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며, 그 중 어떤 것은 정확성 때문에, 또는 더 좋고 훌륭한 대상들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두 가지 (이유)에서, 영혼에 관한 탐구를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영혼)에 관한 지식은 모든 진리, 특히 자연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물들의 제일원리이기 때문이다.
#영혼에_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사랑과 미움, 분노, 온순함, 공포감, 동정심, 용기, 그리고 즐거움 등과 같은 영혼의 모든 영향받음은 신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들과 동시에 신체도 어떤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강하고 분명한 영향받음이 발생할 때, 아무런 노여움이나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때로는 화를 낼 때와 마찬가지로 신체가 분노의 상태에 있을 때, 사소하고도 불분명한 원인들에 의해 (사람들이) 움직여지기도 한다.
(그런 사실을 입증할) 훨씬 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때로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이 전혀 없이도 공포감을 느낄 때와 같은 영향받음을 경험하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 영혼의 영향받음들은 질료 안에서 실현된 형식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영향받음)들은 그런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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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이야기에 의하면, 영혼이 우연하게 신체(의 옷을) 입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각각의 (신체는) 그 자신의 형상과 형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수의 기술이 피리 안에 위치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기술은 (그 자신의) 도구를 반드시 필요로 하며, 영혼은 (그 자신의) 신체를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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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일종의 조화라고 말해진다.
왜냐하면 조화는 상반자(相反者)들의 혼화 또는 합성이며, 신체는 상반자들로부터 합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화는 혼합된 (요소)들의 비율 또는 합성인 반면에, 영혼은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아니다.
운동을 유발하는 것은 조화가 아니며,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오히려 영혼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조화라는 단어를 영혼과 관련하여 말하는 것보다 건강 또는 전반적인 신체의 '훌륭한 기능 수행들'과 관련하여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부적절함은) '영혼의 영향받음'과 기능들을 일종의 조화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할 때, 더욱 잘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적절하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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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설명으로부터 명백한 것은, 영혼이 원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인식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이 움직여진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도 참되지도 않다는 것이다.
영혼은 한편 으로는 인식, 감각, 의견 형성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갈망과 희망을 (포함한) 욕구 일반이다.
또한 생물의 장소운동은 영혼에 의해 (생성되며), 성장, 성숙, 그리고 쇠퇴도 영혼에 의해 야기된다.
(그렇다면) 이 각각의 것은 영혼 전체에 속하는가?
우리가 생각하고, 감각하고,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등의 (기능을 하는) 것은 (영혼) 전체가 하는 것인가, 또는 (각각) 다른 부분들이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것인가?
생명은 (영혼의 부분)들 가운데 하나 안에 있는가 또는 다수의 (부분)들이나 모든 (부분)들 안에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이 (그것의) 이유인가?
어떤 사람들은 (영혼)이 부분들을 가지며, 어떤 하나의 부분으로는 생각하고 다른 부분으로는 갈망한다고 말한다.
만약 영혼이 부분들을 갖는다면, 그 영혼의 '단일성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소한 그것이 신체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반대로, 영혼이 신체를 단일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영혼이 신체를) 떠나면, (신체는) 해체되고 부패하게 된다.
따라서 만약 그것(영혼)을 단일하게 만드는 다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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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스스로에 의한 영양섭취', 성장, 그리고 쇠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공유하는 모든 자연적 실체는 합성물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체이다.
그러나 (실체는) 생명을 가지는 신체이므로, 신체 (그 자체가) 영혼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체는 어떤 (다른) 주체를 (전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자체가) 주체 또는 질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영혼은 반드시 '생명을 잠재적으로 가지는 자연적 실체'의 형상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체여야 한다.
그리고 실체는 현실태이다.
따라서 (영혼은) 그런 신체의 현실태일 것이다.
(현실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지식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숙고이다.
지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잠을 잠'과 '잠에서 깸'은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깸'은 숙고와 유사한 반면에, '잠을 잠'은 '(지식)의 소유'와 유사하며, '그것의이용'과 유사한 것이 아니다.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 숙고보다) 지식이 먼저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은 '생명을 잠재적으로 가지는 자연적 신체'의 제일 현실태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것은 '기관들을 가지는' (신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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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눈동자와 시력이 눈을 (구성)하듯이, 영혼과 신체는 생물을 (구성)한다.
따라서 영혼은, 그리고 만약 (영혼의) 부분들이 있다면, 그 영혼의 어떤 부분들은 신체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불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영혼의 어떤 부분들은 (신체의) 부분들의 현실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분리를 막는 어떤 (부분)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부분들이 어떤 신체의 현실태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영혼이 신체의 현실태라는 것이 선원과 배의 (관계와) 같은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이것이 영혼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이자 개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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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살아 있는 신체의 원인이며 원리이다.
이것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말해진다.
그러나 영혼은 우리가 구분했던 바와 같이 세 가지 의미에서 (신체의) 원인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운동 그 자체는 어디로부터(능동인 또는 작용인)', '무엇을 위해(목적인)', 그리고 '영혼을 가진 신체의 실체로서(형상인)' (라는 의미에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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