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 모든 사람에게는 자긍심이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늘 있었다.
글자들은 다를지라도 그 의미는 모두 같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좋은 평가 또는 의견'이라고 기본 정의를 내리면서, 1600년대부터 '자긍심'이 사용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북미 사전들은 그 뜻을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자아 존경'으로 축약한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동의어로는 '자아 의존', '자아 귀결', '평정', '자신감', '확신', '자만' 또는 '자기 충족'도 있다.
반의어로는 '자아 의심'과 '자아 결여'에서부터 '자기 증오'와 '수치'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정적 단어들이 있다.
오래된 가르침일수록 자아지혜와 자기 존경을 힘과 저항, 그리고 메타 민주주의(모든 살아 있는 것들, 그리고 우주와의 하나 됨)의 원천으로 표현한다.
가부장제도·인종주의·계급제도나 다른 위계질서들은 자긍심을 제한하고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부의 지혜를 약화시켜서 외부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이끈다.
자긍심을 깨닫는 일은 그 잘못된 모든 것들을 안으로부터 바꾸는 하나의 참된 혁명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패턴들을 돌아보게 되어서야,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변화가 더 좋은지 어떤지에 관계없이, 처음에는 좀 춥고 외롭다.
우주의 끝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도 하다.
아무래도 익숙한 집 같은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된 패턴들은 아무리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마법같이 우리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게 우리가 살아온 집이기 때문이다.
패턴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직시하게 되면 패턴의 반복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를 치유할수록 우리는 현재에 응답하게 된다.
우리가 누구이든 천부적 권리인 자긍심을 재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비슷한 단계를 밟는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경험이다.
예를 들면, 한 식민지인이 처음으로 지배국 군인을 쏘아보는 순간이라든가, 한 여인이 남성의 눈초리에 의해서 평가받기를 거부하는 순간 따위가 그것이다.
두 번째는 수치스러운 비밀처럼 보이는 것을 당당히 말함으로써, 그것이 수치스럽지도 않고 비밀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유년기에 당한 성폭행의 악몽에서 살아남은 여자로부터, 끝없는 권력욕 뒤에 숨겨진 한 남자의 유악함까지도 말이다.
세 번째로 내내 정상적인 것처럼 취급되어 이름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들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도 있다.
동성애 혐오증이나 매 맞는 여성, 유럽 중심주의 등의 신조어를 생각해 보라.
네 번째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결속하는 것이다.
갖가지 능력이 있는 사람득ㄹ의 모임으로부터 토착주민들의 화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다섯 번째 단계로, 스스로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자치를 할 수도 있다.
그런 일 역시 자신의 집과 소득이 있는 여성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국가들에게까지 폭넓다.
여섯 번째로, 힘이 분배된 구조 안에서 결속하게 된다.
민주적 가정, 레인보우 연합을 떠올리거나 국제 연합의 원칙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고 나면 마침내, 독립과 상호의존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참된 자아의 동심원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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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여성들은 그 누구건, 어느 곳에서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 분출되는 열등감이 생활과 몸 속 깊숙이 흐르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자긍심을 발견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종이나 나이, 외모와 능력 그리고 그 밖의 어떤 것에도 구애됨 없이, 자신이 가치 있는 낱개의 인간이라는 확신이 우리 몸 안에 뿌리를 내릴 때, 바로 그때 자긍심이 내 것이 된다.
확실하게 거머잡고 내 안에 단단하게 뿌리를 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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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철학자 알렌 와츠A. Watts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마법 같은 질문으로 우리 자신과 타인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神"섬세한 보석 같은 눈과 황홀한 악기 같은 귀, 그리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오묘한 신경 조직의 뇌, 이 모두를 갖춘 존재가 어떻게 자신을 신神보다 못하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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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우리 자매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능히 사랑을 받을 만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있고 또 그럴만한 존재라는 확신.
그 확신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자긍심을 갖게 하는 출발이었다.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게 '총체적·기질적·핵심적'자긍심이다.
내게는 '핵심적'이란 말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우선순위에서 가장 먼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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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좀 더 지나면 우리는 심리학자들이 '상황적'이라고 표현하는 제2의 자긍심 개발에 나서게 된다.
바깥으로 점차 커나가는 자긍심이다.
무언가를 잘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하며, 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예전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도전적인 일들을 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짜릿한 기쁨들을 맛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새로운 능력에 만족하고 타인들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상호 공감을 느끼며, 세상에 대한 자라나는 호기심이 우리의 감각 하나하나를 통해 충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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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밀러는 말한다.
자력구제가 가능하려면 그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우리가 가진 진정한 감정을 확인해주고 긍정해 주는 사람, 그럼으로써 우리의 진정한 자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고, 그걸 실제로 남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어린 시절에 최소한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희망적인 '한 사람'이론이 진실임을 믿는다.
믿게 되었다.
나아가 덧붙이고 싶다.
비록 그런 한 사람이 없더라도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바로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아이에게로 돌아가서 그 아이가 무엇을 경험했는지를 기억해 내고 그것을 경험하며,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우리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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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대한 자각은 정의와 자긍심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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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사실만은 명백하다.
인간의 마음은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방법과 그것을 키우는 방법 양쪽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상상은 창조의 첫단계가 된다.
진정한 자아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한 자아의 탄생을 허락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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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엇을 창작하든 그건 인류의 손만큼이나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지문만큼이나 독특한 것들이다.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할수록 하나의 이미지가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더 자주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된다.
바로 그것이 눈에 드러나는 당신의 진정한 자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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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산상수훈의 교훈은 '남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당신도 남에게 하라'다.
자신들의 자긍심이 억압받아 온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말이 '당신이 남에게 해주는 것처럼 당신 자신에게 하라'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뒤집어야만 혁명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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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기준은 역사나 하늘로부터 내려온 객관적 미학의 산물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 그걸 만들고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준은 변덕이 심하고 사라지기도 쉽다.
우리들은 그걸 안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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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남녀 불문하고 미의 기준이라는 것도 사회가 우리에게 원하는 행동과 원하지 않는 행동에 관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다.
그러면 우리는 힘을 모아 우리의 행동 양식을 바꾸어 미의 기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실 미의 개념은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정기적을 바뀌며 변화한다.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에는 항상 그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미의 기준을 받아들이기 전에 '나는 정말로 그 기준이 상징하는 행동을 좋아하는가?'라고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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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낮은 자긍심을 갖고서는 남녀 모두 그들에게 부여된 성 역할을 과장하여 인정받으려 하고 거기에서 피난처를 찾으며, 성장하면서 오히려 더 불완전하게 된다.
남성의 경우는 융통성 부족, 독단성, 경쟁심, 공격성, 여성적인 것과의 거리, 동성애 혐오증, 심지어는 잔인성과 폭력 등이 저조한 자긍심을 보여주는 고전적 표본이 된다.
그 반면 복종, 의존성, 남성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심리, 갈등에 대한 두려움, 자기 비난, 그리고 분노를 표현할 수 없는 무능 등은 여성의 낮은 자긍심을 보여주는 전형적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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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자아로서 출발한 로맨스는 사랑으로 변화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연인들 간에 낮은 자긍심과 필요성의 결여는 깊고 지속적인 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적이다.
린다 샌포드와 메리 엘렌 도노반은 낮은 자긍심이 친밀함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라고 보고 있다.
자긍심이 낮으면 여자는 누군가가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그럼으로써 그녀를 거부하는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남자도 똑같은 공포를 경험한다.
거기에 여성에 대한 의존과 자신의 내부에 있는 '여성적'느낌이 발견되면 그동안 쌓아올린 그들의 남성다움이 소멸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얹히게 된다.
때로 낮은 자긍심은 질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질투는 자신이 부적합하고 불완전하다는 확실한 느낌에서 나온다.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에게 결여된 품성을 투영해온 누군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이 더욱 강해지며, 그에 따라 우리의 시기심도 높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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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긍심은 로맨스를 시들게 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단지 현재의 형태에서만 그렇다.
결국 로맨스는 중요하기는 해도 부가적인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고, 환상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소유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다면, 로맨스는 아주 깊이 친밀하며, 감각적으로 공감하는 배움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눈을 통해서 보고 느끼며, 또 다른 문화를 흡수하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더 넓게 세상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올 수 있게 된다.
로맨스가 끝났을 때도 부족하거나 화가 나거나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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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처럼 자신의 모습을 여럿 갖고 있다.
우리들 안에서 부드러움과 포용을 바라는 아이는 그렇게 오래된 아이가 아니다.
바로 작년의 우리 모습이기도 하고, 어제 되고 싶었던 우리이자, 어떤 직장에서의 모습 또는 어느 겨울의 모습이거나, 지금 사랑에 빠져 있는 그런 우리의 모습이다.
자꾸만 떠오르는 자신의 실체들을 아우르는 것,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목소리다.
우리 내부에는 진정한 목소리가 늘 있게 마련이다.
믿으라. 그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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