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성장이라는 관점에 서면, 철없는 유년 시절은 평화롭게 지내고 철들 나이가 되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기회가 많을수록 좋다.
설령 그것이 난세라 해도, 생각할 거리를 풍부히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절망은 사람을 과격하게 만든다.
특히 고지식하고 외곬으로 생각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과격해지기 쉽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여자는 무시당했을 때 가장 깊은 상처를 입는 법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고령자라서 완고한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육체의 쇠약이 정신의 동맥경화 현상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훌륭한 업적을 쌓은 고령자에게 나타나는 완고함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훌륭한 업적을 거둠으로써 성공자가 되었기 때문에 완고해진 것이다.
나이가 사람을 완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사람을 완고하게 만든다.
성공자이기 때문에 완고한 사람은 변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어도,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근본적인 개혁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성공에는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다.
흔히 젊은 세대가 근본적인 개혁을 성취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성공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뛰어난 지도자란 단지 뛰어난 재능만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인간이 아니다.
그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인간관계는 반드시 상호관계다.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바랄 수 없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남보다 뛰어난 공적을 이룩하고 유력한 지위에 오른 사람 가운데, 남의 질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질투를 품더라도, 당장 탄핵이나 중상이라는 형태로 그것을 표면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질투는 은밀히 숨어서 기회를 노린다.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약점이 보였을 때가 바로 기회다.
추문은 절대로 강자를 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은 먹고 살 수 없게 되면 먹고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땅으로 이동하는 법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변치 않는 현상이다.
이런 종류의 민족 이동을 고대에는 야만족의 침입이라고 불렀고, 현대에는 난민 발생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도 마찬가지여서, 로마가 존속하는 동안은 한시도 이같은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생존이 어려워진 사람들의 이동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든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든 별차이가 없다.
아무리 평화적으로 이동해 온다 해도 기존 사회를 뒤흔들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민족 이동은 다소간에 폭력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매사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갖게 마련이다.
좋은 면밖에 없는 제도는 신의 솜씨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개혁이란, 원래부터 나빴기 때문에 고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좋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빠진 면을 고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확고부동한 자부심만이 열등감의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지나친 열등감만큼 상황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없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무력 충돌이 예상되는 상태에서 대립하면, 양쪽 다 상당한 압박감을 견뎌내야 한다.
그 최초의 행동은, 이때를 놓치면 두번 다시 좋은 기회는 오지 않는다고 믿고 결단을 내리거나, 더 이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행동에 나서거나,둘 중 하나의 경우에 일어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로마 시민과 비시민이 둘로 나뉘어 싸운 '동맹시 전쟁'과는 달리, 이번은 적군과 아군이 모두 같은 로마 시민이었다.
또한 전쟁이란 오래 계속될수록 당초에는 품지 않았던 증오심까지 고개를 쳐들게 되는 법이다.
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르게 된다.
오직 증오심만이 그들을 몰아세운다.
내전이 처참한 것은 목적이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체제가 갖는 장점은 누가 실행자가 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가 보장된다는 데 있다.
반대로 체제가 갖는 단점은,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의 성과밖에 거둘 수 없는 현실이 패배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 공동체가 입을 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피해가 너무 크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체제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평상시뿐이고, 비상시에는 아무리 체제에 충실하고 싶어도 현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유연성을 갖는 체제 확립이 요구되는 것이지만, 이것처럼 어려운 일도 드물다.
예외는 또 다른 예외를 부르는 숙명을 갖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들이 위정자들에게 확고한 정치적 목표를 요구하는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확고한 정치적 목표가 없이 정치를 하면 정책은 전후좌우로 흔들리기 쉽고, 그 결과는 국력의 낭비로 이어진다.
통치를 받는 쪽으로 관점을 옮겨보면 어떨까.
통치자 쪽에 확고한 정치적 목표가 있든 없든, 결과가 좋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여자운과 부하운은 결국 같은 뿌리를 가진 것이었다.
인간의 행복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신적인 측면에만 한정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준다.
그렇기는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커뮤니케이션'의 정도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기준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하다고 느끼게 하면 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누군가에게 뒷일을 맡겨야 할 경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아주 자세한 지침을 주고 맡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임무는 주더라도 자세한 지침까지는 주지 않고 그 사람에게 일임해버리는 사람이 있다.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하느냐의 여부는 거의 관계가 없다.
전자는 자세한 지시를 받아야 일하기 쉬운 사람이고, 후자는 그 반대일 뿐이다.
카이사르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후자를 택한 경우는 도박이니까, 잘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에는 일을 맡긴 사람이 뒤처리를 해야 한다.
잘되지 않은 경우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모든 일이 잘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잘되었지만 다른 일은 잘되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뒤처리도 당장 해야 하느냐, 아니면 당분간은 그대로 방치해두어도 되느냐를 판단해야 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은 '소문의 노예이고, 게다가 그 소문을 제멋대로 분칠해서 자기네 편한 대로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정착생활은 전투보다 농경에 열의를 쏟게 되는 원인이고, 사유지를 인정하면 빈부격차가 생긴다.
빈부격차는 추위와 더위에 대해 쾌적한 집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낳게 된다.
그리고 빈부격차의 가장 큰 폐해는 금전에 대한 집착과 사회 불안이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평민계급도 불만을 느끼지 않고 평온하게 살 수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허영심이란 남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하는 심정이고 야심은 무언가를 이룩하고 싶어하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권력이 필수불가결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이룩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해내는 데 필요한 힘이나 권력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허영심은 있지만 야심이 없는 사람은 욕심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또한 욕심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인물로 간주된다.
추대되는 것은 항상 이런 부류의 '위험하지 않은 인물'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또한 공적으로 이룩하고 싶은 무언가를 갖지 않은 사람은 실질적인 은둔 생활로 일관해야 인간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고대에는 이런 생활방식을 에피쿠로스주의(쾌락주의)라고 불렀다.
이와는 반대로, 무언가를 함으로써 인간 사회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한 사람을 스토아파라고 불렀다.
폼페이우스의 불행은, 오리엔트 제패를 끝내고 귀국한 44세를 고비로 적극적인 스토아파에서 철저하지 못한 스토아파로 변해버린 데 있다.
그의 선배격인 루쿨루스나 키케로의 친구인 아티쿠스처럼 차라리 철저한 에피쿠로스파라도 되었다면 평온하고 우아한 여생을 보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진두지휘하는 사령관과 그 휘하에서 싸우는 정예 병사들은 고락을 함께 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신뢰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친밀감도 강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그것이 친밀감의 한계를 넘어 '어리광'으로 바뀐다.
어리광은 조금만 발전하면 '상대를 깔아 뭉개고 기어오르려 하는 태도'로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는 단순한 파업이 반란으로 발전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분노나 복수는 상대를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일어날 수 있는 행위다.
카이사르가 평생 이것과 무관했던 것은 분노나 복수가 윤리 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월한 자신이 왜 열등한 타인의 수준으로 내려가서 그들과 똑같이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그들과 똑같이 복수심을 불태워야 하는가.
술라와 카이사르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었지만, 이 점에서는 양극단이었다.
후세 역사가들은 이런 카이사르를 '진정한 귀족 정신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훌륭하게 기능을 발휘하고 있던 체제를 바꾸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무엇보다 우선 자기 자신을 개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개혁, 특히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의 자기 개혁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하지만 이것을 게을리하면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기가 더욱 불가능해진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의 행동 원칙을 바로잡는 역할을
종교에 맡긴 유대인,
철학에 맡긴 그리스인,
법률에 맡긴 로마인.
이것만 보아도 이 세 민족의 특징이 떠오를 정도다." 
 
종교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행동 원칙을 바로잡는 역할'을 할 수 없다.
철학은 그것을 이해할 만한 지적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에서 일하는 부두 노동자에게 소크라테스의 교묘한 논법으로 접근한다 해도, 철학이 그 사람의 '행동 원칙을 바로잡는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처형을 아테네 시민이 압도적으로 찬성한 사실은 이런 종류의 '바로잡기'가 지닌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법률은 다르다.
법률은 종교를 달리하거나 철학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여자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번은 부닥치는 문제에 그녀도 직면했을지 모른다.
뛰어난 남자는 여자 뜻대로 되지 않고, 여자 뜻대로 되는 남자는 그 아래에 있는 남자뿐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후의 생활방식이 결정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도 좋으니 뛰어난 남자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역량과 재능은 일급이 아니더라도 자기 뜻대로 되는 남자를 택할 것인가.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어디서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민족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의욕이 부족해지기 쉽다.
또한 쇠퇴기에 접어든 지 오래인 민족이 다시 융성한 예는 역사상 한번도 없다.
그런 예가 있다면, 대수술을 가하여 국가의 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경우뿐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런 대수술을 단행했지만, 결과를 확인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그후의 그리스인한테서는 더 이상 그런 종류의 활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고양이는 자기를 귀여워해줄 사람을 한눈에 알아본다고 한다.
여자도 고양이와 같다.
자기한테 마음이 쏠릴 만한 남자는 눈빛만 보아도 안다.
클레오파트라도 단정한 용모를 지닌 33세 젊은이의 차가운 눈길을 받은 순간, 그런 수법을 써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게 아닐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 시도하는 것은 일류라고 자부하는 승부사가 할 짓이 아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균형 감각이란 서로 모순되는 양극단의 중간점에 자리를 잡는 것은 아니다.
양극단 사이를 되풀이하여 오락가락하고, 때로는 한쪽 극단에 가까이 접근하기도 하면서,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한 점을 찾아내는 영원한 이동 행위가 아닐까.
자유와 질서는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다.
자유를 지나치게 존중하면 질서가 파괴되고, 질서를 지키는 데 지나치게 전념하면 자유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양립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진보가 없고,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진보는커녕 오늘의 목숨조차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다음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첫번째 자질인 '지성'이다.
지성은 지식만도 아니고 교양만도 아니다.
지성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꿰뚫어보는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만, 꿰뚫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상황을 통찰한 뒤에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최선인지도 이해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창조성이 결여된 현실인식은 백점 만점의 지성이 아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정복자에 대한 피정복자의 불만은 개인 차원에 머무르는 동안은 폭발까지 이르지 않는다.
그 불만이 폭발하는 것은 지도자를 얻었을 때다.
미개한 야만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부족장을 비롯하여 이른바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정복자에게 피정복 민족의 지배층이 불만을 품는 것은 정복당하기 전에 자기네가 갖고 있던 권력이 정복자에게 침해되었다고 느꼈을 때다.
바꿔 말해서 정복자가 군사력으로 제압한 상태를 영속시키고 싶으면, 피정복 민족의 지배층이 갖고 있던 권력을 침해하지 않고 종래대로 보장해주면 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렇긴 하지만 인간은 정말 불가사의한 생물이다.
싸움에 지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분열하고, 싸움에 이기면 이번에는 논공행상에 따른 질시 때문에 분열한다.
따라서 싸움에 이기느냐 지느냐보다, 분열로 말미암아 힘을 쓸데없이 소모했느냐 아니냐가 최종적인 승패를 결정하는 게 아닐까.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외교에 의한 해결이라고 하면, 현대인들은 평화적으로 대화한 끝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군사력을 사용하여 위협한 뒤에 악수하는 것도 외교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유효한 외교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인간은 이치로 깨닫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칼을 들이대면 눈을 번쩍 뜨는 법이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로마인이 처음으로 가도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도를 여러 줄기가 그물처럼 얽힌 도로망으로 구성하면 그 기능도 더욱 높아진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실행한 것은 로마인이다.
로마인이 처음으로 법률을 만든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법률은 여러 갈래에 걸쳐 있는 법률체계로 만들어야만 법치국가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행한 최초의 민족은 로마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필요에 따라 '유지·보수'하지 않으면 기능 저하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인간 세계의 현실이었다.
법률면에서의 유지·보수는 곧 현재 실정에 맞게 법률을 고치는 것이다.
법체계의 창시자로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로마인들은 일단 법률을 제정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법률도 도로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경우에는 '수리·복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법률의 결과인 각종 체제에도 적용되었다.
어떤 체제든, 체제는 현재 실정에 맞도록 수리·복구되어야 하고, 그것을 게을리하면 체제 자체가 피로를 일으켜 결국에는 무너지기 때문에 긴 안목으로 보면 대단히 비경제적인 결과로 끝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자긍심이 강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다.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리는 인간은 외아들이 죽어도 슬픔에 굴복하지 않는다.
슬픔에 지는 것만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비탄에 잠겨 일을 내팽개치는 것은 보통사람이나 하는 일이고,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생각지 않는 인간은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장 큰 슬픔에 사로잡힌 시기에는 오히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할 것이다.
자긍심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사람이라면 슬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을 시작할 무렵, 자긍심이 강한 사람은 비로소 깊고 무거운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까.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위선을 뜻하는 영어 낱말 'hypocrisy'와 이탈리아어의 'ipocrisia'는 둘 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어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스어를 라틴어식으로 표기하면 'hypokrisia'가 된다.
다시 말해서 이 낱말의 창조자는 고대 그리스인인데, 창조자인 만큼 그들은 위선을 사전에 나오는 의미-겉치레로 보이는 선행-로만 생각지는 않았다.
그들은 위선을 상급과 하급으로 구분했다.
겉치레로 보이는 선행이라는 설명은 그리스인에게는 하급 위선에 불과하다.
그리스인이 생각한 상급 위선은 겉꾸밈이든 겉치레든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위선을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수단으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필요악은 아니다
좀 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악'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원로원 의원이라면, 통치에는 정보 수집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쯤 이해해고 있다.
그리고 정보를 수집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세계의 수도'(카푸트 문디)라고 불린 로마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보 수집의 중요성은 절대적인 속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속도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정보를 얻고, 얻은 정보를 토대로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따른 지령을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보내는 데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정보의 속도는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성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괴팍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는 소심한 경우가 많다.
소심한 사람은 남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애쓰기보다는 자기편이 확실한 사람들로 주위를 에워싸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자기편으로 생각하는 것은 같은 핏줄로 이어진 혈연이라는 게 특징이다.
누이동생들을 우대한 칼리굴라는 아내가 된 여자들한테는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개개인의 창의력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역사는 내가  창조한다'고 생각지 않고 '역사는 인간들이 창조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상들이 보여준 선례를 참고하는 데에도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하지만 책에서 얻은 지식은 현실과의 대조를 거쳐야만 비로소 인식이 될 수 있다.
인식은 철학적으로 말하면 이성을 통해 사물의 궁극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이지만, 쉽게 말하면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오만하고 건방진 태도를 보이거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축재에 열을 올리는 것은 최고권력자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측근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이다.
그들이 이런 유혹을 완전히 극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인간은 유혹에 약한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 해도 억누를 수는 있다.
카이사르도 아우구스투스도 티베리우스도 남의 협력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통치한 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협력자는 늘상 있었다.
다만 이들은 수족으로 일해주는 부하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 경외심은 부하들에 대한 무언의 브레이크이기도 하다.
경외심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공경만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고대 로마의 노예제도를 논할 경우, 노예제도는 인권에 어긋나니까 폐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근대적 관점에 서면 논의조차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노예제도는 고대 로마가 붕괴하고 기독교 세계가 된 뒤에도 완전히 폐지되지는 않았다.
기독교라는 신앙에 눈을 뜨지 못한 자는 기독교도와 대등한 인간이 아니라는 교회의 묵인 아래, 비기독교인 노예는 계속 존재했다.
노예제도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인권 존중을 제일의 가치로 내건 계몽주의 시대였다.
따라서 모든 나라의 노예제도 폐지 선언은 18세기 말에 집중되어 있다.
고대에는 소크라테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노예제 사회에 의심조차 품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고대인은 노예가 자신들과 같은 종교를 믿지 않으니까 자기네와 동등해질 권리가 없는 인간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고대의 노예는 전쟁에 지거나, 해적한테 붙잡히거나, 빚을 갚지 못해 담보로 잡히거나, 아니면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났거나, 부모가 노예로 팔았거나 하는 따위의 '불운' 때문에 노예 신세로 전락한 사람을 가리켰다.
따라서 주인이 온정을 베풀거나 빚을 갚거나 몸값을 내고 노예에서 풀려나는 것이 널리 인정되고 있었다.
노예로 태어난 사람도 몸값을 내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해적한테 붙잡힌 사람이나 전쟁터에서 포로가 된 사람과 같은 처지였다.
자유민과 노예의 구별은 믿는 종교의 차이가 아니라 이런 '불운'을 당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에 불과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러나 인간은 문제가 없으면 불만을 느끼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사소한 문제라도 찾아내서 그것을 불만거리로 삼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이런 인간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는 고도의 속임수'라는 말도 나온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외국을 침공하여 약탈과 폭행을 저지른 뒤 물러나는 강도짓 같은 군사행동은 일시적인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외국을 침공하여 그 땅을 점령할 뿐 아니라, 그 땅과 주민들을 자기네 세계에 편입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행동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군사력을 이용한 제패는 되도록 짧은 기간에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쟁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정복당한 쪽의 적개심이 증폭되게 마련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대군을 일시에 투입하여 속전속결로 나가야 한다.
소수의 병력을 파견하여 천천히 제패를 진행하는 것은 공격하는 쪽에도 당하는 쪽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나쁜 짓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단숨에 해치워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도 말했다.
타민족을 침략하는 못된 짓은 단기간에 끝내고 전후 처리를 충분히 하는 편이 정복자에게도 피정복자에게도 좋다는 것이다.
침략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이상주의는 물론 여기서 배제된다.
인류의 역사는 곧 침략의 역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저지를 악행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것이 인간성의 현실이라면, 악행에 따른 폐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도 인간의 지혜를 발휘할 여지는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역사를 공부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가 가진 자질의 우열이 아니라, 갖고 있는 자질을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류는 지금까지 온갖 형태의 정치체제-왕정, 귀족정, 민주정, 나아가서는 공산체제까지-를 생각해내고 실행했지만,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로 양분되는 체제를 해소하는 데에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을 꿈꾼 사람은 많았지만, 그것은 유토피아일 뿐 현실 사회를 운영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체제가 어떻든 간에, 통치자와 피통치자로 양분되는 체제는 존속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체제가 존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이상, 피통치자는 통치자에게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요구한다.
통치의 정당성과 권위와 역량이 그것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평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을 피하는 법이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재능이나 자질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여 자신의 입장을 강화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기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도 아니겠지만.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우두머리는 승부가 걸려 있는 곳에 직접 나갈 필요가 있다.
외적과 싸울 경우에는 최고 사령관이 전쟁터에 나가느냐 마느냐가 전투원들의 사기에 영향을 준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전, 즉 동족끼리의 싸움에서는 우두머리가 직접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우선 동포끼리 싸우는 것이므로, 적군과 아군 병사들의 마음 속에는 동포에게 칼을 휘두르는 데 대한 망설임이 존재한다.
이기려면 그 망설임을 잘라버려야 한다.
병사들이 망설임을 떨쳐버리게 하려면, 우리가 싸우는 것은 적이 미워서가 아니라 우두머리를 위해서라는 생각을 병사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두번째 이유는, 승리했을 때 부하 병사들이 지나치게 날뛰는 것을 통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동포에게 칼을  휘두르는 행위는 인간성에 어긋나는 짓이다.
그 결과가 아무리 좋게 끝난다 해도, 인간성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는 자괴감은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런 경우 인간은 이 불쾌한 감정에서 달아나고 싶은 나머지, 한 걸음 물러나 이성을 되찾기보다는 오히려 동물적인 야수성에 몸을 맡기기 쉽다.
최고 사령관의 단호한 명령만이 병사들의 폭주를 저지할 수 있다.
승리한 아군을 통제하는 것 못지않게, 패배한 동포에 대한 처우도 중요하다.
이것도 최고 사령관의 단호한 조치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2천 년 뒤인 이제 와서 생각해도 흥미롭지만, 로마인들은 신뢰할 수 있는 상대와 신뢰할 수 없는 상대를 구분하여 신뢰할 수 있는 쪽만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은 신뢰하지만, 그것도 신뢰할 수 있는 데까지만 신뢰한다.
'신뢰할 수 있는 데까지'의 선을 어디에 긋느냐.
로마 지도자들은 상대의 선의나 도덕성을 그 선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기준을 삼은 것은 자기 쪽의 군사적 방위력이었다.
평화조약을 맺은 상대와의 국경에도 전과 다름없는 규모의 군사력을 계속 배치했다.
그렇게 하여 상대가 우호조약을 계속 유지하게 만들고, 상대가 그것을 깨뜨리려 해도 상당히 생각한 끝에 깨뜨리게 했다.
이런 사고방식을 현대식을 말하면 '전쟁 억지력'이 아닐까 싶지만,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창설하여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반석 위에 올려놓은 제정 로마의 전략은 바로 이 전쟁 억지에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예정대로 진행되는 사태에 대처하는 데에는 특별히 뛰어난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재능이 문제되는 것은 예기치 않은 사태에 대처할 경우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리고 게르만족이 갈리아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 상투적으로 써먹는 말은 언제나 자유와 독립이다.
하지만 잊지 말라.
남을 지배하려는 민족치고 이 두 마디를 기치로 내걸지 않은 민족은 하나도 없다는 인간 세계의 냉엄한 현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유대인을 싫어하게 되면, 그들이 하는 짓이 모두 혐오 대상으로 바뀐다.
타키투스도 말했듯이 할례는 유대인과 타민족을 구별하기 위한 의식이고, 일신교는 다른 신들에 대한 경멸감에서 생겨난 신앙이며, 병역이나 공직을 거부하는 것은 제국에 대한 애국심이 없음을 나타내고, 인구를 늘리는 데 열심인 것은 타민족을 앞지르려는 생각에서 나왔고, 인간의 형상을 본뜬 신상을 숭배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부르면서 거부하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에 대한 경멸이고, 춤도 추지 않고 운동경기도 없는 유대교의 종요의식은 음침하고 음울해서 인생을 절망하게 한다는 식이다.
타종교를 믿는 자와 결혼을 금지하는 것도 유대인의 폐쇄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전투 상태가 오래 갈수록 적과 아군에 증오심이 증폭되게 마련이다.
단기간에 해결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전후 처리나 대책도 원한에 좌우되지 않고 이성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대부분의 로마 장수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특징은 무인다운 허영심과는 인연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군으로 소수의 적을 공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대군으로 공격하면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과 아군의 희생을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사회 구성원이 모두 평등하면 오히려 외부인을 소외시키게 된다.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당장 기존 구성원과 똑같은 권리를 인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정하면 기존 구성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어난다.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순수 백인'의 인종차별 의식만 보아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대 로마처럼 사회 계급을 인정하되 계급간의 유동성을 인정하면, 외부인의 유입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진다.
아직 실력을 보여주지 않은 사람은 우선 하층 계급에 들어가게 하고, 그후의 신분 상승은 당사자가 하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실력을 보여준 사람은 당장 그 실력에 어울이는 계급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역사가 기본은 이렇게 말했다.
로마가 왜 멸망했느냐고 묻기보다, 로마는 어떻게 해서 그처럼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다민족·다종교·다문화 사회인 로마는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기 어려운 제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 그처럼 오랫동안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를 문제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로마인은 타민족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타민족까지도 로마인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의 쇠퇴는 식민지들이 독립했기 때문이지만, 로마 제국에서는 속주들의 독립이나 이반은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기능적이고 공정한 세제는 선정의 근간이고, 이것을 안전보장이나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더불어 '중앙정부'의 임무로 생각한 로마인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정치적 인간'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치적 인간'은 많지 않은 것이 인간 사회의 현실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그러나 로마인은 카이사르가 시작하고 티베리우스가 정착시킨 정책에 따라, 아무리 국경을 철벽으로 만들더라도 국경 안팎을 단절시키지 않고 교류를 허용했다.
아니, 사람과 물자의 교류는 오히려 장려했다.
방위선 밖의 부족들에게도 로마에 병력을 제공하거나 물자를 교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로마와 우호관계가 성립되면, 우방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해도 최소한 적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로마는 국경 밖에도 우호적인 부족을 갖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었다.
이른바 '분리하여 지배하라'는 정책이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은 왠지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사람한테는 너그럽고, 고귀한 혈통도 아니고 고귀하게 자라지도 않은 사람이 강권을 휘두르면 신경질적으로 반발하는 경향이 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이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
라이벌이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여자끼리의 문제지만, 한쪽이 죽으면 남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여자가 라이벌이 된다.
교양 있고 성격도 드세고 자존심도 강한 여자에게, 남자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라이벌만큼 힘든 상대는 없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 여자의 가슴 속에 솟아나는 증오는 라이벌의 그림자를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는 남자에게 돌려지는 법이다.
게다가 율리아가 죽은 뒤로는 원래 내성적이었던 도미티아누스가 더욱 마음을 닫게 되었고, 별장에 갈 때에도 혼자 가는 경우가 많았다.
알바 산장에서는 호수를, 치르체오 별장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뒤에 남은 아내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인간은 재미있는 동물이라서, 살아 있을 때에는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던 사람도 죽고 나면 더 이상 관심을 쏟지 않는 법이다.
도미티아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토록 반대했던 원로원 의원들이, 그가 죽고 나자, 그의 정책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

 

 

 

 

 

 

 

 

 

 

 

 

 

 

 

 

 

 

 

 

 

 

 

 

 

 

 

 

 

 

 

 

 

 

 

 

 

 

 

 

 

 

 

 

 

 

 

 

 

 

 

 

 

 

 

Posted by 㗢동죽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