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전쟁과 전투는 같지 않다.
전쟁은 몇 년 동안이나 장소를 바꾸어가면서 벌어지는 반면, 전투는 한곳에서 벌어지고 그날로 결과가 판가름난다.
하지만 날짜를 바꾸고 장소도 바꾸어 벌어지는 전투의 집계를 전쟁으로 보는 것이 통상적인 사고방식이니까, 전투는 전쟁의 일부로 여겨지고, 전투에는 이겼지만 전쟁에는 졌다는 표현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역사에는 전쟁의 향방을 좌우했을 뿐만 아니라 그후의 역사까지 바꾸어버린 전투가 있었다.
그런 전투를 '역사를 바꾼 전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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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자의 사랑은 젊은 여자의 경우처럼 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절망에서 태어난다.
들키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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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국가라는 말을 들으면 초강대국이 그 패권 아래 있는 나라들에 대해 제멋대로 굴고 강요와 강압을 일삼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패권 국가든 패권자든, 패권을 손에 넣은 이상은 의무가 따른다.
첫째는 패권 아래 있는 나라나 사람을 보호할 의무이고, 둘째는 패권 아래 있는 나라나 민족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의무다.
인간 세계의 다툼에는 당사자에게 맡겨두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고, 따라서 당사자를 납득시킬 만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 제3자가 조정해주는 편이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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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 즉 속세를 통치하거나 지배할 권리를 군주에게 주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는 사고방식의 유효성을 깨달았으니, 콘스탄티누스의 정치 감각은 경탄할 만큼 뛰어나다.
권력을 위임하든, 반대로 권력을 리콜하든,그것을 결정할 권리는 '가지'한 인간이 아니라 '불가지'한 유일신에게 있다고 했으니가 말이다.
하지만 신은 실제로는 아무런 의사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의 뜻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 누군가가 그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뜻이 성직자를 통해 전해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도 일상적으로 신자와 접촉하는 사제나 고독한 환경에서 신앙을 추구하는 수도사보다는 교리 해석을 정리하고 통합하는 공의회에 참석할 권리가 있는 주교가 더 권위있는 전달 코스다.
요컨대 세속 군주에게 통치권을 주느냐 아니냐에 관한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것은 기독교회의 제도상으로는 바로 주교였다.
그렇다면 주교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놓기만 하면 '신의 뜻'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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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전환기에 살게 된 사람에게도 선택의 자유는 있습니다.
흐름을 탈 것이냐.
흐름을 거스를 것이냐.
흐름에서 발을 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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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에 대한 역모의 성패는 권력자를 배제한 뒤 누구를 그 자리에 앉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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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은 거세당한 고자니까 자식도 없고, 육친이라는 배경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보다 충성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제군주의 궁정에서는 환관에게 중요한 역할이 맡겨졌다.
말하자면 권력자와 측근의 관계지만, 환관의 운명은 그가 모시는 주군의 뜻에 좌우되는 정도가 건강한 남자들에 비해 높았다.
이렇게 되면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들에게도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려면 주군의 감정을 자기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그것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군을 항상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으면 주군은 그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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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면에서 가혹한 현실에서도 정신의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가혹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기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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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가 소용돌이치는 속에서 살아가려면 뜻밖에도 교활하게 굴기보다 당당하게 정면 돌파하는 편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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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에 큰 차이가 있을 경우, 전쟁을 오래 끌면 끌수록 병력이 적은 쪽이 불리해진다.
완승은 아니더라도 착실히 승리를 쌓아올려 궁극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도 있지만, 어떤 승리에도 반드시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계속 이기고 있는데도 손실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오늘날에도 서양에서는 이것을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른다.
아직 이탈리아 반도를 제패하고 있었던 기원전 3세기의 로마가 상대한 적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는 전쟁터에서는 매번 로마에 이겼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병력도 착실히 줄어들어 결국 에페이로스로 도망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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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어려운 것은, 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층은 개혁하면 손해라는 것을 금방 알기 때문에 격렬히 반대하는 반면, 개혁으로 이익을 볼 터인 비기득권층은 개혁이 뭐가 어떻게 이로운지 몰라서 당분간은 지지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거나 미지근하게 지지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가 눈을 뜨지 못하도록 재빨리 연달이 개혁안을 내놓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득권층의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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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기구는 내버려두기만 해도 비대해진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와는 달리 관료 세계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자기 보존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동류-바꿔 말하면 '기생충'-를 늘리는 방법으로 실현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기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로 끝나게 마련이다.
관료 기구의 개혁은 관료들을 '강제하고 복종시키는 힘'을 가진 권력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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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다른 방면의 일에는 쓸모가 없는 학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철학의 진수는 지식이 아니라 사색이다.
체조가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색은 두뇌를 단련한다.
바꿔 말하면 심사숙고하는 작업에 익숙해진다.
사색하는 데 익숙해져 있으면, 사색의 대상이 철학이든 투기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탈레스는 실증했다.
철학은 다른 방면에도 쓸모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실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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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은 말없이 조용히 살다가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다.
강풍에 일어난 파도가 좌충우돌하여 거품을 일으키듯, 사회가 통제되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인 끝에 망국이라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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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적 희생에 민감한 것은 문명인이고, 비문명인은 그런 데 무신경한 것이 보통이다.
이것도 '야만족'의 특징이고, 그들이 강했던 원인의 하나였다.
이런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로마 제국 말기의 '민족 대이동'을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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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군사력에서 패했기 때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패권자한테 자신들이 필요한 존재가 되면 패권 아래 놓여 있는 것에 대한 저항감도 약해진다.
승자인 로마는 패배자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들의 심정을 존중해주면 그들을 지배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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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심인 전투 의욕은 개개인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불확정 요소다.
하지만 이 불확정 요소까지도 충분히 활용하고 싶으면, 봉급이나 퇴직금을 보장하거나 시민 사회에 복귀할 때 혜택을 주는 따위의 확정 요소를 반드시 배려해야 했다.
인간은 대부분 안심할 수 있어야만 의욕이 생기는 법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국가'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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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능력과는 무관하게 제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정확히 꿰뚫어보았듯이 '제위신수설' 덕분이었다.
제위에 누구를 앉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신의 뜻이라는 것이 제위신수설이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하여 기독교를 진흥하기 위해 애썼다.
황제가 인간에게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되었으니까, 무능한 황제라도 제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확립되었다.
이 덕분에 황제가 계속 바뀌어 정국이 불안해지는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고, 이 사실 때문에 황제는 능력과는 관계없이 누구나 반드시 '중심'이 되었다.
#로마인_이야기 #시오노_나나미인간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없다.
따라서 법률로 다룰 수도 없고, 종교로 가르칠 수도 없다.
개개인이 자기한테 좋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일 뿐, 만인 공통의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도 아니다.
이것은 라틴어로는 '스틸루스'(stilus), 이탈리아어로는 '스틸레', 영어로는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중요하지 않아도 자기한테는 그 스타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손을 대면 자기가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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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폐쇄적이 되는 것은 인간성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에서는 공적인 자격을 갖지 않은 사람도 공적인 자격을 가진 사람 바로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갖게 된다.
황제의 근친자, 특히 가까운 여자에게는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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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면, 관료가 될 수는 있어도 정치가가 될 수는 없다.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 해도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로마인이 즐겨 사용한 말을 빌리면 'comprehendere'(파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 정보는 하나가 아니라 복수여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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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을 이루려면 정열적이고 정력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다 냉철함까지 갖출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열적이고 정력적인 것과 냉철함은 양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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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남에게 의지하는 데 익숙해지면 자력으로는 일어설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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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승자가 다수의 패자를 통치해야 할 경우의 철칙은 기존의 통치 계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기성 계급을 변혁하고 싶어도 뒤로 미루어야 하고, 당장 해야 할 일은 우선 기성 계급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패자인 그들은, 군사력에서는 자신들이 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강하고 깊은 두려움을 가슴에 품고 자기네 땅으로 진주해오는 승자를 맞이한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소수의 승자가 다수의 패자를 통치하는 일이 잘될 것인지 안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승자가 패자의 공포심을 조장하는 정책을 강행하면 절망한 패자는 죽기 살기로 저항한다.
그렇게 되면 다수에 대한 소수의 지배는 꿈으로 끝나고, 남는 것은 승자에 대한 패자의 끈질긴 저항과 그것을 제압하기 위한 군사행동의 끝없는 반복으로 수렁에 빠져드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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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든 군사든 행정이든, 인간 세계의 많은 일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백성에게 그것을 요구해야 하는 위정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은 '고통'을 '즐거움'이라고 구슬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마음이 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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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자는 반드시 쇠하고, '제행'(res gestae)은 무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이치라면,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그것을 배웅하는 것이 인간 노력의 집적이기도 한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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