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설명에서 아나키즘은 흔히 이론적으로는 한발 뒤처지지만 열정과 성실로 두뇌를 벌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가난한 사촌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 이런 비유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왜곡된 것이다. 


19세기의 이른바 ‘창시자'들은 스스로 특별히 새로운 것을 창안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조직화, 자발적 결사, 상호부조와 같은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인간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했다. 


국가 및 모든 형식의 구조적 폭력과 불평등과 지배를 거부해야 하며(아나키즘의 문자적 의미는 '지배자 없음'이다), 이 모든 형식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한다는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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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크스주의는 혁명 전략에 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담론이 되는 경향이 있다. 


2. 아나키즘은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 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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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은 오직 모두가 공유하는 어떤 신념과 이해를 통해서만 연합한다는 의미가 된다. 


합의 과정에서 모든 구성원은 처음부터 연합의 대원칙과 집단의 목적에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별개로 모두가 마땅히 동의해야만 하는 원칙이 있다. 


타인이 완전히 나와 같은 관점을 갖도록 강요해서는 안 되며 그런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토론은 구체적인 행동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누구나 수용 가능하고 자신의 원칙에 근본적으로 위반된다고 느끼지 않는 계획을 도출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평행성을 발견한다. 


일련의 다양한 관점들이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고자 하는 하는 공통된 바람으로 묶여 더 큰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아나키스트 이론은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을 찾으려 한다. 


어떤 점에서 통약불가능한 이론들이라 해서 존재할 수 없거나 서로를 강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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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길은 혁명을 사건으로, 즉 ‘대혁명'이나 지각변동적 단절로 생각하는 대신 “혁명적 행동은 무엇일까?“하고 자문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답할 수 있다. 


혁명적 행동은 특정한 권력 또는 지배 형태를 거부하고 그에 맞서 사회관계를 (그 집단 내부에서까지) 재구성하는 모든 집단행동을 일컫는다. 


혁명적 행동의 목표가 반드시 정권 정복일 필요는 없다. 


예컨데 권력에 맞서 (카스토리아디스의 정의에 따르면 스스로를 구성하며, 공동으로 규칙이나 운영 원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재검토하는) 자율 공동체를 창조하려는 시도는 거의 혁명에 근접한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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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물리에부탕 같은 자율주의 역사학자는 자본주의의 역사는 ‘노동자의 이동성'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의 연속이며, 이런 문제의식으로부터 도제살이, 노예제도, 쿨리제도, 계약직, 이주 노동자, 다양한 형태의 출입국 관리 같은 제도들이 끝도 없이 고안되었다고까지 주장한다. 


만일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 공상하던 형태에 정말로 가까워져 노동자가 자신들이 원할 때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취직하고 그만두는 일이 가능해진다면 체제 전체는 붕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부터 북아메리카 아나키스트에 이르는 세계화 운동의 급진파들이 늘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은 전지구적 이동의 자유, 즉 국경을 파괴하고 장벽을 무너뜨리는 '진정한 세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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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우리에겐 임금노동 및 이와 유사한 관계의 역사를 다룬 제대로 된 이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결국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에 종사하느라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낭비하며, 또 바로 그 이유로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이 반자본주의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들을 ‘반자본주의자'라 칭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임금노동제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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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임금노동 계약은 정말로 노예 임대 계약이었다. 


여기서 출발한 자본주의 모델은 어떠한가? 


조너선 프리드먼 같은 인류학자는 고대 노예제는 자본주의의 오래된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간단히, 아니 실은 훨씬 더 간단히 현대 자본주의는 노예제의 새로운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매매하거나 임대하는 대신, 
이제는 우리가 직접 스스로를 임대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둘의 방식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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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구성하는 여러 관점과 열정, 통찰과 욕망, 상호이해 간의 엄청나게 복잡한 작용들을 무시하고 사회체계를 단순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규칙을 만들어 누구든 그것을 위반하면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은 언제나 어리석은 자들의 좋은 의지가 된다. 


폭력은 지성적으로 대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어리석음의 한 형태이며, 

이것이 바로 국가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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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행동 형식을 더 크고 전체적인 권력 불평등의 형식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통해서만 바라보려 한다. 


이런 고집을 버리는 순간, 우리 주변에 있는 아나키스트의 사회관계와 소외되지 않은 행동 형식이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중요한 이유는 아나키즘이 이미 인간 상호작용의 주요 토대 중 하나임을, 그리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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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반대하는 투쟁은 언제나 아나키스트 조직의 핵심 주제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투쟁은 더 나은 근로 조건이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이 아니라 지배 관계로서의 일 자체를 완전히 철폐하려는 투쟁이다. 


그래서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의 구호는 “임금노동제에 반대한다"이다. 


물론 임금노동 철폐는 장기적인 목표다. 


단기적으로는 철폐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줄여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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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빈둥거리는 사람보다는 틀림없이 더 많을 것이다.(감옥에서 재소자를 벌주려 할 때 일할 권리를 뺏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명하달식 조직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끝없는 굴욕과 가학 피학이 뒤섞인 게임을 없앤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을 즐기게 되리라.


어쩌면 단 한 명도 자기가 원하는 이상으로 일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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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그리스 도시국가의 통치 형태는 보통 그 주력부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기병이 주가 되는 도시국가는 귀족정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말을 사육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중무장 보병이 주가 되는 도시국가는 모두가 갑주를 갖추고 훈련을 받을 수 없기에 과두정의 형태를 띠게 된다. 


주력부대가 해군이나 경장 보병이라면 누구가 노를 젓거나 돌팔매를 날릴 수 있으므로 민주정의 형태를 예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무장한 자의 의견은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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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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