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일보 사옥.

우리가 알고 있는 홍씨들의 중앙일보는 아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사장으로 계셨고, 마라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와 함께 무기한 정간 처분을 받은 신문사.
건물도 낡고 낡았지만 의미도 낡고 낡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무심히 스칠 것 같다.
#조선중앙일보_사옥 #몽양_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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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동 구 일본인 창고

장미동(臧米洞), 한자를 본 이후에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일제 수탈의 역사를 암시하고 있었다는 걸.
정미소와 미선소 그리고 쌀창고가 가득했을 이곳에서 ‘조정래의 아리랑’이 생각났다.
쩔뚝거리며 걸어 나오는 창고의 십장 손판석과 쌀 한 줌에 조마조마 했던 보름이 그리고 미선소에서 능욕을 당한 수국이가 이 창고 근처를 지나치지 않았을까?
#장미동_구_일본인_창고 #군산 #장미동 #조정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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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서원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
꽉 닫힌 문 때문에 그의 위패를 볼 수는 없었다.
다만 포은 정몽주의 묘와 정암 조광조의 묘 사이에 그들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닫힌 문 뒤로 하고 빙긋이 웃으며 나는 이 말이 나왔다.
“역시 정치는 세(勢)로구나!”
#충렬서원 #용인 #포은_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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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헌 이석형 선생의 묘

세종 때는 집현전 학사이며 세조때는 단종 복위에 긍정적인 인물.
하지만 그의 묘가 왜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 근처에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포은의 묘 옆에 그의 묘가 있기에 익히 알려지지 않은 이석형 선생의 역사도 알게 되었다.
저헌 이석형 선생의 부인이 묘비에 써있는 대로 연일 정씨이며, 포은 정몽주의 증손녀라고 되어있다.
이로써 포은 정몽주의 묘 근처에 저헌 이석형 선생의 묘가 있는 게 이해가 됐다.
#저헌_이석형_선생의_묘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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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는 고려말 사람으로, 단심가와 선죽교에서의 죽음이 유명하다.

그래서 이러한 유명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우선 공민왕 사후 우왕의 폐위와 공양왕 옹립할 때까진 역성혁명-왕조가 바뀌는 일-의 주인공들-이성계와 정도전 등-과 뜻을 같이 했다.

다만 역성혁명을 받아들이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서

두 세력으로 나뉘게 된다.

급진개혁파로 불리우는 이성계와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받아들이는 무리이고, 온건개혁파로 대표되는 포은 정몽주는 받아들이지 않는 무리이다.

결국 급진개혁파와 온건개혁파와의 갈등에서 나온 것이 '정몽주의 단심가'이고 또 하나는 '이방원의 하여가'이다.

이 시와 답가를 통한 사건이 있는 후, 포은 정몽주는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 죽임을 당한 곳이 곧 개성의 선죽교이다.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내가 진정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단심가'이다.

즉, "단심가를 지은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그렇다면 두 단심가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무엇이 상황과 단심가의 내용이 더 일치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선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이다.

온건개혁파의 대표인 포은 정몽주와 급진걔혁파의 대표인 이성계 그리고 정도전 등이 역성혁명의 허용 유무에 따라 대립을 했다.

급진걔혁파인 이성계는 정몽주가 존재하는 한, 역성혁명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 듯 했다.

이러한 이성계의 뜻을 아들인 이방원이 눈치를 채고 포은 정몽주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

그리고 넌지시 시를 읊었다.

이것이 이방원의 하여가이다.

이 하여가로 정몽주의 마음을 알아보는 동시에 그를 회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포은 정몽주는 이 하여가에 대한 답가로 단심가를 읊은 것이다.

단심가로 이방원은 포은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방원의 부하인 조영규로 하여금 그를 죽이도록 지시한 것이다.

 

이제 또다른 단심가를 알아보자.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쓰신 조선상고사를 읽다보면 교과서에서 보고, 낭독했던 익숙하고 익숙한 시가 나온다.

포은 정몽주가 썼다고 우리가 알고있는  단심가이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쓰신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단심가의 주인공은 고구려 안장왕이 사랑했던 한주이다.

 

 

우선 고구려 안장왕과 한주의 사랑 이야기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과 이야기가 비슷하다.

그렇다면 안장왕과 한주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단심가가 나왔는지 살펴보자.

 

고구려 안장왕이 태자 시절 백제를 염탕하기 위해 개백현-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에 오게 되었다.

그래서 백제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숨은 곳이 곧 한주의 집이었다.

그는 곧 한주에게 반하여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태자임을 고백하게 되었고,귀국 후 대군을 이끌고 와 개벽현을 점령하고 한주를 부인으로 맞이할 것을 약속하며 고구려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이후 개백현의 태수는 한주를 첩으로 삼기 위해 온갖 구실을 삼았지만, 한주는 연인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이러한 태수의 한주에 대한 회유와 감언이설 그리고 옥에 가두는 일의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단심가'이다.

쉽게 춘향전을 생각하면서 변사또에게 핍박을 받으며 지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물론 춘향전처럼 고구려 태자 즉 훗날 안장왕은 한주가 죽게 될 무렵 이몽룡처럼 나타난다.

그리고 백제땅을 점령하고 그의 연인인 한주 또한 부인으로 맞이한다.

 

하나는 포은 정몽주와 이방원의 이야기, 또 하나는 고구려 안장왕과 한주의 이야기를 비교하면서 어떤 단심가가 둘 중의 이야기와 더 알맞은 건지 판단해 보시라.

나는 단심가의 말하는 주체가 여성적인 점과 사랑을 내포하는 내용을 보면 볼수록 혁명적인 사상의 정몽주보다는 한주와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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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

고려말 역성혁명을 반대 했기에 온건개혁파에 속한 포은 정몽주.
그 뜻을 이루지 못 하고 선죽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태종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고향인 영천을 가다 이 곳에 묻힌 건 아닐까?
#포은_정몽주_선생의_묘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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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 십층석탑

국보 제86호
국립중앙박물관의 로비에 들어서면 저 탑에 온통 시선이 집중된다.
가까이 다가가 관찰해 보면 탑 전체에 오밀조밀한 조각들의 스토리텔링을 볼 수 있다.
이 오밀조밀한 조각의 메시지에 넋이 나갈 정도이다.
#경천사십층석탑 #국보제86호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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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 신도비

정역은 그냥 쉽게, 조선 태종 이방원의 사돈, 즉 효령대군의 장인이다.
양녕대군의 장인 김한로와 충녕대군 즉 세종대왕의 장인 심온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건 조용한 효령대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정역의 신도비보다 ‘정곡’이라는 표지석에 더 관심이 간다.
한마디로 해주 정씨 집성촌이란 의미 아닌가.
집성촌,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집성촌이 궁금해진다.
#정역_신도비 #정곡 #해주정씨 #교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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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세상/痕跡 2018. 11. 19. 21:38


조계사

고요와 침묵을 구하기 위해 찾아 가기에는 한마디로 무리.
다만 사찰의 정문을 지키는 사천왕들이 보편적인 것과는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그냥 사천왕만 구경하다 왔다.
#조계사 #사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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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사 원랑선사 탑비

월광사는 충북 제천에 있었지만 이젠 터만 남았다고 한다.
사찰 또한 유명한 건 아닌 듯 하다.
원랑 선사는 그리 유명한 스님이 아니어서 역사책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탑비는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비 형식이라고 한다.
이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탑비로 인해 보물 360호가 된 걸까?
문화재 앞에서 의문이 생겼다.
#월광사원랑선사탑비 #국립중앙박물관 #보물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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