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은 곧 자유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죽는 법을 깨우치고 나면 반대로 죽음에 속절없이 당할 거라는 두려움을 잊게 된다. 


죽음이 뭔지를 알면 모든 굴복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을 박탈당하는 것이 해악이 아님을 깨닫고 나면 삶에 해로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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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건 잠시 살건 죽음 앞에서는 매한가지다. 


사라지고 난 후에는 길고 짧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히파니스 강(쿠반 강의 옛 이름)에는 단 하루를 사는 작은 벌레가 있다고 한다. 


아침 8시에 죽으면 요절한 것이고, 저녁 5시에 죽으면 장수한 셈이다. 


이렇게나 짧은 생애를 놓고 행복과 불행을 따진다면 우리 중에 비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네 길고 짧음도 영원이나 자연, 어떤 동물들의 시간에 대보면 가소롭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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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방어한다 할지라도 늙음은 조금씩 나를 덮쳐올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저항하겠지만 늙음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어디서 쓰러질지 알면 과연 더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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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죽음이 결론일지언정 삶의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의 끝이자 극단에 죽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삶이 삶 자체의 목적이자 목표여야 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처신하도록 용인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앎은 삶을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염려에 무게를 실어주지만 않는다면 이는 가벼운 삶의 요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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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을 남길지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잊고자 하는 열망만큼 기억을 선명하게 새겨놓는 것이 없다. 


그러니 마음에 담아두고 새기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는 기억에게 그것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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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함과 궁핍함은 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부든, 명예든, 건강이든, 그것을 소유한 이가 부여한 의미 이상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지니지 못 한다.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하다. 


스스로의 확신이야말로 본질적이고 진실한 것이다. 


운명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하지 못 한다. 


단지 우리의 영혼에 재료와 씨앗을 주어 더욱 강해진 영혼이 원하는 대로 향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자의만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유일한 근거이자 주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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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에게는 공부가 고역이고 술주정뱅이에게는 금주가 고문이다. 


음욕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수수한 삶이 형벌이고 허약하고 태만한 사람에게는 훈련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그 자체로 괴롭거나 힘들지 않다. 


우리의 약함과 비겁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위대한 일을 판단하려면 크고 위대한 정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약함이 그 판단에 영향을 준다. 


곧은 노櫓도 물 안에서는 굽어져보인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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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항상 자기 앞을 보지만 나는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스스로를 평가한다. 


저마다 자기 앞을 바라보지만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만 돌보며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분석하며 음미한다. 


생각해보면 다른 이들의 시선은 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앞으로 가기만 한다. 


“아무도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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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이 우리 영혼을 사로잡고 있을 때 영혼은 스스로 벗어나지 못 한다. 


그러므로 영혼을 되찾아 자기 안에 가두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고독이다. 


도시 한가운데서나 궁정에서도 누릴 수 있는 고독이지만 홀로 떨어져 있을 때 더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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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한복판에서 스스로 군중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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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잘 알지 못 하는 사람이야 거짓 찬사를 즐기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잘 알고 가장 깊은 곳까지 탐색해 나의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알려지기만 한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덜 받아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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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사가 딱딱하다고 불평하던 아테네 사람들에게 히페레이데스Hypereides가 했던 말을 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여러분, 제가 자유로운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만 제가 자유로움 속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는 않는지, 자유로움에서 제 유익을 추구하지는 않는지를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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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버릇이 드는 때는 바로 우리가 가장 미숙한 어린 시절이며 기본 성품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는 보모의 손에 달렸다. 


아이가 병아리 목을 비틀거나, 뛰놀다가 개나 고양이를 다치게 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소일거리로 삼는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 힘없는 농부나 하인을 모욕적으로 비방하는 것을 보고 남자답다 여기거나, 친구를 악랄하게 배신하고 기만하는 것을 보고 명망 있다고 여기는 아버지는 정말이지 어리석다. 


이것들이야말로 잔인함, 폭정, 반역의 씨앗이요 뿌리다. 


여기에 싹이 터서 왕성하게 자라나면 마침내 습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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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말을 항상 되뇌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이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비난이 나에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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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결함은 차라리 덜 심각하다. 


정말 위험한 결함은 건강한 기색을 하고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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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이의 의견과 학식을 무심코 받아들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이웃집에 불을 빌리러 갔다가 그곳에 머물며 뜨거운 불에 몸을 데운 뒤, 정작 불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 


배에 고기가 그득한들 소화를 안 시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고기가 우리의 뼈와 살이 되지 못 한다면? 


우리를 살찌우고 기력을 주지 못 한다면? 


우리처럼 했더라면 경험도 없던 루클루스Luclus가 지식만으로 그렇게 위대한 지휘관이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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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말할 때는 단순하고 기교 없이 말해야 한다. 


옷을 입을 때 특이하고 별난 복장으로 눈에 띄고 싶어 하는 것이 소심하기 때문이듯, 

언어를 사용할 때 새로운 문장과 생소한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학자인 체하고 싶어하는 유치한 욕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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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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