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초기 제도사들을 깊이 있게 연구해 볼수록 권위의 기원을 군사 이론에서 그 근거를 찾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오히려 나중에 억압의 근원이 되기도 하였던 그러한 권력조차도 그 기원은 
대중들의 평화를 지향하는 경향에서 발견된 듯하다.

#상호부조론 #크로포트킨


브레멘의 놀라운 옛 교회는 9세기에 건설되었고,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사원은 1071년에 완공되었으며, 


피사의 아름다운 돔은 1063년에 만들어졌다. 


사실 12세기의 르네상스와 12세기 합리주의 -종교개혁의 선구-로 설명되는 지적인 운동은 
도시 대부분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작은 촌락 공동체 형태가 단순한 집단으로 여전히 남아 있던 이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상호부조론 #크로포트킨


길드 제도는 인간 본성이 지닌 아주 뿌리 깊은 욕구를 충족시켜주었고 
이후에 국가가 관료나 경찰제도를 통해 독점하였던 모든 기능을 구현하였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길드는 모든 상황마다 그리고 살면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행동과 충고'를 통해 서로 도와주는 단체였고, 
정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국가 간섭의 근본적인 특징인 형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모든 경우에 인간적이고 형제애적인 요소가 채택된다는 점에서 길드는 국가 조직과는 다르다. 


#상호부조론 #크로포트킨


인간 심리에는 동기가 있다.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미치지만 않았다면 그들은 도움을 청하는 호소를 듣고 이에 응답하지 않고 “견딜 수 없다” 
영웅들은 행동한다. 


모든 사람들은 영웅들이 할 일은 자신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의 궤변으로 상호부조라는 감정을 거스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감정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사회생활 속에서 그리고 인류가 나타나기 전 수십만 년 동안의 군거 생활 속에서 길러졌기 때문이다. 


#상호부조론 #크로포트킨


요약하자면, 중앙집권국가의 파괴적인 권력도, 고상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으로 치장해서 만들어낸 상호증오와 무자비한 투쟁이라는 학설도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박혀 있는 연대의식을 제거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의 연대감이란 앞선 진화 과정 속에서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부조론 #크로포트킨


동물계에서 대다수의 종들이 군집을 이루어 살며 연합을 이루어야 생존경쟁에서 가장 좋은 무기를 얻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여기서 생존경쟁이란 다윈의 주장대로 넓은 의미에서 단순히 생존 수단을 얻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이 종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모든 자연 조건에 맞선 투쟁을 말한다. 


개별적인 투쟁을 최소화하면서 상호부조를 최고조로 발전시킨 동물 종들이야말로 늘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며 가장 번성하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확보된 상호방어, 오래 생존해서 경험을 축적하게 되는 가능성, 더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는 지능, 더욱 발전해가는 사회적인 습속 등을 통해서 종족이 유지, 확장되고 더 높은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진화하게 된다. 


반대로 사회성이 없는 종들은 멸망할 운명에 처한다.

#상호부조론 #크로포트킨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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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을 하면 제일 못난 삶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억압을 하면 흥분하여 제 정신을 잃게 된다.
억압이 지나치게 커지기 전에 긴장을 풀고 삶으로 뛰어들라.
죄의식을 느끼지 말라.
살고, 사랑하고, 알고, 존재하는 것은 너의 삶이다.
신이 너에게 어떠한 본능을 부여했든, 그것은 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어디서 충족을 찾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표지일 뿐이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부자가 되는 방법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 물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부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부모를 잘 고르는 것이다.”

자궁을 잘 선택할 만큼 지혜롭다면 너는 벌지 않고도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극소수의 인간만이 그렇게 영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아무 자궁에나 들어가 버린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진정한 가난이란 영혼의 순수함이다. 

‘수피'란 말은 아라비아어의 '사파'란 단어에서 나온 것인데, 

'사파'란 순수함을 의미한다.

 '수피'는 마음이 순수한 자를 의미한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사태가 어떻든 슬프다면 슬퍼하라. 
복수심이 불타오르면 복수를 하도록 하라. 
화가 나면 화를 내라. 
사실을 결코 피하지 말라. 
그대로 살아야 한다. 
그것은 삶의 발전과 성장과 진화의 일부이다. 
그것을 피하는 사람들은 성숙하지 못한 채로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된다. 
성숙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을 피하라. 
그러나 기억하라. 
그때 그대는 삶 자체를 피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무엇을 피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피하는 것, 그 자체가 삶을 도피하는 것이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마음은 계속해서 속임수를 찾아내고 있다. 
그렇게 해서 신을 만들고 기도를 하며 벌을 받고 지옥이나 천국으로 보내진다. 
이 모든 것이 단지 상상일 뿐이다. 
신이나 지옥 또는 천국이라는 것은 없다. 
모두 마음의 작용이다. 

내 마음 속에 천국과 지옥 신과 악마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깨달은 사람은 살아 있는 강이다. 

그리고 강은 항상 흐르고 있다. 

아침에 그것은 떠오르는 태양의 금빛을 반사한다. 

특이한 분위기가 있다. 

저녁에 그것은 달라지며 밤이 오고 별들이 그 안에 비치면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현상은 변화한다. 

이것이 진리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그대가 비록 황제라 해도 그대는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 
그때 모든 것은 꿈처럼 여겨진다. 
아침에 눈을 뜰 때처럼 꿈은 깨어지고 모든 권력은 사라지며 왕국도 사라진다. 
그래서 죽음이란 하나의 깨어남이다. 
죽음의 순간에 남는 것이 진정한 것이며 사라지는 것은 꿈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둘로 환산한다.
당신이 빛과 어둠이라고 부르는 에너지는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두 개의 이름으로 부른다. 
당신이 삶과 죽음이라고 부르는 에너지는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두 개의 이름으로 부른다. 
당신이 미움과 사랑이라고 부르는 에너지는 하나이지만 당신은 그것을 두 개의 이름으로 부른다. 
미움과 사랑이다. 
상대적 개념으로부터 빠져 나오라.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무엇이 진실인가? 


그대는 꿈에서 나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대는 삶이라고 하는 더 큰 꿈속에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대가 깨달았을 때 그대는 깨달은 마음 상태를 얻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태도 아닌 마음, 


즉 무심에 이르는 것이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무엇을 원하면 원하는 만큼 괴로움이 따른다. 


괴로움에서 벗어날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달을 가린 구름이 없어질 때만이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내부로부터의_행복 #오쇼_라즈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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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가 그리스를 장악한 뒤 취한 그 모든 정책에도 불구하고 투르크 정복자가 그곳에 직접 가서 정주하지 않았더라면 그리스를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현지에 가서 직접 살게 되면 소요가 발생하자마자 곧바로 알 수 있고 효과적인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요가 일어나서 이미 해결이 불가능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다.
그 밖에도 직접 그 지방에 가서 살게 되면 당신의 관리들이 함부로 약탈을 하지 못 할 것이다.

군주론 / 마키아벨리


이와 관련해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 주든가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염두조차 내지 못 한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한다.

군주론 / 마키아벨리


앞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습 군주국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법에 따라 자유롭게 사는 것에 익숙한 국가를 정복한 경우라면, 그 국가를 계속 장악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그 국가(의 자유와 법)를 파괴하는 것이다.
둘째, 그곳에 직접 가서 정주하는 것이다.
셋째, 공물을 바치게 하고, 당신과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소수(귀족)로 구성된(과두정) 국가를 세우는 한편, 그들 자신의 법에 따라서 계속해서 예전처럼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군주론 / #마키아벨리


신생 개혁 군주들은 구체제에서 이익을 얻던 사람 모두를 적으로서 대면하게 되는 반면,
새로운 체제에서 이익을 얻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서는 단지 미온적인 지지만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런 미온적 태도는 적대자들에 대한 무서움으로부터 발생하는데,
적대자들은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이다.
다른 한편 그런 미온성은 확실히 체험하기 전에는 새로운 일을 믿지 않으려는 인간의 회의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지자들이 새로운 체제를 미온적으로 방어하는 반면,
적대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당파적 열정을 가지고 공격을 하는바, 새로운 체제와 그것을 이끄는 사람들은 위험에 처하게 마련이다.

군주론 / 마키아벨리


나는 이런 일은 잔인한 조치가 잘못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잘 사용되었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믿는다.
만약에 악한 행동에 대해서도 좋게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잔인한 조치가 ‘잘 이루어졌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이라는 불가피성 때문에 행해지고,
그것도 일거에 모두 저질러진 다음 계속되지 않고 그 후에는 신민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복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전환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잔인한 조치가 '잘못 이루어졌다'는 것은, 처음에는 그런 조치가 거의 행해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런 조치의 필요성이 없어지기는커녕 더 커지는 것을 말한다.

군주론 / 마키아벨리


가해 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일으킨다.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군주론 #마키아벨리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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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토록 많은 사람들, 그토록 많은 부자들, 도시들, 그리고 나라들이 단 한 사람의 독재자를 견디는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독재자의 권력이란 그 권력에 종속된 다른 모든 이들이 그에게 건네준 힘일 뿐이다.
다른 모든 이들이 독재자를 참고 견디는 한, 그의 권력이 부리는 횡포는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저항하지 않더라도, 단지 견뎌내기를 멈추기만 해도, 독재자는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떤 해악도 끼칠 수 없다.

에티엔 드 라 보에시 / 자발적 복종


민중은 흔히 자발적으로 굴종을 택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을 자른다.
노예가 될지 자유인이 될지를 선택하는 것은 민중 자신이다.
자유를 버리고 멍에를 짊어지며 잘 정비된 법률하에 권력의 보호 아래로 기어들어가는 것은 동시에 근심과 압제, 불의 그리고 오직 독재자 한 사람만의 기쁨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발적 복종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나는 그대들이 독재자를 밀어내고 흔들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기를 원할 뿐이다.
그때 그대들은 디딤돌을 뽑아낸 거대한 동상처럼 자신의 무게로 무너져 내려 산산조각 나는 독재자의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자발적_복종 #에티엔_드_라_보에시


인간은 가져본 적 없는 것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아쉬움은 즐거움을 안 뒤에 오고,
지나간 기쁨에 대한 기억이 있는 까닭에 불행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발적_복종 #에티엔_드_라_보에시


리디아 왕국을 예속 상태에 두고 경비를 위한 주둔군을 배치하는 데 따르는 재정상의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했다.
이때 키루스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묘안은 사르디스에 사창가와 술집, 공중도박장 등을 허가하는 것이었다.
이 방침을 왕령으로 발표하고 국민들도 그 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모든 국민들이 이 정책을 환영했다.
그러자 더 이상 국민들을 다스리는 데 무기가 전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가련하고도 비참한 국민들은 점점 더 많은 놀이에 빠져들어 갔다.

#자발적_복종 #에티엔_드_라_보에시


우정, 그것은 신성하고 거룩한 이름이다.
우정은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싹트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통해서만 자란다.
우정은 물질적 호의가 아니라 고결한 삶의 태도에 의해 유지된다.
친구간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정직함을 알기 때문이다.
우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반듯한 성품과 믿음 그리고 변치 않는 태도다.

#자발적_복종 #에티엔_드_라_보에시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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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테러리즘, 강탈, 세뇌는 사람들이 기꺼이 병사가 되고자 하는 상황을 조성한다.
병사들은 국가에 권력을 부여하고, 국가가 사람들을 처벌하고 정신적으로 마비시키고 그들의 돈을 강탈하고(또 강탈한 돈으로 관리를 매수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병사로 징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새로 병사가 된 사람들을 통해 국가의 권력은 더욱 증대된다.
폭력의 체계는 완성되었고, 따라서 무력으로 여기서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반대로 권력은,
일반적으로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바람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권력 기관에 복종하는 사람은 자신의 바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강요된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원치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 위해 육체적 폭력을 이용하거나 육체적 폭력으로 위협한다.
자유를 박탈하거나 상해 혹은 구타를 가하거나 아니면 이런 식으로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나 이것이 바로 권력의 실체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복종은 사람들에게 이성적 사고나 어떤 의지의 행사 없이 특정한 지시에 따르기를 요구한다.
이를 거부하려면 독립적인 사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복종과 불복종의 윤리적 중요성을 배제하고 각각의 경우에 어떤 점이 좋고 나쁜지 살펴보면, 국가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보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언제나 이롭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애국심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이며, 자기 마음의 평정, 재산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며 적들의 침략과 학살로부터 자기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신조이다.
애국심은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침략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던 당시의 개념이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이 혁명은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이 혁명이 인류에게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 가운데서 이 혁명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인류를 변화시킬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노예제는 우리들 가운데서 분명하게 살아 있다.
단지 우리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18세기 말 유럽에서 농노제를 노예제로 깨닫지 못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당시의 사람들은 영주를 위해 땅을 경작하고 영주의 명령에 복종하는 농노의 지위를 당연하고 필연적인 삶의 경제적 조건으로 간주했고,
그것을 노예제라 부르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노동자의 지위를 당연하고 필연적인 경제적 조건으로 여기고,
이것을 노예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국가는_폭력이다 #레프_톨스토이


복수의 감정과 분노를 표출할  때를 제외하면,
폭력은 어떤 사람에게 그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강요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면 ,
그것은 노예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폭력이 존재하는 한, 노예제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비밀경찰,밀정망,뇌물을 받은 언론,도로,전신,전화,사진,감옥,요새,엄청난 부,교육사업,무엇보다 군대가 정부의 수중에 있다.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튼튼하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무능하고 아둔한 통치자라도 (자기 보존 본능으로) 위험한 봉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고, 대중 반란을 일으키려는 미약한 시도 따위는 쉽게 진압할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혁명가들이 때때로 이런 반란을 도모하는데,
그들의 시도는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권력이 철폐되더라도 권력의 철폐가 결코 무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런 모든 주장들은 옳다고 하겠다.
권력을 무너뜨린 권력은 권력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권력이 무용하여 해를 끼칠 뿐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는다면, 권력을 철폐할 수 있다.
사람들은 권력에 복종하거나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진리는 논의의 여지가 없다.
권력은 인간의 합리적인 각성에 의해서만 철폐될 수 있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환상이 아닌 실제의 자유는 바리케이드나 살인으로 얻어질 수 없으며,
강압적으로 도입되는 새로운 제도에 의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이 만든 모든 권력 기관에 대한 복종의 중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그리고 가장 자유로운 유럽의 여러 국가와 미국에서 그런 것처럼 억압적인 정부가 존재하는 한 똑같이 무분별하고 잔인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똑같이 토지는 여전히 부유한 자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
모든 억압을 철폐하고 끝없는 군비 확대와 전쟁을 막고 토지의 사적 소유를 폐지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폭력에도 참여하지 않는 길밖에 없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자유는 어떤 사람에게 그의 바람과 이익을 무시하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인류는 폭력의 규범에 따라 살아왔다.
다른 것은 몰랐다.
하지만 진보적인 인류의 지도자가 전 인류에게 공통적인 새로운 상호 협력의 규범을 공표했다.
인간은 이 규범을 받아들였지만, 완전한 의미에서 받아들이지는 못 했다.
사람들은 이 규범을 따르려 애썼지만, 여전히 폭력의 규범에 따라 살았다.
기독교는 인류에게 최대의 행복을 줄 수 있는 만인 공통의 규범은 단 하나라는 진리를 확인시켜주었다.
그것은 상호 협력의 규범이다.
기독교는 또한 이 규범이 왜 실현되지 못 했는지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폭력의 사용을 필요하고 유익한 것으로 여기는 동시에 징벌의 규범을 정당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국가는 폭력이다 /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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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셜이 말한 세 가지의 연속되는 추진력을 비판하고 공격하고 조롱하는 근본적인 방법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또 다른 세 가지 대칭 명제들을 발견했다.
내가 찾아낸 것은 세 가지 근본적인 반동적/반작용적 명제들인데, 나는 그것을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라 부른다.
역효과 명제에 따르면 정치 사회 경제 질서의 일부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행위자가 개선하려는 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다.
무용 명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으며 그 노력들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위험 명제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변화나 개혁은 이전의 소중한 성취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앨버트 O 허시먼


보통선거권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보통선거와 타협이 불가능한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엘리트들의 목소리도 더욱 커졌다.
니체의 예를 들어보면, 그에게 보통선거는 '무리본능'의 궁극적인 표현에 불과했다.
'무리본능'이란 니체가 민주 정치를 향한 모든 경향들을 폄훼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용어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앨버트 O 허시먼


역효과 명제는 인간 세계가 매우 변덕스러우며 그런 하나하나의 변화는 곧바로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가지 반작용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반면에 무용 명제 지지자들은 세계가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고 내재하는 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어서, 인간의 행위는 세계를 고쳐나가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하다고 보고 있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앨버트 O 허시먼


일반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의 노력과 가능한 성과에 대해 회의적이고 경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대 보수주의자들이 지니는 태도로서 필수적이고 매우 효과적인 요소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진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그 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의분에는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했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앨버트 O 허시먼




반동 :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동 :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반동 : 계획된 행동은 사회 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법칙”)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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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즙이 많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나 질 좋은 포도주 같은 것이라서, 

거기에 익숙해진 튼튼한 체질을 유지하거나 더욱 강건하게 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거기에 맞지 않는 허약한 체질은 오히려 압도하고 허하게 하며 취하게 만듭니다.


일단 지배받는 데 익숙해진 국민은 이미 지배자 없이 지낼 수 없게 되지요.


만일 속박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들은 자유에서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그들은 참된 자유와 반대되는 방종을 자유로 착각하므로, 

혁명을 한다고 해도 거의 언제나 자기들의 족쇄를 더욱 무겁게 만들어버릴 뿐인 선동가들에게 스스로를 내맡기게 되지요.

인간 불평등 기원론/장 자크 루소


그리고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인류의 모든 진보가 인간을 끊임없이 원시 상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할수록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연구했기 때문에 인간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나는 인류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나이 건강 체력의 차이와 정신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한다.

또 다른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장 자크 루소


그런데 건장하면서도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는 두 가지 모순된 가정이다.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을 때 인간은 약한 법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로워져야 건강해진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장 자크 루소


굴종의 끈은 인간 상호간의 의존과 인간들을 결합시키는 상호적 필요성이 없으면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어떤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것이 그를 다른 사람 없이는 살아가지 못 하는 처지에 두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는 이와 같은 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나 속박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우며 강자의 법칙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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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 사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말뚝을 뽑아버리고 토지의 경계로 파놓은 도랑을 메우면서 동류의 인간들을 향해 

“저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소유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신들은 파멸할 것이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죄악과 싸움과 살인, 얼마나 많은 비참과 공포에서 인류를 구제해주었을 것인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사람들은 오두막 앞이나 큰 나무 주위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연애와 여가의 진정한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모여든 한가한 남녀들의 심심풀이라기보다는 매일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고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 얼굴이 잘 생기거나 힘이 센 사람, 재주가 가장 뛰어나거나 언변이 가장 좋은 사람은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이러한 최초의 선호에서 한편으로는 허영심과 경멸이 태어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치심과 부러움이 생겼났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효모에서 생긴 효소가 마침내 행복과 무구에 치명적인 화합물을 생성시켰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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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자기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 인간이 과연 자신의 노동 외의 그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직 노동만이 경작자에게 자신이 경작한 토지의 산물에 대한 권리를 적어도 수확기까지 부여하며,
따라서 토지에 대한 권리를 해마다 보유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토지의 점유가 반복되면 그것은 쉽게 소유로 전환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한편으로는 경쟁과 대항이,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의 대립이 있게 되는데
이 모두가 남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숨겨진 욕망일 뿐이다.
이 모든 악은 소유가 낳은 최초의 결과이며 이제 자라나기 시작한 불평등과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동반자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이러한 모든 변천 가운데서 불평등의 진행을 따라가보면 

법과 소유권의 설정이 제 1단계이고 

행정 권력의 제도화가 제 2단계이며 

합법적인 권력에서 독단적인 권력으로 변화하는 것이 제 3단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자와 빈자의 상태는 첫 번째 시대에 의해, 

강자와 약자의 상태는 두 번째 시대에 의해,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세 번째 시대에 의해 성립되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즉 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말하자면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의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미개인은 안식과 자유만을 추구하고 한가로이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스토아 학파의 아타락시아도 미개인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깊은 무관심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와는 반대로 문명인은 항상 활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불안해하며 더욱더 힘든 일을 찾아 끊임없이 번민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때때로 살아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위해 죽음으로 내달리며, 불멸을 찾아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증오하는 세력가와 자신이 경멸하는 부자들에게 아부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영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비굴과 그들의 보호를 거만하게 자랑한다.
자신의 노예 상태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그 노예 상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가지고 얘기한다.
힘은 들어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유럽의 대신들의 일이 카리브인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
이 게으른 미개인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을 가지고도 위안받을 수 없는 그런 끔찍한 생활보다는 차라리 잔혹하게 죽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인간불평등기원론 / 장_자크_루소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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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더 이상 과학적 진실과 발견을 축적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과학이 이룬 진리들을 확장하여 

삶에서 실천하게 함으로써 공동의 소유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적용하게 하여 

학문이 사치가 되기를 멈추고 

모든 사람의 토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의가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청년에게 고함/크로포트킨


여러분 앞에 놓인 첫 질문은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에게 자주 던졌던 물음입니다.


젊은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직업 훈련을 하거나 학문을 공부한 것(사회가 그 비용을 지불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이 

착취의 도구가 되려 함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동안 쌓아 올린 지성이나 능력과 학식을 활용하여 

오늘날 비참과 무지의 나락에 떨어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도울 날을 꿈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덕으로 타락한 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에게 고함/크로포트킨


당신이 사람들이 가르쳐 준 것을 반복하는 대신 이치를 따진다면, 


그래서 당신이 법을 해부하고 그것의 뿌리와 속살을 감추려고 쳐 놓은 연막 구도를 벗겨 내 

법이란 애당초 힘센 자의 권리였으며 

인류에게 피로 물든 역사로 대물림된 압제에 언제나 봉헌해 왔음을 인식한다면, 


법에 대해 최상의 경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쓰여있는 그대로 법을 따른다는 것은 곧 매일 양심의 법에 맞서는, 

심을 파는 일임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은 오래가지 못 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양심을 침묵케 하면서 불한당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런 관례와 절연하고 모든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불의를 없애도록 우리와 함께 싸우겠습니까?


이때 당신은 사회주의자,혁명가가 될 것입니다.


청년에게 고함/크로포트킨


하지만 당신의 심장이 인류의 심장과 함께 박동하거나,


참된 시인으로서 인간의 숨결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면,


당신 주위에서 요동치는 이 고통의 바다 가운데서,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과 

광산에 쌓인 시신들,
바리케이드 둔덕 위에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과 

시베리아 벌판과 열대 섬 해안에 자신을 묻으러 가는 추방자들의 행렬 가운데서,


숭고한 투쟁이 전개되고 패배한 자들의 고통스런 신음 소리와 승리한 자들의 술판, 

비겁에 맞서 싸우는 용맹, 숭고한 열성과 비열한 악의가 요동치는 와중에 

당신은 중립인 채로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설 것입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것이, 숭고한 것이, 그리하여 생명 자체가 빛을 위해, 인류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의 편에 서야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청년에게 고함/크로포트킨


시인,화가,조각가,음악가인 당신은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예술 자체가 무엇을 위해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당신의 펜,붓 끌을 혁명에 복무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다채로운 문장과 인상적인 그림 속에 

압제자에 맞서 싸우는 인민의 거대한 투쟁을 담아 주십시오.

청년에게 고함/크로포트킨


오늘의 삶이 얼마나 추한 것인지 
인민에게 보여 주고, 


이 추함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우리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십시오.


그리고 이성적인 삶이, 
그런 삶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오늘날 사회질서의 무능과 치욕과 맞닥뜨리지 않는다면 
그건 어찌된 일인지 
우리에게 말해 주십시오

청년에게 고함/크로포트킨


자신의 재산을 그만큼 늘리려 할 때 당신이 항의하면 

그는 거만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풀이나 뜯어 먹으러 꺼져! 이 봉급으로 일하기 싫다면 말야.”


그때 당신은 고용주가 당신을 양처럼 착취할 뿐만 아니라 

당신을 열등한 종자로 취급하여 

임금 제도로 당신을 발톱 밑에 놓고 지배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당신을 모든 면에서 노예로 부리려 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허리를 굽히고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며 결국 숱한 모욕을 당할 것입니다.


혹은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당신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는 데 전율하여 고용주에게 대들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고 길바닥으로 쫓겨난 당신은 

사회주의자들이
“일어나라! 경제적 노예제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라! 경제적 노예제는 모든 노예제의 뿌리다!”라고 말할 때 

그들이 옳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사회주의자의 대열에서 당신의 자리를 가질 것이며 

모든 노예제,경제적,정치적,사회적 노예제를 폐지하려고 사회주의자와 함께 싸울 것입니다.

청년에게 고함/크로포트킨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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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희망과 욕심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줄기에서 뻗어나간
두 개의 잎사귀다.


희망과 욕심을 구별하는 것은
피아를 구별할 수 없는 전쟁터처럼
혼란스러운 일이라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래서 욕심이 아닌 ‘정당한’ 희망을 가지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이미 나름대로 희망과 욕심에 대한 인식의 틀이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이다.

사람 VS 사람/정혜신


아무리 지식인의
'양비론'이 '안전빵' 이라지만
문제의 원인 제공자는 따로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
정당한 이의를 제기한 측과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항상 똑같이 취급하면 그게 말이 되는가.

사람 VS 사람/ 정혜신


인간의 기억은 우월한 쪽으로 흡수된다.


과거는 찬란했으나 현재가 보잘것없는 사람은 과거 쪽으로,


과거에 비해 현재가 월등한 사람의 과거는 화려한 현재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용으로만 기능한다.

사람 VS 사람/정혜신


'감이 없다'는 게 별거 아니다.


다른 현실이란 있을 수 없고 내가 알고 있고 좋아하는 것만 현실이라고 우기다 보면 필연적으로 현실감각을 잃게 된다.


현실감각을 유지하려면 타인의 행위 뒤의 동기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현상적 시각이 필요하다.


내가 보고 싶은 상황만 보지 말고 나와 타인의 전체적 현실을 동시에 인식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문제다.

사람VS사람/정혜신


융은 심리학적 유형의 하나로
인간을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구별하였는데,
그들은 주체와 객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어떤 사람의 행동과 판단을 결정하는 기준이
주로 객체에 의한 것일 때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며, 

반대로 객체보다도 주체에 의해 결정되면 내향적이라고 한다.

사람VS사람/정혜신


부끄러움이란
‘자아에 집중하고 자존감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남자는


자기 중심이 튼실한 매력적인 남자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VS사람/정혜신


부끄러움은 마땅히 부끄러움을 아는 부끄러움으로 타올라야 하고, 

다시 부끄러움을 되풀이 하지 않는 다짐으로 피어올라야 한다.


나는 그것을 짐짓 ‘인격’이 바탕인 ‘치격’이라고도 불러오는 터이다.


부끄러움을 알아야만 비로소 부끄러움을 이겨내게 된다.


우리의 말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끄러움을 ‘무치’라고 표현한다."

사람VS사람/정혜신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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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법정 스님 옮김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각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


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번뇌에 불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법정 스님 옮김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 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법정스님 번역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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