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靜庵) 조광조, 조광조는 한 마디로 기묘사화의 희생자라고 보면 된다.

또한 꿀물을 발라 벌레들이 갉아먹게 해서 나뭇잎에 새겨진 '주초위왕(走肖爲王)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조금 더 안다면 급진적 개혁주의자 정도.

그렇다면 기묘사화란 무엇인가?

기묘는 60간지 중 하나이며 기묘년, 즉 1519년(중종 14년)에 일어난 사화이다.

또 그렇다면 사화란 무엇인가?

준말로 사림의 화(禍)이며, 설명하자면 사림파들이 훈구파로부터 받은 정치적 탄압이다.

그럼 또 다시 궁금해진다.

훈구파는 무엇이며, 사림파는 무엇인가?

훈구파는 조선시대 계유정난-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자리를 뺏은 사건-에서 공을 세워 실권을 잡은 사람들을 말한다.

원래 명칭은 훈구공신(勳舊功臣)이라 한다. 

그리고 사림파는 조선 건국-역성혁명-을 반대하며 지방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성종 때부터 중앙 무대에 진출한 정치집단이다.

이렇게 훈구파와 사림파의 충돌인 사화는 4개의 사화가 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 있다.

하지만 정암 조광조가 사약을 받게 되는 사건은 '기묘사화'이다.

정암 조광조는 그냥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로 이어지는 학통을 이어받은 걸로 알면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의 개혁성 아닐까?

첫째, 도교 행사를 치르는 '소격서 폐지'이다.

둘째, 숨은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 실시를 주장했다.

셋째, 훈구파 공신들의 '공훈 삭제'를 했다.

넷째, 향약 운동의 시초인 '여씨 향약' 실시하도록 했다.

다섯째, 모든 사람이 의견을 펼 수 있는 '언로'를 활발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개혁도 기득권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래서 기묘사화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정암 조광조의 묘는 용인시 수지구에서 수원 가는 방향의 국도 옆 산에 있다.

그의 묘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없다면 쉽게 지나칠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기득권에 대항하다 쓰러진 개혁가의 묘를 봤으면 해서 올린다.

주소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포은대로 1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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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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