은 존귀함으로 천한 사람을 섬겼기 때문이고, 현명한 사람이 현명할 수 있는 까닭은 현명함으로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섬겼기 때문이다. 


추함은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充)이고, 천함은 존귀함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이며, 미천함은 고귀함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이다. 


그러므로 선왕은 이것들을 귀중하게 여겼다.

#관자


무릇 사람에게는 세 가지 명분이 있는데, 잘 다스리고자 함(治)과 (뒤지는 것에 대한) 수치심(恥)과 부지런히 일하고자 함(事)이 그것이다. 


일에는 두 가지 명분이 있는데, 바르게 함(正)과 잘 살피는 것(察)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에 능하면 천하를 다스린다(五者而天下治矣). 


명분이 바르면 다스리고,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어지럽고, 명분이 없으면 망한다. 


그러므로 선왕은 명분을 중시했다.

#관자


나라를 통치하는 방법 가운데 명령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명령이 중시되면 군주가 존엄하고, 군주가 존엄하면 나라가 안정된다. 


그러나 명령이 경시되면 군주가 미약하고, 군주가 미약하면 나라가 위태롭다. 


그러므로 나라를 안정되게 하는 것은 군주를 존엄하게 하는 데 있고, 군주를 존엄하게 하는 것은 명령을 시행하는 데 있으며, 명령을 시행하는 것은 형벌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데 있다. 


형벌이 엄격하고 명령이 시행되면 모든 관리가 두려워하나, 형벌이 엄격하지 않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으면 모든 관리가 희희낙락거린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백성을 다스릴 때 그 근본이 명령보다 중요한 것이 없음을 잘 안다. 


그러므로 “명령을 함부로 삭제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명령을 함부로 첨가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명령을 시행하지 않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명령을 지연시키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고 한다.


이 다섯 가지는 용서하지 않고 사형에 처하며 오직 명령대로 한다. 


그러므로 "명령이 중시되면 신하와 백성이 두려워한다"하는 것이다.

#관자


영토가 광활하고 나라가 부유하며, 인구가 많고 병력이 강한 것이 패업覇業과 왕업王業의 근본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위태로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천도天道가 빨리 변하고 인심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천도의 변화란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가고, 성하면 다시 쇠퇴하는 것이다. 


인심의 변화란 여유가 있으면 교만하고, 교만하면 나태해지는 것이다. 


교만이란 제후에 대해 교만한 것이니, 제후에 대해 교만하면 밖으로 제후를 잃는다.


나태하면 백성이 나라 안에서 난을 일으킨다. 


밖으로 제후를 잃고 안으로 백성이 난을 일으키는 것은 천도니, 이는 위급한 때다.

#관자


무릇 선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는 세 가지(三器)이고, (나라가) 공격받아 훼손당하는 것은 여섯 가지(六攻)이다. 


현명한 왕은 그 여섯 가지 공격을 이겨내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 세 가지에 더 보태지 않아도 저절로 나라를 소유하고 천하를 바로잡을 수 있다. 


용렬庸劣하고 어리석은 왕은 그 여섯 가지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 세 가지보다 많아도 천하를 소유하지 못하고 망한다.

 
세 가지 도구(三器란) 무엇인가?


①명령(號令), ②형벌, 그리고 ③녹봉과 상(祿賞)이다. 


여섯 가지 공격(六攻)이란 무엇인가? 
①친족(親), ②귀척貴戚 ,③재물(貨), ④여색(色), ⑤아첨하는 신하, ⑥진귀한 물건을 좋아하는 것(玩好)이다.

#관자


군대가 출병하는 날에 나라가 빈곤하면 결코 전쟁에 승리하지 못하고, 승리하더라도 사상자가 많으며 땅을 얻더라도 나라가 파괴된다. 


이 네 가지는 군대를 운용할 때 생기는 재앙이다.

#관자


군대가 출병하는 날에 나라 안이 빈곤하지 않는 것은 작전을 계획함이 적절하기 때문이고, 싸워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법도가 세밀하기 때문이고, 승리하되 사상자가 나지 않는 것은 잘 훈련되고 병장기가 날카로워 적군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땅을 얻어도 나라가 파괴되지 않는 것은 그 백성이 순응하기 때문이다. 


그 백성이 순응하면 호령이 잘 발휘되고, 잘 훈련되고 병장기가 날카로우면 승리할 기회가 있고, 법도가 세밀하면 (장수와 병졸들이) 지키고, 작전이 치밀하면 (승부를) 예견한다. 


군중을 다스리는 데 책략이 있고 적군에게 승리하는 데 규칙이 있으니, 책략을 살펴서 이치를 알고, 병장기를 살펴서 승리하고, 이치에 밝혀서 적에게 승리한다.

#관자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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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혼을 너무 학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머지않아 당신 자신을 존중할 기회조차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것마저도 끝나 가고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타인의 영혼에 자신의 행복을 의탁하고 있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만물은 얼마나 빨리 소멸하는가? 


육체는 우주 속으로, 기억은 시간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이렇듯 모든 사물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그 본질은 무엇인가? 


쾌락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 고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 허영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천박하고 저급한 것이며, 얼마나 가치 없고 덧없이 사라지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 듯한 말과 주장을 통해 명성을 구축한 사람들의 진가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하며, 또한 죽음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하고 막연히 떠오르는 공포심을 제거한다면, 죽음이란 하나의 자연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연의 끝없는 번영과 순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인간의 이성이 스스로를 해친다는 것은 이성이 이성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즉, 우주의 한 종양이 되는 것으로, 자연의 한 부분에 속해 있으면서 그러한 환경과 투쟁하는 것은 우주를 향한 반란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개별적인 것들의 모든 본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성이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을 배격하거나 악의적으로 반목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이성이 쾌락이나 고통으로 인해 자제력을 잃는 경우이며, 


네 번째는, 일을 행함에 있어 성실성 없이 건성으로 움직이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는 이성이 이렇다 할 목표도 없는 상태, 즉 어떤 사고나 분별력 없이 무모하게 정력을 쏟아 붓는 경우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목표를 세우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사고력을 가진 인간만이 그 목적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정치, 법률 및 이성에 따를 때에만 가능하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많은 사람들이 시골이나 바닷가, 또는 깊은 산중에 은둔해 살기를 바란다. 


당신 역시 이런 욕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일 뿐,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그 자신 속으로 은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의 영혼 속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한 은신처는 없다. 


특히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조금만 노력하면 즉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마음의 평온이란 잘 정리된 정신과 같다. 


마음속으로의 은둔을 자주 활용하여 스스로를 쇄신시켜라. 


또한 삶의 원칙들은 지극히 간결하면서도 모든 기본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원칙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영혼은 즉시 정화될 것이며,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스스로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어느 철학자는, 마음의 평정을 원한다면 많은 일을 벌여 놓거나 관여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당신에게 꼭 필요한 행위와 사회인으로서의 당신의 이성이 요구하는 행위, 그리고 보편적 이성이 요구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그 밖의 다른 행위를 제한하라. 


이렇게 하면 몇 가지 일이나마 잘 이행할 수 있고,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과 안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불필요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시간과 수고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혹시 이것도 불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고 자문해 보어야 한다. 


아울러 불필요한 행위뿐 아니라 사념까지도 떨구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쓸데없는 행위가 뒤따르지 않게 된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당신 앞에 놓은 고기나 맛좋은 음식을 보고 이렇게 생각해 보라. 


‘이것은 어떤 물고기의 시체이고, 이것은 어떤 새나 돼지의 시체다. 
팔레르노 포도주도 결국엔 포도송이에서 짜낸 즙에 불과하며, 자줏빛 의복도 조개에서 얻은 피로 양의 털을 물들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 본성을 꿰뚫게 한다. 


당신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을 당신의 인생 전체에 적용시켜야 한다. 


어떤 사물의 신뢰도가 높다고 해도, 그 선입견에서 벗어나 그것을 찬미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한 다음, 그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야말로 이성을 뒤집어 놓는 가장 위험한 것이며, 가장 신비하다고 확신하는 대상이야말로 가장 기만적이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대화를 나눌 때는 모든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행동할 때에는 모든 동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하며, 

후자에 있어서는 그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간파해야 한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현재 소유하지 않은 것을 갖겠다고 집착하기보다는, 지금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골라 보아라. 


그것이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또 얼마나 그것을 간절히 원했을까를 생각하며 감사히 여겨라. 


동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마음이 괴로워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인간을 둘러싼 관계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육체라는 껍데기와의 관계이며 


둘째, 만물이 이치에 닿게 하는 원천, 즉 신과의 관계이고 


셋째, 우리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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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감각의 상실도 두려워하지만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는 것도 두려워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에게 그 어떤 감각도 남아 있지 않다면, 당신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게 된다. 


반면 새로운 감각을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은 새로운 존재가 된다. 


따라서 삶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거짓이나 위선, 그리고 어떤 오만이나 사치도 경험하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행복을 누린 삶이 될 것이다. 


당신은 진정 악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는가? 


당신이 지금까지 겪은 경험이, 이제는 악역에서 벗어나라고 설득하지 않는가? 


정신이 오염되는 것은, 실로 우리를 둘러싼 그 어떤 오염이나 부패보다 훨씬 더 유해하다. 


환경의 오염이나 부패는 인간의 동물적 생명을 앗아 가는 것이지만, 
정신적 오염은 우리의 인간성을 빼앗아 가는 무서운 질병이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결합하고자 하는 열망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이성을 지닌 피조물인 인간들뿐이다. 


오로지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만 결합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이 결합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해도, 인간은 이미 서로 얽매여 있는 존재이다. 


자연은 우리가 대항하기에는 너무 강하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조금만 관찰해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무런 유대관계도 맺지 않은 인간은 없다. 


이런 인간을 발견하기란 지구와 무관하게 동떨어져 있는 한줌의 흙을 발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나는 오늘 온갖 번뇌로부터 벗어났다. 


아니, 온갖 번뇌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번뇌는 외부에 있던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 즉 내 생각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당신과 우주, 그리고 이웃의 정신을 탐구해 보라. 


당신의 정신을 탐구하는 것은 그것을 올바르게 다듬기 위함이며, 


우주의 정신을 탐구하는 것은 당신의 본질을 되돌아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웃의 정신을 탐구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고, 당신의 정신과 유사한가 아닌가를 알기 위해서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우리의 육신은 썩어 없어질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물과 흙과 뼈와 배설물이 그것이다. 


대리석은 흙의 응고요, 금이나 은은 침전물에 지나지 않으며, 옷은 단지 털 보푸라기로 된 것이고, 자줏빛 물감은 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 밖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의 본질도 이와 같아서, 이것저것으로 변화를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거미는 파리 한 마리를 잡아 놓고 자랑스러워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토끼를 잡았을 때, 어떤 사람은 작은 물고기를 잡았을 때, 어떤 사람은 멧돼지를 잡았을 때, 어떤 사람은 곰을 잡았을 때, 또 어떤 사람은 사르마티아 사람을 잡아 놓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원칙이란 문제로 깊이 파고들어 가 볼 때, 이들은 결국 강도와 다름없지 않은가?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어떤 곡의 선율을 낱개의 음으로 분리해 놓고 ‘이것이 과연 나를 매혹시킬 수 있는가?’ 라고 자문해 보라.


아마 쉽게 자신하지 못 할 것이다. 


무용도 개개의 동작과 자세를 분리시켜 놓으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운동 경기에 있어서도 똑같다.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덕과 그것의 속성들에 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에 있어서 개별적인 부분으로 직접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분리해 봄으로써 그것들에 대한 맹목적인 탐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의 온 생애에 그것을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만일 당신이 스스로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지금까지 당신이 얻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당신의 소유가 될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모든 생각은 떨쳐 버리고, 미래는 신의 섭리에 맡긴 채, 바로 지금 정의의 길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자연은 당신을 위해서 운명을 생성했고, 운명을 위해 당신을 창조했다. 


따라서 당신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함으로써 성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에 순응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어떠한 거짓 없이 언제나 진실되게 행동하며, 법칙을 존중하고, 각각의 가치에 입각하여 행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생각과 사악함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당신을 둘러싼 육체의 감각에 의지하지 말라. 


육체가 느끼는 감각은 육체의 일로 그냥 내버려 두라. 


당신의 생을 마감해야 할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만일 당신이 다른 모든것들을 경시하고, 오직 당신을 지배하는 이성과 내면의 신성만을 존중하며, 삶이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에 따른 삶을 살지 못 하는 것을 반성한다면, 당신은 당신을 창조한 우주에 어울리는 인간이 될 것이다. 


또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뜻밖의 일들로 인해 놀라거나, 하찮은 문제들에 얽매이지도 않게 될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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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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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은 곧 자유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죽는 법을 깨우치고 나면 반대로 죽음에 속절없이 당할 거라는 두려움을 잊게 된다. 


죽음이 뭔지를 알면 모든 굴복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을 박탈당하는 것이 해악이 아님을 깨닫고 나면 삶에 해로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오래 살건 잠시 살건 죽음 앞에서는 매한가지다. 


사라지고 난 후에는 길고 짧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히파니스 강(쿠반 강의 옛 이름)에는 단 하루를 사는 작은 벌레가 있다고 한다. 


아침 8시에 죽으면 요절한 것이고, 저녁 5시에 죽으면 장수한 셈이다. 


이렇게나 짧은 생애를 놓고 행복과 불행을 따진다면 우리 중에 비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네 길고 짧음도 영원이나 자연, 어떤 동물들의 시간에 대보면 가소롭긴 마찬가지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내가 아무리 방어한다 할지라도 늙음은 조금씩 나를 덮쳐올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저항하겠지만 늙음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어디서 쓰러질지 알면 과연 더 행복해질까.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그러나 나는 죽음이 결론일지언정 삶의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의 끝이자 극단에 죽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삶이 삶 자체의 목적이자 목표여야 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처신하도록 용인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앎은 삶을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염려에 무게를 실어주지만 않는다면 이는 가벼운 삶의 요소일 수 있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어떤 기억을 남길지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잊고자 하는 열망만큼 기억을 선명하게 새겨놓는 것이 없다. 


그러니 마음에 담아두고 새기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는 기억에게 그것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부유함과 궁핍함은 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부든, 명예든, 건강이든, 그것을 소유한 이가 부여한 의미 이상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지니지 못 한다.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하다. 


스스로의 확신이야말로 본질적이고 진실한 것이다. 


운명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하지 못 한다. 


단지 우리의 영혼에 재료와 씨앗을 주어 더욱 강해진 영혼이 원하는 대로 향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자의만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유일한 근거이자 주권자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게으름뱅이에게는 공부가 고역이고 술주정뱅이에게는 금주가 고문이다. 


음욕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수수한 삶이 형벌이고 허약하고 태만한 사람에게는 훈련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그 자체로 괴롭거나 힘들지 않다. 


우리의 약함과 비겁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위대한 일을 판단하려면 크고 위대한 정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약함이 그 판단에 영향을 준다. 


곧은 노櫓도 물 안에서는 굽어져보인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사람들은 항상 자기 앞을 보지만 나는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스스로를 평가한다. 


저마다 자기 앞을 바라보지만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만 돌보며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분석하며 음미한다. 


생각해보면 다른 이들의 시선은 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앞으로 가기만 한다. 


“아무도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악惡이 우리 영혼을 사로잡고 있을 때 영혼은 스스로 벗어나지 못 한다. 


그러므로 영혼을 되찾아 자기 안에 가두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고독이다. 


도시 한가운데서나 궁정에서도 누릴 수 있는 고독이지만 홀로 떨어져 있을 때 더 만끽할 수 있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고독 한복판에서 스스로 군중이 되어라.”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자신을 잘 알지 못 하는 사람이야 거짓 찬사를 즐기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잘 알고 가장 깊은 곳까지 탐색해 나의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알려지기만 한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덜 받아도 만족한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언사가 딱딱하다고 불평하던 아테네 사람들에게 히페레이데스Hypereides가 했던 말을 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여러분, 제가 자유로운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만 제가 자유로움 속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는 않는지, 자유로움에서 제 유익을 추구하지는 않는지를 보십시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가장 나쁜 버릇이 드는 때는 바로 우리가 가장 미숙한 어린 시절이며 기본 성품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는 보모의 손에 달렸다. 


아이가 병아리 목을 비틀거나, 뛰놀다가 개나 고양이를 다치게 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소일거리로 삼는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 힘없는 농부나 하인을 모욕적으로 비방하는 것을 보고 남자답다 여기거나, 친구를 악랄하게 배신하고 기만하는 것을 보고 명망 있다고 여기는 아버지는 정말이지 어리석다. 


이것들이야말로 잔인함, 폭정, 반역의 씨앗이요 뿌리다. 


여기에 싹이 터서 왕성하게 자라나면 마침내 습관이 된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플라톤의 말을 항상 되뇌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이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비난이 나에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드러나는 결함은 차라리 덜 심각하다. 


정말 위험한 결함은 건강한 기색을 하고 숨어 있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우리는 다른 이의 의견과 학식을 무심코 받아들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이웃집에 불을 빌리러 갔다가 그곳에 머물며 뜨거운 불에 몸을 데운 뒤, 정작 불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 


배에 고기가 그득한들 소화를 안 시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고기가 우리의 뼈와 살이 되지 못 한다면? 


우리를 살찌우고 기력을 주지 못 한다면? 


우리처럼 했더라면 경험도 없던 루클루스Luclus가 지식만으로 그렇게 위대한 지휘관이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가?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진리를 말할 때는 단순하고 기교 없이 말해야 한다. 


옷을 입을 때 특이하고 별난 복장으로 눈에 띄고 싶어 하는 것이 소심하기 때문이듯, 

언어를 사용할 때 새로운 문장과 생소한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학자인 체하고 싶어하는 유치한 욕심 때문이다.

#몽테뉴의_수상록 #몽테뉴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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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가 죽는다면, 그대는 죽음과 진실로 만날 수 없다. 


잘 기억해 두기를. 


‘죽음은 그대가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안에서만 만날 수 있다'라는 것을. 


사랑이 죽음 위에 더해진다면 거기에는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과 같은 변형이, 엄청난 변화가 발생한다. 


그대는 결코 동일한 존재로 남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경험했던 것과 같은 식으로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 


사랑이 없다면 죽음은 그대에게 존재로 가는 열쇠를 주지 않는다. 


사랑이 있어야만, 죽음은 그대에게 모든 것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준다.

#죽음_가장_커다란_거짓말 #바그완_슈리_라즈니쉬 #오쇼_라즈니쉬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잠자리에서조차 편히 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잠은 매일매일 겪는 일종의 작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사랑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모든 오르가즘적 경험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모든 오르가즘에서 에고가 죽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모든 것을 놓칠 것이다.

#죽음_가장_커다란_거짓말 #바그완_슈리_라즈니쉬 #오쇼_라즈니쉬


그대가 죽음을 인정할 때 그대는 균형이 맞는다. 


그러면 모든 것이 인정된다. 


낮이든 밤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빛이든 어둠이든 말이다. 


둘 다를 인정하고 삶의 양극성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균형이 맞는다. 


그대는 평정을 유지하고 전체로 남을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전체를 생각한다면, 죽음을 함께 안고 가야만 한다. 


삶은 아름답고 죽음도 삶만큼 아름답다. 


삶은 그것 자체의 축복을 가지고 있고 죽음도 자체의 축복을 가지고 있다. 


많은 꽃이 삶 안에 있듯이 죽음 안에도 많은 꽃이 있다. 


신이 그대에게 준 것을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심지어는 죽음조차 말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대는 종교적이 될 수 있다.

#죽음_가장_커다란_거짓말 #바그완_슈리_라즈니쉬 #오쇼_라즈니쉬


그대가 죽을 때 그대 삶의 한 장(章)이 닫힌다. 


사람들은 당신의 온 삶이 닫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한 장을 가지고 있는 책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한 장이 끝났다고 그 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페이지를 넘겨라. 


그러면 다른 장이 시작될 것이다. 


죽어 가는 사람은 다음 생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삶이 끝나기 전에 그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죽음_가장_커다란_거짓말 #바그완_슈리_라즈니쉬 #오쇼_라즈니쉬


이 삶이 끝나기 전에 그는 모든 경험과 채우지 못한 욕망과 기대,실망,좌절,고생,즐거움 등 이 모든 것을 회상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그가 이 삶을 끝내기 전에 인생 전체를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몸은 식어 가는데 마음은 아직 그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뇌는 그의 육체와 함께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에서 풀려난 욕망은 영혼에 집착한다. 


이 욕망은 그의 미래 삶을 결정한다. 


채우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는 목표를 향해 움직일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순간에 당신이 하는 행위는 당신이 어떤 인생으로 태어날 것인가를 결정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집착하면서 죽는다. 


그들은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 그들이 죽기를 원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의 순간에 그들은 살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삶은 꿈처럼 단순히 흘러가며 죽음의 순간은 온다. 


지금 더 이상 살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죽음이 문밖에서 노크를 하고 있다. 


살 시간이 있을 때 그대는 수 천 개의 어리석음을 저지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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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과거 죽음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한 가지는 할 수 있다. 


어느 것, 어떤 경험이라도 아는 것에서 미지의 것으로 항시 움직일 준비를 하라.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하라. 


그 새로움, 신선함은 너무 유혹적이다. 


거기에 용기가 있다. 


미지의 것이 알려진 것보다 나쁜 것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이것이 요점이 아니다. 


그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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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에서 죽음은 축복된다. 


왜냐하면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삶으로 들어가는 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을 축복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가 죽음을 축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죽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형태만 변할 뿐이다. 


삶은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환생한다. 


사람이 죽을 때 그것은 모든 이에게 기쁨의 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그는 외견상 죽기 때문이다. 


우리가 볼 때 그는 죽는 것처럼 느껴지나, 다른 측면에서는 그는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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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죽음이란 커다란 경험 역시 놓치려 한다. 


죽음 안에는 두려워할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아름다운 잠이며, 꿈 없는 잠이며 다른 사람의 몸으로 소리 없이 평화로운 이동을 필요로 하는 잠이다. 


그것은 외과적 현상이며 마치 마취와도 같은 것이다. 


죽음은 적이 아니라 친구이다. 


죽음이 친구란 것을 이해하고 두려움 없이 살기 시작한다면, 그대의 관점이 그대 삶의 영원성으로 향한다면 모든 것은 천천히 흐를 것이고, 서두를 아무 이유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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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몸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것을 안으로부터 그냥 관찰하라. 


육체를 관찰하라. 


그러면 갑자기 그대와 그대 육체 사이에 더 많은 간격이 벌어질 것이다. 


마음을 관찰하라. 


동일 현상이 마음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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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단순히 관찰자로 남는다. 


그대는 육체 밖으로, 마음 밖으로, 이 온 인성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 통제 하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나왔기 때문에 돌아갈 방법도 알게 된다. 


방법은 관찰하는 것이다. 


그대는 빠져 나왔다. 


이제 관찰을 멈추어라. 


‘나는 몸이다. 

나는 마음이다. 


나는 숨 쉬는 것이다. 


나는 맥박이 뛰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육체와 동일시하라. 


즉시 거리가 사라질 것이다. 


점차 거리를 줄일수록 그대는 육체로 되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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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순간에 그대의 신체적 몸과 정신적 몸은 분리되기 시작한다. 


보통 그것들은 서로 너무 깊게 얽혀 있어서 그들의 분리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 죽음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그 두 몸은 서로 불확실하게 된다. 


이제 그들의 길은 서로 다르다. 


육체적 몸은 육체적 요소로 가고, 정신적 몸은 새로운 탄생으로, 새로운 형태로, 새로운 자궁으로 성스런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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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끝이 아니라 한 생애의 정점이자 클라이맥스이다. 


그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몸으로의 이동이다. 


동양에서는 그것을 바퀴라 부른다. 


그것은 계속 움직인다. 


그렇다. 


그것은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대가 죽는다 해서 그것이 멈춰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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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에서 사람이 죽을 때, 그들은 어떤 진언을 반복한다. 


그 진언을 바르도라 부른다. 


진언은 그에게 말한다. 



“진정하라. 


침묵 속에 있으라. 


그대의 중심으로 가, 거기 있으라. 


육체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그곳을 떠나지 마라. 


단지 목격자가 되라. 


일이 그냥 일어나게 내버려 두어라. 


방해하지 마라. 


그것이 그대의 본성이다. 


그대가 기억하면서 죽는다면 그대의 바퀴는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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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번 증가한 명상의 경험은 죽음의 경험이다. 


그대가 죽을 때, 그대는 여기에 그대의 형태를 단순히 남겨 놓는다. 


그는 절대적으로 온전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생리학, 생물학, 심리학의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장벽은 무너지고 그대는 자유이다. 


처음으로 그대는 존재로 향하는 날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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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완전한 죽음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인 성취이다. 


그것보다 더 높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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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만일 그대가 슬픔을 바꿀 수 있다면, 그대는 죽음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무조건적으로 죽음을 축복할 수 있다면, 그대는 웃을 수 있고 축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축복할 수 있다면, 죽음은 그대를 죽이지 못 할 것이다. 


반대로 그대가 죽음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시작하라. 


노력하라.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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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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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모든 인간은 시대를 막론하고 자유인과 노예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하고 싶다.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사람은 노예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가족이나 친구가 보고 싶어도 너무 바빠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노예이지, 어떻게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처럼 바쁜 족속들이 존중받는 시대도 없었다. 


바쁜 것을 큰 자랑이나 벼슬처럼 여기는 시대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바로 바쁜 사람들이 경멸하는 한가한 사람들이다. 


몸과 마음이 변함없이 침착한 사람들은 좋은 기질을 갖추고 있어서 유익한 미덕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돈과 명예를 위해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살던 사람들이 어느날, 한가한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이미 불행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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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타의적 선택에 의한 삶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현실에 불만이 있다면 그것을 뒤집어 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오랜 인류의 관습 중 하나인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사람이 일부다처제를 반대할 경우, 그에게 일부일처제를 지탱하는 합리적 근거가 어디서 나왔고 그것을 지지하는 열정이 어떠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따져 보라. 


그러면 자신의 현재 생활은 신념이나 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무 근거도 없는 원칙에 익숙해진 채 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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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행복이 늘 ‘산 너머 저쪽'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옛날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남겨진 유산이거나, 공상의 산물, 그릇된 추리의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원한다면 지금 행복을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 행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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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온갖 글들 가운데, 나는 오로지 피로 쓴 것만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당신의 피로 써야 한다. 


그러면 피가 곧 정신임을 이해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남의 글이나 읽는 게으른 사람들을 미워한다. 


남의 글이나 계속해서 읽고 있으면, 자신의 글은 물론이고 정신마저도 해를 입게 된다. 


정신은 원래 신이었다. 


이윽고 정신은 인간이 되었고, 지금은 하찮은 노예가 되었다. 


피로써 글을 쓰는 사람은, 남들이 자기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외우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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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자가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 여자를 두려워해야 한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든 것을 바치려 하고, 사랑 이외에는 모두 무가치하다고 여긴다. 


반면에 여자가 당신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도 역시 그 여자를 두려워해야 한다. 


남자의 속마음이 악하다면, 여자의 속마음은 비열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누구를 가장 증오하는지 아는가? 


쇠가 자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를 끌어당기지만 나는 너를 끌어당길 힘이 없다. 

그래서 나는 너를 가장 증오한다.” 


남자의 행복은 ‘내가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행복은 '그가 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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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려고 나는 질문을 하나 던지겠다. 


당신은 젊다. 


그래서 자녀를 원하고, 결혼을 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이를 원할 자격이 있는가? 


당신은 승리자인가? 


자신을 극복한 사람인가? 


육욕을 지배하는 사람인가? 


자신이 지닌 미덕의 주인인가? 


그렇지 않다면, 결혼과 아이를 바라는 것은 당신 안에 숨어있는 동물적 본능과 이기심이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고독이, 혹은 자신에 대한 불만이 몸부림치는 것 아닌가? 


나는 당신의 승리와 자유가 아이를 갈망하기를 바란다. 


당신은 자신의 승리와 해방을 위해 산 기념비를 세우되,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세워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서 당신의 육체와 영혼이 바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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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두 영혼의 결합, 두 육체의 천하고 가련한 향락, 이런 것을 결혼이라 부르고, 하늘에서 맺어 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 하찮은 사람들의 하늘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하늘나라의 그물에 걸린 이 짐승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짝지어 주지도 않은 한 쌍을 축복하려고 절룩거리며 다가오는 신도 나는 환영하지 않는다. 


이런 결혼을 누가 비웃지 않겠는가? 


자신의 부모가 치른 이런 결혼을 통탄하지 않을 자녀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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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습관의 틀에는 네 가지의 기준이 있다. 


첫째, 영속되는 것은 모두 정당하다. 


둘째, 우리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은 모두 정당하다. 


셋째, 우리들에게 이득을 주는 것은 정당하다. 


넷째, 우리가 희생을 바친 것은 모두 정당하다. 


그래서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켜도 희생을 바치면 감격적으로 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얻은 정당성과 이러한 행위의 반복으로는 발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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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사려 깊은 행동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광범위한 통찰력에 기초를 둔 사려 깊은 판단과 행동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공정성 하나만은 갖추기로, 용기를 내서 실천해 보기로 작정했다. 


매우 오랫동안 혹독한 자기 극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것을 지켜 준 것은 바로 냉정함뿐이었다. 


그토록 많은 일들에 대해, 그것도 너무 뒤늦게, 자기 반성과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나의 용기와 냉정함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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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순간은 바로, 자신에 대한 경멸을 체험할 때다. 


자신의 행복과 이성과 도덕에 구역질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다. 


이때 우리는 자신에게 이러한 말을 할 것이다. 


“나의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초라하고 더러우며 가련한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나의 행복은 나의 생존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이러한 말도 할 것이다. 


“도대체 이성이란 무엇인가? 


사자가 먹잇감을 추격하듯 지식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초라하고 더러우며 가련한 자기만족일 뿐!” 


그리고 계속해서 이러한 말을 할 것이다. 


“도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도덕을 기꺼이 실행한 일이 없다. 


나는 그동안 선과 악을 구분하느라 얼마나 지쳐 있는가? 


도덕이란 것은 모두 초라하고 더러우며 가련한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나는 내가 불꽃이나 이글이글 불타는 숯 덩어리가 아님을 안다. 


그러나 참다운 정의는 불꽃이며, 또 이글이글 불타는 숯 덩어리가 아니겠는가?” 


“동정이란 무엇인가? 


동정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자가 못 박힌 십자가가 아닌가?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동정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자문하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이 하늘을 향해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들을 수만 있다면! 


뜨거운 불꽃의 혀로 여러분을 핥아 줄 번갯불과 여러분에게 필요한 열정을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초인이다. 


초인이야말로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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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걸쳐진 밧줄이다. 


그것도 심연을 가로지르는 밧줄인 것이다.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그 위에 서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를 돌아보는 것도 위험하다. 


겁내는 것도, 또한 멈춰 있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이 위대한 까닭은, 목적이 아니라 지나가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이유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며, 기존의 것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종래의 자기 자신을 모조리 버릴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모독하고 경멸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피안의 절벽으로 날아가려는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저 먼 별나라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초인의 땅이 될 이 지상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이 지상의 주인인 초인을 위해 집을 짓고, 대지와 짐승과 식물을 가꾸려고 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스스로를 위해서는 한 방울의 정신도 아끼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을 도덕으로 삼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정신으로 심연의 다리를 건너간다. 


자신의 도덕으로 스스로 나아갈 방향과 운명을 창조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도덕 때문에 살고, 자신의 도덕 때문에 죽는다. 


지나치게 많은 미덕을 갖추지 않으려는 사람을 사랑한다. 


한 가지 미덕은 두 가지 미덕보다 더 커서, 인간의 운명이 매달릴 수 있는 한결 큰 매듭이 된다. 


영혼이 충만하여 남에게 감사나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런 사람은 항상 남에게 주기만 할 뿐, 스스로를 위해서는 감춰 두려고 하지 않는다. 


주사위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때 수치심을 느끼며, ‘과연 나는 사기나 치는 도박꾼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을 사랑한다. 


또한 행동하기에 앞서 황금과 같은 말을 던지고, 말보다 행동이 충실한 사람을 사랑한다. 


미래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과거를 구제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신을 사랑하기에 신을 책망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또한 상처를 입어도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작은 일에도 자신의 전부를 바치고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이어진 다리를 기꺼이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넘쳐흘러 자신을 잊으면서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 포용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자유로운 정신과 마음을 구비한 사람을 사랑한다. 


이런 사람에게 두뇌는 단지 마음의 그릇일 뿐이다. 


나는 사랑한다. 


인류를 뒤덮은 먹구름에서 뚝뚝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 같은 이 모든 사람들을! 


그들은 잠시 후 번개가 칠 것이라고 알리는 예언자로서 멸망해 가고 있다. 


나 역시 번개가 칠 것이라고 예고하는 예언자이며, 구름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이다. 


그리고 이 번개야말로 초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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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서 위대한 것이 탄생했으며, 진리가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고독으로 돌아가라. 


시장에서는 똥파리들에게 시달릴 뿐이다. 


거센 바람이 사정없이 부는 곳으로 가라. 


그동안 우리는 하찮은 무리를 너무 가까이하며 살아왔다. 


그들을 향하여 손을 들지 말라. 


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파리채가 되는 것은 우리 운명이 아니다. 


가련한 소인배들의 숫자는 한이 없다. 


빗방울과 잡초가 웅장한 궁전을 망치듯이, 우리도 수많은 빗방울 때문에 이미 구멍이 났다. 


그리고 마침내는 부서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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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을 사랑한다. 


그래서 도시 생활은 내게 끔찍한 일이다. 


도시에는 타락한 여자들이 너무 많다. 


타락한 여자의 품에 안기느니 차라리 살인마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사내들은 “여자와 동침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자들의 영혼 밑바닥에는 진흙이 있다. 


그리고 그 진흙 속에 정신이 묻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짐승으로나마 대우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짐승이 되려면 순수해야 한다. 


그런 사내들에게 욕정을 없애라고 충고할 수 있을까? 


나는 단지 욕정을 정화하라고 충고할 수 있을 뿐이다. 


순결이란 어떤 사람에게는 미덕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악덕이다.

#어떻게_살_것인가 #프리드리히_니체


만일 당신에게 적이 있다면, 그가 행한 악을 선으로 갚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가 당신에게 선행을 한 것처럼 스스로 믿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싫다면, 적을 부끄럽게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화나게 만들라. 


저주를 받고도 상대를 축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차라리 당신도 똑같이 저주를 퍼부으라. 


또한 누군가가 당신에게 커다란 불의를 저지른다면, 당신도 작은 불의를 다섯 가지 저지르라. 


불의를 참고 견디기만 하는 사람은 보기에도 딱하다. 


불의의 절반은 정의라는 사실을 아는가? 


전혀 복수하지 않는 것보다 약간 복수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어떻게_살_것인가 #프리드리히_니체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면서 내적 충동이 분산되면 그는 결과적으로 약한 의지를 드러낼 뿐이다. 


반면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이 흔들림 없이 하나로 집중되면 힘이 강해져서 결과적으로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한마디로 약한 의지는 중심이 없어서 힘이 흔들리고 분산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강한 의지는 목표와 방향이 한 가지로 결정되어 모든 힘이 한 군데로 모일 수 있는 조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의지가 약한 사람 또는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_살_것인가 #프리드리히_니체


인간은 작은 거미들처럼 습관적으로 자기 주변에 점차 더 많은 거미줄을 쳐놓게 된다. 


그리고 그 습관의 거미줄에 자신이 결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 계속 그물을 찢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크고 작은 많은 상처와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을 옭죄고 있는 육체와 영혼의 속박을 풀어 버리려는 본능적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박을 풀어 버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미워한 것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사랑하던 것들을 미워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들을 포기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어떻게_살_것인가 #프리드리히_니체


인간은 끝없는 자유의지를 갈망하는 본능을 갖고 태어났다. 


따라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갇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유를 향한 끝없는 탈출의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을 감옥에 가두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극도로 자극하면 천재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치자. 


그는 길을 잃었기 때문에 자유도 잃은 것이다. 


그는 숲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전혀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독창성을 천재라고 부른다. 


천재란 남들이 습관적으로 혹은 일률적으로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것 또는 남들이 전혀 몰랐던 것을 놀라운 방법으로 찾아내는 사람이다.

#어떻게_살_것인가 #프리드리히_니체


국가는 개인의 안정과 행복을 지켜 주는 조직과 제도지만, 그 목표가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개인은 국가에 의해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국가의 본래 목표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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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자란 이 세상에서 아직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 한 자라는 뜻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세상을 파괴하고 싶어하고, 이미 도덕성에서 져 버렸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몸을 바쳐서 희생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영역과는 반대되는 세상에 마음을 둔 채 살고, 바깥세상의 권력에 저항하면서 질서를 무너뜨리고 싶어한다. 


그것은 그들 자신 속에도 권력에 대한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다. 


허무주의자들이야말로 자신의 생존의 의미를 상실한 뒤에 비로소 세상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은 아니다. 


신이나 도덕, 희생이나 헌신 등의 의미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는 단계에 이르면 허무주의가 오히려 치유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정신적 피로는 철학과 등을 지면서 절망적 회의에 이르게 되지만, 그 과정을 보면 허무주의자들은 결코 사회적으로 서민층이 아니라 지식층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떻게_살_것인가 #프리드리히_니체


세상은 지상의 삶보다 천상의 삶이 더 가치가 있다고 설교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에 심한 해독을 끼친다. 


그들이 외치는 ‘영원한 삶'으로 그들을 이 세상에서 추방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오로지 자학만을 선택한 무서운 자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쾌락도 자학에 불과하다. 


지상의 삶을 버리라고 남들에게 설교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나버리면 좋으련만! 


그들의 영혼은 병들었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죽기를 바라고, 삶을 포기하라는 설교를 듣기를 원한다. 


또한 그들은 이 세상의 삶보다는 저 세상의 삶이 더 기치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설교하며,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뜻을 찬미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므로 이 시체들이 깨어나 소리치지 않도록, 살아 있는 이 관들을 잘못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어떻게_살_것인가 #프리드리히_니체


“삶은 오직 고통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 말이 옳다. 


그러니 그런 자들은 스스로 삶을 끝내라. 


오직 고통일 뿐인 자신의 삶을 끝내라.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스스로 이 세상에서 떠나라'고 가르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 세상은 불행하고 살 가치가 없는 곳이니,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자들도 죽음의 선교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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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데, 나는 여행자를 다섯 등급으로 나눈다. 


첫 번째 부류는 가장 의미 없는 여행을 하는 최하급 여행자들이다. 


그들은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남에게 관찰당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행지나 여행의 대상에 머물러 있지만, 사실상 장님처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자신의 눈으로 실제로 세상을 관찰하는 여행자들이다. 


세 번째 부류는 자신이 관찰한 결과를 실제로 체험해 보는 여행자들이다. 


네 번째 부류는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해 내는 사람들이다. 


다섯 번째 부류, 즉 최고 등급에 속하는 여행자들은 극소수이다. 


그들은 보고 듣고 체험하고 이해한 것들을 즉시 자신의 행동에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의 여로를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다섯 등급으로 확실히 구별된다. 


최하급의 여행자들은 지극히 수동적인 인간들이다. 


그러나 최고급의 여행자들은 내면으로 체득한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활용하며 살아가는 행동가이며, 인생의 진정한 여행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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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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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재산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외적인 재산, 마음의 재산, 육체의 재산이 그것이다. 


그런데 나는 세 가지라는 숫자만을 그대로 이어받아 덧없는 인간의 운세에 나타난, 여러 가지 기초를 이루는 것들이 세 가지 근본 규정에 귀착된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1. 인간의 모습,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인품, 인격, 인물, 따라서 이 속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적 성격, 지성 및 그것의 완성이 포함된다. 


2.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 즉 모든 의미에서의 소유물 


3.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타인이 갖게 되는 인상에 비춰진 나의 모습, 즉 타인에게 어떤 인상을 품게 하는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타인들의 생각으로, 그것은 명예와 지위, 명성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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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나 부의 차별이 각자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연기하도록 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이 역할에 비례해서 행복이나 즐거움의 내면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경우에도 한 껍질 벗기고 나면 모두가 똑같이 가엾이 여겨야 할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괴로움과 고뇌를 가진 어리석은 자이다. 


내용은 사람에 따라 제 각각 다르지만 본연의 모습, 즉 본질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모두가 똑같이 어리석은 자이다. 


잠재되어 있는 어리석음에 대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결코 신분과 부, 즉 역할에 따른 차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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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온갖 재산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마음의 명랑함이다. 


왜냐하면 이 장점은 다른 그 무엇을 기다릴 것까지도 없이 이 장점 자체에 의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랑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명랑하게 지낼 수 있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이란, 다름 아닌 그가 명랑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어떠한 재산도 완전히 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장점보다 더 뛰어난 것은 없다. 


그리고 성질 그 자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젊고, 미남이며, 부자로 세상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이 남자가 행복한지를 판단하려면, 그 외에도 그가 명랑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반대로 이 사람이 명랑한 사람이라면, 젊은지 나이를 먹었는지, 몸이 곧게 펴져 있는지 꼽추인지, 가난한지 부자인지 등과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이 남자는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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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이 명랑한 기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명랑한 기분이 건강상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는 같은 외부적 사정 내지 내부적 일이 건강하고 원기왕성한 날에 주는 인상과 병으로 마음이 초조하고 차분하지 못한 날에 일으키는 인상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의 객관적·현실적 모습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 대한 사물의 모습, 우리들의 견해에 비춰진 사물의 모습이 우리들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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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행복에 대한 2대 적수가 고통과 무료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적수의 어느 한쪽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만큼 또 다른 한쪽 적수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생활은 현실적으로는, 강약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두 적수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그것은 양자가 이중의 상반관계, 외면적, 즉 객관적인 상반관계와 내면적, 즉 주관적인 상반관계에 있다는 사실에서 생겨나는 결과이다. 


외면적으로는 곤고와 결핍이 고통을 만들고, 이에 반해서 안전과 여유가 무료함을 만든다. 


따라서 하층계급 사람들은 곤고, 즉 고통과 끊임없이 싸우며 이와는 반대로 부귀한 사회는 무료함을 적으로 끊임없는, 때로는 절망적이기까지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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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통과 무료함의 내면적, 즉 주관적인 대립은 양자에 대한 감수성이 정신적 능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규정되며, 개개인의 경우에는 한편에 대한 감수성이 다른 편에 대한 감수성과 반비례한다는 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정신의 우둔함은 언제나 감각의 우둔함 및 자극 감성의 부족을 동반한다. 


이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종류, 모든 정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도 둔감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정신의 우둔함 때문에 내면의 공허가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는 내면의 공허이다. 


외부의 어떠한 일, 제 아무리 조그만 일에라도 끊임없이 활발하게 관심을 보이는 일에 저절로 나타나게 되는 그러한 내면의 공허이다. 


이것이야말로 무료함의 근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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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허가 끊임없이 외부적인 자극을 절실하게 요구하며, 어떤 것에 의해서 정신과 심정(心情)을 활동하게 하려고 한다. 


따라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이 선택하는 오락의 저급함, 그들의 사교와 대화의 질, 그리고 호기심으로 가득 찬 구경꾼들이 가장 큰 증거이다. 


주로 이 내면의 공허에서 발생하는 것이 온갖 종류의 사교와 오락, 여흥, 사치를 추구하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낭비를 하며, 곧 빈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빈곤을 가장 안전하게 방지하는 길은 내면의 부, 정신의 부이다. 


왜냐하면 정신의 부는, 그것이 우수함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료함이 만연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를 줄 모르는 사상의 활발한 움직임, 내면 세계, 외면 세계의 제 각기 다른 여러 현상에 접하며 끊임없이 새로이 솟아오르는 사상의 유동, 시시각각으로 다른 사상의 결합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이것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충동과 같은 것들 때문에, 긴장이 이완된 몇 차례의 찰나와도 같은 순간을 제외하면 뛰어난 두뇌는 전혀 무료함을 느낄 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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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지혜가 풍부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고통이 없도록, 상처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시간의 여유와 안정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용하고 은근한, 그리고 유혹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생활방식을 추구하며 따라서 이른바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된 뒤부터는 은둔·한거를 즐기고 특히 정신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차라리 고독을 선택할 것이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 크면 클수록 필요로 하는 외부의 것은 그만큼 적어지게 되며 자신 이외의 인간에는 그만큼 무게를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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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며 가장 좋은 일, 가장 중요한 일을 해주는 것도 자기 자신이다. 


이 가장 좋고 중요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즉 향락의 원천을 자기 자신 속에서 얻을 수 있을수록 그만큼 행복해진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은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한 말은 참으로 옳은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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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각각 세 가지 근본 능력 중 어느 것이 내면의 주류를 이루는가에 따라서 향락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중 첫 번째는 재생력에 대한 향락이다. 


음식,소화,휴식,수면에 대한 향락이다. 


심지어는 어떤 나라의 국민 전체가 이런 종류의 향락을 이른바 국민적 쾌락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적인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두 번째는 자극감성에 대한 향락이다. 


유력(遊歷),도약,격투,무용,격검(擊劍),승마 그 외의 모든 운동경기, 그리고 사냥, 심지어는 투쟁과 전쟁 등에 대한 향락이다. 


세 번째는 정신적 감수성에 대한 향락이다. 


고찰,사유,감상,시작,회화조각,음악,학습,독서,명상,발명,철학적 사색 등에 대한 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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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행복론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세 부류로 나눴는데 이것은 참으로 정확하고 뛰어난 분류이다. 


첫 번째, 자연스럽고 없어서는 안 될 욕망. 


이것은 충족시키지 못하면 고통의 원인이 되는 욕망으로 이것에 속한 것은 식(食)과 의(衣)뿐이다. 


이것을 충족시키기란 매우 쉽다. 


두 번째,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필요하지는 않은 욕망. 


이것은 성적 만족에 대한 욕망이다. 


하지만 디오게네스 라엘티오스의 보고에 의하면 에피쿠로스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에피쿠로스의 설을 조금 정리하고 퇴고를 해서 기술하고 있음을 사전에 밝혀둔다.) 


두 번째 욕망은 첫 번째 욕망보다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세 번째,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 

이것은 사치, 탐닉, 영예, 영화에 대한 욕망이다. 


끝이 없으며 충족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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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날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러한 일이 실제로 행해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가장 중시하고, 자기 자신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며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보다도 오히려 타인의 생각을 문제삼고 따라서 원래의 자연스러운 순서를 뒤집어서 타인의 생각을 자기 현실생활의 한 부분이라 보고 자신에게 있어서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단순한 관념적인 부분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향 때문에 파생적·제2차적인 것을 주요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본질 그 자체보다도 타인의 두뇌에 비친 자신의 본질의 영상에 오히려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직접적으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처럼 직접적인 것으로서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예전부터 허영이라고 불려왔는데 ‘허영'이란 이러한 노력의 덧없음, 내용의 공허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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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검토해 보면 우리들이 지금까지 해온 배려나 걱정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것들은 타인의 생각에 대한 배려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병적으로까지 민감한 까닭은 그렇게도 자주 상처를 받는 우리들의 자존심이라는 것의 기초에, 우리들의 모든 허영과 허세의 기초에, 모든 겉치레와 과장의 기초에 타인의 생각에 대한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배려, 이 편집이 없다면 사치라는 것은 지금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든 자부심, 체면, 얼굴의 표정 등은 그 종류·방면의 여하를 막론하고 이러한 배려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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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간의 두뇌에 있는 대부분의 의견이 일반적으로 얼마나 잘못되고 불합리하고 도리에 어긋난 엉터리 같은 것인지, 따라서 이러한 의견 자체는 뒤돌아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타인의 의견이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에게 미치는 현실적인 영향이 얼마나 적은 것인지, 또한 일반적으로 타인의 의견은 대부분이 매우 유해하며 타인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거나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어떤 음색, 어떤말투로 하는가를 듣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열이면 열 모두가 화병에 걸려버릴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명예라는 것도 결국은 간접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 직접적인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그 외의 여러 가지 이러한 종류의 사실들을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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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과 자긍심의 구별은, 

자긍심은 어떠한 점에서 자신이 압도적인 가치를 가진 것에 대해서 이미 부동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임에 반해서 

허영심은 이러한 확신을 타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소망이며,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마음속에 확신을 불러일으키면 그 결과 자기 스스로도 타인의 확신을 자신의 확신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밀한 기대가 수반된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긍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내부에서 생겨나는, 직접적인 평가인데 반해서 

허영심은 이러한 평가를 외부에서, 간접적으로 얻으려고 하는 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영심은 사람을 능변가로 만들며 

자긍심은 과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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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긍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긍심을 갖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저 자긍심을 펼쳐보여 자긍심을 가장하는 정도의 것인데 모든 억지로 짜 맞춘 역할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역할로부터는 곧 전락해 버리게 된다. 


자신이 매우 뛰어난 장점과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확신하고 이 확신이 굳건하고 흔들림 없는 것이어야만 참으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확신은 잘못된 확신일 경우도 있을 것이며, 혹은 단순히 외면적·인습적인 장점에 바탕을 둔 확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신이 현실적으로 진지한 확신으로서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러한 것은 자긍심의 자긍심다움에 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상, 자긍심은 일반적인 인식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마음에 따라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긍심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은, 그래봐야 그것은 최대의 장애물이라는 의미이지만, 바로 허영심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시인에 처음부터 완전히 안주하는 것이 자긍심이라는 것의 전제조건임에 반해서 허영심은 무엇보다 먼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의 호평을 얻도록 하며, 그런 다음 호평에 바탕을 두고 자신에 대한 시인을 확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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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에 대한 논의보다 훨씬 더 어렵고 귀찮은 것은 명예에 대한 논의이다. 


가장 먼저 명예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의를 내릴 생각으로 “명예란 외면적인 양심이며, 양심이란 내면적 명예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명료하고 근본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멋진 설명이 될 것이다. 


따라서 "명예란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들의 가치에 대한 타인의 생각, 주관적으로 보면 이 생각에 대한 우리들의 두려움이다."라고 해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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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 타인의 관계는 

주로 첫 번째로는 나의 것과 너의 것이라는 사법권의 관계, 

두 번째로는 책임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간이 담당하는 일, 

마지막으로는 성적 관계이다. 


이 세 종류의 관계에 대응하는 것은 시민적 명예와 직무상의 명예와 성생활상의 명예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각각 또 다시 몇 개의 종류로 나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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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명예라는 명칭은 시민계급으로부터 취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적용 범위는 모든 계급에 무차별적으로 미치고 있다. 


최고의 신분·계급도 예외는 아니다. 


그 누구도 시민적 명예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시민적 명예는 매우 중대한 것이다. 


모두들 이 중대한 것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실하지 못하고 신용을 배반하는 자는 무엇을 하든, 그 누구이든 성실과 신용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들의 상실에 수반되는 씁씁한 결과는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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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상의 명예란, 

어떤 직무를 관장하는 사람이 그것에 필요한 모든 성질을 실제로 갖추고 있다. 


실제로 모든 경우에 있어서 직무상의 임무를 확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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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생활상의 명예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살펴보아 거기서 볼 수 있는 원칙을 근원까지 환원시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동시에 명예라는 것이 결국은 공리적인 배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할 수도 있게 된다. 


성생활상의 명예는 성격상 여성의 명예와 남성의 명예로 나뉘어지며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말할 필요도 없는 동업자 기질을 가지고 있다. 


단결적 정신이다. 


여성의 생활에 있어서는 성적 관계가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명예 중에서는 여성의 명예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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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은 명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피하고, 명성을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따른다.'는 말은 오솔라우스가 자신의 저서 『명성에 대해서』에서 역설한 내용인데 이말의 정당함도 앞서 설명한 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명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동시대인들의 취향에 영합하며, 명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이것에 대항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성은 얻기는 힘들지만 유지하기는 쉽다. 


그러므로 명성은 명예와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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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본다면 가장 행복한 운세를 타고난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격렬한 고통을 모르고 평생을 보낸 사람이지, 최고로 격렬한 기쁨이나 커다란 향락을 맛본 사람이 아니다. 


최고의 기쁨이나 향락으로 일생의 행복을 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잣대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향락은 어디까지나 소극적·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즉, 향락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사고방식은 질투하는 마음이 품는 미망이며 질투하는 마음이 이 미망을 품는 것은 질투하는 마음이 받는 당연한 천벌인 것이다. 


이에 반해서 고통은 적극적·긍정적으로 느껴지며 따라서 고통이 없다는 것은 인생의 행복을 재는 잣대이다. 


고통이 없는 상태에 있으며 거기에 무료함이 없다면 대체적으로 지상의 행복을 달성한 것이라고 봐도 좋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가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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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 철학적 가르침을 받아들여 인간의 모든 존재가 오히려 없는 것이 나은 것으로 이것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 최선의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에도, 어떤 사태에도 커다란 기대를 걸지 않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정열적으로 추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잃었다며 크게 슬퍼하며 울지도 않게 된다. 


플라톤의 ‘게다가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사물 중에 혈안이 되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고 한 말에도 철저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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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그네의 눈에는 모든 풍물이 멀리서 봤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보이며 점점 다가감에 따라서 변화를 하게 되는 것인데 결국 인생도 그런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 인간의 소망이 바로 그렇다. 


처음 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아니 그것보다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곧잘 있는 법이다. 


또한 찾고 있던 것을 처음 더듬어가기 시작한 길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전혀 다른 길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향락이나 행복, 기쁨을 원했는데 그 대신에 계발이나 통찰, 인식, 즉 겉만 번지르르하고 덧없는 재물 대신에 언제나 진실된 재산이 주어지는 경우도 흔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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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희망에 의지하여 미래만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앞을 바라보며, 미래에 속한 일만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서둘러 이를 받아들이고, 현재를 되돌아보지도 않고, 맛보려 들지도 않고 지나쳐 가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영리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머리에 묶여 있는 봉에 매달려서 끊임없이 눈 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지금 당장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여물에 끌려서 걸음을 재촉하는 이탈리아의 당나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당면한 일에만 국한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면서 일생을 비웃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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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미래에 대한 계획과 배려에만 모든 마음을 기울이거나, 과거에 대한 동경에 빠지지 말고 현재야말로 유일하게 현실적이고 확실한 것이라는 사실, 
이에 반해서 미래는 대부분 우리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전개된다는 사실, 
심지어 과거조차도 우리들의 상상과는 달랐다고 하는 사실, 
그리고 미래와 과거 모두 전체적으로 보면 겉모습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육안에는 대상을 작게 보이게 하는 간격이 있지만 심안(心眼)은 대상을 크게 보이게 하는 법이다. 


진실하고 현실적인 것은 현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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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과거에 품었던 희망에 대한 좌절이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씁쓸한 표정으로 이 한때를 숨막히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난 일에 화를 내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처럼 좋은 현재의 한때를 뒷전으로 밀쳐내거나, 경솔하게도 이것을 망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걱정을 하는 일은 물론, 회한에 잠기는 일에도 일정한 시간만을 할애하는 편이 좋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미 일어난 일은, ‘제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이제는 지나버린 일로 치부하자. 

제 아무리 괴로워도 잠겨드는 마음을 진정시키자.'라고 생각하고, 
미래의 일은 '그것은 신의 뜻에 달린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이에 반해서 현재는 '하루 하루를 일생이라고 생각하라.’ 

(세네카)는 말에 따라서 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시간을 가능한 한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쇼펜하우어_인생론 #아르투어_쇼펜하우어


사교계라는 것은 모두, 가장 먼저 필연적으로 인간이 서로에게 순응하고 억제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사교계는 그 범위가 크면 클수록 운치가 없어지게 된다.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홀로 있을 때뿐이다. 


따라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홀로 있을 때만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교에 있어서 강제라는 것은 언제나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교는 희생을 요구하는데 자신의 개성이 강하면 그만큼 희생이 커진다. 


따라서 인간은 각자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가치에 정확하게 비례하여 고독을 피하거나, 고독에 견디거나, 고독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독에 빠졌을 때 비참한 인간은 그 비참함을, 위대한 인간은 그 위대함을, 즉 각자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 그대로의 천성의 등급을 나타내는 표에서 우위에 서게 될수록 그만큼 고독해진다. 


그것도 본질적으로 불가피한 고독인 것이다. 


그러한 경우 정신의 고독에 따라서 신체적으로도 고독하다면(처자가 없는 것) 이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신체적으로 고독하지 않다면 자신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리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몰려들어 방해를 하고, 적대시하기까지 하면서 그 사람의 자아를 앗아가 버리지만 이를 보상할 만한 것은 무엇 하나 건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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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간은 누구나 가장 완전하게 융화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상대할 때일 뿐이다. 


친구와도, 연인과도 완전히 융화할 수는 없다. 


개성이나 기분의 차이 때문에 반드시 다소나마 부조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의 근본적인 참된 평화와 기분의 완전한 평정, 즉 건강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이 지상의 재산은 고독 속에서만 추구할 수 있으며 철저한 은둔을 통해서만 지속적인 마음으로 가지고 있을 수가 있다. 


이러한 경우, 그 인간의 자아가 뛰어나고 풍요로운 자아라면 틀림없이 가난한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태를 향수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해 보면 우정이나 사랑, 부부관계 등이 사람과 사람을 매우 밀접하게 연결시켜주고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완전히 정직하게 상대하고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뿐으로 그 외에는 기껏해야 자신의 자식들 정도일 것이다. 
객관적, 또는 주관적인 조건 덕분에 사람과 접촉할 필요가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그 만큼 사정은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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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심함과 관용을 크게 발휘하기 바란다. 


세심함에 의해서 손해·손실을 면할 수 있으며, 관용에 의해서 분쟁을 면할 수 있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상 그 어떠한 개성도, 제 아무리 열악하고 가엾기 그지없는 어리석은 개성이라 할지라도, 배격한다는 것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누가 뭐래도 개성은 자연에 의해서 결정되어지고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성은 영원한 형이상학적 원리에서 출발, 현재 있는 모습 외의 모습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불변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너무 심한 개성이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이런 별종도 있는 법이군.’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를 침해하여 생사를 건 싸움에 도전하게 된다. 


왜냐하면 상대의 참된 개성, 즉 그 도덕적 성격·인식능력·기질·인상 등과 같은 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들이 그 사람의 본질적인 성격을 도덕적으로 완전히 부인한다면 상대는 우리들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고 싸움을 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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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물을 자신 이상을 볼 수는 없다. 


이것은, 누구나 타인을 봐도 동시에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모습밖에는 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자기 자신의 지식의 힘에 따라서 타인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지식의 힘이 가장 열등한 부류에 속해 있다고 한다면 타인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정신적 재능도, 비록 그것이 제 아무리 위대한 재능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작용해올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보더라도 자신은 그 사람 개성의 가장 저급한 면, 즉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약점, 기질과 성격의 결함밖에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이러한 약점과 결함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라고 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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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에 있어서의 우월함은 무엇보다도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 그것도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낸다고 하는 점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상대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러한 상대가 없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게 해주는 것은 현명한 처사이다. 


그렇게 하면 우정은 더욱 굳건해진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가끔 보여줘도 아무런 지장도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는 그러는 만큼 더 그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이다. 


‘타인을 중히 여기지 않는자는 타인들로부터 중히 여김을 받는다.’ 라는 적절한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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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면 믿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라. 


그렇게 하면 상대는 대담하게도 더욱 거짓말을 하게 되어 결국에는 들통이 나게 되는 법이다. 


이와는 반대로 상대가 숨기고 싶어하는 진상의 일부를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 점은 믿을 수 없다는 모습을 보여 상대가 나의 반박에 열을 올리며 진상의 전부를 마치 후속부대처럼 차례 차례로 내보내도록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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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작용과 사물의 덧없음을 언제나 잊지 말고, 

현재의 일을 보고는 곧 그 반대를 상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행복에 있어서는 불행을, 

우정에 있어서는 적의를, 

맑은 날에는 흐린 날을, 

사랑에 있어서는 미움을, 

신뢰를 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배신을 당해 후회하는 장면을 각각 선명하게 그려보고, 

또한 그 반대의 경우에도 각각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언제나 깊은 사려를 잃지 않고, 쉽게 기만당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참된 처세술의 끊임없는 원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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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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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지 한동안은 남들에게 감추어 두는 것이 좋다. 


당신의 새로운 업적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알아보고 감탄할 때, 그 업적의 가치는 한층 더 커지는 법이다. 


당신의 트럼프 카드를 상대방에게 모두 보여주고 나서 게임을 하는 것처럼 무익하고 어리석은 짓은 없다. 


당신이 분명한 입장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게 잔뜩 기대를 건다. 


특히 당신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끄는 경우에는 그들이 거는 기대가 한층 더 커지는 법이다. 


무슨 일이든 약간의 신비감으로 포장하라. 


그러면 바로 그 신비감이 사람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설명을 해 주는 경우에도 모든 것을 너무 분명하게 설명하지는 말라. 


일상의 대화에서 당신의 속생각을 상대방에게 모조리 드러내지는 않는 것처럼, 설명도 그런 식으로 해야 한다. 


신중한 침묵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거룩한 신전이다. 


당신이 어떤 계획을 공개해 버리는 경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비난할 기회를 노릴 뿐이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사람들이 당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들라. 


신의 석상을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석상을 숭배하는 사람이 석상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기보다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더 원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희망을 잔뜩 걸도록 만드는 것은 대단히 세련된 솜씨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신에게 감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졸렬한 짓이다. 


희망은 오랫동안 지속되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얼마 못 가서 사라진다. 


예의를 차릴 때보다는 남에게 의존할 때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기대하는 법이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때로는 두 번 생각해 보고나서 행동하고, 때로는 최초의 충동에 따라 행동하라. 


삶이란 날카로운 지성과 감각적 충동이 대립해서 싸우는 전쟁이다. 


예민한 감각은 싸움에서 자기가 노리는 것을 수시로 바꾸는 전략을 쓴다. 


위협을 하면서도 그 위협에 따라 그대로 공격하는 일은 절대로 없고, 다만 적이 위협을 눈치채지 못 하기를 바랄 뿐이다. 


감각은 자신의 전략을 항상 감추려고 하기 때문에, 공중에서 잘 겨냥하고 있다가 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정확하게 내려친다. 


적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일부러 자기 목적을 드러낸 다음에는 우회해서 기습하여 적을 제압한다. 


그러나 날카로운 지성은 이러한 기습을 미리 예견하여 경계하고 오히려 그런 공격을 숨어서 기다린다. 


지성은 적이 일부러 흘려서 알려 주는 정보를 언제나 그와 반대되는 내용으로 파악하고 위장된 속임수를 모두 알아차린다.

그래서 최초의 충동이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고 두 번째 충동이 오기를 기다린다. 


때로는 세 번째 충동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때도 있다. 


그러면 감각은 적이 자신의 전략을 미리 간파했다고 깨닫고는 공중으로 더 높이 날아 올라간다. 


그리고 전략을 바꾸어서 다른 속임수를 쓴다. 


진리를 내세워서 속이려 드는가 하면, 속임수를 쓰지 않는 척하면서 속이려고 하고, 가장 솔직한 자세를 솜임수의 바탕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와 대립하는 적인 지성은 경계를 한층 강화해서 자신을 방어하고, 빛으로 겉을 싸서 위장한 암흑을 알아채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하게 보일수록 더욱 교묘하게 마련인 속임수를 모두 간파하고 만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거대한 뱀 파이톤의 속임수가 온 누리에 파고드는 태양신 아폴로의 햇살과 싸우는 것이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남을 조종할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라.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의지를 움직여서 행동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남을 조종하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결심보다도 기술이 더 필요하다. 


당신은 어디서부터 그들에게 손을 대어야 좋을지 알아야 한다.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각각 특수한 동기가 있는데, 그 동기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스스로 우상으로 삼아 떠받드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명성을, 어떤 사람은 사리사욕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쾌락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다.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란 바로 이러한 우상을 알아내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이 행동을 할 때 그 동기가 주로 어디 있는지 알아내라. 


그러면 당신은 그의 의지를 조종하는 열쇠를 쥐게 된다. 


상대가 행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동기를 이용하라. 


이러한 동기는 가장 고상한 천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고, 대개는 가장 저열한 천성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사람의 천성이란 통제가 잘 된 경우보다 무질서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우선은 어떤 욕심이 그 사람을 지배하는지 추측해 보라. 


그런 다음에 그럴듯한 말로 그 욕심을 부추기고, 이어서 그를 유혹하여 행동하게 만들라. 


그러면 그의 자유의지가 언제나 당신 손아귀에 들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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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라. 


그들을 알아보고 동조하는 것도 위대한 능력이다. 


그 시대의 위대한 사상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기적처럼 매우 귀한 것이다. 


위대한 사상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일치시키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천박하고 무지한 군중이 뭔가에 홀렸다고 느낄 만큼 강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대한 사상가를 존경하고 따르며 숭배한다. 


위대한 사상은 말이 없어도 설득하고, 애쓰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는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 결실인 행복이 커질수록 더욱 고귀한 것이 된다. 


이러한 사상을 식별할 줄 알고 지지하며 활용하는 것은 뛰어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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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용기가 육체적 용기보다 훨씬 우월하다. 


정신적 용기는 언제든지 빼어서 휘두를 태세가 갖추어진 칼이 신중함의 칼집에 꽂혀있는 것과 같아야만 한다. 


그것은 당신을 보호하는 방패이다. 


육체적 허약함보다도 정신적 비겁함이 사람을 한층 더 저열하게 만든다. 


수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우수한 능력은 구비했지만, 강인한 의지력이 없었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살다가 게으름 속에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 


지혜로운 대자연은 꿀의 단맛과 침의 따금한 맛을 결합하여 꿀벌에게 주었다. 


이것은 매우 사려 깊은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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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숨겨두라. 


주위 사람들의 수준에 자신을 맞추라. 


당신의 능력을 누구에게나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필요 이상으로 힘을 사용하지는 말라. 


지식이든 힘이든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말라. 


매를 이용해서 새를 잡는 능숙한 사냥꾼은 새를 추격하는 데 꼭 필요한 숫자의 매만 공중으로 날려보낸다. 


오늘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 보인다면, 내일은 드러내 보일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드러내지 않은 새로운 것들을 언제나 숨겨 두고 있다가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게 하라. 


날마다 새로운 것을 보여 주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당신에게 기대감을 품게 되고, 당신의 능력의 한계도 감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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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요구를 거절해야 할 때, 가장 점잖게 거절하는 방법은 화제를 슬그머니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무슨 요구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척해서 거절할 수도 있다. 


이런 행동은 상대방의 요구를 당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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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할 때는 딱 잘라서 거절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상대방이 점차 실망을 느끼도록 하라. 


또한 재고의 여지도 없을 정도로, 절대로 안 된다는 식으로 거절하지도 말라.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당신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거절당하는 상대방이 맛보는 쓴맛을 완화시키기 위해 그가 당신에게 희망을 걸 여지를 남겨 두라. 


정중한 태도로 상대방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수락해 주지 않는 대신에 말이라도 친절하고 그럴듯하게 해 주라.


남의 요구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말을 하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본 뒤에 그런 말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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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제일 먼저 착수하는 사람은 훌륭하다. 


게다가 그 일을 성공시킨다면 두 배로 훌륭하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다면, 먼저 선수를 치는 사람이 유리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시작했더라면 불사조와 같이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제일 먼저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만이 명성이라는 유산을 차지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장남에게 상속되고 남은 부스러기나 받는 동생들과 같다. 


먼저 시작한 사람을 모방하는 앵무새가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세상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는다. 


비범한 사람들은 남보다 뛰어나게 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항상 신중하게 행동한다. 


그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이유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영웅들의 이름이 열거된 황금의 책에 그들의 이름을 기입한다. 


어떤 사람들은 거창한 일을 두 번째 시작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보다 중요성이 떨어지는 일을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이 되기를 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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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떠한 것도 극단적으로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말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미 중용에 모든 가치를 부여했다. 


옳은 것이라해도 극단적으로 밀고 가면 그것은 그른 것이 된다. 


오렌지에서 즙을 모조리 짜내고 나면, 그 오렌지는 맛이 써진다. 


어떤 것을 즐길 때에도 결코 극단에 치우치지 말라. 


지나치게 약삭빠른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암소의 젖을 지나치게 쥐어짜면 우유가 아니라 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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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자신을 알라. 


판단과 성향 면에서 당신의 소질과 능력을 파악하라. 


자신을 알지 못 하면 당신은 자신을 지배할 수 없다. 


얼굴을 보여 주는 거울은 있지만, 마음을 보여 주는 거울은 없다. 


그러므로 자신에 관한 주의 깊은 성찰을 마음을 보여 주는 거울로 삼으라. 


외모는 잊어버리고, 내면의 자질을 간직한 채 그것을 개선하고 완성시키라. 


일을 처리하기 위한 당신의 지식과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용기를 발휘하기에 앞서서 먼저 그 용기를 시험하라. 


당신의 발판은 튼튼하게 유지하고, 모든 일에 관해서 항상 명석하게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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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을 품지 않는 사람, 지혜롭고 올바른 사람, 그리고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라. 


실제로 그러한 인물이 되라. 


단순히 남의 눈에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데 그치지 말라. 


하물며 그런 사람인 척 가장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요즈음에는 사람들이 철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철학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언제나 가장 중요시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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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을 두려워하고, 
악의를 품은 사람을 혐오하며, 
오만한 사람을 경멸하고, 
바보를 모욕하며, 
괴짜를 무시한다. 


그러므로 남의 존중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존중하라. 


그리고 남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당신도 남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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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도와주는 사물과 힘을 각각 두 가지씩 준비하라. 


그렇게 해서 당신의 삶을 이중으로 보호하라. 


사물이나 힘이 아무리 탁월한 것이라 해도 한 가지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두 가지씩 마련해 두어야 한다. 


특히 성공, 호의 또는 존경을 얻는데 필요한 바탕이나 수단은 반드시 두 가지씩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유한하고 세월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변하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이러한 마음에 좌우되는 사물은 특히 변화가 심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변화와 유한성에 대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인생의 법칙은 크게 도움이 되는 우수한 사물과 힘을 두 가지씩 비축해 두라는 것이다. 


대자연이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부분을 각각 두 개씩 마련해 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사물과 힘을 각각 두 가지씩 준비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모든 종류의 어리석음을 참아 주려면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크게 의존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참아 주어야 할 때가 많은데, 이것은 자제력을 기르기에 좋은 훈련이다. 


인내에서 평화가 나온다. 


인내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가장 값진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인내심을 발휘할 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 세계로 도피하라. 


그 속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자신에 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한다고 해도, 남들과 담을 쌓고 자아의 껍질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 좋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상대방의 사람됨을 판단할 때 외모를 보고 판단을 그르치지 말라. 


이것은 가장 큰 잘못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가장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다. 


어떤 물건을 살 때도 그 품질보다 값에 속는 편이 더 낫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데, 이럴 때는 그의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됨을 파악해야 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물건에 관해서 아는 것과는 다르다. 


상대방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고, 그 사람됨을 자세히 알아내는 일은 심오한 철학처럼 어렵다. 


책의 내용을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관해서도 아주 깊이 연구해야만 한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과는 절대로 경쟁하지 말라. 


그런 경쟁을 한다면 당신은 대등하지 못 한 조건에서 다투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경쟁에 나선다. 


그는 수치감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잃어버릴까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례한 말과 행동이라면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지 모두 동원한다. 


이처럼 위험 부담이 엄청난 경쟁에 당신의 소중한 명성을 내맡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얻었지만, 순식간에 잃을지도 모르는 명성이라면 더욱이나 안 된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십 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명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명성과 상대방의 명성이 동등한 것인지를 미리 저울질해 본다. 


그리고 최대한으로 조심하면서 경쟁에 나선다. 


그런 다음에는 적절한 시기에 물러설 기회를 잡는 현명함이 발휘되도록, 또한 자신의 명성도 보호될 수 있도록 신중한 태도로 일에 착수한다. 


비록 그가 승리한다고 해도, 그 승리로는 스스로 위험에 몸을 던졌다가 잃은 명성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사람들을 너무 허물없이 대하지 말라. 


또한 사람들도 당신을 너무 친밀하게 대하지 못하게 하라. 


지나치게 친밀한 사이가 되면 상대방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고 따라서 존경도 받지 못하고 만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천박한 일반 대중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권위의 광채를 유지한다. 


신성한 것일수록 엄숙한 예식이 더욱 필요하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언제나 경멸감이 싹트게 마련이다. 


상대방에게 자기 것을 많이 드러낼수록 더욱 불리해진다. 


웬만한 결점들은 감추어 두는 것이 현명한데, 그런 것마저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허물없이 친밀한 관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윗사람과의 경우는 위험하기 때문이고, 아랫사람과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천박한 일반 대중과 허물없이 지내는 관계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들은 너무나 어리석어서 무례해진다. 


당신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자기들이 당신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허물없이 친밀한 관계는 천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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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적에게 가르쳐 주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내리는 올바른 판단을 따르는 일이 절대로 없다. 


그렇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신중한 사람은 남들이 권하는 방법, 심지어 이미 사용해 본 방법도 맹종하는 경우가 절대로 없다. 


무슨 일이든지 반대되는 두 가지 관점에서 검토해야만 한다. 


즉, 양쪽의 견지에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올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할지 결단을 내리기가 힘든 경우에는 요행을 바라지 말고 성공의 가능성이 있는 쪽을 선택하라.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유쾌한 일은 당신이 직접 하고, 불쾌한 일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라. 


전자는 남의 호감을 사는 방법이고, 후자는 남의 미움을 피하는 방법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남의 호의를 받기보다 자신이 남에게 호의를 베풀기를 더 좋아한다. 


이것은 그의 관대한 천성을 드러내는 특징이다. 


남에게 고통을 줄 때는 누구나 상대방에 대한 동정심 또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신도 고통을 느끼는 법이다. 


그러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고통을 주지 않고 포상 또는 처벌의 수단만 동원하면 많은 사람들을 다스릴 수가 있다. 


그러므로 상을 줄 때는 당신이 직접 주고, 처벌할 때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라. 


당신을 대신해서 불만,증오,비방의 표적이 될 다른 사람을 내세우라. 


군중의 격노는 개의 분노와 같기 때문이다. 


개는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채찍 자체가 자기에게 고통을 준다고 착각해서 그 채찍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것이다. 


채찍은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수단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사람 대신에 보복을 당해야 한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외국 제품은 무조건 좋게 보인다. 


언제,어떻게 외국으로 이주해야 좋을지 잘 판단하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서,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경우에, 자기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에게 조국이란 언제나 계모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는 시기나 받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인정해주기는커녕 보잘것없는 초기 활동만 기억하고 있다. 


바늘이 세상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갔을 때야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고, 채색된 유리 한 조각도 아주 먼 나라에서 건너온 경우에는 다이아몬드보다 비싸게 팔릴 수 있다. 


외국 물건은 무엇이든지 먼 곳에서 왔기 때문에, 또는 성능이 우수한 완제품이기 때문에 한층 고급품으로 친다. 


고향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던 사람이 온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는 인물들이 된 경우를 본다.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그의 조국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그를 존경한다. 


전자는 그들이 멀리서 왔기 때문에, 후자는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다. 


제대 위에 놓은 나무 조각상도 그것이 원래 정원에서 뒹굴던 나무토막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결코 존경받지 못 한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당신이 가진 기술의 마지막 비법은 남에게 전수하지 말고 혼자만 간직하라. 


이것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위대한 스승들의 격언이다. 


스승은 제자들보다 항상 더 뛰어나야 하고, 스승의 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술은 교묘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을 가르칠 때는 자신의 지식의 샘에서 조금씩만 퍼서 나누어주어야지, 그 샘을 통째 내주어서는 안 된다. 


이런 방식을 써야만 계속해서 존경을 받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계속 의존하는 것이다. 


남을 즐겁게 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은 상대방의 기대감을 더욱 부추기고 그들을 항상 능가하라는 것이다. 


밑천이 떨어지는 법이 없이 무엇인가 내줄 것이 항상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 


그것이 편안한 삶을 누리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중요한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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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털가죽으로 당신의 온몸을 쌀 수 없다면, 최소한 여우의 털가죽이라도 이용하라.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결코 명성을 잃지 않는다.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으면 영리한 꾀를 이용하라. 


용기라고 하는 군주의 큰길과 교활함이라는 샛길 가운데서 그 어느 쪽이든 선택하라. 


힘보다는 술수가 더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교활한 사람과 용감한 사람이 싸울 때도 교활한 쪽이 이긴 경우가 더 많다. 


어떤 것을 손에 넣을 수 없을 때는 그것을 무시해 버리면 된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당신의 삶을 지혜롭게 설계하라. 


우연에 맡기지 말고, 현명함과 예견의 힘을 동원해서 하라. 


도중에 쉴 여관이 하나도 없는 긴 여행과 마찬가지로, 즐거움이 없는 인생은 지루하기만 하다. 


이런 인생에 다양한 지식은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고상한 삶의 여로에서 첫날은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보내야 한다. 


우리는 지식을 얻고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진리를 담은 좋은 책들을 읽으라. 


좋은 책은 우리를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둘쨋날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이 세상의 좋은 것을 모두 보고 깨달아야 한다. 


모든 것을 어느 한 나라에서만 찾아볼 수는 없다. 


우주의 아버지는 모두에게 선물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으며, 때로는 가장 풍부한 유산을 가장 추하게 생긴 사람에게 주었다. 


셋쨋날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보내야 한다. 


가장 큰 행복은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비둘기처럼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비둘기처럼 정직하게, 때로는 뱀처럼 교활하게 행동하라. 


정직한 사람을 속이기는 누워서 떡 먹기처럼 아주 쉬운 일이다.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쉽게 믿고, 속임수를 쓰지 않는 사람은 남에 대한 신뢰가 강한 법이다. 


어리석기 때문에 속기도 하지만, 사람이 너무 착하기만 해서 속는 경우도 있다. 


남에게 속지 않고 속임수의 피해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남에게 속는 체험을 통해서 스스로 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 방법을 체득한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방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교활한 사람들이 함정을 많이 팔수록 현명한 사람들은 그만큼 더 의심을 많이 품어야 한다. 


그리고 남에게 속을 만큼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뱀의 교활함과 비둘기의 선량함을 동시에 갖추라. 


그러나 괴물이 되지는 말고, 천재가 되라.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영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찾을 때, 그들이 찾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그리고 자기를 통해서 그들이 얻을 이익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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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인 것이든 후천적인 것이든, 당신의 기질을 쇄신할 줄 알라. 


사람의 기질은 7년마다 바뀐다고 한다. 


당신의 취향이 더 좋게, 더 고상하게 향상되도록 기질을 바꾸라. 
태어난 지 7년이 지나면 사람은 이성을 갖춘다. 


그 후 5년마다 탁월한 재능을 새로 추가시키라. 


이렇게 추가되는 재능들이 이성을 돕도록 감시하고, 또한 다른 재능들도 발전시키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지위나 직업이 바뀌면 그의 행동양식도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양식이 완전히 변하기 전까지는 그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사람은 20세에 공작, 30세에 사자, 40세에 낙타, 50세에 뱀, 60세에 개, 70세에 원숭이가 되고, 80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의_지혜 #발타사르_그라시안


천재는 풍부한 창의력, 심원한 지성, 그리고 유쾌하고 세련된 취향이라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이것들은 하늘이 천재에게 내려 준 가장 탁월한 선물이다. 


생각을 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생각을 올바르게 하는 것, 즉 좋은 것에 대한 이해는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이다. 


올바른 생각은 건전한 판단력을 외면하지 않는다. 


판단력을 외면하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다. 


올바른 생각은 합리적인 본성에서 나온다. 


20세에는 의지가, 30세에는 지성이, 40세에는 판단력이 사람을 지배한다. 


캄캄한 밤하늘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찬란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다. 


그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방안을 항상 고안해 낸다. 


어떤 능력은 좋은 결과를 많이 거둔다. 


풍성한 행복을 거두는 것이다. 


한편, 좋은 취향은 인생 전체를 멋지고 풍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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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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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_노래 #라마나_마하리쉬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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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 세상의 모든 남녀의 사랑은 아무리 별나라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성욕이라는 본능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남녀간의 사랑은 예외 없이 이 본능이 특수화되고 한정되고 개체화된 것뿐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자. 


소설이나 희곡 작품에도 남녀간의 사랑은 자기 보존의 본능이 성욕 속에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성욕은 모든 행위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성욕은 젊은 시기에 가장 활발하며 정력과 생각의 대부분을 강제로 동원시키는 힘을 가졌다. 


그리고 그 힘은 모든 노력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기도 한다. 


성욕은 자기가 하는 일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쇼펜하우어_인생론_에세이_사랑은_없다 #아르투어_쇼펜하우어


그렇다면 성욕은 왜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가? 


그 해답은 너무 간단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알맞은 꽃을 찾기 때문이다. 


꽃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의 운명이 된다. 


모든 사랑은 비극이든 희극이든 가장 엄숙한 것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추구하고 있는 인생 최대의 이슈이다. 


그 이유는 사랑을 통해 자신들의 후계 세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인류가 가진 종족 보존 본능의 행위가 바로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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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자신의 연인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찬미가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라 해도 그 최종 목적은 오직 인류의 종족 유지라는 사명감을 완수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정신적 사랑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육체 관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과, 아무리 둘이 사랑을 확신하고 있어도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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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사랑에서 성적 판타지라는 묘약이 없다면 어느 남녀가 그토록 서로 만나려고 애쓰겠는가? 


남녀가 데이트를 하러 갈 때 멋진 옷을 차려입고, 수없이 거울을 보는 그 처절한 노력이 성 충동 때문이 아니라면 누가 그 힘든 일을 기꺼이 하겠는가? 


인간 개체가 이제 이 에로스적 환상의 묘약에 속아서 그것을 행복과 만족으로 여기고 열심히 이기적인 집착에 매달리는 동안, 신이 혹은 자연이 이루려는 인류 종족 유지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지만 사실상 인간은 신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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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인간에게 성욕이 단순히 감각적인 쾌락과 만족에만 있다면 왜 인간은 상대방 이성을 구하는데 그렇게 까다롭겠는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키가 커야 하고 성격은 어떻고 용모는 어떻고 건강과 가문과 재산을 따지는가? 


성적 욕구가 쾌락에 그친다면 상대가 아무 여자나 아무 남자라도 그만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런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어떤가? 


그들도 성적 만족을 위해 그렇게 까다롭게 짝을 고르는가? 


우리가 동물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내면에 이성 선택에 어떤 기준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간만큼 짝을 고르는 데 그토록 진지한 선택과 노력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수없이 닥치는 위험과 재난에서도 불구가 되지 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후손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눈물겨운 노력이 곧 사랑이며, 그 사랑은 성적 판타지라는 묘약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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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인간을 만든 신의 뿌리 속에 있으므로 개인의 고통이란 이 지상에 인류의 존속을 원하는 신의 의지보다 중요하지 않다. 


옛 선인들도 이 같은 진리를 이미 알고 인간을 지배하는 신을 잔인하고 사나운 폭군처럼 그렸다. 


이제 인간은 신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상적인 여인 아리아드네를 손에 넣은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가 욕정을 만족시킨 다음 곧 그녀를 버린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만일 페트라르카가 사랑에 만족했던들 그는 마치 둥지에 알을 깐 새가 울지 않는 것처럼 벙어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내 글을 읽고 현재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실망하거나 반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왜 사랑을 하는가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그 본질을 깨닫게 되면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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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꽃에서 찾아낸 아름다움이 그들의 행복이라면 또 다른 어떤 불행한 사람이 똑같은 꽃을 보고 비극의 그림자를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은 꽃에서 웃음을 찾아내고, 무관심한 사람은 그 꽃을 그저 무미건조학 바라볼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꽃이라는 외적 조건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마음의 눈으로 꽃을 그려내고 있다는 뜻이며 행복이나 불행 역시 외적 조건이 아니라 모두가 자기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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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자기를 때리면 금세 적의를 품는다. 


사람도 똑같다. 


조금이라도 자기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무시당하거나, 멸시를 받으면 불쾌해지고 적의를 품는다. 


이렇게 인간의 명예욕은 항상 제3자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남으로부터 칭찬이나 찬사를 받거나 모욕과 경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냐는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남으로부터 찬사나 아부 받기를 좋아하거나 남의 비난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이 심한 사람들, 예컨대 남이 자기를 판단해주는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결국 이웃의 노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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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불필요한 불안과 걱정에서 떠나 현재의 물질적·정신적 가치의 10분의 1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예을 들면 자기 능력에 버거운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남의 눈 때문이며, 지나치게 큰 집에서 사는 것도 남들이 자신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려고 힘들게 사는 것이다. 


자기 수입에 비해 너무 비싼 옷을 입거나 고급 차를 타면서 매달 할부금에 시달리는 것도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자기 능력에 과분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모두 처분한다면 훨씬 만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들의 불행은 대부분 남을 의식하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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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고뇌와 번민,불안과 초조의 80~90%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에서 나온다. 


또한 우리들의 질투나 증오심도 대체로 같은 뿌리에서 자란 가지들이다.

#사랑은_없다 #아르투어_쇼펜하우어


우리들의 행복은 주로 안정된 기분과 흐뭇한 만족감을 뜻한다. 


지금의 기분이나 상태가 좀더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상태가 행복이다. 


그러나 남의 눈을 의식하는 순간 안정된 기분은 흐트러지고 불만감이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 본위의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나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법이다. 


만일 우리가 이 허영심을 줄이면 현재의 불행은 50분의 1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이 허영심을 없애는 것은 우리들의 육체를 괴롭히는 가시를 뽑아버리는 셈이지만 그것은 선천적인 고질병이어서 버리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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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세 가지 유전병은 명예욕과 허영심과 자부심이다. 


그 중 허영심과 자부심은 차이가 있다. 


자부심은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허영심은 타인이 자신에 대해 그런 신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자부심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지만 허영심은 타인이 자신을 존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자부심은 말이 적지만 허영심은 말이 많다. 


자부심은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지만 허영심은 남이 자기를 존중케 하기 위해 많은 설득과 위장이 필요하고 때로는 위압도 필요하게 된다. 


참된 자부심은 자신의 우수한 가치에 대한 확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만 허영심은 남으로 하여금 자신을 과대 평가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몰라도 결국은 밑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입이 가벼운 사람보다 입이 무거운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것은 말이 적은 사람이 말이 많은 사람보다 자부심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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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잃은 재물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한 번 잃은 명예는 다시 회복할 수가 없다. 


명예란 개인이 지닌 뛰어난 특성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성품, 즉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품을 통해서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명예는 소극적이고, 명성은 적극적이다. 


명예는 그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명성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특질이나 재질에 의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성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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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의지가 자발적으로 생존을 포기하려면, 이미 그 이전에 우리는 커다란 고뇌에 의해 절망적인 좌절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치며 버티다가 마침내 마지막으로 절망의 절벽에 섰을 때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그제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고뇌의 과정을 거쳐서야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높은 영혼의 정신적 경지에 이를 수가 있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만이 우리가 말하는 해탈, 즉 살려는 의지의 포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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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철학을 연구하고 신앙을 가지려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의 생명이 무한하고 고통이 없다면 아무도 이 세상이 왜 존재하며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철학과 종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이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와 불멸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만일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의 영원한 생명이 입증된다면 신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곧 식어버릴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인간의 영원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도 신앙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철저한 유물론이나 회의적인 세계관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감화를 줄 수가 없다.

#사랑은_없다 #아르투어_쇼펜하우어


당신이 만일 국가 발전에 어떤 유토피아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면 정치적인 유일한 해결책은 소수의 현명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통치자가 전제 정치를 어떻게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소수의 현명하고 청렴한 통치자를 어떻게 뽑느냐는 것은 국민의 의식 수준에 달려있다. 


더럽고 추한 정치 지도자가 다스리게 되는 것은 그런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의 착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준에 맞는 인물을 골라 낸 것일 뿐이다. 


그리고 탁월한 통치자를 배출하려면 성품이 고귀한 남자와 지능이 뛰어난 여자가 결혼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한 가정에 있어서도 고귀한 남자와 지능이 뛰어난 여자의 결합보다 더 실질적인 해결책은 없다. 


이 제안이 나의 유토피아, 그리고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위한 것이다.

#사랑은_없다 #아르투어_쇼펜하우어


우리는 언제 질병과 재난과 전쟁의 재앙이나 슬픔과 고통이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방치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평화나 행복은 우연히 차지하게 된 잠시 동안의 휴식에 불과하다. 


이제 곧 고통과의 투쟁과 맞서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벗어날 때까지는 끝없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인생이란 휴전 없는 고통과의 끝없는 전쟁의 계속이며 행복이나 만족을 느끼는 시간은 극히 순식간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늘 고통과 맞설 무기를 든 채 끝내는 죽어간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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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애의 초반이나 전반부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행복에 대한 큰 갈망과 희망과 포부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생애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다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가 그처럼 갈망하던 사랑이나 행복이나 야망이 한낱 망상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의 후반부에서도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 했다면 그는 여전히 생의 전반부에 살고 있거나 아니면 바보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강렬한 쾌락보다는 다만 고통이 없기를 바랄 뿐이며, 우리가 흔히 주위에서 보아온 재난이나 불행을 피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 살기는 바라지도 않아. 아프지 않고 살 수만 있으면 좋겠어.’ 


당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면 당신은 이미 생의 후반부에 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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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육체의 생리적인 현상은 물리학적으로는 유예된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우리들의 정신 활동은 밤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권태를 물리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육체나 정신이나 죽음에게 승리를 안겨줄 뿐이다. 


삶의 주인은 결국 죽음이다. 


따라서 삶은 죽음이 우리를 삼켜버리기 전에 갖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한 순간이다. 


우리는 늘 삶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의지와 욕구를 불어넣고 투지를 불태우지만 그것은 마치 아이들이 비누 방울을 갖고 노는 것과 같다. 


비누 방울이 끝내는 터질 줄 뻔히 알면서도 숨을 불어넣어 크게 만들어 오래 가도록 애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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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 생애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내일은 좀더 나아지겠지, 아니면 내년에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터지겠지’ 하는 기대 속에 살다가 별 소득 없이 세월을 다 보낸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하고 후회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생존 자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환멸과 비애를 느낀다. 


인간은 늘 희망에 속아서 죽음과 씨름하는 것이다.

#사랑은_없다 #아르투어_쇼펜하우어


인간은 인간이 되었다는 자체가 이미 미궁에 빠져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아주 당연히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울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이고, 

죽음이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은_없다 #아르투어_쇼펜하우어


젊은 시절 한 때 성욕으로 인한 참을 수 없는 충동과 격정, 무서운 광기 등 저 악마적 사념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이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물론 청년기에는 그런 폭풍 같은 긴장의 시간들이며 우울함이나 비애가 깃들어 있어야 하고 노년기에는 평온하고 쾌활한 기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청년기에는 악마의 지배 밑에서 강제 노동을 감수해야 하므로 자유로운 시간이 쉽게 허락되지 않지만, 성욕이 소멸된 후에는 생명의 핵이 소진되고 인간은 껍질만 남은 인형처럼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은_없다 #아르투어_쇼펜하우어


베다의 우파니샤드 경전에는 인간의 자연적인 수명이 100세라고 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그 이전에 병으로 죽게 된다. 


따라서 나이 90이 되어 아무 질병도 없이 졸도나 경련도 없이 숨도 헐떡이지 않고 안색이 변하지 않은 채 ‘잠자는 듯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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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 마음의 그릇이 작은 사람은 자신의 무능과 무가치를 느끼지만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위대성을 더 뚜렷이 느끼게 된다. 


따라서 뛰어난 사람들은 고독해지거나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자기를 깨닫게 된다. 


또한 정신적 고독과 함께 육체적인 고독을 동시에 갖추었을 때 비로소 행복도 충만해진다. 


정신적인 고독만 있고, 육체적인 고독이 없을 경우에는 늘 자기와는 동떨어진 어중이떠중이들과 만나 자유와 마음의 안정을 빼앗기고 그 대가는 전혀 얻지 못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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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가 갖지 못 한 것을 보면 ‘저것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갖지 못 한 데서 오는 괴로움’, 즉 갖고 싶은 소유욕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것이 내 것이 아니라면?’ 이라는 의문을 품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현재 자기가 갖고 있는 소유물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해 보라는 뜻이다. 


남의 좋은 집을 보고 '나도 저런 집에서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가 이런 집도 없다면 어디서 살았을까. 이런 집에서 사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라고 상실을 가정해 보라는 것이다. 


그 순간 아까 본 멋진 집보다 내가 사는 초라한 집이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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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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