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에 해당되는 글 166건

  1. 2018.10.14 금령총 / 말 탄 사람 토기 / 국보 91호
  2. 2018.10.12 김익상 의사 의거터
  3. 2018.10.11 송강 정철 생가지
  4. 2018.10.10 정독 도서관
  5. 2018.10.10 남이 장군 집터
  6. 2018.10.07 화기도감 터
  7. 2018.10.04 성삼문 선생 살던 곳
  8. 2018.10.01 명동성당 / 사적 제258호
  9. 2018.09.28 정도전 집터
  10. 2018.09.27 감고당 터


금령총 / 말 탄 사람 토기

금령총은 경주 노동노서고분군에 있다.
그러나 국보 91호인 말 탄 사람 토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파헤쳐져버린 경주의 묘와 빛나게 전시된 서울의 토기를 보면서 느낀 울적한 마음.
#금령총 #말탄사람토기 #경주노동노서고분군 #국립중앙박물관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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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상 의사 의거터
명동역에서 남산 가는 방향에서 보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고 빙긋이 웃으며 사라지는 의열단원 김익상 의사의 모습이 보인다.
#김익상_의사_의거터 #통감부_터 #조선총독부_터 #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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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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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이 태어난 곳은 경복궁의 서쪽인 서촌에서 자하문 터널 방향의 청운초등학교 부근인 것 같다.

따라서 청운초등학교의 담장 근처에 그의 생가지를 표시하는 돌이 이렇게 서있다.

 

송강 정철, 우리가 흔히 알기로는 학창 시절 국어책에 주구장창 나온 그의 아름다운 글의 주인공이다.

이러하기에 고산 윤선도와 노계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인 중 한 명이다.

그의 문학적인 재능으로만 정철을 알면 큰 코가 다칠 것이다.

나는 송강 정철의 문학적인 재능에 정반대적인 정치적 재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서인-조선시대 당파 중 하나, 이조전랑 자리를 두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했는데, 김효원이 서울 동쪽에 살았다고 동인. 심효원이 서쪽에 살았다고 서인이라 했다-이었던 송강 정철.

반대편 동인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동인백정·간철·독철이라고.

그의 글과 그의 별명을 비교해 보라.

얼마나 극과 극인지.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송강 정철을 백정, 간철, 독철로 불리우게 된걸까?

그의 이름이 저렇게 악명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정여립의 난 혹은 기축옥사 때문이다.

기축옥사 또는 정여립의 난은 쉽게 정여립의 역모를 빌미로 동인에 대한 서인의 주도권 장악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정여립의 난 또한 정여립 자신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인해서 발생되었다는 설과 서인들의 조작이라는 설 등 많은 학설들이 있다.

정여립이 역모를 꾸몄든, 꾸미지 않았든 그것은 논외로 하겠다.

초점은 이로 인해 피해입은 희생자들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기축옥사 또는 정여립의 난에 대한 조사책임자가 송강 정철이었다.

그렇다면 정여립의 난으로, 조사책임자 송강 정철로 인해 희생된 동인쪽 사람들을 보자.

 

동암 이발

두 차례 모진 고문을 받고 장살-매를 쳐서 죽이는 형벌-을 당했다고 한다.

또한 이발의 82세 늙은 어머니와 아들은 엄형-엄하게 형벌함-으로 죽었다.

이발의 동생 이길 또한 죽었다.

 

나암 정언신

정여립의 난 이후 우의정이었던 정언신은 정여립의 구촌친이라는 이유로 우의정도, 위관도 사퇴했다.

그 뒤 모함을 받아 유배지에서 죽었다.

 

수우당 최영경

여러번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는 최영경을 가상의 인물인 길삼봉으로 모함하여 옥사되었다.

 

곤재 정개청

지난날 정철을 비난했던 정개청은 그에게 모진 매를 맞아 장독-매를 심하게 맞아 생긴 상처의 독-으로 유배지에서 죽었다.

동인의 대표적인 사람들만 서술해 보았다.

 

이 정여립의 난 혹은 기축옥사로 3년 동안 1,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호남 출신 동인들이 숙청됨으로써, 호남은 반역향으로 지목되었다.

어떤 책에 씌여진 어느 선비가 말하길 "호남에 인재가 나려면 400년은 지나야 한다"는 말에 송강 정철의 모습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송강 정철, 그의 작품만 읽어보면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또한 그의 집터의 표지석 또한 그의 문학적인 부분만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그의 또다른 별명인 동인 백정, 간철, 독철로 불리우게 된 그의 모습을 봐야 진정한 정철을 만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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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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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 도서관
트친이자 페친님의 추천으로 가보게 된 곳이다.
또한 이곳이 구 경기고였다는 사실에 흥미로웠다.
도서관, 현실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세상...
설레인다.
#정독도서관 #북촌 #구_경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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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의 집터는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근처에 있다.

쉽게 혜화역 근처를 지나가다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이 장군은 누구일까?

우리가 남이 장군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단 한가지는  그의 가묘가 있는 남이섬 때문이다.

하지만 남이 장군의 가묘가 있음으로인해 이름 지어진 남이섬이지만, 그의 가묘가 있다는 사실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남이섬은 강변가요제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들과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나온 배경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더 그를 알아볼 수 있는 건 국어책에 나왔던 '북정가(北征歌)'  때문일 것이다.

더해서 남이가 권남의 딸을 구해준 일화와 그로인해 사위가 된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이 세 가지 사실이 남이 장군을 쉽게 알 수 있게 되는 요인이 되곤 한다.

 

이제 남이 장군의 약력을 정리해 보겠다.

1441년 출생

1459년 (17세) 무과 급제

1467년 (27세) 이시애의 난 토벌

1468년 병조판서 발탁, 역모로 능지처참

남이 장군의 약력을 보면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정이程頤가 말한 인생의 세 가지 큰 불행人生三不幸이 생각난다.

정이의 불행에 대한 관점으로 남이 장군을 보면 무척 흥미로워진다.

 

그렇다면 정이가 말한 인생의 세 가지 큰 불행은 뭘까?

첫째, 소년등과少年登科 - 어린 시절에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는 것.

둘째,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 - 권세 좋은 부모형제를 만나는 것.

셋째,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 - 뛰어난 재주와 문장력을 가지는 것.

 

이제 정이의 세 가지 큰 불행의 관점으로 남이 장군을 보자.

첫째, 남이는 1459년 17세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다.

둘째, 남이는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의 외증손자이자 계유정난의 공신 권남의 사위이다.

셋째, 남이는 이시애의 난을 토벌했고, 북정가를 지었다.

송나라의 유학자 정이가 말한 것을 현재의 시각으로 본다면 불행이 아니라 행운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왜 커다란 불행으로 봤을까?

그것은 아마도 교만함과 자만심으로 인해서일 것이다.

또한 저렇게 화려한 이력으로 타인들에게 시기 그리고 질투를 얼마나 받았을까?

 

결론적으로 송나라 정이의 말처럼 남이 장군은 불행한 운명을 맞는다.

능지처참 당했다.

 

하지만 그의 집터에서 남이의 삶이 불행한지, 행복했는지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 했다.

인생 초반을 보통 사람들이 누리지 못 할 정도의 성공으로 행복을 맛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비참하게 죽었다고 불행한 삶이라 말하기엔 부족하다.

한 마디로 인생의 달콤함과 쓴 맛을 최고치로 맛 본 사람인 건 분명하다.

따라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그의 행·불행에 대해 칼 자르듯 평가를 할 수 없었다.

남이 장군의 집터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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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도감 터

세상/痕跡 2018. 10. 7. 16:45


화기도감 터
화기도감은 총•포를 만든 관청.
정독 도서관 정문에 사육신 성삼문이 살던 터와 같이 있다.
그렇다면 성삼문의 집이 사라진 후 이곳에 화기도감이 세워진 듯 하다.
#화기도감_터 #정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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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선생 살던 곳

정독 도서관 정문에서 찾은 성삼문의 흔적.
성삼문은 사육신 중 한 분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곳에서 살다가 세조에게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구나, 충신이여!
#성삼문_선생_살던_곳 #정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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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우리나라 가톨릭의 구심점.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성지.
종교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 어느 하나 꿀리지 않는 업적 속에서 고결함을 보았다.
#명동성당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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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집터

세상/痕跡 2018. 9. 28. 19:41


정도전 집터

종로구청 앞에서 삼봉 정도전의 집터를 찾았다.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그리고 기초를 만든 그의 업적을 집터에서 회상해 본다.
#정도전_집터 #종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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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 터

세상/痕跡 2018. 9. 27. 23:31


감고당 터

감고당은 조선 숙종의 정비인 인현왕후가 장희빈으로 인해 인고의 시간을 보낸 곳이다.
한 마디로 쫓겨나서 거처한 곳이지만, 경복궁과 가까운 곳이어서 조금 놀랐다.
또 , 그 장소에 여학교가 서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이 땅 그리고 인현왕후의 정기를 받아 많은 인재가 나왔음 한다.
#감고당_터 #인현왕후 #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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