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재산이나 권력에서는 만토바가 도저히 밀라노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이사벨라 자신뿐이었다.
높은 교양으로 조금은 이름나 있던 그녀 자신의 이름을 더욱 높이는 것이었다.
훗날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가지 널리 알려진 '교양있는 만토바 후작부인'은 이 무렵부터 본바탕이 만들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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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식 조화란 정신과 육체, 선과 악이 명쾌하면서도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는 프로테스탄트적인 견해, 즉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의 '갈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 사이에 '갈등'이라는 혼탁하고 달콤한 관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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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는 정신과 육체가 인간 속에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요체는 비좁은 정신주의의 껍데기 속에 틀어박히지 않는 대담한 영혼과 냉철한 합리적 정신에 있다.
여기에 입각한 정신과 육체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조화.
이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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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의 좌우명-"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에 나타나 있듯이, 비토리아 콜론나의 '종교적이고 청결한 정신적 결합' 따위는 이사벨라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사벨라에게는 눈앞에 있는 현실이 곧 인생이었다.
설령 그 현실이 청결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해도, 그게 바로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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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아는 것은 곧 역사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어떤 시대를 잘 알고 싶으면 그 시대의 여자들을 잘 조사해보라"고 말한 사람은 괴테였다.
그녀에 관해서 쓴 사람들도 루크레치아의 성격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필연적으로 주변 상황이나 주위 사람들을 써넣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즉 남자에 대해 쓸 때는 주위 여자에 대해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여자에 대해 쓰면, 결과적으로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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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은 돈으로 고용된 군인이고, 따라서 용병대장들은 승산이 있는 싸움일 때는 용기를 내지만 대세가 기울면 부하 병사들밖에는 생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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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언제나 무책임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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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피를 흘리지 않는 이사벨라의 정치에서는 "사자와 여우가 결합한"(마키아벨리) 성숙함을 볼 수 있지만, 카테리나에게는 이것이 없다.
그녀는 여우라기보다는 사자였다.
이 점에서도, 그리고 생애의 비극적인 종말에서도 카테리나는 그녀의 가장 큰 적이된 체사레 보르자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체사레도 그러했듯이, 이런 유형의 인간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법이다.
사람들은 그들한테서 영원한 '청춘'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청춘은 아름답다.
특히 그 청춘이 감상적으로 낭비되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디딘 냉정한 정신과 함께 대담하게 발휘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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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에 대한 암살은 결코 정치체제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실례가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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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음모자들은 카테리나의 아이들 가운데 맏아들과 둘째아들을 성채 앞으로 끌고 갔다.
아이를 이용하여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한 것이다.
칼로 위협당한 아이들은 울면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카테리나가 성벽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맨발에 머리도 묶지 않고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오로시는 성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여기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야말로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모든 역사가가 후세에 전한 그 유명한 말이다.
카테리나는 유유히 치맛자락을 홱 걷어올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멍청한 놈들아, 이것만 있으면 아이쯤은 앞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말이다."
여기에는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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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 높은 정신을 가진 사람은 굴욕을 당하게 되면, 그 자존심 때문에 남보다 훨씬 깊은 고뇌에 빠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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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리나에게 상냥한 것은 신의 은총 따위가 아니라 돈과 권력과 사랑이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잃고, 그것들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 가능성마저 모두 사라져버렸을 때, 그녀는 비로소 신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행운을 타고난 아름다운 여자들이 대개 젊은 시절에는 그 육체를 악마에게 내주고, 그 젊음과 미모와 행운도 모두 시들어버린 만년에 이르러서야 남은 뼈를 신에게 바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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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공화국은 자국의 양녀인 카네리나 왕비의 통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키프로스왕국의 내정에 간섭했지만, 그 냉혹함과 현실주의적 치밀함은 르네상스 시대의 최강국인 베네치아의 정치와 외교의 본질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무력의 절묘한 균형.
정치와 무력을 효율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방식.
무언가 변고가 일어날 기미를 눈치채자마자 대함대를 보내, 그 위력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는 베네치아.
그리고 그 위력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베네치아의 정치와 외교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정치를 보여주는 예로 손색이 없다.
역사상 지칠 줄 모르고 되풀이되는 예술(아르테), 강대국이 무력을 이용하여 약소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예술의 실례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는 법적인 정당성도, 인간성에 대한 배려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신속하고 과감한 군사행동과 정치의 노련한 조화가 있을 뿐이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이 '지혜'라고 불러온 것, 모든 시대를 통하여 역사의 현실을 움직여온 것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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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중에는 어떤 고통이나 비애를 겪어도 그것이 조금도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애써 그것을 극복하고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과 비애를 가슴 속에 담아두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고통이나 비애는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녀들한테서 떠나간다.
마치 운명의 여신이 그녀들한테는 평소의 전의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
이런 여자는 가장 행복한 여자다.
그리고 남자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여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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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은 그 위선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저지르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고약한 악취로 사람들을 해친다.
그러나 자신의 위선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위선은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아름다움마저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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