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수라는 사람은 손재주가 정교한 장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수의 손가락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을 아끼는 것은 자신에게는 이것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나의 소유이면서 또한 내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도 크다.
귀한 바와 천한 바로 논한다면, 천자가 될 만큼 높은 지위라 하더라도 이를 자신의 삶의 존귀함과 견주기에는 부족하다.
가볍고 무거운 바로 논한다면, 천하를 소유할 만큼 재물이 많다 하더라도 내 삶의 소중함과는 바꿀 수 없다.
편안한 바와 위태로운 바로 논한다면, 하루아침에라도 내 삶을 잃으면 결코 다시 돌이켜 얻을 수 없다.
이 세 가지를 도 있는 사람들은 늘 신중히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신중히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본성과 생명의 실질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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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훌륭한 임금들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전체가 함께 함을 반드시 맨 앞으로 내세웠으니, 전체가 함께 하면 천하가 화합된다.
화합은 전체가 함께 함으로부터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다.
그 실례로서 옛날의 기록을 한번 보면, 천하를 얻은 자와 천하를 잃은 자가 많은데, 그들이 천하를 얻은 것은 오로지 전체가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었고, 그들이 천하를 잃은 것은 오로지 사사로이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천하는 임금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고, 천하 모든 사람들의 천하이다.
음양의 조화는 어느 한 부류의 사물만을 편애하여 자라게 해주지 않고, 단 이슬과 때에 맞는 비는 어느 한 사물에만 편애하여 내려주지 않으며, 천하 만민의 임금은 어느 한 사람만을 편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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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는 음식의 맛을 내지만 감히 음식을 먹지 않으므로, 요리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요리사가 음식의 맛을 내면서 이를 먹는다면 요리사가 될 수 없다.
왕자(王者)나 패자(覇者)와 같은 우두머리들도 역시 이와 같아서, 닦달거리고 포악하더라도 천하를 자신의 것으로 사사로이 하지 않고 천하의 현명한 사람들에게 봉지로 나누어 주므로 왕자나 패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왕자나 패자와 같은 우두머리들이 닦달거리고 포악하면서 천하를 자신의 것으로 사사로이 한다면, 왕자나 패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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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는 본디 어떠한 것도 나은 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떠한 것도 모자라는 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도 역시 이러하다.
그러므로 배우기를 잘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나은 점을 빌림으로써 자신의 모자라는 점을 보충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빌리는 사람은 마침내 천하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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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투쟁이 비롯되어 내려온 바도 매우 오래 되었으니, 일찍이 이 투쟁이 눈 깜짝할 사이라도 쓰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귀한 자와 천한 자, 나이 많은 자와 나이 어린 자,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들이 더불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단지 큰 투쟁과 작은 투쟁이 있을 따름이었다.
투쟁의 기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마음 속에 있으면서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도 투쟁이고, 흘려보는 것도 투쟁이고, 불쾌한 안색을 드러내는 것도 투쟁이고, 건방진 말도 투쟁이고, 밀고 당기는 것도 투쟁이고, 끌어당기고 뒤집는 것도 투쟁이고, 패지어 싸우는 것도 투쟁이고, 삼군(三軍)의 대부대로 치고 싸우는 것도 투쟁이다.
이 여덟 가지는 모두 투쟁으로서 크고 작은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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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진실로 의롭다면, 포악한 군주들을 주살함으로써 고통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해주기 때문에, 백성들이 이 의로운 군대를 좋아함이 마치 효자가 인자한 어버이를 보듯 하고, 주린 자가 맛있는 음식을 보듯 한다.
그래서 백성들이 환호하며 그리고 달려감이 마치 강한 쇠뇌로 깊은 골짜기에 화살을 쏜 것과 같고, 큰물이 쌓여서 막아놓은 둑을 무너뜨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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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천금과 기장쌀을 뭉친 주먹밥을 어린아이에게 보인다면 어린아이는 반드시 주먹밥을 취할 것이다.
화씨(和氏)의 구슬과 천금을 세속의 사람에게 보인다면 세속의 사람은 반드시 천금을 취할 것이다.
또 화씨의 구슬과 도덕의 지극히 오묘한 말을 현자에게 보인다면 현자는 반드시 지극히 오묘한 말을 취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지혜가 오묘하면 오묘할수록 그가 취하는 바도 그만큼 오묘하고, 어떤 사람의 지혜가 거칠면 거칠수록 그가 취하는 바도 그만큼 거칠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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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신조 중에서 (선비는) 능욕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므로 부귀보다 더 존중되는 것이니, 어떠한 이익이나 권력도 이러한 선비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그의 뜻을 돌리기에는 부족하다.
정말로 능욕을 당한다면 이들은 즐거운 삶을 영위할 것이 없다.
이 같은 사람들은 권세를 잡아도 절대로 자기 마음대로 사사로이 하지 않고, 관직에 처해서도 절대로 관직을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않으며,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지휘할 때에도 절대로 용기가 꺾이어 패주하는 일이 없다.
충신도 역시 이와 같다.
진실로 군주에게 편하고 나라에 이롭다면, 자신의 몸을 죽이고 삶을 내팽개치는 일도 감히 마다하거나 어기지 않고서 군주와 나라를 보위한다.
나라에 이 같은 선비가 있다면 가히 인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인재는 본디 얻기가 어렵지만, 사실 걱정은 얻기 어려운 선비가 있어도 이를 몰라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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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잘하나 논리에 맞지 않고, 미덥기는 하나 이치에 맞지 않고, 용감하기는 하나 의리에 맞지 않고, 법을 잘 지키기는 하나 실정에 맞지 않으니, 이는 어리둥절한 채로 빨리 달리는 말을 타는 것과 같고, 미친 채로 오나라 간장(干將)의 명검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천하를 어지럽히는 일은 반드시 이 네 가지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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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우열은 멀리 내다보는 것과 가까이 보는 것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오늘날이 옛날과 갖는 관계는 옛날이 그 후세와 갖는 관계와 같고, 오늘날이 후세와 갖는 관계 역시 옛날이 오늘날과 갖는 관계와 같다.
그러므로 현재를 잘 살피고 알면 지나간 과거를 알 수 있고, 과거를 알면 앞으로 올 미래를 알 수 있으니, 과거와 현재, 앞과 뒤는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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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도리에 어긋난 사람의 병은 진실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은 것을 도리에 어긋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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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들음에 있어서 부질없이 얽매이는 바가 많은데, 얽매이는 바가 있으면 듣는 일이 반드시 어그러지게 된다.
얽매이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많지만 그 요체는 반드시 사람이 좋아하는 바와 싫어하는 바에 바탕을 둔다.
동쪽을 바라보는 사람은 서쪽 벽을 보지 않고, 남쪽을 주시하는 사람은 북쪽에 눈을 두지 않으니, 마음에 이미 존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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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는 본디 가까이 하면 멀어지고 멀리하면 가까워지는 것이 있다.
때도 역시 이러하다.
탕임금과 무왕 같은 현자가 있다 하더라도 걸과 주 같은 폭군의 시기가 없으면 천자가 되지 못 하고, 걸과 주 같은 폭군의 시기가 있다 하더라도 탕임금과 무왕 같은 현자가 없으면 역시 천자가 되지 못 한다.
성인이 보는 때와 인사의 관계는 마치 걸음이 그림자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와 같다.
그러므로 도 있는 선비가 아직 때를 만나지 않았을 때에는 은둔하여 세상과 떨어져 숨어 살기도 하고, 또 힘들여 일하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벼슬 한번 하지 않은 위치에서 천자가 되는 사람이 있고, 제후의 지위로부터 천하를 얻게 되는 사람도 있고, 낮고 천한 위치로부터 삼왕(三王)과 같은 위대한 천자들을 보필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평범한 사내의 위치에서 천자의 세력을 가진 사람에게 복수하는 사람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 중히 여기는 것은 오직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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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철한 군주란 만물을 빠짐없이 두루 보는 사람이 아니라, 군주가 잡아야 할 바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군주의 도리를 소유하고 있는 군주란 모든 것을 몸소 시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백관의 존재 이유를 아는 사람이다.
백관의 존재 이유를 알기 때문에 하는 일은 줄어들면서도 나라는 다스려지는 것이고, 군주가 잡아야 할 바를 알고 있기 때문에 권력은 임금에게로 집중되면서도 간사함은 막히게 되는 것이다.
간사함이 막히면 (유가·묵가·종횡가 등) 이단의 논설을 펴는 자들이 들어오지 못 하게 됨으로써 참 모습이 깨우쳐지고, 허위가 꾸며지지 않음으로써 일의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을 일컬어 "지극히 잘 다스려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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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옮기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이를 잘 살피지 않을 수 없으니, 여러 번 이리저리 전해지다 보면 흰 것이 검은 것이 되고, 검은 것이 흰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개는 원숭이와 같고, 원숭이는 고릴라와 같으며, 고릴라는 사람과 같지만, 사람이 개와 갖는 관계에 있어서는 전혀 거리가 멀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가 잘못을 크게 저지르는 이유이다.
남이 옮기는 말을 듣고서 이를 잘 살피면 복이 되지만, 남이 옮기는 말을 듣고서 이를 잘 살피지 않으면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이 옮기는 말을 들을 때에는 반드시 깊이 따져봐야 하며, 그것이 사람에 관한 것일 때에는 반드시 이치로써 사실 여부를 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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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㗢동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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