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삶은 우리 영혼에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었다. 


그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또 우리 자신은 과연 누구인지 구별하지 않았다. 


온 세상이 전부 우리 것이었고, 우리 또한 온 세상의 것이었으니까. 


그것은 마치 영원한 삶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었으며, 정지도 없고 고통도 없었다. 


우리 내면은 봄날 하늘처럼 화창했고 제비꽃 향기처럼 싱그러웠으며, 또 일요일 아침처럼 고요하고 성스러웠다. 


그
런데 대체 무엇이 어린아이의 이 성스러운 평화를 깨뜨린 것일까? 


도대체 왜 이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이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가? 


모두가 하나이고, 내 것 네 것도 따지지 않는 이 천국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내쫒아버리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복잡한 삶 속에서 홀로 고독하고 쓸쓸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이 바로 죄악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라! 


어린아이가 어떻게 죄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우린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그냥 그대로 인정하라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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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시작이라는 게 문제다. 


시작이라는 건 아예 처음부터 없는 편이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 


바로 그 시작이라는 데서 모든 생각과 기억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어린 시절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그래서 과거의 시작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도달해 보려 애를 써도, 시작이라는 심술궂은 녀석은 점점 더 멀리 도망쳐버린다. 


그러니 생각이 아무리 그 뒤를 쫒아가더라도 결코 시작이라는 녀석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푸른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려도, 하늘이 자꾸만 멀리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결코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점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아이는 달리다 지쳐버리기 때문에 결코 지평선에 도달하지 못한다. 


언젠가 한번쯤 그곳에, 시작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바로 그곳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도대체 거기서 뭘 알 수 있는가? 


기억이란 놈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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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 부인을 뵈었는데, 그 분은 무척 인자하고 아름다운 분이셨어요. 


엄마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부인의 목에 매달려 키스를 했어요.” 


“저런!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구나. 그분들은 타인인데다가 아주 고귀하신 분들이잖니.” 


“타인이라는 게 도대체 뭐예요? 다정하고 친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사랑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그걸 표현하면 안 된단다.” 


내가 다시 물었다. 


“내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게 옳지 않은 일인가요? 왜 그걸 표현하면 안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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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타인들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오,가엾은 인간의 마음이여! 


봄날에 벌써 이렇게 꽃잎이 떨어지고 날개의 깃털이 뽑혀버리는구나. 


인생의 새벽이 어슴푸레 동터오면 비밀의 꽃받침이 열리면서 우리 마음속에서는 벌써 사랑의 향기가 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는 법과 걷는 법을 배우고, 말하는 법과 읽는 법도 배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랑은 생명이나 마찬가지로 이미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 존재의 바탕을 이루는 토양은 바로 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별들이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끌리기도 하면서 하나의 천체를 이루고 있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영혼들이 서로 이끌고 이끌리면서 하나로 계속 묶여 있는 것은 바로 이 영원한 사랑의 법칙때문이다. 


햇빛이 없으면 꽃이 필 수 없듯이,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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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에게 처음으로 낯선 세계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을 때, 

어머니나 아버지의 눈길에서 나오는 따뜻한 빛이 없다면, 

신의 빛이나 신의 사랑과도 같은 그 사랑의 빛이 없다면,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 어린아이의 마음속에서 싹트는 동경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깊은 사랑이다. 


온 세상을 다 감쌀 수도 있는 그런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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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은 두 개의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빛날 때 타오르기 시작하며,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 환호하며 반응한다. 


예로부터 그것은 측정이 불가능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어떤 추를 이용해도 깊이를 잴 수 없는 우물이며,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다.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사랑은 측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사랑에는 많고 적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오직 온몸과 마음을 바쳐 힘을 다하고 정성을 기울일 때에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인생을 절반도 채 살기 전에 이런 사랑은 거의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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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던 사랑의 옹달샘에는 이제 겨우 몇 방울의 말밖에 남아 있지 않다. 


갈증으로 목말라 죽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제 남아 있는 이 몇 방울의 물로 우리의 혀를 적셔주어야만 한다. 


이 몇 방울의 물을 우리는 아직 사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순수하고 완전하며 기쁨이 충만한 어린아이의 사랑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위험이 함께하는 사랑이며, 정열과 번뇌가 타오르는 사랑인 것이다. 


마치 뜨거운 모래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자신을 소모하는 사랑, 즉 갈망하는 사랑이지 헌신하는 사랑이 아니다. 


나의 것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랑일 뿐, 당신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만 생각하는 절망적인 사랑에 불과하다. 


시인들이 노래하고, 청춘남녀가 믿고 있는 사랑은 이런 것이다. 


그것은 타올랐다 꺼지는 한 순간의 불꽃으로, 따스함은커녕 연기와 재만 남길 뿐이다. 


우리는 한순간 이런 불꽃놀이를 영원한 사랑이라고 믿어버린다. 


러나 불꽃이 환하면 환할수록 밤의 어둠은 더욱 짙은 법이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사방이 어두워질 때, 

우리 자신이 정말 고독하다고 느낄 때, 

또 주변 모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 

그럴 때면 잊었던 감정 한 줄기가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우린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은 사랑도 우정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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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자가 이런 말을 했다. 


“난파당한 나룻배의 파편들이 바다 위에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파편들 중 같은 곳에 모여 잠시라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그나마도 금방 폭풍이 몰려와 동으로 서로 멀리 흩어버린다. 


그러면 그들은 이 지상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인간의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단지 그 커다란 난파선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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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그녀는 결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존재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녀는 나의 수호천사가 되어 있었다. 


뭔가를 혼자 생각해야 할 때,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또 다른 나의 분신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녀가 내게 그런 존재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난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마치 사람들이 구름을 보고 어떤 형상을 떠올리는 것처럼, 어린 시절 추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녀의 형상은 순전히 나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현실에서의 애매모호하고 흐릿한 암시만 가지고 난 환상 속에서 완벽한 그녀의 형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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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특권이 하나 있어요. 


바로 병과 외로움이지요. 

난 종종 젊은 여자나 남자들이 가엾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청춘남녀나 그 주변 사람들은 사랑이나 연애 같은 관계가 아니라면 우정이나 친밀함을 함께 나눌 수가 없으니까요. 


그로 인해 오히려 많은 걸 잃게 되는데도 말이에요. 


젊은 여자들은 훌륭한 이성 친구가 자신의 영혼 속에 숨어 있던 뭔가를 일깨워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젊은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에요. 


누군가가 그들의 내면적 갈등을 멀리서 지켜봐주기만 해도 그들은 옛날의 기사도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를 못하거든요. 


아마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이 자꾸 끼어드니까 그런 것 같아요. 


가슴의 두근거림이라든지 폭풍처럼 밀려오는 희망의 물결, 혹은 연인의 얼굴을 보며 느끼는 기쁨 같은 달콤한 감정은 물론이고 약삭빠르게 이해를 따지는 것 등이 모두 순수한 인간애의 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평온함을 깨뜨려 버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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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다시는 보지 말라고? 


그녀 옆에 있을 때에만 살아 있음을 느끼는데 그녀를 다시는 보지 말라고? 


그녀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 말을 못해도 좋다. 


그녀가 잠을 자며 꿈을 꿀 때 그냥 창가에 서 있기만 해도 좋다. 


그런데 그녀를 보지 말라고? 


작별의 인사도 안 했는데? 


그녀는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데···. 


결코 알 리가 없는데···. 


어쩌면 사랑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난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 옆에 있을 때보다 더 내 가슴이 평온한 적은 없다.

그러니 그녀 옆에서 느끼지 않으면 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녀의 영혼을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그녀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운명이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일인의_사랑 #막스_뮐러


다정한 운명의 손길이 인도해 준 서로의 영혼들을 우리는 꽉 붙잡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도록 벌써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 그것을 위해 싸우다가 죽을 각오만 되어 있다면, 그 어떤 힘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 


만일 내가 나무 그늘 아래서 그토록 행복한 시간을 꿈꾸다가 천둥이 한번 쳤다고 도망치듯 그녀의 사랑을 떠난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나를 경멸할 것이다.

#독일인의_사랑 #막스_뮐러


그러나 참된 아름다움은 우아함이며, 
그 우아함은 모든 압박과 육체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승화시킨다. 


심지어 그것은 추함까지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영혼의 현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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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리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어야만 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더듬거리는 말로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적절한 이름을 찾는 것이었다.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네. 아니, 


너를 위해 이 세상의 그 무엇이 되어도 좋네.

문제는 바로 '그 무엇'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 세상은 이름이 없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법이다. 


#독일인의_사랑 #막스_뮐러


삶을 일종의 예술로 생각하게 되면, 뭔가를 잃어버렸거나 조금 괴롭다고 해서 우울해 하거나 땅에 뒹굴며 원망을 토하는 아이의 모습은 그 얼마나 추한가. 


비록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도 어느 새 기쁨과 천진함으로 눈빛이 반짝이는 아이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마치 봄비에 젖어 몸을 떨다가도 햇볕을 받아 뺨에 흐르는 눈물이 마르면 어느새 다시 피어 향기를 발산하는 꽃송이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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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핀 꽃이라고 정신이 없을까. 


그 꽃 역시 생명을 부여하고 유지시켜주는 신의 뜻, 

즉 창조주의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꽃의 정신이다. 


단지 꽃의 정신은 말이 없고 인간의 정신은 말로 표현될 뿐이다. 


진정한 삶은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이며, 진정한 기쁨 역시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이다. 


따라서 진정한 만남은 육체와 정신이 함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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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선한 것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같은 사랑에서는 필요와 불필요, 이로움과 해로움, 얻는 것과 잃는 것,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같은 것을 따져서는 안 된다. 


진실로 가장 고귀한 것은 그것이 가장 고귀하고 선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여기서 외면적이라는 뜻은, 피조물 가운데 어떤 존재는 영원한 선이 다른 존재의 경우보다 많건 적건 더 빛을 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영원한 선이 가장 크게 빛나는 존재가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이며, 

그 같은 일이 가장 약하게 일어나는 존재는 가장 약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가장 선한 인간이 가장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선한 사람과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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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것이에요. 


그건 신의 뜻이에요. 


지금 이대로의 나를 받아주세요.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당신의 것이에요. 


신께서 우리를 보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다시 하나 되게 하시어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되기를 빌게요.”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내 입술이 지금 막 내 삶에 축복의 말을 해준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덮었다. 


우리를 위해 시간이 멈추었고, 주변의 세상도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 하나님, 나의 이 행복을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그녀가 속삭였다. 


“자, 이제 나를 혼자있게 해주세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또 만나요. 나의 친구, 나의 사랑, 나의 구원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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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다. 


또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내게 고향은 어느덧 타향이 되었고, 타향이 고향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한 방울의 눈물이 거대한 바다에 떨어지듯이,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은 살아 있는 거대한 인류의 바다에 떨어져서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어 그들을 감싸 안았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그토록 사랑해 왔던 그 사람들의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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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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