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범주화의 기본 형태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을 느슨하게 세 집단으로 나누곤 한다.
즉 자유주의 페미니즘, 맑스주의 또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급진적 페미니즘이 그것이다.
이런 유형학을 간단하고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국가가 토대를 두고 있는 이론적 기초는 건전하지만 그것이 제공하는 권리와 특권들은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여성들에게도 확장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 국가의 틀 속에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맑스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젠더 불평등과 여성의 억압을 자본주의 생산 체계나 분업 체계와 연관시킨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가부장제의 결과로 보는데, 여기서 가부장제는 모든 다른 사회 구조들에서 독립되어 있다-즉 그것은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이런 분류들은 맑스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상호연관된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서로 분리된 집단으로 보느냐, 또는 맑스주의 페미니즘 사조와 급진적 페미니즘 사조를 결합하는 '이중체계' 페미니스트들의 집단을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유형들로 소개될 수 있다.
좀 더 최근의 연구들은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또는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 등의 범주들을 추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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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에 대한 논쟁-즉 평등의 의미는 무엇이고 평등은 어떻게 성취될 수 있으며, 과연 성취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평등과 여성해방의 관계에 관한 논쟁-은 그 동안 페미니스트 저작들에서 평등-차이 논쟁으로 언급되어 왔으며, 서론에서 주장했듯이 페미니즘의 분석과 논의에서 중심적인 것이다.
이 평등-차이 논쟁은 논쟁에서 쓰이는 용어가 쉽게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것은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아지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아니면 남성들과 차이가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이다.
그러나 평등과 차이라는 용어 자체가 복합적인 의미들이 다툼을 벌이는 용어이기 때문에, 평등-차이 논쟁은 매우 복잡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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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 질문은 차이에 대한 이러한 가정에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여성들은 성차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남성과 똑같다는 것을 근거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여성들은 동등하지만 다르게 특수하게 '여성적인' 특질들은 '남성적인' 특성들만큼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해야 하는가?
이러한 평등-차이 논쟁은 여전히 페미니즘의 중심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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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분야에서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배제하는 이런 식의 과학적 정당화에 직면한 페미니스트들은, 상이한 신체적 특성들과 사회적 역할에서 남녀간의 '자연적' 차이화가 맺는 관련성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이것은 사회를 조직하는 데에 남녀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정당한 관련을 지닌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을 포함했다.
이것은 많은 페미니즘 이론에서 신체적 '섹스'와 사회적 '젠더' 사이의 구별을 낳았다.
이런 구별은 또한 '여성의female'와 '여성적인feminine'이라는 용어들에 의해 표현될 수도 있었는데 '여성의'는 여성들이 속한 생물학적 범주이고 '여성적인' 행동과 구실은 이러한 생물학적 범주에 기초한 사회적 구성물이다.
그러므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생물학적 섹스는 '자연적으로' 생겨간 차이지만, 여성이 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역할과 모든 형태의 행위는 상이한 사회들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창조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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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들은 특정한 역사적 환경 때문에 피억압 집단으로 등장했던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사회 조직 속에서 항상 억압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보봐르가 남녀간에는 아무런 생물학적 구분도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보봐르는 '섹스'의 심리학적, 행동적 측면들이 가부장제 문화의 산물이지 생물학적 차이의 불가피한 산물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남녀간에는 환원될 수 없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성과 관련된 모든 행동이 사회적 구성물임이 분명하지만 여성은 생물학적 범주이지 사회역사적 범주는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의 해방은 '불변의 여성적인 것들'이라는 이러한 사회적 구성물에게서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불변의 여성적인 것들이 여성들을 사회경제적으로 열등한 위치로 격하시켜 왔지만 생물학적으로 구분되는 범주로서의 '남성들'과 '여성들'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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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봐르가 생물학적 섹스와 '불변의 여성적인 것들'에 대한 사회적 창조물을 구분한 것은 많은 페미니스트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섹스와 젠더 구분의 전조다.
앤 오클리Ann Okley가 설명하듯이, 젠더라는 용어는 의학적, 심리치료적 사용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분야에서는 1930년대부터 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의 심리적 특성을 묘사하기 위해 젠더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러한 특성들을 남성들과 여성들에연관짓지 않았다.
1968년에 심리치료사인 로버트 스톨러Robert Stoller는 『섹스와 젠더Sex and Gender』-생물학적으로 (염색체에 따라)하나의 섹스를 지닌 아이들이 어떻게 다른 섹스에 속하게 되는지에 관한 책-를 출간했다.
가장 공통적으로 발견된 아이들은 유전자상으로는 여성이지만 남성의 외부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러한 아이들은 남자로도 여자로도 길러질 수 있고 '적절한 젠더 정체성'을 개발하게 된다-이었다.
그래서 스톨러에게 젠더는 섹스와 관련되어 있으나 일차적으로 생물학적 함의를 갖지는 않는 행위, 감정, 사고, 환상을 일컫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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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남성과 여성 간의 생물학적 차이을 일컫는 말이다.
즉 생식기의 가시적 차이, 출산 기능에서 관련된 차이 등.
그러나 '젠더'는 문화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남성적인'과 '여성적인'이라는 사회적 분류를 일컫는다.
분석의 도구로서 젠더를 이렇게 사용하는 것, 그리고 특히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에서 생물학적인 것을 분리해 내고 이 둘이 구분되는 범주라고 주장하면서, 차이의 문제에 관해 페미니스트 이론이 명백히 진전하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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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들에 의해 탐구되어 온 성적 차이의 한 측면은 여성들의 다른 도덕적 자세다.
이런 작업은 대부분 도덕성의 성적 차이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대한 대응으로 수행되었다.
여성들의 도덕 발달이 약하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페미니스트 심리학자들과 정신분석가들로 하여금 이러한 차이의 분야를 탐구하고, 여성들과 남성들의 도덕 발달이 서로 다른지, 만일 그렇다면 그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했다.
이러 유형의 분석으로 유명한 예가 캐럴 길리건Carol Gilligon의 『다른 목소리로In a Different Voi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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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길리건을 지지하는 쉘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는 길리건의 작업은 자신이 '일반화된 타자'-즉, 전통적 도덕 및 정치 사상에서의 시민이나 개인은 어떤 특수한 특성도 갖지 않은 개인으로 가정된다-라고 부른 것을 토대로 보편주의적인 주장을 전개하는 전통적 도덕철학의 가정들에 맞선 페미니스트의 생생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이 '일반화된 타자'는 젠더 중립적인 것으로 의미화되지만, 이러한 보편적으로 일반화된 타자에 기초하고 있는 철학과 사유 양식이 남성들에 의해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종종 여성들을 소외시켰다.
벤하비브가 보기에, 길리건의 작업은 도덕적 딜레마를 배치하는 남성적인 방식에 의해 여성들이 어떻게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는지를 밝혀주었고,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구체적 타자(특수한 특성과 관계를 가진 타자)를 고려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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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머니 노릇이 남녀간의 차이에서 중심적인 것으로 보인다면, 왜 여성들이 어머니 노릇을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낸시 초도로우Nancy Chodorow가 『어머니 노릇의 재생산』에서 논의했던 주제다.
초도로우는 왜 여성들이 어머니 노릇을 선택하는가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또한 어머니 노릇이 내적이고 자연적인 본성이라는 관념만이 아니라, 어머니 노릇이 단지 사회적 조건화의 결과일 뿐이라는 관념도 똑같이 거부한다.
초도로우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여성들이 어머니 노릇을 할 것인지 여부의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는 것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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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노릇이 지닌 이러한 성질은 공적 영역에서 저평가되어 왔지만, 초도로우는 만일 남성과 여성 모두 동등하게 어머니 노릇을 한다면 여아와 남아는 이런 상이한 성질들을 지닌 채 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남성들은 좀 더 많은 애정을 지니고 타인을 대할 것이고 타인들과 관계적이 될 것이며, 여성들은 좀 더 자율적이고 경쟁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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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페미니즘적 정치 분석의 출발점은 여성들이 정치권력의 행사에서 배제되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서구 민주주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여성들에게는 투표권이 부여되지 않았으며, 여성들은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공식적 정치 제도들과 의사결정 기구에서 극단적으로 과소대표되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는 (또는 적어도 공식적 정치는) 남성 지배적인 활동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고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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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계약이론에 대한 페미니즘의 중심적인 비판은 캐럴 페이트만C. Pateman의 비판인데, 페이트만은 사회 계약에 관해 말하는 이론가들이 여성억압의 토대인 성적 계약을 간과해 왔다고 주장한다.
페이트만의 주장에 따르면, 원초적 계약을 통해 시민적 자유가 가부장적 권리에 기초한 남성적 속성이 되는 결과를 낳으면서 남성의 자유와 여성의 종속이 형성된다.
자연적으로 '개인'의 속성과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들은 이러한 시민의 자유를 거부당한다.
그러므로 성차는 정치적 차이, 즉 자유와 종속 간의 차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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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섹스들간의 진정한 평등이 남녀 사이의 필수적인 구별을 지워 버릴까봐 그리고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에 혼돈을 초래할까봐 두려워했다.
그러한 섹스들간의 평등은 우정이 사랑을 대체하도록 할 것이고 성적 관계를 파괴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차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새로운 민주적 평등에 통합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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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1791년에 올랭프 드 구쥬는 프랑스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대한 대응으로 『여성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능동적인 정치적 시민권에서 여성들을 배제한 것이었다.
이 선언에서 구쥬는 여성들이 자연적으로 남성과 동등하므로, 즉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개인이므로 여성들은 남성들이 가진 모든 권리들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여성은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유명한 말은 구쥬가 교수형을 당한 뒤에 페미니스트들을 불러모으는 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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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쥬는 이 시기에 목소리를 낸 최초의 페미니스트도 유일한 페미니스트도 아니었는데, 19세기에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압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 여성이 배제된 것에 대항한 페미니스트 행동 중 가장 유명한 예는 아마 참정권운동일 것이다.
이것은 유럽과 미국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두드러져다.
이때 투표권은 수많은 서로 다른 페미니즘 운동과 캠페인의 상징이 되었으며,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지지는 어떤 면에서 페미니스트 자격을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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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은 논쟁적인 개념이지만, 그러나 많은 이론가들이 시민권의 의미에 대한 토론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마샬T.H. Marshall이 1950년에 내린 정의다.
이 개념은 국가가 개인에게 부여한 세 가지 권리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권리들은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다.
시민적 권리는 "개인의 자유-신체의 자유, 발언과 사상 그리고 신앙의 자유, 재산을 소유하고 타당한 계약을 맺을 권리, 그리고 정의에 대한 권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정치적 권리는 정치권력을 지닌 기구를 선출하고 그 기구에 참가할 권리이다.
사회적 권리는 "그 전체 범위가,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부와 안전에 대한 권리로부터 사회적 유산을 공유하고 사회에 만연한 기준에 따라 문명화된 생활을 할 권리에까지 이른다".
이들 사회적 권리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제도들은 교육 체계와 사회 복지이다.
마샬은 이 권리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처음에는 시민적 권리, 그 다음에 정치적 권리, 마지막으로 사회적 권리들이 주어졌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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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들이 관심을 가져온 또 다른 쟁점은 가정에서의 여성들의 무보수 노동이라는 문제다.
앞에서 대략 살펴본 대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이 무보수 노동을 성별 노동 분업을 통하여 남성에게 여성을 지배할 권력을 주는 가부장적 생산 체계와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의 산물로 본다.
그러나 무보부 가사노동이라는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을 다시금 평등-차이 유형의 논쟁 속을 밀어 넣는 괴로운 주제이다.
한편에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그만두고 남성처럼 임금 고용에 참가하여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가정에서 하는 무보수 노동과 보살피는 자로서의 노동은 임금 고용만큼 가치 있는 것이므로 그것은 인정되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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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섹슈얼리티는 권력의 한 형태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는 그것을 체화한 것이지, 그 역이 아니다.
남성의 성적 지배와 여성의 성적 복종을 제도화하는 이성애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의해서, 여성들과 남성들은 젠더로 분리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섹스가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섹슈얼리티는 젠더 불평등의 요체다(Macki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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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트는 여성 자신이 섹슈얼리티를 재정의함으로써, 남성들의 기준에 의해 정의된 성행위의 관념을 버리고 상호간의 성적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남녀간의 성적 관계가 상호적인 성적 즐거움을 낳도록 재정의될 수 있다고 믿지만, 다른 이들은 이성애가 여성의 자유 및 진정한 성적 쾌락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본다.
후자의 페미니스트 집단은 "이성애의 바로 그 본질, 개념, 그리고 성격이 남성 우선적이기" 때문에, 레즈비언이 아니라면 진정한 페미니스트일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어떤 개념화에 따르면, 레즈비어니즘은 언제나 여성들과의 성관계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의 성관계만을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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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모간Robin Morgan은 이렇게 주장했다.
"포르노그라피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세 가지 근거하여 포르노그라피에 반대해 왔다.
첫째, 포르노그라피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강간을 부추기고,
둘째, 여성을 모욕함으로써 그 자체로 성폭력이며,
셋째, 포르노그라피 생산에서 여성들은 상처 입고 경제적으로 성적으로 착취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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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강간은 순간적인 통제의 상실이 아니라, 남성의 공격과 가부장제와 관련된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구성한 남성성과 관련된 것이다-남성을 강하고 지배적인 것으로 그려내는 대중가요와 영화들이 증언하듯이.
남성성을 강함 및 공격성과 연관된 것으로 구성하는 것이 강간의 주된 요인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남성의 공격성은 강간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폭력적 포르노그리피와 군사주의와도 연관되어 있다.
강간처럼, 전쟁은 여성에 대한 남성 통제 체계의 일부를 형성한다.
전쟁 시기 동안 강간 비율은 증가하며, 이것은 남성들이 전시에 강간 기회를 더 많이 갖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 남성의 폭력을 길러내고 군대가 이러한 폭력을 미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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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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