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며,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는다"고 한
유가의 윤리관을 일필로 말살하고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되며,
의를 행하지 않는 지아비는 버려도 된다"고 하면서,
"하늘의 뜻과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주나라에서 떠나갔는데도 주나라를 존중해야 한다니, 이 무슨 말이며,
사람들의 무리들과 땅이 벌써 조조와 사마의에게로 돌아갔는데도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유덕현이 정통이라니, 이게 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서
공구와 주자의 역사 필법을 반대하였다.

조선상고사/단재 신채호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에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그대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조선상고사/단재 신채호



제왕이라 하고 역적이라고 하는 것은

성공과 실패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정론이라 하고 사론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의 많고 적음의 차이일 뿐인데,

거기다가 보고 들은 것이 틀리고 잘못 전해지거나

집필자의 좋아함과 싫어함까지 섞여 있지 않은가.

조선상고사/단재 신채호”​


그리고는 그를 옥에 가두어 사형시키겠다고 위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또 온갖 감언으로 꾀이었다.

주가 옥중에서 노래하여 말하기를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되고 넋이야 있든 없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하니 
듣는 자마다 다 눈물을 흘렸으나,

태수는 이 노래를 듣고 더욱 주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상고사/단재 신채호


어떤 사람은

명림답부를 조선 역사상 첫 번째로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라고 하나,

혁명은 반드시 역사상 진화의 의의를 가진 변동을 일컫는 것이니,

벌족공치의 낡은 제도를 회복한 반란이 어찌 혁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명림답부는 한때 정권을 빼앗은 효웅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혁명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상고사/단재 신채호

조선 역대 이래로 바다를 건너 영토를 둔 자는


오직 백제의 근구수왕과 동성대왕 양대 뿐이다.


동성대왕 때는 근구수왕 때보다 더욱 광대하였기 때문에


구당서 백제전에서 백제의 지리를 기록하여 이르기를


(서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구려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는데,


월주는 지금 회계이니, 회계 부근이 모두 백제의 소유였다.


조선상고사/단재 신채호

 



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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