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라다라'는 땅의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가운데의 사각형은 땅이고, 코끼리는 땅을 떠받치는 힘이고 정신적 에너지, 즉 리비도입니다.
그렇다면 뿌리 지주를 의미하는 '물라다라'라는 명칭은 또한 우리가 존재의 뿌리 영역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같은 존재는 개인이 이 땅 위에서 영위하는 육체적 존재일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속성은 신들이 잠을 자고 있다는 점입니다.
'링가'는 하나의 단순한 씨앗이고, 잠자는 공주, 즉 쿤달리니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어떤 세상의 가능성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이 유일하게 활동하는 힘이고 신들 혹은 비아(非我)의 힘은 아직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그런 조건을 암시합니다.
#쿤달리니_요가의_심리학 #칼_구스타프_융
그래서 '마니푸라'는 신과 동일시되는 센터입니다.
이곳에서 사람은 신성의 일부가 되고, 불멸의 영혼을 갖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더 이상 시간 안에 있지 않고 3차원의 공간 안에도 있지 않는 신성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시간은 하나의 확장이고, 공간도 존재하지 않고 시간도 없는 4차원의 질서에 속합니다.
거기엔 오직 무한한 지속, 즉 영원만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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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을 받아들이게 되면,욕망과 열정을 비롯해 감정 세계 전체가 느슨하게 풀립니다.
우리가 무의식을 잘 알게 될 때, 섹스와 권력, 그리고 우리의 본성에 있는 모든 악이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무의식을 두려워하고 무의식 같은 것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유이지요.
마치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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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주받을 쿤달리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석의 충만함이야.
거기에 에너지의 원천이 있어."
헤라클레이토스가 적절히 말했듯이,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지요.
이 세 번째 센터, 즉 감정의 센터는 태양신경절, 즉 배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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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있는 이 4가지 센터는 저마다 거기에 해당하는 원소를 갖고 있습니다.
'물라다라'는 흙이고, '스바디슈타나'는 물이지요.
그 다음에 '마니푸라'는 불이고, 마지막으로 '아나하타'는 공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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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언제나 감정이 특징이지요.
이는 감정 상태가 심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세상 온 곳에서 감정은 심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전혀 없다면 심장이 없지요.
용기가 없는 사람에겐 심장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용기가 감정의 한 상태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가슴에 새겨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아니면 무엇인가를 "가슴으로" 외우라고 하지요.
물론 여러분은 그것을 머리로 배우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슴 속에 간직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을 가슴으로 배울 때에만 그것을 진정으로 얻게 됩니다.
달리 말해, 그것이 여러분의 감정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나하타'센터에 닿을 때까지 여러분의 몸 속에 깊이 잠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휘발성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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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 요가에 따르면, 푸루샤는 '아나하타'에서 처음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핵심, 최고의 사람, 소위 원초의 사람이 눈에 보입니다.
그렇다면 푸루샤는 사고와 가치, 감정의 정신적 본질과 동일하지요.
감정과 개념을 인식하면서, 사람은 푸루샤를 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심리적 혹은 정신적 존재 안에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 존재는 당신 자신이 아닙니다.
이 존재는 당신을 포함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 존재는 당신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중요하지만 전적으로 정신적인 본질을 갖고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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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니푸라'에서 '아나하타'로 넘어가는 것은 정말로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정신이 제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점을, 정신이 여러분 자신이 아니고 별도의 순수한 그 무엇이란 점을 인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이는 곧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의식이 종말을 맞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의식 안에서 모든 것은 당신이 놓아둔 그대로 있지만,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집 안에서도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방 안에 여러분 혼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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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나' 센터는 날개 달린 씨앗처럼 보인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엔 동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그것은 곧 거기엔 정신적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반대하는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특한 상징인 '링가'가 여기서 새로운 형태로, 하얀 상태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링가는 지금 싹을 틔우는 어둑한 조건 대신에 하얀 빛으로 불타고 있으며 완전히 의식 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물라다라'에서 잠자고 있던 신이 여기서 완전히 깨어나면서 유일한 실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센터는 사람이 시바와 통합되는 조건이라 불립니다.
그곳은 신의 힘과의 '신비적 융합'이 이뤄지는 센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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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잎을 가진 연꽃, 즉 '사하스라라' 센터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다소 불필요합니다.
그것이 단지 아무런 내용물을 갖지 않은 철학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가능한 경험 밖에 있습니다.
'아즈나'에는 여전히 신이라는 대상과 분명히 다른 자기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하스라라'에서 사람은 대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사하스라라'엔 어떤 대상도 없고, 신도 없고, 오직 브라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거기엔 두 번째가 없습니다.
그것은 잠을 자고 있으며, 그것은 있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니르바나', 즉 열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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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신성을, '데비'를, 쿤달리니를 깨운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말하자면, 신들의 빛에 불을 붙이기 위해 개인의 내면에 있는 초개인적인 것을 발달시키기 시작한다는 뜻이랍니다.
잠자는 '물라다라'의 세계에서 일깨워져야 하는 쿤달리니는 초개인적인 것이고 비아(非我)이며, 정신의 전체성이지요.
이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주적 혹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보다 높은 차크라에 닿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쿤달리니는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구원의 뱀인 '소테르'와 같은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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