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재산이나 권력에서는 만토바가 도저히 밀라노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이사벨라 자신뿐이었다.

높은 교양으로 조금은 이름나 있던 그녀 자신의 이름을 더욱 높이는 것이었다.

훗날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가지 널리 알려진 '교양있는 만토바 후작부인'은 이 무렵부터 본바탕이 만들어져갔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이사벨라_데스테

이탈리아 르네상스식 조화란 정신과 육체, 선과 악이 명쾌하면서도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는 프로테스탄트적인 견해, 즉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의 '갈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 사이에 '갈등'이라는 혼탁하고 달콤한 관계는 없었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이사벨라_데스테

탈리아에서는 정신과 육체가 인간 속에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요체는 비좁은 정신주의의 껍데기 속에 틀어박히지 않는 대담한 영혼과 냉철한 합리적 정신에 있다.

여기에 입각한 정신과 육체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조화.

이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이사벨라_데스테

이사벨의 좌우명-"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에 나타나 있듯이, 비토리아 콜론나의 '종교적이고 청결한 정신적 결합' 따위는 이사벨라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사벨라에게는 눈앞에 있는 현실이 곧 인생이었다.

설령 그 현실이 청결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해도, 그게 바로 인생이었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이사벨라_데스테

"자를 아는 것은 곧 역사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어떤 시대를 잘 알고 싶으면 그 시대의 여자들을 잘 조사해보라"고 말한 사람은 괴테였다.

그녀에 관해서 쓴 사람들도 루크레치아의 성격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필연적으로 주변 상황이나 주위 사람들을 써넣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즉 남자에 대해 쓸 때는 주위 여자에 대해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여자에 대해 쓰면, 결과적으로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루크레치아_보르자

용병은 돈으로 고용된 군인이고, 따라서 용병대장들은 승산이 있는 싸움일 때는 용기를 내지만 대세가 기울면 부하 병사들밖에는 생각지 않는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중은 언제나 무책임한 법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렇다 해도, 피를 흘리지 않는 이사벨라의 정치에서는 "사자와 여우가 결합한"(마키아벨리) 성숙함을 볼 수 있지만, 카테리나에게는 이것이 없다.

그녀는 여우라기보다는 사자였다.

이 점에서도, 그리고 생애의 비극적인 종말에서도 카테리나는 그녀의 가장 큰 적이된 체사레 보르자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체사레도 그러했듯이, 이런 유형의 인간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법이다.

사람들은 그들한테서 영원한 '청춘'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청춘은 아름답다. 

특히 그 청춘이 감상적으로 낭비되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디딘 냉정한 정신과 함께 대담하게 발휘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군주에 대한 암살은 결코 정치체제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실례가 되었을 뿐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튿날 음모자들은 카테리나의 아이들 가운데 맏아들과 둘째아들을 성채 앞으로 끌고 갔다.

아이를 이용하여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한 것이다.

칼로 위협당한 아이들은 울면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카테리나가 성벽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맨발에 머리도 묶지 않고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오로시는 성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여기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야말로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모든 역사가가 후세에 전한 그 유명한 말이다.

카테리나는 유유히 치맛자락을 홱 걷어올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멍청한 놈들아, 이것만 있으면 아이쯤은 앞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말이다."

여기에는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스포르차

지 높은 정신을 가진 사람은 굴욕을 당하게 되면, 그 자존심 때문에 남보다 훨씬 깊은 고뇌에 빠지는 법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스포르차

카테리나에게 상냥한 것은 신의 은총 따위가 아니라 돈과 권력과 사랑이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잃고, 그것들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 가능성마저 모두 사라져버렸을 때, 그녀는 비로소 신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행운을 타고난 아름다운 여자들이 대개 젊은 시절에는 그 육체를 악마에게 내주고, 그 젊음과 미모와 행운도 모두 시들어버린 만년에 이르러서야 남은 뼈를 신에게 바치듯.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스포르차

네치아공화국은 자국의 양녀인 카네리나 왕비의 통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키프로스왕국의 내정에 간섭했지만, 그 냉혹함과 현실주의적 치밀함은 르네상스 시대의 최강국인 베네치아의 정치와 외교의 본질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무력의 절묘한 균형.

정치와 무력을 효율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방식.

무언가 변고가 일어날 기미를 눈치채자마자 대함대를 보내, 그 위력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는 베네치아.

그리고 그 위력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베네치아의 정치와 외교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정치를 보여주는 예로 손색이 없다.

역사상 지칠 줄 모르고 되풀이되는 예술(아르테), 강대국이 무력을 이용하여 약소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예술의 실례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는 법적인 정당성도, 인간성에 대한 배려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신속하고 과감한 군사행동과 정치의 노련한 조화가 있을 뿐이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이 '지혜'라고 불러온 것, 모든 시대를 통하여 역사의 현실을 움직여온 것은 바로 그것이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코르나로

자들 중에는 어떤 고통이나 비애를 겪어도 그것이 조금도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애써 그것을 극복하고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과 비애를 가슴 속에 담아두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고통이나 비애는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녀들한테서 떠나간다.

마치 운명의 여신이 그녀들한테는 평소의 전의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

이런 여자는 가장 행복한 여자다.

그리고 남자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여자이기도 하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코르나로

위선은 그 위선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저지르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고약한 악취로 사람들을 해친다.

그러나 자신의 위선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위선은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아름다움마저 지닌다.

#르네상스의_여인들 #시오노_나나미 #카테리나_코르나로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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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처음부터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군요. 

그렇다면 나도 역사적·종교적·정치적·경제적 요인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본질적인 대답으로 응수하겠습니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 바로 그것이 나중에 후세인들이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정신운동의 본질이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은 분출만 한 것이 아니라, 미술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작품'으로 결정체를 이루었습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프리드리히 2세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8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럽에는 종교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세 가지로 나누는 사고방식이 살아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는 '아테오'(ateo)와 '크레덴테'(credente)와 '라이코'(laico)라고 부르는데, 

'아테오'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를 가리킵니다.

'크레덴테'는 신앙을 가진 자인데, 특히 '프라티칸테'(praticante)라는 형용사를 붙이면 계율을 충실히 지키고 일요일에는 반드시 교회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라이코'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종교가 관여하는 분야와 관여해서는 안되는 분야를 명확히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계몽군주는 개혁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사람을 말하니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지도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하려면, 모든 사람이 그 필요성을 깨닫고 납득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목표를 실현하려면 강권을 행사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고, 따라서 전제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은 계몽군주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지만 육신은 부모한테 물려받아도 정신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하지만 피부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개인의 지식이 되기는 할망정 모든 사람의 공유재산이 되지는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그 결과를 언어로 공표해야만 비로소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도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되지요.

또한 과학적으로 냉철하게 탐구하는 정신은 편견을 뒤엎는 데에는 가장 좋은 무기이기도 합니다.

탐구벌레라 해도 좋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끌어댈 필요도 없이, 만족할 줄 모르는 탐구심이야말로 르네상스 정신의 기본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렇기는 하지만 정신운동은-르네상스든 뭐든-세상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격동기에 태어나는 법입니다.

정치의 성숙은 이것과는 반대로 세상을 차분하게 안정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제의 본질은 이윤 추구에 있으니까, 자발적이고 경쟁적이 아니면 융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스스로 파멸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요.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정치는 도가 지나친 행위를 시정하여 경제 번영을 오래 지속시키는 지혜라고 바꿔 말해도 좋습니다.

그러려면 정치의 성숙을 통한 정국 안정이 필수조건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종교는 믿는 것이고, 철학은 의심하는 것입니다.

종교와 철학은 유일한 원리를 탐구하는 과정도 전혀 다릅니다.

철학에서는 원리를 세웠다가 파괴하는 작업을 되풀이합니다.

일단 세운 원리를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고수해서는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사치가 칭찬을 받은 예는 없으니까 좋은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겠지요.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서민들은 자기가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사치를 좋아합니다.

동경한다고 해도 좋습니다.

왕족이나 영화배우나 가수들이 인기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들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을 터인 서민들이 그들을 좋아하고 지지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화려한 차림의 교황이나 추기경들 옆에는 검정색이나 갈색이나 흰색의 초라하고 수수한 옷을 걸친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바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기독교회 조직의 강점이지요.

기독교회가 화려함과 청빈을 양쪽 다 만족시키는 것은 그 양쪽을 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유럽인들은 마르코 폴로를 비롯하여 육지를 탐험한 선조들의 영향으로 중국이나 일본을 풍요로운 나라로 믿었습니다.

대항해도 거기에 도달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으니까, 이권을 바란 탐험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이든 창조의 기쁨이든,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무언가가 인간을 행동으로 내모는 법이지요.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나 티치아노의 작품 앞에 섰을 대는 이런 르네상스의 천재들을 해설한 연구서 따위는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안내원의 설명도 흘려들으면 됩니다.

그보다는 당신 자신이 '젊은 천재'가 된 셈치고 '거침없이' 그들과 마주하는 겁니다.

자기도 천재라고 생각지 않으면, 천재한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르네상스를_만든_사람들 #시오노_나나미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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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자란 결혼상대를 고를 때는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 있고 신뢰할 수도 없는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도 미워할 수 없는 남자에게 끌리는 법이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모험에 나서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법이다.

이런 유의 남자는 여자에게 나이와 종교의 차이를 넘어 그저 '남자'로만 보이는 존재다.

성도 예루살렘의 해방이라는 슬로건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것쯤은 여자에게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이기주의자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타인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는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방이든 서방이든 당시 사람들의 바람은 몸의 안전을 보장하고 세금을 적게 걷는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만 보장해준다면 지배자가 누가 되든 상관없었다.

십자군을 단순한 침략자 집단으로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의 지배자가 가톨릭교도라 해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위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대도시를 공략하기는 무척 어렵다.

집 안에서 버티는 상대를 계속 집 밖에서 공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병력과 군량이 충분하다 해도 무더위와 혹한, 비와 눈과 바람을 고스란히 감수하면서 공격해야 한다.

더군다나 배후에서 적의 원군이 나타나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역병도 발생하기 쉽다.

적과의 전투에서 죽는 자보다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위생상태가 나빠 죽는 자가 더 많은 것이 공격하는 측의 고민 중 하나였다.

더구나 공격하는 내내 병사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역사상 명장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성전(攻城戰)을 싫어했다.

그들은 어떤 책략을 이용해서든 성벽 안에 웅크린 적을 성벽 밖으로 끌어내어 대규모 전투를 벌여 승부를 가르기를 원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성과는 신통치 ㅇ낳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역사에서 종종 '정치적 정복'이라는 말이 나온다.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거나 위협하면 상대는 이를 강자로 인정하고 연공을 바침으로써 복종의 뜻을 표하는 방식이다.

지배란 곧 징세권을 뜻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인데, 이 경우 세금만 내면 공략을 피할 수 있고 약탈도 당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의 지배자나 통치 조직은 예전 그대로 남는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러나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 평범함을 돌파하는 길이 있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냉철하게 따져보고, 자기 혼자 모든 일을 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때 그 길이 열린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리 인간세계에 눈을 돌리면 인재가 마치 분수처럼 한 시대에 한꺼번에 배출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분수처럼 많은 물을 기세 좋게 뿜어올리고는 소리 없이 떨어지며 인재 고갈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런 현상이 끼치는 영향이 국내에만 한정된다면 문제해결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전 시대에 축적해놓은 것을 갉아먹으며 차분히 앉아 다음 분수가 뿜어져오르기를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인재 배출과 인재 고갈의 순환이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시기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쪽은 인재 고갈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인재 배출의 시대를 맞이하는 일이 상당한 비율로 일어나는 것이 인간세계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제후나 병사들이 그 사람이라면 따르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훌륭한 '힘'이다.

지도자에게는 카리스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이러한 경우에는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 최선책인데, 이것도 힘이 센 측이 중립을 선언했을 때는 효력이 있을지라도 힘이 약한 측이 중립을 선언하는 경우는 효력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해를 입는다는 단점이 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의 야심이란 곧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하는 의욕이다.

한편 허영심은 타인에게 좋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 세상을 버린 은둔자일 테니 여기서는 제외하고, 인간성이 풍부한 인간으로 이야기를 좁히기로 한다.

문제는 한 인간의 내부에서 야심과 허영심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인간이 좋은 기회를 얻었을 때 야심으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허영심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네가 유복한 출신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네가 지력을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또한 네가 미모를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원인이 되어 네가 오만하고 건방져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오만과, 오만의 표현인 건방짐은 너 한 사람만이 아니라 네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해치고 더럽히며 비속화하기 때문이다."


낙서조차 '학식' 있는 사람의 것으로 여겨지던 중세 유럽사회에서 당시의 국제어이기도 한 라틴어로 이와 같이 기록한 남자들이 '병원 기사단'의 기사들이었다.

"죽여라! 죽여라!" 라고 외치는 '템플 기사단'과는 확실히 달랐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지들 간의 치열한 싸움도 쇠퇴기에 벌어지면 활력의 감퇴로 이어지지만, 융성기에 이루어질 경우에는 오히려 쌍방의 활력을 증진시키고 국력을 번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세계에는 교활한 인간이 많다.

그런 자질이 그 인물이 이끄는 공동체를 위해 쓰이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이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교활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에 인간은 '의로움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감동하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리고 대중의 가슴을 뜨겁게만들지 못하는 한 역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러나 그리스도교도든 이슬람교도든 그들이 제창한 '성전' 사상 자체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것을 지탱하는 열기는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어난 무장은 미리 생각한 전술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적당한 파도가 다가오면 주저하지 않고 올라탈 줄 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상회담에서 통역을 이용할 때, 두 정상은 귀로는 통역의 말을 들으면서도 눈은 항상 상대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통역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아야 협상 상대의 됨됨이를 관찰할 수 있다.

인간이란 이야기할 때의 시선이나 손짓에서도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는 법인데, 통역의 목소리에 정신이 팔리면 가장 중요한 이런 관찰을 소홀히 하게 된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주의에는 자유로운 능력 발휘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장기적인 것보다 단기적인 관점이 득세하기 쉽고, 그러다보니 눈앞의 이권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그것을 놓고 대결의식이 폭발하기 쉽다는 점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여러 차례 반복하지만, 중세는 '역량'보다 '혈통'이 중요시되는 시대였다.

그랬기에 혈통보다 역량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 시대는 아직 중세의 한복판이었다.

게다가 '역량'은 실적을 보여주어야만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만, '혈통'은 말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처드의 시신은 영국에 없다.

죽은 후 곧장 머리는 푸아티에 지방의 수도원에, 심장은 노르망디 지방 루앙의 교회에, 그 외의 부분은 앙주 지방의 수도원에 나누어 매장했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영지를 지닌 왕의 시신을 해체하는 목적은, 우선 죽은 후에도 영지의 소유권이 그에게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동시에 해당 영지의 백성들에게 자기 지역에 왕의 묘가 있다는 만족감을 안겨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사력이 없는 조직의 수장이라는 문제뿐 아니라, 이 '태양'은 종종 수재들에게서 엿보이는 단점도 갖고 있었다.

좌절을 경험한 적 없는 사람이 흔히 그렇듯이, 자신이 하는 일에 의심을 품지 않는 탓에 자신과 다른 발상을 하는 사람의 진의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단점은 어떤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때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거나 사후승낙의 상황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했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쟁은 인류 최대의 악업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도무지 이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그 승패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저지른 후 얼마나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졌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

또한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때그때 단기간의 평화를 쌓아가는 식으로 달성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내 정치는 성심성의껏 하면 대부분의 경우 좋은 결과가 나온다.

기득권 계급의 반대를 무시하고 어떤 일을 강행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득하기 마련이고,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사람들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외 정치의 대상인 다른 나라나 사람과는 당연히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 경우 성심성의껏 했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종종 그 반대의 결과를 낳고 만다.

따라서 외정 담당자에게는 내정을 담당하는 자 이상의 현명함이 요구된다.

교활하거나 악랄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신의다.

다시 말해 약속한 것을 지키는 자세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깨는 상대와는 협정을 맺어봐야 소용없지만, 달리 방책이 없으면 그것에라도 매달리게 마련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옳은 것만 말하는 신이 바란 일이니 옳은 전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가 후퇴한 뒤에도 '옳은 전쟁'만은 남았다.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남기고 싶다고 인간이 생각했기에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에 맹위를 떨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 남아, 전쟁을 이끌어내는 측이나 이끌려나간 측 모두,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십자군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고드푸르아 #귀스타브_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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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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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 만백성의 아프로디테에게 속하는 에로스는 말 그대로 만백성의 것인지라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일을 해치운다네.

그래서 이것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에로스라네.

그런 사람들은 첫째, 소년들을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여자들을 사랑하며,

둘째,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혼보다는 몸을 더 사랑하며,

셋째, 되도록 비지성적인 자들을 사랑한다네.

그들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만 신경 쓰고 아름답게 달성하느냐의 여부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선악을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해치우는 것이라네.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 둘 가운데 훨씬 덜 성숙하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까닭에 여성적인 요소와 남성적인 요소를 다 갖춘 여신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이지.

#향연 #플라톤

와 달리 우라니아 아프로디테에게 속하는 에로스는 첫째, 여성적인 요소는 없고 남성적인 요소만 갖추고 있는 여신에게 속한다네.

그래서 그런 에로스는 소년들에 대한 사랑이 되는 거지.

둘째, 그런 에로스는 나이가 더 많고 오만한 데가 없는 여신에게 속한다네.

그래서 그런 에로스에게 영감을 받은 자들은 본성상 더 강하고 더 지성적인 것을 좋아하여 남성적인 것을 지향한다네.

#향연 #플라톤

제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이나 그런 사랑으로 더 절제 있게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은 권장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일세.

그것은 우라니아 무사에게 속하는 아름다운 천상의 에로스라네.

반면 범속한 사랑은 폴륌니아 무사에 속하는 사랑으로, 누구에게든 그것을 적용할 때는 그것을 즐기다가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하네.

#향연 #플라톤

리는 본래 완전한 전체였기 때문이네.

그리고 '사랑'이란 완전한 전체가 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구에 붙여진 이름이라네.

내가 말했듯이, 우리는 전에는 하나였지만 지금은 죄를 지어 신에 의해 흩어져 살고 있네.

마치 아르카디아인들이 라케다이몬인들에 의해 흩어져 살듯이 말일세.

그러니 우리가 신들에게 얌전하게 굴지 않으면 다시 반쪽으로 쪼개져 비석에 부조(浮彫)된 형상들처럼 코를 중심으로 잘려서는 부절로 쓰기 위해 반쪽으로 나뉜 주사위 꼴이 되어 돌아다니게 되지 않을까 두렵네.

그래서 우리는 매사에 신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모든 사람을 격려해야 하네.

#향연 #플라톤

'그런데 왜 사랑이 생식을 원하느냐고요?

필멸의 존재에게는 생식이 영속적이고 불사(不死)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앞서 합의한 바에 따라 사랑이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좋은 것과 더불어 불사를 원하게 마련이에요.

따라서 사랑은 불사도 원한다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지요.'

#향연 #플라톤

육체적으로 임신한 자들은 여자들에게 끌리는데, 그렇게 사랑을 표출하는 자들은 아기 낳기를 통해 불사와 기억과 나름대로의 행복을 영원토록 확보하지요.

그러나 정신적으로 임신하는 자들도 있지요.

몸보다는 혼 안에 더 많이 임신하는 자들도 있기 때문에, 이들은 혼이 임신하고 출산하기에 적합한 것을 임신하지요.

무엇이 적합하냐고요?

지혜와 그 밖의 다른 미덕이지요.

이런 것들을 낳은 이는 다름 아니라 모든 시인과 창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장인들이지요.

그러나 단연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지혜는 국가와 가정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인데, 그런 지혜는 절제와 정의라고 불리지요.

#향연 #플라톤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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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재판은 결코 연극이 되지는 않았지만, 벤구리온이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쇼, 즉 그가 유대인과 이방인, 이스라엘인과 아랍인, 간단히 말해 전 세계에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교훈'을 담은 쇼는 이루어졌다.

바로 이 쇼에서 얻은 교훈은 교훈 받을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했다.
왜 이스라엘이 피고를 납치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재판 시작 전에 벤구리온이 작성한 많은 글에서 이 교훈들은 개괄되었다.
비유대인의 세계에 주는 교훈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100여만 명의 아기들이 단지 유대인의 아기라는 이유 때문에, 어떻게 나치스에 의해 살해되었는가를 우리는 세계만방에 입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과 마리아 셰펄링의 아들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11일 저녁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에서 체포되어 9일 후에 이스라엘로 압송, 1961년 4월 11일에 예루살렘 지방법원으로 재판받기 위해 이송된 뒤 15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 인류(humanity)에 대한 범죄 및 나치스 통치 기간,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그에 대한 재판의 근거가 되는 1950년에 입안된 나치스 및 나치 협력자 (처벌)법은 "이러한······범죄 가운데 하나라도 범한 자는······사형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각의 죄목에 대해 아이히만은 '기소장이 의미하는 바대로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는 자신이 유죄라고 생각했는가?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아이히만은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고 이 질문에 대답했다.
이 대답은 피고인 자신에 의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피고 측이 피고로 하여금 무죄 주장을 하게 한 이유는 피고가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 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가 기소당한 내용은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 행위'이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나라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한 주권국가는 다른 주권국가에 대해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세르바티우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대에 처해질" 행위들을 했을 뿐이라는 것 등이었을 것이다(그래서 1943년에 괴벨스는 "우리는 역사책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서 기록되든지 또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허풍은 아이히만을 파멸시킨 악덕이었다.
그가 전쟁이 끝날 무렵 휘하의 사람들에게 "나는 내 무덤에 웃으며 뛰어들 것이다.
500만 명의 유대인(즉, 그가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한 '제국의 적들')의 죽음에 내 양심이 거리낀다는 사실이 나에게 대단한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은 완전히 허풍이었다.
그는 무덤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가 무엇인가 양심에 걸렸다면 그것은 살인이 아니라 나중에 그가 좋아하게 된 유대인 가운데 한 명인 빈의 유대인 공동체의 수장 요제프 뢰벤헤르츠 박사의 따귀를 때린 점이다.
(당시 그는 그의 요원들 앞에서 사과하긴 했지만, 이 사건은 계속 그를 근심하게 했다.)
모든 나치스 간부와 당국의 노력을 함께 기울인 결과인 500만 명의 유대인 죽음을 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 자신도 잘 알듯이,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이 저주받을 말을 들어줄 만한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역겹도록 반복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이 생각이 반박될 수 있는 것은, 아이히만은 기억력이 상당히 나쁨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중요한 일이나 사건에 대해 동일한 선전 문구와 자기가 만든 상투어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반복한 점 때문이다(자기가 스스로 만든 문장을 하나 말하더라도 그는 이 말이 상투어가 될 때까지 계속 반복했다).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히틀러가 "모든 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이 하나만큼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노력을 통해 독일 군대의 하사에서 거의 8000만에 달하는 사람의 총통의 자리에까지 도달했습니다.
······그의 성공만으로도 제게는 이 사람을 복종해야만 할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그는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그 '좋은 사회'가 모든 곳에서 열정과 열성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을 보았을 때 사실상 그의 양심은 휴식상태에 있었다.
판결문에 나오는 말처럼 "양심의 소리에 자신의 귀를 가까이할" 필요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것은 그가 양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양심이 "자기가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함께", 자기 주변에 있는 사회의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더불어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양심을 불러일으키는 외부로부터 온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이히만의 주장 가운데 하나였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내면적 이주자'란 단지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대중들 한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의 민족들 중에 버려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만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반대란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사실상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적 냉대' 속에서 12년 동안 그렇게 산 독일인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수는 무의미할 정도였고 심지어 레지스탕스 요원들도 그 수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근년에는 '내면적 이주'라는 구호는 (이 말 자체가 애매한 느낌이 드는데, 이는 한 사람의 영혼 속의 내면적 영역으로 이주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 자신이 이주자처럼 행동하는 방식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종의 조크가 되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상부의 명령' 대 '국가적 행위'라는 낡아빠진 구절이 끝없이 오갔을 뿐이었다.

이 구절들은 뉘른베르크 재판 기간 동안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토론 전체를 지배했다.
이는 전례가 전혀 없는 일에 대해 마치 전례가 존재하며, 또 그 전례에 속한 기준에 따라 재판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온건한 성격을 지니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이러한 견해들에 분명히 도전을 하고 자신의 견해를 제안할 만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가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 바를 수행한 것 외에도 그는 명령에 따라 (항상 '보호받을 수 있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에 완전히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그래서 맹목적인 복종, 또는 그가 '시체들의 복종(Kadavergehorsam)이라고 불렀던 미덕과 악덕을 차례로 강조하면서 끝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제3제국의 지도자들이 극찬한 특성인 '무자비한 강인성'은 자신의 나치 과거에 대해서는 대충 말해버리는 데 진정한 천재성을 발휘한 전후의 독일에서는 종종 좋지 않은(ungut)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마치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기독교적 사랑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데 통탄스럽게도 실패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여하튼 '유대인 문제 고문관'으로 아이히만 사무실에서 (정규 외교적 임무 또는 군사요원, 보안경찰대 지역사령관 등에 덧붙여) 다른 나라로 파견된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덕성을 최고도로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무자비한_강인성

이제 나타난 것처럼, 최종 해결책에 대한 그의 역할은 과도하게 과장되어 왔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 자신의 허풍 때문이기도 했고, 또 부분적으로는 뉘른베르크와 다른 전후 재판들에선 피고인들이 아이히만을 핑계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기 대문이었다.
그러나 그 주된 이유는 아이히만이 '유대인 문제 전문가'이며 다른 어떤 문제도 다루지 않은 유일한 독일 관리였으므로 유대인 지도층 인사들과 밀접한 접촉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 재판을 전혀 과장되지 않은 고통의 사실에 기초를 두려 한 검찰은 분별없이 그 과장된 내용을 과장해 댔다.
아니 항소심의 판결문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그러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전체주의 지배체제는 선하거나 악한 모든 사실들을 사라져버리게 하는 망각이라는 구멍을 마련하려고 애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942년 6월 이래로 있었던 대량학살의 모든 흔적을 지우려는 소란스러웠던 시도들(화장을 통해, 구덩이를 파서 시체들을 불태움으로써, 폭약과 화염방사기와 뼈를 갈아버리는 기계들을 이용한 시도들)이 실패할 운명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적들이 '완전한 익명 속에서 사라져버리도록' 한 모든 노력들은 허사였다.
망각의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으며, 망각이 가능하기에는 이 세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항상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망각의_구멍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그 교훈이란 공포의 조건 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가지만 어떤 사람은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최종 해결책이 제안된 나라들의 교훈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 일이 어디서나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이 지구가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남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도 않고 또 그 이상의 것이 합리적으로 요구되지도 않는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그리고 이러한 죄책감 콤플렉스와 같은 사실이 제게는 말하자면 마치 인간을 태운 우주선이 달에 처음으로 도착한 것과 같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내면생활의 핵심 속의 한 점이 되었고, 그 주위로 많은 생각들이 결정체처럼 얽혔지요.
이것이 바로······수색대가 제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고도······제가 도망가지 않은 이유입니다.
제가 깊은 인상을 심어준, 독일의 젊은이들 사이에 있는 죄책감에 대한 이 대화를 한 후에 저는 잠적할 권리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것도 또한 제가 이 심문이 시작될 때 서면 진술서에서······제 자신을 공개처형하라고 제안한 이유입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비록 그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했다 하더라도 법정은 그를 믿지 않았다.
법정은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그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그의 복종에서 나왔고, 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된다.
그의 덕은 나치스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배집단의 일원이 아니었고, 그는 희생자였으며, 오직 지도자들만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는 다른 수많은 낮은 계급의 전범들만큼 그렇게 지나치지도 않았다.
그들은 '책임'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며, 이제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점을 설명해 달라고 소환할 수도 없다고 강력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그런 사람들은 자살이나 교수형을 당함으로써 자기들을 '떠나거나, 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이다" 라고 아이히만은 말했다.
그는 '희생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세르바티우스가 한 말을 확인해주었다.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대신해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그의 깊은 확신'이었다.
이틀 후인 1961년 12월 15일 금요일 아침 9시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그는 자신이 신을 믿는 자라고 분명히 진술하면서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일반적인 나치스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낸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 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말과_사고를_허용하지_않는_악의_평범성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우스꽝그런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 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더구나 교수대 아래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생전에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것 외에 생각해 낼 수 없었다는 것은, 그리고 이러한 '고상한 말'이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은 분명코 아주 일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훈이지 현상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그에 대한 이론도 아니다.

#예루살렘의_아이히만 #한나_아렌트 #무사유 #현실로부터_멀리_떨어져_있다는_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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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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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들, 사람들이 쾌감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참 이상하기도 하지!

쾌감은 그와 정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감정인 고통과 놀랍도록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니 말일세.

한 사람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낄 수는 없어.

하지만 누가 둘 중 하나를 쫓아가 잡으면, 그는 거의 언제나 다른 것도 잡게 되어 있지.

그것들은 마치 같은 머리에 달려 있는 두 몸과도 같아.

그래서 만약 아이소포스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우화를 지어냈을 거야.

즉 신께서 늘 다투는 그 둘을 화해시키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자 둘의 머리를 함께 매었다고, 그래서 둘 중 하나가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다른 것도 뒤따라 나타난다고 말일세.

똑같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네그려.

나는 족쇄 때문에 다리가 아팠는데, 그 결과 지금은 쾌감이 나를 찾아온 것 같으니 말일세."

#파이돈 #플라톤

에 관해서는 비교(秘敎) 쪽에서 설명한 것이 있는데, 우리는 일종의 감옥에 갇혀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 감옥에서 벗어나거나 탈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네.

내게는 이런 교리가 거창해 보이지만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렇지만 케베스, 신들은 우리의 수호자들이고, 우리들 인간은 신들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라는 말은 옳은 것 같아.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고 케베스가 말했소.

"그렇다면"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소.

"소유물이 죽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자네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자네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죽인다면 자네는 화나지 않을까?

그래서 자네에게 벌줄 방도가 있다면 그것을 벌주지 않을까?"

"물론 벌주겠지요" 하고 케베스가 말했소.

"그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내려진 것과 같은 필연적인 상황을 신께서 내려보내시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을 듯 하네."

#파이돈 #플라톤

들은 진정한 철학자가 어떤 의미에서 사실상 죽었는지, 어떤 의미에서 죽어 마땅한지, 어떤 종류의 죽음을 죽어 마땅한지 모르기 때문이지.

아무튼 그들에게는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 논의해보세.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가?" 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소.

"물론이지요" 하고 심미아스가 끼어들었소.

"죽음은 다름 아니라 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것이겠지?

또한 죽었다는 것은 몸이 혼에서 분리되어 혼자 있고, 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혼자 있는 상태겠지?

죽음이 그거 말고 다른 것일 수 있을까?"

#파이돈 #플라톤

"어떤 실재가 어디에선가 혼에게 명확히 드러난다면 그것은 사유(思惟) 속에서가 아닐까?"

"그렇지요."

"그리고 혼이 가장 잘 사유하는 것은 청각이나 시각이나 고통이나 쾌감 등으로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을 때일세.

혼이 몸과 헤어져 되도록 혼자 있고, 몸과의 접촉이나 공존을 최소화하며 실재를 추구할 때란 말일세."

"그야 그렇지요."

"그렇다면 철학자의 혼이야말로 몸을 가장 무시하고 몸에서 달아나 혼자 있으려 하지 않을까?"

"그런 것 같아요."

#파이돈 #플라톤

"그렇다면 사유할 때 시각을 이용하거나 그 밖의 다른 감각을 사유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되도록 사유만으로 개별 대상에 접근하는 사람이 가장 완벽하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네.

자신을 눈과 귀는 물론이요 사실상 몸 전체와 가능한 한 분리시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대상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사유를 사용함으로써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말일세.

몸이 혼과 함께 하면 혼을 혼란에 빠뜨려 혼이 진리와 지혜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일세.

심미아스, 누군가 실재에 도달한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파이돈 #플라톤

"혼이 그렇게 몸에서 풀려나고 분리되는 것, 바로 그것을 죽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고말고요"하고 심미아스가 말했소.

"그리고 혼을 해방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주로 또는 전적으로 진정한 철학자들이며,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혼이 몸에서 풀려나고 분리되는 것, 바로 그것일세. 그렇지 않은가?"

#파이돈 #플라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지식을 얻었다가 태어나는 순간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적절한 감각 훈련을 통해서 전에 갖고 있던 지식을 되찾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전에 갖고 있던 지식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배움은 '상기'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물론이지요."

"그렇지. 우리는 시각이나 청각이나 다른 감각기관을 통해 어떤 사물을 지각할 경우 유사한가의 여부를 떠나 잊어버렸던 다른 사물을 생각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았으니 말일세.

그래서 나는 둘 중 하나라고 주장하네.

즉 우리는 모든 이런 기준들을 알고 태어나 평새 그런 지식을 간직하고 있거나, 아니면 우리가 배운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전에 알고 있던 것을 단순히 상기하는 것이어서 배움은 상기라고 말일세."

#파이돈 #플라톤

"지금까지 의 모든 논의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오는지.

혼은 신적이고 불멸하고 지성으로 알 수 있고 형상이 하나뿐이고, 해체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항상 같은 것을 가장 닮았지만, 몸은 인간적이고 죽게 되어 있고 지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형상이 다양하고 해체되고 자기 자신과 같은 적이 결코 없는 것을 가장 닮았는지 말일세.

여보게 케베스,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제기할 수 없어요."

"어떤가? 그럴 경우 몸은 당연히 빨리 해체되지만, 혼은 당연히 전혀 해체되지 않거나 그에 가까운 것이겠지?"

#파이돈 #플라톤

약 죽음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라면 죽음은 악인들에게는 횡재겠지.

그들은 죽음으로써 혼과 함께 몸과 자신들의 악행에서도 해방될 테니까.

그러나 혼이 죽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지금, 혼이 악행에서 도피하거나 구원받을 길을 달리 아무것도 없네.

최대한 선량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것 말고는.

혼은 저승에 갈 때 교육과 훈련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교육과 훈련이야말로 저승으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죽은 사람을 가장 이롭게 하거나 가장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니 말일세.

#파이돈 #플라톤

지만 혼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우리의 혼과 그 거처가 실제로 그와 같거나 비슷하리라고 믿는 것은 적절하고도 가치 있는 모험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것은 고상한 모험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주문(呪文)처럼 되풀이해서 외어야 하네.

내가 이야기를 그렇게 늘인 것도 그 때문일세.

또한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몸의 쾌락과 장식은 이롭기보다는 해롭다 여겨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거부하고는 배우는 즐거움에 열중함으로써 자신의 혼을 남에게서 빌려온 장식물이 아니라 절제, 정의, 용기, 자유, 진리 같은 혼 자체의 장식물로 장식한 다음 운명이 부르면 언제든 저승으로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혼에 대해 안심할 수 있다네.

#파이돈 #플라톤

크리톤은 내가 머물 것이라고 보증을 섰지만, 자네들은 내가 죽고 나면 머물지 않고 떠나갈 것이라고 보증을 서주게.

그가 내 죽음을 더 쉽게 견뎌낼 수 있도록.

그리고 그가 내 몸이 불타거나 묻히는 것을 보고는 마치 내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나 한 것처럼 나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장례식 때 그가 입관 준비를 하거나 운구하거나 매장하는 것이 소크라테스라는 말을 하지 않도록 말일세.

친애하는 크리톤, 잘 알아두게.

잘못된 표현은 그 자체도 귀에 거슬리지만 혼에 나쁜 영향을 준다네.

그러니 자네는 기운을 차리고 자네가 화장하는 것은 내 몸일 뿐이라고 말하게.

그리고 그것은 자네 좋을 대로, 자네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묻어주게.

#파이돈 #플라톤

냉기가 어느새 허리 있는 데까지 올라오자 그분께서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것을 벗기고-그분께서는 얼굴이 가려져 있었으니까요-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사실상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었소.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잊지말고 그분께 빚진 것을 꼭 갚도록 하게."

"그렇게 하겠네"하고 크리톤이 말했소.

"그 밖에 달리 할 말이 있는지 살펴보게!"

그분께서는 이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으나, 잠시 뒤 몸을 부르르 떠셨소.

그래서 그 사람이 그분을 가린 것을 벗기자 그분의 두 눈이 멈추어 있었소.

그래서 그것을 본 크리톤이 그분께서 입을 다물게 해주고는 두 눈을 감겨드렸소.

#파이돈 #플라톤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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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보게 소크라테스, 지금이라도 내 말대로 목숨을 구하도록 하게! 

 자네가 죽으면 내가 당할 불행이 한 가지가 아닐세.  

나는 두 번 다시는 구하지 못할 친구를 잃을 뿐 아니라, 자네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돈을 썼더라면 자네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니 말일세. 

친구보다 돈을 더 귀히 여긴다는 평판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권했는데도 자네 자신이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고는 믿지 않을 테니 말일세. 

 #크리톤 #플라톤

사람들의 모든 의견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어떤 의견들은 존중하되 다른 의견들은 존중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의 의견들은 존중하되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은 존중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옳은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자네는 어떻게 말할 건가? 

 그건 옳은 말 아닌가? 

 크리톤 옳은 말일세.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좋은 의견은 존중하되 나쁜 의견은 존중하지 말아야겠지? 

 크리톤 그야 그렇지. 

소크라테스 좋은 의견이란 현명한 사람들의 의견이고 나쁜 의견이란 어리석은 사람들의 의견이 아닐까? 

 #크리톤 #플라톤

그러니 자네도 심사숙고 하게, 우리가 이 믿음을 공유하고 자네가 나에게 동의하는지 말일세. 

그리하여 불의한 짓을 저지르는 것도, 불의한 짓을 앙갚음하는 것도, 해를 입은 사람이 앙갚음으로 자기를 지키는 것도 결코 옳지 못하다는 전제를 우리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겠는지 말일세. 

아니면 자네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이런 출발점을 공유하지 않을 텐가? 

그것은 오래전부터 내 지론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네. 

 하지만 자네 생각이 그와 다르다면 내게 말해주고 설명해주게. 

그러나 자네가 이전의 의견을 견지한다면, 그다음 것을 들어보게. 

 #크리톤 #플라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그대는 주장할 것인가, 명색이 미덕에 전념한다는 사람이? 

 아니면 그대는 지혜롭다면서, 그대의 어머니나 아버지나 그 밖의 다른 모든 선조보다 그대의 조국이 더 소중하고 더 존경스럽고 더 신성하며, 신들과 지각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높이 평가받는다는 것도 모르고, 그대 조국이 노여워하면 그대 아버지가 노여워할 때보다 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더 공손하게 그대가 달래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가? 

 그리고 그대는 조국을 설득하거나 조국이 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야 하며, 조국이 내리는 벌은 태형이든 투옥이든 묵묵히 참고 견뎌야 하네. 

그리고 그대가 부상당하거나 전사하도록 조국이 그대를 전쟁터로 인도하면 그대는 거기에 응해야 하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네. 

 그대는 뒤로 물러서거나 후퇴하거나 대열을 이탈해서는 안 되고, 전쟁터에서도 법정에서도 그 밖의 다른 곳에서도 국가와 조국의 명령에 복종하거나, 아니면 무엇이 진정 옳은 것인지 설득해야 하네. 

그리고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불경한 짓이라면, 조국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훨씬 더 불경한 짓이라네. 

 #크리톤 #플라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 누가 우리의 재판 체계와 그 밖의 다른 국정운영 방식을 보고도 이곳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의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기로 사실상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네. 

그래서 우리는 누구든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삼중으로 불의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첫째, 그는 자기를 낳아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그는 자기를 길러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네. 

셋째, 그는 우리에게 복종하겠다고 합의해놓고는 복종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도록 우리를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으니 말일세.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가혹하게 다그치는 대신, 우리를 설득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든지 양자택일하라고 제의할 뿐인데 그는 어느 것도 하지 않으니 말일세. 

 #크리톤 #플라톤

그러나 그대가 불의를 불의로, 악행을 악행으로 앙갚음한 뒤 우리와의 합의사항과 계약조건들을 어기고 그대가 가장 해쳐서는 안 될 그대 자신과 그대의 친구들과 조국과 우리들 국법을 해치고 나서 그렇게 수치스럽게 떠난다면,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그대에게 분개할 것이고, 저승에서는 우리 형제들인 저승의 국법이 그대가 있는 힘을 다해 우리를 유린하려 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대를 반갑게 맞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그대는 크리톤이 권하는 대로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권하는 대로 하게나. 

사랑하는 친구 크리톤이여, 잘 알아두게. 

 나에게는 국법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것만 같네. 

 #크리톤 #플라톤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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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과 전투는 같지 않다.

전쟁은 몇 년 동안이나 장소를 바꾸어가면서 벌어지는 반면, 전투는 한곳에서 벌어지고 그날로 결과가 판가름난다.

하지만 날짜를 바꾸고 장소도 바꾸어 벌어지는 전투의 집계를 전쟁으로 보는 것이 통상적인 사고방식이니까, 전투는 전쟁의 일부로 여겨지고, 전투에는 이겼지만 전쟁에는 졌다는 표현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역사에는 전쟁의 향방을 좌우했을 뿐만 아니라 그후의 역사까지 바꾸어버린 전투가 있었다.

그런 전투를 '역사를 바꾼 전투'라고 부른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년 여자의 사랑은 젊은 여자의 경우처럼 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절망에서 태어난다.

들키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권 국가라는 말을 들으면 초강대국이 그 패권 아래 있는 나라들에 대해 제멋대로 굴고 강요와 강압을 일삼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패권 국가든 패권자든, 패권을 손에 넣은 이상은 의무가 따른다.

첫째는 패권 아래 있는 나라나 사람을 보호할 의무이고, 둘째는 패권 아래 있는 나라나 민족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의무다.

인간 세계의 다툼에는 당사자에게 맡겨두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고, 따라서 당사자를 납득시킬 만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 제3자가 조정해주는 편이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현실 세계, 즉 속세를 통치하거나 지배할 권리를 군주에게 주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는 사고방식의 유효성을 깨달았으니, 콘스탄티누스의 정치 감각은 경탄할 만큼 뛰어나다.

권력을 위임하든, 반대로 권력을 리콜하든,그것을 결정할 권리는 '가지'한 인간이 아니라 '불가지'한 유일신에게 있다고 했으니가 말이다.

하지만 신은 실제로는 아무런 의사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의 뜻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 누군가가 그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뜻이 성직자를 통해 전해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도 일상적으로 신자와 접촉하는 사제나 고독한 환경에서 신앙을 추구하는 수도사보다는 교리 해석을 정리하고 통합하는 공의회에 참석할 권리가 있는 주교가 더 권위있는 전달 코스다.

요컨대 세속 군주에게 통치권을 주느냐 아니냐에 관한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것은 기독교회의 제도상으로는 바로 주교였다.

그렇다면 주교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놓기만 하면 '신의 뜻'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대의 전환기에 살게 된 사람에게도 선택의 자유는 있습니다.

흐름을 탈 것이냐.

흐름을 거스를 것이냐.

흐름에서 발을 뺄 것이냐.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력자에 대한 역모의 성패는 권력자를 배제한 뒤 누구를 그 자리에 앉히느냐에 달려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관은 거세당한 고자니까 자식도 없고, 육친이라는 배경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보다 충성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제군주의 궁정에서는 환관에게 중요한 역할이 맡겨졌다.

말하자면 권력자와 측근의 관계지만, 환관의 운명은 그가 모시는 주군의 뜻에 좌우되는 정도가 건강한 남자들에 비해 높았다.

이렇게 되면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들에게도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려면 주군의 감정을 자기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그것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군을 항상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으면 주군은 그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모든 면에서 가혹한 현실에서도 정신의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가혹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기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모가 소용돌이치는 속에서 살아가려면 뜻밖에도 교활하게 굴기보다 당당하게 정면 돌파하는 편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력에 큰 차이가 있을 경우, 전쟁을 오래 끌면 끌수록 병력이 적은 쪽이 불리해진다.

완승은 아니더라도 착실히 승리를 쌓아올려 궁극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도 있지만, 어떤 승리에도 반드시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계속 이기고 있는데도 손실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오늘날에도 서양에서는 이것을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른다.

아직 이탈리아 반도를 제패하고 있었던 기원전 3세기의 로마가 상대한 적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는 전쟁터에서는 매번 로마에 이겼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병력도 착실히 줄어들어 결국 에페이로스로 도망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혁이 어려운 것은, 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층은 개혁하면 손해라는 것을 금방 알기 때문에 격렬히 반대하는 반면, 개혁으로 이익을 볼 터인 비기득권층은 개혁이 뭐가 어떻게 이로운지 몰라서 당분간은 지지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거나 미지근하게 지지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가 눈을 뜨지 못하도록 재빨리 연달이 개혁안을 내놓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득권층의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료 기구는 내버려두기만 해도 비대해진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와는 달리 관료 세계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자기 보존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동류-바꿔 말하면 '기생충'-를 늘리는 방법으로 실현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기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로 끝나게 마련이다.

관료 기구의 개혁은 관료들을 '강제하고 복종시키는 힘'을 가진 권력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철학은 다른 방면의 일에는 쓸모가 없는 학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철학의 진수는 지식이 아니라 사색이다.

체조가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색은 두뇌를 단련한다.

바꿔 말하면 심사숙고하는 작업에 익숙해진다.

사색하는 데 익숙해져 있으면, 사색의 대상이 철학이든 투기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탈레스는 실증했다.

철학은 다른 방면에도 쓸모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실증한 셈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국은 말없이 조용히 살다가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다.

강풍에 일어난 파도가 좌충우돌하여 거품을 일으키듯, 사회가 통제되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인 끝에 망국이라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지만 인적 희생에 민감한 것은 문명인이고, 비문명인은 그런 데 무신경한 것이 보통이다.

이것도 '야만족'의 특징이고, 그들이 강했던 원인의 하나였다.

이런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로마 제국 말기의 '민족 대이동'을 일으킨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은 군사력에서 패했기 때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패권자한테 자신들이 필요한 존재가 되면 패권 아래 놓여 있는 것에 대한 저항감도 약해진다.

승자인 로마는 패배자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들의 심정을 존중해주면 그들을 지배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공공심인 전투 의욕은 개개인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불확정 요소다.

하지만 이 불확정 요소까지도 충분히 활용하고 싶으면, 봉급이나 퇴직금을 보장하거나 시민 사회에 복귀할 때 혜택을 주는 따위의 확정 요소를 반드시 배려해야 했다.

인간은 대부분 안심할 수 있어야만 의욕이 생기는 법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국가'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제가 능력과는 무관하게 제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정확히 꿰뚫어보았듯이 '제위신수설' 덕분이었다.

제위에 누구를 앉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신의 뜻이라는 것이 제위신수설이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하여 기독교를 진흥하기 위해 애썼다.

황제가 인간에게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되었으니까, 무능한 황제라도 제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확립되었다.

이 덕분에 황제가 계속 바뀌어 정국이 불안해지는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고, 이 사실 때문에 황제는 능력과는 관계없이 누구나 반드시 '중심'이 되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인간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없다.

따라서 법률로 다룰 수도 없고, 종교로 가르칠 수도 없다.

개개인이 자기한테 좋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일 뿐, 만인 공통의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도 아니다.

이것은 라틴어로는 '스틸루스'(stilus), 이탈리아어로는 '스틸레', 영어로는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중요하지 않아도 자기한테는 그 스타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손을 대면 자기가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권을 가진 사람들이 폐쇄적이 되는 것은 인간성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에서는 공적인 자격을 갖지 않은 사람도 공적인 자격을 가진 사람 바로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갖게 된다.

황제의 근친자, 특히 가까운 여자에게는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면, 관료가 될 수는 있어도 정치가가 될 수는 없다.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 해도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로마인이 즐겨 사용한 말을 빌리면 'comprehendere'(파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 정보는 하나가 아니라 복수여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일을 이루려면 정열적이고 정력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다 냉철함까지 갖출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열적이고 정력적인 것과 냉철함은 양립하지 않는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은 남에게 의지하는 데 익숙해지면 자력으로는 일어설 수 없게 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수의 승자가 다수의 패자를 통치해야 할 경우의 철칙은 기존의 통치 계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기성 계급을 변혁하고 싶어도 뒤로 미루어야 하고, 당장 해야 할 일은 우선 기성 계급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패자인 그들은, 군사력에서는 자신들이 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강하고 깊은 두려움을 가슴에 품고 자기네 땅으로 진주해오는 승자를 맞이한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소수의 승자가 다수의 패자를 통치하는 일이 잘될 것인지 안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승자가 패자의 공포심을 조장하는 정책을 강행하면 절망한 패자는 죽기 살기로 저항한다.

그렇게 되면 다수에 대한 소수의 지배는 꿈으로 끝나고, 남는 것은 승자에 대한 패자의 끈질긴 저항과 그것을 제압하기 위한 군사행동의 끝없는 반복으로 수렁에 빠져드는 것뿐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치든 군사든 행정이든, 인간 세계의 많은 일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백성에게 그것을 요구해야 하는 위정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은 '고통'을 '즐거움'이라고 구슬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마음이 나게 하는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성한 자는 반드시 쇠하고, '제행'(res gestae)은 무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이치라면,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그것을 배웅하는 것이 인간 노력의 집적이기도 한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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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굳이 여러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라 부처라 중생이라 했으나,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긋난다.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내가 한마디 할까 한다.
생각 끊고 반연 쉬고 일 없이 우뚝 앉아 있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해탈이 자유라면, 열반은 평화다.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참구하는 공안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듯 하고, 굶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고,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을 때가 있으리라.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 일어나는 곳이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마음은 요술쟁이幻師이다.
몸은 환상의 성城이고, 세계는 환상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상의 밥이다.
그뿐 아니라 마음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어느 것 하나 환상 아닌 것이 없다.
시작도 없는 아득한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이다. 
꿈에 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상인 줄 아는 사람도 또한 그러리라.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욕위수생지연欲爲受生之緣   심식心識이 윤회하여 인간이나 동물의 몸을 받아 날 때는 대체로 그 업의 힘에 의해 정신이 흐리고 생각이 그릇되어, 다만 정욕이 불붙듯 하는 음심淫心으로 그 부모 될 상대의 이성異性을 사모하여 가까이 접촉하다가 태 속에 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몸을 받는 직접 동기는 음욕에서 비롯된다.
애정이라고 하는 맹목적인 열기 때문에 일상의 우리들은 애증의 갈등 속을 헤맨다.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어떤 현실에 처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 않음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생각 없음이라 하며, 생각 없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도를 닦아 열반을 얻는다면 이것은 참이 아니다.
마음이 본래 고요한 것임을 알아야 이것이 참 열반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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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으로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보았다 할지라도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다.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부처님을 판다는 것은, 인과를 믿지 않고 죄와 복도 없다 하며, 몸뚱이와 말로 물 끓듯 업을 짓고, 사랑과 미움을 쉴새없이 일으키는것이니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중도 아닌 체 속인도 아닌 체하는 자를 '박쥐중'이라 하고, 혀를 가지고도 설법하지 못하는 자를 '벙어리 염소중'이라 하며, 중의 모양에 속인의 마음을 쓰는 자를 '머리 깎은 거사'라 하고, 지은 죄가 하도 무거워 옴짝할 수 없는 자를 '지옥 찌꺼기'라 하며, 부처님을 팔아 살아가는 자를 '가사 입은 도둑'이라 한다.
가사를 입은 도둑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여러 이름을 얻은 것이다.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그러므로 말하기를 "수도인은 음식을 먹을 때 독약을 먹는 것과 같이 하고, 시주의 보시를 받을 때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한 것이다.
수도인은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을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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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구나, 이 몸이여.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 나오고, 백천 가지 부스럼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놓았구나.
또한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가득 담기고 피고름 뭉치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하거나 아까워할 것이 없다.
더구나 백 년을 잘 길러 준대도 숨 한번에 은혜를 등지고 마는 것을.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누구든지 임종할 때는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즉, 오온이 다 빈 것이어서 이 몸에는 '나'라고 할 것이 없고,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 오고가는 것도 아니다.
날 때도 성품은 난 바가 없고, 죽을 때도 성품은 가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밝고 고요해 마음과 환경은 하나다.
오직 이와 같이 관찰하여 단박에 깨치면 삼세와 인과에 얽매이거나 이끌리지 않을 것이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초월한 자유인이다.
부처님을 만난다할지라도 따라갈 마음이 없고, 지옥을 보더라도 무서운 생각이 없어야 한다.
다만 무심하면 법계와 같아질 것이니, 이 점이 바로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는 씨因이고 임종할 때는 그 열매果다.
수도인은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깨달음의_거울 #선가귀감 #서산대사_지음 #법정스님_옮김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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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같은 여성의 미모나 재산에는 부러움이나 질투를 느낄지언정 교양이나 명석한 머리는 부러워하지도 않고 질투도 느끼지 않는 법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미묘한 존재여서, 호평을 받은 일은 계속하고 악평을 받은 일은 그만두면 그걸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호평을 받았다고 해서 계속하다 보면 싫증을 내고, 악평을 받은 정책을 그만두고 정반대의 정책을 택하면 그때까지 비난을 퍼붓는 데 열심이었던 사람들이 뒤늦게 이전의 정책의 필요성을 깨닫고 부활을 요구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이 일을 진행하는 방식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일을 한 가지씩 끝내고 다음 일로 넘어가는 방식.

둘째, 모든 일을 시야에 넣고, 그 모든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방식.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를 예로 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후자에 속하고 미켈란젤로는 전자였다.

물론 이들 두 사람이 매사를 그런 식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니까, '기본적으로'라는 단서가  붙는다.

로마의 오현제 가운데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가 가장 중요한 황제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지만, 이들 두 사람도 그런 관점에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야누스는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미켈란젤로 타입이고, 하드리아누스는 레오나르도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미켈란젤로 타입이 훨씬 쓰기 쉽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은 굶주릴 필요가 없으면 온건해진다.

과격함은 절망의 산물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선정은 요컨대 정직한 사람이 무참한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러면 연상의 여자가 '약해지는' 연하의 남자는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첫째는  아름다움이다. 

단순히 용모가 준수하다기보다,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둘째는 젊음이다. 

이것도 나이만 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함이 피어오르는 풋풋한 젊음을 가리킨다.

이런 싱그러운 젊음을 전혀 느끼게 하지 않는 젊은이도 많은 반면, 생기발랄한 중년 남녀를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번째 조건은 명석한 두뇌다.

지식보다 지력(인텔리전스)이 중요시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연상의 여인은 다음 세대의 승자가 될 수 있는 젊은이를 사랑하는 법이다.

네번째 조건은 풍부한 감수성이다.

자칫하면 감수성을 잃어버리기 쉬운 남편이나 동년배 남자들한테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마음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그 마음을 자제하려고 애쓰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

마지막 조건은 야심이다.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여자의 마음까지 자극하려면, 출세하고 싶다거나 부자가 되고 싶다는 따위의 시시한 야심이 아니라, 야심을 품고 있는 본인이 누구보다도 그 야심의 실현에 불안을 느낄 만큼 커다란  야망이어야 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은 진실이라고 해서 전부 다 쓰는 것은 아니다.

특히 후세의 평가에 영향을 줄 게 뻔한 이런 문제에서는 본인이 썼으니까 당연히 진실일 거라고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조직의 기능을 향상시키려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두는 것이 선결문제였기 때문이다.

조직에는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당사자 자신이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종다양한 인간이 섞여 사는 게 인간 사회니까 이런 부류의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그런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그 조직의 기능은 퇴화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마 황제의 책무는 '안전'과 '식량'의 보장이다.

하지만 '안전' 보장이 우선이다.

안전만 보장되면, 사람들은 자기한테 필요한 식량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상태로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통치자의 책임이다.

'식량' 보장은 개인의 노력으로도 이룰 수 있지만, '안전' 보장은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잡아두기 위한 최선책은 남자 곁에 계속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 곁을 떠나는 것이다.

따라갈 수도 없는 곳으로 영원히 떠나버리는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황제의 책무 수행에 전념하고 있던 시기의 하드리아누스는 권력 유지에 민감했다.

권력은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절제를 잊어서는 안되었다.

바꿔 말하면 항상 남에 대한 배려가 필요했다.

하지만 책무를 다 마친 이상, 권력 유지에 신경을 쓸 필요도 줄어들었다.

원로원이나 민중의 평판에 신경쓸 필요도 없어졌다.

하드리아누스가 인기보다 업적을 중시한 지도자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반대로 업적보다 인기를 중시하는 지도자라면 평생 동안 남에게 마음을 쓰고 배려해야 할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렇다면 장성을 건설한 중국인과 도로망을 깐 로마인의 차이는 국가 규모의 대사업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에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방벽은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지만, 가도는 사람의 왕래를 촉진한다.

국가 방위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이민족과의 왕래를 차단할 것이냐, 아니면 자국 내의 왕래를 촉진할 것이냐.

두 민족의 이런 사고방식 차잉는 결국 중국과 로마라는 고대의 두 강국의 운명까지 결정하게 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시스템이란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타고난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능력에 맞추어 그 사람들의 필요까지 충족시켜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시스템을 창안한 사람의 능력과는 무관해야 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이 기능을 발휘할 수 없고, 시스템으로서 지속성도 가질 수 없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지도는 정보의 집적이다.

패권국은 예외없이 정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를 모은 결과가 지도로 나타나든 다른 형태로 나타나든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린 것은 어느 패권국가나 마찬가지지만,그래도 역시 차이가 있다.

취합한 정보를 통치자가 독점하느냐 아니면 공개하느냐의 차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글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글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나타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사회는 어떤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손아귀에 넣자마자 무엇보다도 우선 교육과 복지를 자기들 생각에 따라 다시 조직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법이다.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뒤 기독교회가 한 일도 바로 그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 로마 제국은 멸망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남을 밀어내거나 배제하면서까지 위로 올라가는 짓은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그런 사람이었다.

하드리아누스는 마르쿠스의 그런 면을 눈여겨본 게 아닐까.

하드리아누스도 출세를 위해 남을 배제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한 장수의 전공 뒤에는 수많은 병사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자기중심주의자가 오히려 철두철미하게 성실한 사람의 효용성에 민감한 법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로마 제국의 공용어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였지만, 두 언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은 제 모국어가 섞인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쓰기도 하고 문법상 잘못을 저지르기도 쉬웠다.

마르쿠스는 올바른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는 한편, 그런 사람의 말도 불쾌감이나 경멸감을 드러내지 않고 듣는 훈련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아는 것이고, 전달 방식 따위는 부차적인 것이다.

교수들은 상대의 어법이나 억양의 잘못을 바로잡으면 절대 안된다고 가르쳤다.

통치자 앞에서 입을 다무는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통치자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라니, 정말 훌륭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은 강하게 나오는 자에게는 무릎을 꿇고, 상대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기고만장해져서 위압적인 태도로 나오는 법이다.

하드리아누스의 방위체제는 인간의 그런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의 두뇌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그가 광대한 제국의 변경을 구석구석 순행하면서 21년에 걸친 치세의 대부분을 보낸 성과가 모든 '방위선'의 철벽화다.

바꿔 말하면 사막 건너편에서 쳐들어오는 북아프리카의 유목민도,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영토 확대를 노리고 있는 파르티아도, 도나우 강과 라인 강을 건널 기회만 엿보는 북방 야만족도,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넘어 남하할 기회를 노리는 칼레도니아 사람들도, 섣불리 덤비면 호된 반격을 당한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방위체제를 완성한 것이다.

현대에는 이것을 '억지 전력'이라고 부른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하지만 철벽화라 해도 방위시설을 경계로 안팎을 완전히 단절시킨 것은 아니다.

로마의 국경은 닫힌 국경이 아니라 열린 국경이었고, 하드리아누스도 로마의 이 전통을 계승했다.

장이 서는 날이면 방위선 바깥에 사는 야만족도 자신들의 산물을 가지고 방벽 안으로 들어와 팔고 또 로마의 물산을 사는 것은 늘상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일반인만이 아니라 그곳에 주둔하는 군단도 방위선 밖에서 필요한 물산을 구입했다.

야만족이 생산하는 물산을 구입하지 않고는 군단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물산 교류를 통해 야만족의 약탈 욕구를 떨어뜨리려는 정략이었다.

후세 연구자들은 이것을 '세미-로마화'(semi-Romanization)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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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를 공동체라고 번역하든 국가라도 번역하든, 고매한 이상을 내걸기만 하면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매한 이상과는 거리가 먼 공동체의 구성원까지 끌어들이지 않으면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성가신 문제가 남아 있다.

모든 인간이 동질적인 존재는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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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보다 1,350년 뒤에 태어난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공동체 구성원인 민중은 추상적인 일에 대해서는 잘못 판단할지다도 구체적인 일에 대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법이라고 한다.

사전을 보면 '형이상'(形而上)이란 '형체가 없어, 감각으로는 그 존재를 파악할 수 없는 것', 즉 '무형'을 뜻하고, '형이하'(形而下)란 '형체를 갖추어,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 즉 '유형'을 뜻한다.

형이상학적인 생각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도 했다.

자유의 보장도, 법의 평등도 지극히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민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안전과 식량에 대한 보장이다.

인민에게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게다가 그들의 최대 관심사와 관련된 형태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는 격언이 있지만, 내 생각에는 현명한 자가 되고 싶으면 역사만이 아니라 경험에서도 배워야 한다.

'역사-책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를 공부하면, 자기 혼자서 평생 걸려도 얻을 수 없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면에 자신의 '경험'은 역사에서 얻은 지식을 실제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또는 활용할 수 없는지를 가르쳐준다.

책상에서 배운 지식은 실제 체험과 맞물려야만 비로소 산지식이 된다.

정확히 정보만 얻을 수 있으면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과신이고, 그것을 토대로 대책을 세우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사고력도 근육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단련을 필요로 한다.

바꿔 말하면 이성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일을 오랫동안 게을리하면 통찰력이 둔해진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리고천재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뻔히 보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할 때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고대 유럽의 북동부 일대는 기후가 좋지 않고, 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수렵민족이라서 가난하다. 가난하면 먹는 양이 줄어드니까 인구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문명국 사람들의 생각이다. 사냥을 하고 돌아오면 달리 할 일이 없다. 가난한데다 문명도도 낮으니까, 집에 방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단칸방에서 뭐든지 다 한다. 섹스까지 한다. 할 일도 별로 없고 어릴 적부터 그런 광경을 늘상 보아서 익숙해져 있다면, 다신(多産)은 당연한 귀결이다. 자식을 낳아서 키울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야만인이 아니다. 그래서 유럽 북동부 일대, 오늘날의 독일 북부와 동부,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 체코와 슬로바키아, 그리고 옛 소련 국가들은 모두 날씨 같은 자연조건과는 무관하게 아이를 많이 낳았고, 저수지에 물이 차면 방죽이 무너져 물이 넘쳐흐르듯 인구가 많아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넘쳐흐른 물이 가는 방향은 늘 남서쪽이었다. 유럽 남서부는 농경이 활발하고 따라서 교역도 활발하고 생활이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사냥보다 농사가 생산성이 높다. 야만족이 용맹해서 침략한 것이 아니라, 야만족이었기 때문에 침략한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로마 황제는 로마군의 최고책임자다. 

이 사람이 전선에 있으면 그 전선의 전략은 황제가 결정한다. 

전략은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만 하면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시야에 넣고 그것을 종합해야만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를 거두어도 그것을 유기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활용하지 못하면, 전투에는 이겼지만 전쟁에는 지기 십상이다. 

'자각'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일관된 전략을 지탱하는 버팀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 버팀대가 튼튼히 서있지 않으면 전쟁이 장기화되기 쉽다. 

전쟁은 공격당하는 쪽만이 아니라 공격하는 쪽에도 '악'(惡)이다. 

'악'이니까 빨리 끝내는 것이 '선'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사전에 따르면 사색이란 '두루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사색적인 것 자체는 칭찬을 받아도 좋은 성향이지만, 임기응변으로 재빨리 판단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는 전시에는 결점이 되기 쉽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기에 직면했을 때의 타개책은 중요성에 따라 우선 순위를 정하고 그 순서대로 실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다.

하지만 우선 순위를 정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몇 가지 방책을 동시에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에 중요한 것은 신속한 결단과 단호한 태도, 그 두가지다.

빨리 판단을 내리고, 마음먹은 일은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무리 선정을 베풀어도 반대자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만족하는 통치는 통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공적 또는 사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최고권력자에게 불만을 품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그럴 경우, 적당한 인물이 있으면 반대파는 그 사람을 추대한다.

이리하여 내란이 일어난다.

선제의 친아들이면서도 황제가 되지 못한 사람만큼 추대하기에 적당한 존재도 없다.

그리고 콤모두스는 아버지가 제위에 오른 해에 태어났다.

줄곧 황제의 외아들로 자란 콤모두스가 제위 계승에 밀려나면 그 자신도 석연치 않을 테고, 그런 그의 심사를 이용하려 드는 사람도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무관'(武官)은 전쟁 전무가니까, 끝까지 갈 전쟁이 아니면 처음부터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전쟁 전문가가 아닌 '문관'(文官)은 여론에 떠밀려 전쟁을 시작하거나 여론의 비난에 저항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전쟁을 끝내버리기 쉽다.

전쟁의 가장 큰 '악'은 끝난 뒤에도 찜찜한 여운을 남기는 것인데, 문관은 대부분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콤모두스도 '문관'이었다.

그리고 이 '문관'은 결과가 어떻게 되는 간에 빨리 전쟁 상태를 끝내는 것밖에는 염두에 없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마르쿠스가 심취해 있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올바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대답해줄지 모르지만, 인간이란 생물은 숭고한 동기로 행동할 수도 있고 비열한 동기로 행동할 수도 있다는 인간 사회의 현실까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역사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대는 로마 시대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의 경우에도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은 조직임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처럼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조직은 별로 없다.

난세는 하극상의 시대이기도 하다.

조상 대대로 원로원 의원을 지낸 집안 출신이라든가 유력자와 인척 관계라는 것은 결정적인 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야생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힘과 지혜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힘과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명을 이치에 맞는 말로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백 명을 말로만 설득하기는 어렵다.

천 명을 말로만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위대 1만 명의 집단이었다.

그래서 선동이 먹혀들기도 하지만, 선동자가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만 명 단위의 집단을 장악하려면 무언가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카리스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카리스마도 때를 놓지면 효과가 없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주위 사람들에게 떠밀려 마지못해 황제로 나서는 것은 언뜻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난세에 가장 성공률이 높은 것은 스스로 강렬하게 원해서 나선 사람이다.

강한 의욕이 있으니까 목표 설정도 명확하고, 그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을 선택할 때도 진지하다.

반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떠밀려 나선 경우에는 목표도 막연하고 수단을 선택할 때도 우유부단해서 모든 게 어정쩡해지기 쉽다.

'루비콘 강'을 건넌 이상, 어정쩡하게 행동하는 것만큼 해로운 것은 없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은 자기 주머니를 직접 공격하는 정책에는 과민 반응을 일으키게 마련이고, 이것이 폭동이나 반란으로 발전한 뒤에는 군사력으로 억누를 수밖에 없다.

로마 제국의 경우에는 국경에 배치되어 있는 군단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된다.

외적에 대한 방위만이 아니라 국내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도 군단을 출동시키는 사태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면, 그에 따른 군사력 증강은 군비 증대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또다시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악순환을 피하려면 납세자가 세금이 무겁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정도로 세율을 억제해야 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은 공짜로 얻은 권리는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다.

현대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은 것도 이를 실증하는 예일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누구나 갖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 현상을 현대식으로 바꾸면 '브랜드는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베테랑의 이점은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도 스스로 수습할 수 있고, 어떻게든 타개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은 전황이 불리해지면 당장 공황 상태에 빠져 도망칠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간은 사실이니까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으면 믿어버린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역사는 현상으로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현상에 즈음하여 드러나는 인간 심리는 되풀이 된다.

따라서 인간 심리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력,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상상력과 감수성, 이 가운데 하나라도 모자라면 과거에 성공했던 선례를 그대로 따른다 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에피소드는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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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는 누구나 살기 힘든 곳이니까, 사람을 먹여 살릴 만한 식량이 나는 곳은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황무지를 개척하여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바꾸려 할 정도라면 그것은 야만족이 아니다.

야만족은 잽싸고 손쉽게 목적을 이루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상, 이동하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으면 붙잡아 노예로 삼거나 항복시켜 합병하는 두 가지 방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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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도 실력에 포함되지만, 실력만으로는 지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

지위를 정당화하려면 실력만이 아니라 정통성도 필요하다.

세습제가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직 실력은 알 수 없지만 정통성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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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하게 진심을 털어놓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좋을 때인지 아닌지, 해도 좋은 상대인지 아닌지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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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 그렇지만, 병사들의 가슴속에서 불만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전투기가 아니라 휴전기다.

그리고 불만은 절대적인 결핍이 아니라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다.

유프라테스 강 주변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로마 군사들이 굶주림에 시달린 것은 아니다.

다만 이웃 막사의 양식이 자기네보다 더 풍족한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런 불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은 최고 책임자의 단호한 태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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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나 예술에서는 그리스인에게 미치지 못하고, 체력에서는 육식민족인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에게 뒤떨어지고, 기술력에서도 에트루리아인의 가르침을 받고서야 그 정도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고, 경제적 재능에서는 카르타고인이나 유대인에게 훨씬 미치지 못한 것이 라틴 민족이었지만, 그 로마인이 이런 민족들을 모두 산하에 넣은 대제국을 세우고, 게다가 오랫동안 그 제국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은 자기가 가진 힘을 합리적으로 철저히 활용하는 데 집착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진짜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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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자유는 빼앗을 수 있지만 정신의 자유까지는 빼앗을 수 없다.

정신의 자유를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은 자존심이 그 자유를 떠받치고 있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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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인지, 인간 세계에서는 권위가 땅에 떨어진 뒤에 찾아오는 것은 남은 자들끼리의 단결이 아니라 분열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나로 묶는 역할을 맡고 있던 존재가 사라지면, 그때까지 자기보다 높은 존재에 묶여 있던 사람들은 일단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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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여성으로서 매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일이지만, 여자는 권력을 손에 넣으면 당장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다.

게다가 상대방이 궁지에 빠진 틈을 타서 그것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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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정치를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지만, 정치가는 군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치를 할 수 없다.

인간성의 이런 현실을 알고 있었던 로마인은 옛날부터 군무와 정무 사이에 경계를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했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현실적이고 넓은 시야를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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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안전도를 재는 바로미터는 주민의 거주구역 주위를 지키는 방벽의 유무 이외에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모두 사회가 얼마나 건전한지를 반영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첫째, 주민의 거주지역이 방어하기 쉬운 고지대에 모여 있지 않고 평지에 분산되어 있다. 이것은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 정도를 반영한다.

둘째, 목축보다 농경이 산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가축은 여차하면 데리고 달아날 수 있으니까 사회가 불안전할 때는 목축에 주력하게 되지만, 농경이 활발하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평화롭다는 뜻이기도 했다.

셋째, 교통수단이 정비되어 있고 이동할 때 안전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져 주민 공동체가 폐쇄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공동체와 개방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로마 제국 내부의 '글로벌화'다.

이것이 '팍스 로마나'의 참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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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출신 황제들은 말하자면 실력 중시 정책의 성과였다.

태생도 성장 배경도 비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그들이 제위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기득권층에 절망한 사람들이 실력있는 자의 등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력 중시 노선이 정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이 장점이 있으면 결점도 있게 마련이다.

실력주의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동격이었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나한테 명령을 내리는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사려 분별이 요구되지만, 그런 합리적 정신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태생도 성장 배경도 자기와는 동떨어진 이른바 '귀골'에게 하층민들이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비합리'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가슴에 더 순순히 들어오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보다 비합리적인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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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은 어떤 사람의 생각 자체보다 올바른 행동이나 훌륭한 인격을 보고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저렇게 인품이 고결하고 훌륭한 사람의 말이라면 틀림없이 옳을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어떤 사상이 얼마나 널리 퍼지는가는 뜻밖에도 사상 자체의 내용보다 그 사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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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명확한 '백'에서 명확한 '흑'으로 이동하려면 망설임을 느끼고 멈춰서버린다.

그 선을 넘으려면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백'에 이어지는 것이 '백'에 한없이 가까운 연회색이고, 그 회색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조금씩 진해져서 문득 깨닫고 보니 어느새 '흑' 부분에 들어가 있었다면, 선을 넘을 때 느끼는 저항감도 한없이 약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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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 머리에 관을 씌워줄 사람이 없었던 것은 누가 황제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고 승인하는 것이 로마에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신들은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신이었지만, 인간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명령하는 신은 아니었다.

인간 세상의 인사에 참견하여 누구를 황제로 삼으라고 명령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들이 황제로 삼은 사람에게 황제가 된 이상 황제의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면 우리 신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격려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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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제국 후기를 특징짓는 이 제도를 만든 것은 군대 경력과 민간 경력 가운데 한쪽에만 종사하면 책임감을 가지고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의 조직에 속하는 데 익숙해지고 책임을 갖게 되면 다른 분야의 간섭을 싫어하게 되는 법이다.

간섭을 싫어하게 되면 자기도 남에게 간섭하지 않게 된다.

자기가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니까 남의 간섭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자기가 속한 조직을 비대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간섭이나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도록, 지금은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이나 부서도 계속 유지하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생각에 따라 조직된 로마 제국 후기의 관료 기구가 그의 의도보다 훨씬 비대해져버린 것도 이런 조직이 내포하는 성질에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 가지 분야에만 종사하는 것'은 효율성만 생각하면 합리적인 체제로 보이지만, 깊은 함정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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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한 뒤에는 그 지방을 지배해야 하는데, 지배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정복당한 쪽의 저항감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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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모두스가 황제에 적임자인지 아닌지는 별문제로 하고, 친아들이 후계자 인사에서 배제되면 본인이 원하든 말든 상관없이 현직 황제에 반대하는 세력이 황제로 추대하기에는 가장 적당한 존재가 된다.

요컨대 내란이나 내전의 불씨가 되기 쉽다.

순조로운 제위 계승이 곧 정국 안정으로 이어진 시대, 친아들이 있는데도 적임성만 중시하여 다른 사람을 후계자로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국 불안정을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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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참가자들의 의견을 좌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선동자와 거기에 큰 소리로 맞장구치는 몇 사람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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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패권 국가였던 나라의 주민은 이제 패권을 행사할 힘도 없고 그에 따른 특권을 모두 잃어버린 뒤에도 마지막까지 '긍지'는 잃지 않는다.

이것만은 남이 빼앗으려 해도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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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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