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白民) 황상규는 누구일까?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첫째,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의 고모부이다.

둘째, 을강 전홍표 선생과 더불어 약산 김원봉 그리고 석정 윤세주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셋째, 초기 의열단 결성 시, 의열단원들에게 많은 지도를 하였다고 하지만, 어느 책에

        의하면 백민 황상규가 의열단 초기의 의백 역할-의열단 결성 시,

        의백인  약산 김원봉은 약관의 나이였다. 따라서 연세가 있는 분의 지도자가

        필요했다는 설-을 했다고 한다.

결론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의열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던

       의열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분이다.

그러나 백민 황상규를 많은 분들이 잘 몰라해서 그의 약력을 정리해 본다.

189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

1908년 상동고명학교, 마산창신학교 설립 

           밀양동화학원 인수

           <동국사감>이라는 국사책 저술.

1913년 대한광복단 참여

1918년 중국 길림으로 망명

          북로군정서에서 재정 담당에 임명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

1919년 의열단 창설

1920년 의열단 1차 암살·파괴계획 즉 밀양폭탄의거로 검거

1921년 징역 7년 선고와 복역

1926년 출소

1927년 신간회 참여

1931년 사망

백야 김좌진이 계시던 북로군정서에서 있었으며, 약산 김원봉이 이끈 의열단에

   있었으며, 좌우합작의 신간회에 있었던 백민 황상규 선생의 업적을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가리는 듯 했고, 여기저기 누군가의 논밭들이 가로막고

   있는 듯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직이 물어봤다.

"백민 황상규 선생이 없었다면 의열단이 있었을까?"

화려한 독립운동의 이력을 가진 선생을 무엇이 이렇게도 무명의 혁명가로 만든 것일까?

 

만약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이 혹은 의열단에 열광하시는 분들이 밀양에 오신다면

  여기 백민 황상규 선생의 묘도 와주셨으면 좋겠다.

 

백민 황상규 선생의 묘는 밀양시청 좌측으로 들어가는  지동마을에 있다.

지동마을의 작은 길을 걸어가다 그 마을 주민에게 선생의 묘를 물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의 묘로 가는 표지판으로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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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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