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말로 표현하면 그 도는 늘 이러한 도(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사물의 본질)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에서 하늘과 땅이 비롯되고,
이름 있는 것에서 만물이 태어난다.
그러므로 언제나 억지로 보고자 하는 마음 없이 보면 그 오묘함을 보게 되고,
언제나 억지로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면 그 껍데기만을 보게 된다.
이 둘은 같은 것인데, 이름만 서로 달리한다.
똑같이 ‘그윽함(신비로움)'이라 하는데, 신비롭고 신비로워서 온갖 신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門이 된다.
#도덕경 #노자 #왕필
현玄이란 그윽함이다.
고요하고 아무 것도 없으니 처음과 어미가 모두 거기서 나온다.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다.
즉 특정하게 이름 지어 부를 수 없어서 그윽하다고 했다.
그것을 그윽하다고 말한 것은 하나(一)인 그윽함은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들처럼 특정하게 이름 지어 부르게 되면 그윽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윽하고도 그윽한 것이다.
온갖 오묘함은 모두 다 거기서 생겨난다.
그래서 온갖 오묘함이 나오는 문이라고 했다.
#도덕경 #노자 #왕필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하늘과 땅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일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몸을 앞세우지 않지만 (오히려) 앞서게 되고,
그 몸을 내버려두지만 (오히려) 몸이 보존된다.
그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능히 그 사사로움(대아大我)을 이룬다.
#도덕경 #노자 #왕필
최상의 선善은 (언제나)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지만 그 공功을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잘 머문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땅처럼 낮은 곳에 잘 머무르고, 아주 깊이 헤아리며, 어질게 잘 어울리고, 아주 믿음직스럽게 말하며, 이치에 맞게 잘 다스리고, 맡은 일을 잘 처리하며, 때를 잘 맞추어 움직인다.
(그러나) 결코 그 공을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도덕경 #노자 #왕필
혼魂(마음을 관장하는 넋)을 하나로 몸에 싣고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기운을 온전히 하고 부드럽게 해서 갓난아이와 같이 될 수 있는가?
마음을 씻고 닦아서 흠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억지로 일삼은 지식을 사용치 않을 수 있는가?
열리고 닫히는 하늘 문(道)과 같은 암컷이 될 수 있는가?
사방을 두루 밝히고 (사방에 두루) 미치지만 억지로 일삼지 않을 수 있는가?
(도는) 만물을 낳고 기르지만 (그 공을) 소유하지 않고, (그 공에) 기대지 않으며, 기르지만 그 기른 것을 부리지 않는다.
이를 그윽한 덕스러움이라고 한다.
#도덕경 #노자 #왕필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없음(텅 빈 공간)이 있으므로 수레로서의 쓸모가 있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없음(오목하게 파진 부분)이 있으므로 그릇으로서의 쓰임새가 있다.
창문을 내어 집을 만드는데, 그 없음(내부의 텅 빈 공간)이 있으므로 집으로서의 쓰임새가 있다.
그러므로 있음(有)이 이로운 것은 없음(無)의 쓰임새 때문이다.
#도덕경 #노자 #왕필
무릇 여기서 무엇무엇 같다고 한 것은 모두 그 모습을 나타내거나 이름 붙일 수 없다는 말이다.
무릇 어둠으로(흐릿하게) 다스리면 사물(백성)이 밝음을 얻고,
혼탁함으로써 고요하면 사물이 맑아지고,
편안함으로써 움직이면 사물이 살아난다.
이는 저절로 그러한 이치(道)이다.
누가 할 수 있는가?라는 말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서서히(徐)라는 말은 세밀하면서도 신중하다는 말이다.
(가득 차기를 바라지 않음은) 가득 차면 반드시 넘치기 때문이다.
폐蔽란 가려서 덮는다는 말이다.
#도덕경 #노자 #왕필
텅 빔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 지키기를 독실히 하여, 만물이 함께 일어나 되돌아감을 나는 본다.
만물은 무성하지만 각기 그 뿌리(근원)로 되돌아간다.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일러 고요함(靜)이라 하고,
고요함을 일러 운명(命)으로 돌아감이라 하고,
운명으로 돌아감을 일러 늘 그러함(常)이라 하고,
늘 그러함을 아는 것을 일러 밝음(明)이라 한다.
늘 그러함을 알지 못 하면 헛되이 흉함을 일으킨다.
늘 그러함을 알면 포용하게 되니,
포용함은 곧 공평함이요,
공평함은 곧 왕이요,
왕은 곧 하늘이요,
하늘은 곧 도요,
도는 곧 영원함이니,
몸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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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덕은 오직 도道만을 따른다.
도라는 것은 오직 황홀하여 없는 듯 있는 듯 하되 그 가운데 형상이 있고, 있는 듯 없는 듯하되 그 가운데 사물이 있다.
깊고도 어둡지만 그 안에 정미함이 있고, 그 정미함이 매우 참되어 그 안에 미더움이 있다.
예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을 떠나지 않고 사물의 근본을 다스린다.
내가 어떻게 사물의 근본이 그러한지를 알겠는가?
이로써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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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는 넓고 넓어서 두루 사방에 존재한다.
만물이 그것에서 말미암아 생겨나지만 자랑하지 않고,
공功이 이루어지지만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며,
만물을 먹여주고 길러주지만 그 운동 변화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항상 무욕하니 작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이 돌아가되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니 크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끝내 스스로 크다(위대하다)고 하지 않음으로써, 능히 큼(위대함)을 이룬다.
#도덕경 #노자 #왕필
장차 거두어들이려면 반드시 먼저 베풀어야 하고,
장차 약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강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며,
장차 없어지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흥성하도록 해주어야 하고,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을 일러 ‘묘한 밝음(밝음을 감춤)'이라고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견고하고 강한 것을 이기나니,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나라에 이로운 기물器物은 남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도덕경 #노자 #왕필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陰을 등에 지고 양陽을 품으며, 텅 빈 기氣로써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외로움·모자람·착하지 못함인데, 왕공王公은 이것들로 칭호를 삼는다.
그러므로 사물은 혹 덜어내도 (오히려) 보태어지고, 보태어도 (오히려) 덜어내게 된다.
사람들이 가르치는 바를 나 또한 가르치니, ‘억센 사람은 제 명대로 죽지 못 한다'는 것을 나는 장차 가르침의 아비로(근본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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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사물과 형체는 하나로 돌아간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하나에 이르는가?
‘없음'으로 말미암아서다.
없음으로 말미암아 하나에 이르니, 하나를 일컬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이미 하나라고 했는데, 어찌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말이 있고 하나가 있으니 둘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가 있고 둘이 있으니 드디어 셋을 낳는다.
없음을 좇아서 있음으로 나아가니 수數는 여기에서 다하고 (즉 모든 수가 여기로부터 나오고), 이렇게 나온 것은 도의 무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생겨남에 나는 그 주인을 안다.
비록 그 모양이 만 가지나 텅 빈 기氣의 조화는 하나이다.
백성들은 저마다 마음이 다르고, 나라마다 풍속이 다르지만, 왕후王侯는 하나를 얻어서 주인이 된다.
하나로써 주인이 되니 어찌 그 하나를 버릴 수 있겠는가?
#도덕경 #노자 #왕필
큰 나라를 다스리기를 작은 생선 굽듯이 하라.
도道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귀신이 신통력을 부리지 못 한다.
그 귀신 자체가 신통력을 부리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신통력이 사람을 해치지 못 하는 것이다.
그 신통력만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인 또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이 둘은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으므로 덕德이 함께 이에 돌아간다.
#도덕경 #노자 #왕필
일삼되 억지로 일삼지 않고,
일하되 의도적으로 일하지 않으며,
맛을 내되 억지로 맛을 내지 않으니,
크고 작고 많고 적음에 원망을 덕으로써 갚는다.
어려운 일을 그 쉬운 것에서부터 하고,
큰일을 할 때는 그 작은 일에서부터 한다.
천하의 어려운 것은 반드시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부터 유발된다.
이로써 성인은 결코 큰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큰일을 이룬다.
가볍게 승낙하다 보면 반드시 믿음이 적어지게 되고,
아주 쉽게 여기다 보면 반드시 아주 어려워지게 된다.
이로써 성인은 오히려 일을 어렵게 여기나니, 마침내 어려움이 없다.
#도덕경 #노자 #왕필
훌륭한 무사武士는 힘으로 상대와 겨루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분노로써 상대를 대하지 않으며,
적敵을 잘 이기는 사람은 상대와 더불어 맞서지 않고,
남을 잘 부리는 사람은 그 아래에 머문다.
이를 일러 다투지 않음의 덕이라고 하고,
이를 일러 사람을 부리는 자의 힘이라고 하며,
이를 일러 하늘의 짝이라고 하니,
옛날의 지극한 준칙(道)이라 한다.
#도덕경 #노자 #왕필
사람의 (신체는) 살아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게 굳는다.
만물 초목이 살아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하지만, 그것이 죽으면 마르고 뻣뻣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그래서 군대가 강하기만 하면 승리하지 못 하고, 나무가 강하기만 하면 부러진다.
강하고 큰 것은 낮은 곳에 임하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높은 곳에 임한다.
#도덕경 #노자 #왕필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 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못 하다.
선한 말은 변명하지 않고,
변명하는 말은 선하지 않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을 위해) 쌓아두지 않으니,
다른 사람을 위함으로써 자신은 더욱 갖게 된다.
남에게 베풀므로 자신은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되 해를 끼치지 않고,
성인의 도는 작위 하되 다투지 않는다.
#도덕경 #노자 #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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